*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저는 에세이 컨설팅 추천을 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A, B, C 씨가 누군지 문의하지 말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여기에 퍼블릭 포스팅이기 때문에 제가 다 못쓴 내용도 있고, 그런 추천을 할려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덜컥 장학금 욕심이 생겼다
사실 기획재정부에서 보내주는 유학은 언제갈지 도저히 기약이 없는 상태였고
내돈주고 갈만큼 여유있는 상태도 아니였어서 막연히 장학금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알아본 적은 없는 상태였다
학교 합격전에 주는 장학금이 몇개 있다고 들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고등교육재단 등 풀브라이트 외에도 한두개 있더라)
그중 가장 익숙하고 권위있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해보고자 부랴부랴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아뿔싸 7월 초가 마감이고
영문으로 이력서/500자짜리 자기소개서와 공부계획서, 추천서 3장(직장상사, 대학교수, 업무유관자 선호), 그리고 토플성적(GMAT이랑 GRE는 옵셔널)을 요구하더라
확인한 날 바로 추가 비용 25$를 내고 토플을 등록해서 바로 주말에 봐야 그전에 성적이 나오는 상황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토플을 등록하고, 바로 사흘후에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당시 여자친구가 토플강의까지 할정도로 전문가였던지라 걔한테 이것저것 템플릿만 좀 물어보고 바로 시험
(이렇게 쓰고나니 상당히 자랑하는거 처럼 되버렸는데 사실 이당시에 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때였다)
나중에 토플 포스팅 할때 얘기하겠지만 이점수가 그렇게 안오를줄 몰랐다
암튼 그럭저럭 토플은 봤지만 지원서류, 추천인 섭외, 그리고 추천서 작성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막 유학간 안재현(텍사스 전자공학 박사) 왈 : 풀브라이트 장학금 받으려고 몇년씩 재수하는사람도 있는데 시간이 너무 없으니 포기하는게 좋을거다
MBA지원 생각하면서 일단 다짜고짜 주위에 MBA가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먼저 MBA컨설팅해주는 유명한 사람을 만나서 한번 전략을 의논해보라고 했다 (콜롬비아 class of 2012 한ㅇㅇ(전 보고펀드) 왈 : 어차피 1~2억 꼴아박으러가는데 돈 몇백 아끼지 말고 투자해서 조금더 좋은학교 가거라)
그래서 최고라는 A, B, C 이런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메일보내서 만나본게
6월 중하순
B 선생님은 영어는 몰라도 나랑 fit은 조금 안맞는다고 느껴졌고
A 아저씨는 자신감이 너무나 넘쳐서 믿음이 갔지만 첫인상부터 아주 personal한 느낌은 없었는데
C 이사람 참 대단하더라. 내 얘기를 하나하나 들어주더니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줬다. 나는 분명 할 수 있다. 내 스토리를 그대로 살려라. 있는 그대로의 너의 얘기를 하고 보여줘라. 그러면 분명히 된다.
그리곤 스토리 라인을 잡아줬다. 내가 왜 MBA를 원하는지, 그리고 나의 goal은 어느쪽에 되어야 하는지
결국 한번 해보기로 했다. 정ㅇㅇ 선생님이 주신 자신감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삶이 그렇듯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맹렬한 돌진이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이ㅇㅇ(와튼 경영학 박사) 박ㅇㅇ(듀크 행정학 석사. 우리부 선배) 이ㅇㅇ(버클리 MBA, 우리부 선배), 한ㅇㅇ(보고펀드 출신 콜롬비아MBA)의 지원서류들을 받았다
선뜻 내게 서류를 내준 이사람들에게 지금도 너무나 고맙다. 지원서류를 보고나니 대충 추천서는 어떻게 써야하고 에세이는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더라
며칠밤을 새워서 에세이와 추천서를 썼다
1. 자기소개서의 대략적 스토리 라인‘07년 내가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하였을 때 사람들이 놀란 것은 카츄사 제대 후 짧은 준비 기간으로 한국의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공무원이 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더 놀라워했다. 안정적인 공무원과 나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내가 공무원이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 그것이 가장 어려운 도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와 가장 맞지 않아 보이는 공무원이지만 나의 골을 실현시킬 베스트 옵션으로 여겨졌기에 오히려 나의 도전 의식을 자극시켰다. 내가 가진 진취성과 국제마인드가 가장 보수적인 공직사회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획 재정부 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직에 동화되도록 강요받고 점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갈등이 깊어갔다. 정부의 스폰서십을 받아 가는 유학은 30대 중반 이후 보상개념으로 떠나는 것이며 졸업 후 국제기구에 파견된 한국 공무원은 업무적인 연속성과 전문성,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조직을 바꾸기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또 한번의 도전이 필요함을 느꼈다. 09년 차석대표로서 OECD 회의에서 주도적으로 발언하고 10년에는 OECD의 한국경제보고서 작성과정에서 현지 사무국과 열띤 토론을 주도한 것은 OECD 현지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개인적으로 이 경험은 내가 30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 빨리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연수 형태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수많은 현직 공무원이 국제기구와 연계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것은 언어적으로나 국제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경력관리의 한 과정으로 치부하며 귀중한 기회를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틀을 깨고 싶다.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어 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재경부에서 이루어 내야 할 조직 혁신의 역할이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통한 나의 MBA 유학은 한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직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내 후배들이 바라보고 쫓을 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다. 이것이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의미있는 도전이다.
2. 학업계획서의 대략적 라인
한국은 단일 세대안에 개발원조 수혜국에서 공헌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이다. 나의 커리어 골은 한국 경제관료로서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적극적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현재 개발되고 있는 CMI와 같은 공동 펀드를 적극 확대하며 민간 섹터와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정부와 민간기업, 그리고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저개발 지역의 경제 개발을 통해 가난퇴치와 영양실조 해소를 이끌고 싶다.
기획 재정부 공무원으로서 나는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뤄왔다.
그러나 기획 재정부 공무원으로서의 실질적인 정책 집행 경험에 더해 국제 금융 영역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전문성 없이는 국제 무대에서 책임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MBA 과정을 통해 국제 금융을 중심으로 finance 산업 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적기업 관련 코스를 통해 private sector에 대한 이해를 높이겠다. After finishing an MBA program, 단기적으로는 기획재정부에서 1~2년간 ADB 업무를 담당한 후 직접 ADB에 economist로 파견가서 가난한 지역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싶다.
IMF의 senior economist였으며 현재는 OECD대사로 계신 허경욱 전 차관님은 나에게 MBA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심어 준 나의 롤 모델이다. 그는 MBA 졸업 후 WB등에서 저개발국 개발업무를 수행하였다. 나의 일에 대한 열정과 국제무대를 향한 꿈에 감동한 그분은 따로 시간을 내어 내게 자신의 MBA경험이 그 이후 자신의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젊은 시절 MBA를 마치고 IBRD, IMF 등 국제 기구에서 전문가로 활동한 나의 멘토가 97년 국제 신용평가사와의 조율을 통해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을 견인하였다면 나는 이제 MBA 졸업 후 한국이 아시아 미개발 국가들의 경제 개발 지원을 리드하게 함으로써 한국이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는 역할을 하고 싶다.
3. 추천서
1) 직장상사 – 최ㅇㅇ 전 국장님
내가 모셔본 상사중 가장 똑똑하고 빠르며 나를 인정해주고 이끌어주신 분. 정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나 싶은 느낌을 업무적으로 처음 받아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아낌없이 밀어주신 평생의 은사님. 나랑 직접프로젝트 담당했던 것이 많아서 추천도 선뜻 수락해주셨다.
2) 학교교수 – 송ㅇㅇ교수님(와튼 박사)
내가 학교 수업 들은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 중 하나. 이메일 보내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3) 업무유관자 – 권ㅇㅇ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서울대 경영학 석사/와튼경제학 박사)
학교선배이자 의료업무를 같이하면서 나를 각별히 챙겨주신 고마운 선배님이자 핸드폰 없이 개도국 컨설팅과 학교 강의에 주력하시는 최고의 life를 살고 계신 분.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추천해 주셨다.
어떻게 진짜 데드라인 하루남기고 에세이와 이력서 번역이 끝나서
진짜 마감시간 쫒겨가면서 서류 냈다
이거말고도 영문 이력서 작성, 추천서 봉투 밀봉받아서 제출하기, 사진과 가족관계 목표학교 입력부터
서류작성 하나하나도 다 영문이고
정말 못할거 같았던 일들인데, 어떻게든 했다
그리고 일에 파묻혀. 7~8월은 내내 잊고 지냈다. 7, 8월은 정말 정규시간내 근무-초과근무 시간만 주당 3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다. 인터뷰 요청이 온 8월 말까지.
멋있구만! 읽어보니 많은 자극이 되네.. 이렇게 훌륭한 글 남겨줘서 고마워!근데 장학금 받기 전부터 GMAT공부를 한거보니 작년 초부터 이미 유학구상을 한거였구나.
하이고 형 형이 남긴거 이제봤네…보고싶다 형. 영국간다며??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