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어쩌다가 스탠포드 MBA에 덜컥 붙어버린 나는 2011년 4월 청운의 품을 앉고 Admit Weekend (합격자들이 와서 학교에 대해 미리 경험하는 시간) 를 오게 된다. 이때 나의 충격과 느낌은 이 글에서 쓴 바 있다. 여기서도 썼지만 너무도 멋진 세상이 열린다는 기쁨과, 내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자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참 만만치 않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를 꼽아 보자면
1. 대부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살았다. 나같은 사람은 정말 잘 없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통계는 거의 40% 가량이 International 이라는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Passport 개념이고 대부분은 영어가 자유로운 친구들이었다.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를 나오고 컨설팅, 뱅킹, PE를 거친 최상류층 엘리트들, 또는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일을 했거나 또는 영어가 자유로운 곳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대부분으로 보였고, 정말 진정한 의미의 영어가 native가 아닌 international은 10%도 채 안되 보였다. 나름 영어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이건 아예 리그가 달랐다.
아시아계 남자로서 열등감도 생겼다. 남미애들은 영어는 좀 못해도 일단 잘놀고 잘생겼다. 소위말하는 인기좋은 쿨한 애들이 많았고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 또 잘놀았다. 유럽애들은 역시 언어도 여러개하고, 재주도 많고, 일단 예쁘고 잘생겼다. 중국, 인도애들은 사람도 많고 영어도 잘하고, 커뮤니티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쪽에 관심잇는 미국애들이 워낙 많다. 난…한국에서 온. 가끔 착한 애들이 김정일 얘기나 물어보는 그런 흥미없는 존재. Sexual power dynamic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밑바닥이었다. 특히나 이쁜 백인 여자애들이랑 이야기하는게 제일 고역이었다. 아 상대방이 나한테 관심이 없을 것 같으면 진짜 이렇게이야기가 안나오고 하기 싫고 움츠려 드는구나. 열등감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확실히 느꼈다.
2. 영어를 너무 못알아듣는다. 농담을 못알아듣고 타이밍을 놓친다.
앞서도 소개했듯 나의 영어는 ‘평화로운’ 영어였다. 낮에 밝은 태양아래서 하는 일반 커뮤니케이션에 큰 문제가 없는. 그런데 진짜 영어는 절대 평화롭지 만은 않았다. 수많은 농담이 난무하고 제때 제때 타이밍 맞춰서 치고나오지 않으면 순식간에 소외되기 일수였다. 문제는 내가 미국 농담을 거의 못알아 듣는다는 거였다. Guest Speaker 가 와서 강연을 하는데 애들이 웃을 때 따라웃고 한 40%정도는 못알아 들은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못알아들으니까 신경을 더 써야했고 그러다보니 졸리고 피곤해져서 집중도도 떨어졌다.
3. 애들이 말하기를 너무 좋아한다. 말을 잘 못하면 발언권이 급격히 사라진다.
이건 내가 미국 적응기 1편에 잠깐 소개했던 내용이다. MBA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애들이 하나같이 다 그렇게 말하길 좋아하는지. 남이 이야기할 때 아주 적극적으로 듣다가 (active listening), 즉 눈 마주치고 “그랬어? 어떡하니. 그래 그래. Right Right” 이러다가 그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관련된 이야기, 더 재밌는 이야기로 치고나간다. 즉 재밌는 이야기들이 계속 떠돈다. 꼭 전투를 하는 느낌이다. 공격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데 잡을 수가 없다. 빈틈이 없으니까.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내가 할말이 생기거나 약간의 침묵이 생기면 무조건 치고나가야 한다. 그래야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얘기가 별 맹탕한 에지없는 이야기면 순식간에 이야기가 전환되고, 나에게 오는 발언기회와 시선은 급격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느껴본적 조차 없는 문제고 상황이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침묵의 시간이 꽤 있어서 누구나 원하면 이야기할 기회가 꽤 있다. 특히 나는 내 이야기를 좀 줄이기를 항상 신경썼고 전체 그룹을 잘 살펴서 발언기회가 부족했거나 조금 소외된 친구에게 많이 기회를 몰아줬으면 줬지 내가 따가 되다니…
말 자체를 잘 못하는것도 문제였고 농담을 못하고 타이밍이 떨어지는 것도 진짜 큰 문제였지만 (워낙에 애들이 놈당하기를 좋아해서 뭔가 재치있게 재밌게 시작하는게 아주 당연하다.) 컨텐츠 자체가 정말 부족했다. 서로서로 “야 너 어디서 왔어? 오 그래? 그럼 하버드에 걔 알아? 아 너도 그때 미식축구 했니? ” 뭐 이런식의 이야기들이었고, 나의 한국정부에서 일하다 온 이야기는 “Interesting ” 정도 한마디 듣고나면 (참고로 미국에서 Interesting 이란 반응은 참 재미없다. 참 신기하지만 도저히 다른 해줄말은 없다 정도일 때가 꽤 있다.) 다시 묻혀버리곤 했다.
4. 1대1 대화는 되지만 저녁 테이블과 술자리는 진짜 힘들다. 즐거움이 아닌 고역이다. 순식간에 따가 된다.
저녁이 되면 문제가 심해졌다. 이노무 미국놈들은 예의라곤 모르는지 저녁먹는 자리나 술먹는 자리에서 음악이 그렇게 시끄럽게 틀어져 있는 경우가 꽤 많았다. 또 아까 이야기했듯 워낙 말하는걸 좋아해서 순식간에 아주 시끄러운 말이 오가는 저녁자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으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마주본 사람과 1대 1, 또는 서너명이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가 타이밍이 맞으면 반대방향쪽 사람이랑 얘기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때도 짝을 맞추다 보면 내가 제외되기 십상이었고 나에게 오는 기회나 시선이 떨어지는게 현격히 느껴졌다.
특히 가장 어려운건 술먹을 때였다. 게임을 하면서 다같이 먹거나 다같이 노는 한국식 술문화와는 달리 여기선 술 한두개 들고 돌아다니며 고개 끄떡거리며 엄청나게 시끄런 음악이 나오는 바에서 시시껄렁하게 살짝 몸을 흔들며 다니는 그런 술문화가 많았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상대방도 나를 못알아 듣고. 진짜 재미없고 고역이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내 목소리가 작다는 것. 내 발성이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 억양이 Accent 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것 같은 작은 여자애도 두성이나 복성으로 소리를 내고 액센트가 정확하면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영어가 잘 들렸다. 그러나 내 영어는 나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내 말을 못알아 듣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벙어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의사소통이란게 꼭 소리만은 아니구나. 입 모양, 바디 랭기쥐, 이런 것들이 너무 중요했다. 마치 헬렌켈러 체험을 하는 느낌이랄까. 난 손짓 발짓도 잘 섞어쓰지 않았고 입 모양도 작았다. 미국애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 이런 어려움은 더 커졌다. 얼굴을 안보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어렵구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기분좋은 설레임과 새로운 각오로 재무장하고 있었다.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어울리기를 포기하는건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다 무찔러 주겠다는 마음으로 난 아래와 같은 각오를 했던 바 있다.
너무나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리는걸 느낀다. 미국 컨설팅이나 Bank 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제 3국에 가서 좋은일에 매진하기(사회적 벤처 캐피털 등등), 홍콩, 싱가폴 금융계나 회사에서 시작하기, 한국의 컨설팅이나 Bank로 가기, WB, IFC 등 국제기구로 바로 진출, 기획재정부로 복귀하기 등등. 매일 매주말, 수많은 강연, 리쿠루팅, 그리고 Trip과 새로운 경험의 기회들이 나를 기다리고 세계를 돌면서 새로운 일을하고 경험해볼 기회도 수없이 많다. 선배들 말처럼 너무도 많은 것들이, 가슴 벅찬 기회가 기다림을 느낀다. 그걸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하는게 정신 바짝차리고 준비하는게. 이제부터 내가 해야될 거구나…
그리고 나서 난 신동표 어학원에 가서 통번역 실전반에서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하는 언니야 들과 즉석에서 통번역을 해가며 영어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이메일도 더 잘쓰고 싶어서 친구한테 비결을 물어보자 친구가 그러더라. “산아, 결국 가서 부딪히는 수밖에 없어. 여기선 아무리 준비해도 한계가 있어. 가면 힘들겠지만 차차 이겨낼거야. 화이팅이다 친구야.”
그래…일단하는데까지 하보고 가보자. 그렇게 2011년 여름이 나가오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 하셨을지 절절이 느껴지네요. 🙂 좋은 글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
저같은 경우 회사다니면서 말씀하신 고민들을 느끼고있습니다. 특히나 술한잔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이야기하는 네트워킹 그리고 유럽에서 오신 여성분들과 오랜만에 만날때 서로 쪽쪽거리는 볼인사…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하하 예 전 볼인사는 전혀 어렵지 않고 좋던데요 ㅎㅎ 감사합니다. 많이 적응됐어요
근데 정말 미국에선 말 잘하는게 너무 중요한것 같습니다.
이게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정말 느끼게 되는게
public speaking 그리고 small group talking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는 것 이더군요..
예 이젠 많이 나아졌는데 참 어렵고 힘들었어요.
하하하, 저 그림자 그림 너무 공감되는데요, 한국에서도 별로 말이 많지않은 저로써는 더더욱 쉬운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는데 많이 보고갑니다~
미국애들이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건 문화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엄밀히 보면 예의가 없는 행동입니다. 회사 들어오면 좀 조심들 하죠.
하하 네네 계속 적응해가고 있습니다요!
미국애들이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건 문화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엄밀히 보면 예의가 없는 행동입니다. 회사 들어오면 좀 조심들 하죠.
저도 미국 처음와서 그리고 인턴할때도 느낀 어려움들이네요! 참 어렵고 좌절스럽고 그랬었는데 ㅎㅎ. 미국애들만의 이해안가는게 있기도 했었는데 그땐 그런것들을 위티하게 call out해서 주도권을 바꾸는것도 좋은 방법인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