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부터의 자유#1. 직장을 나올것인가. 왜.

블로그를 시작하고 가장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지난 7개월이었다. 도저히 세상을 향해 글을 쓸수 없었다. 모든게 정리되면 글로 쓰려고 짬짬이 메모만 해 놓았는데, 그러다가는 영영 못쓸것 같아서 이렇게 뭐라도 시작해본다.

이번 글은 지난 1년여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스트러글(struggle) 하면서 겪은 나의 솔직한 간증이다. 커리어 적으로 보면 자랑할것 보다 부끄러운게 훨씬 많다. 아직까지 혹자가 비판한것 처럼 갈피를 못잡고 소위말해 ‘헤매고’ 있다고 볼 수 있는게 내 커리어다. 직장 찾는데 고생하는것도 한두번이면 됐지 매번 수십개 회사 떨어지고 한게 시행착오 하는게 뭐 큰 자랑이라고 글을 쓰냐고 할수도 있다. 그래, 이건 이건 나의 약함의 고백이고, 어떻게 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내가 그 과정에서 뭘 느끼고 배웠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너무나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배우고 느낀게 너무 많다. 긴 글을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직장을 나올지를 고민하다

“산아, 지금회사 계속 다니는게 맞는지 정말 잘 한번 생각해봐. 너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MBA 선배형이 2018년 5월에 내게 말했다. 한사코 난 그런거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이 회사 가능성도 많고 너무 재밌게 하고 있고 하다고 했지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실 2018년 들어서 몇가지 일이 있으면서, 회사에 입사한지 3여년 만에 처음으로 일하다가 힘이 빠진다고 느꼈다. 발단은 내부에서 한 익명 서베이였다. 나에 대한 피드백중 상당히 아픈 것들이 꽤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는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에 거짓말처럼 힘이 빠졌다. 단단하기만 했던 내 마음에 균열이 가는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충격도 있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장수중 하나가 다른 더 큰 회사에 더 좋은 오퍼를 받고 간다는 거였다.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 실리콘밸리는 그만큼 인재 전쟁이었다. 너무 급해서 황급히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메꿨는데 구관이 명관이랬지 너무 비교되는게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메꾸느라 또 정신이 없었다. 

5년만에 찾은 MBA Reunion도 한몫 했다. 주로 일들이 잘풀린 사람들이 이런 동문회에 오고, 다들 주로 잘된 이야기만 한다는걸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접한 동문들의 커리어 소식들, 평균연봉액수 이런것들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우리회사도 꾸준히 잘 성장하고 있었지만 J curve를 그리며 성장하는 친구들앞에서 괜히 기죽으며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나도 더 엄청난 성장을 경험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도 들었다.

이런일들이 반복되더 보니 마음을 다 잡아보려 해도 잘 안됐다. 여전히 할일은 많았고 여전히 열심히 일했지만 내 마음의 중심에 해결되지 않은 물음은 점점 커져갔다.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계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전처럼 일에 200% 집중하거나, 직장을 내가 섬기는 사역지로 접근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짐을 느꼈다.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이 짜증이 되기 시작했다. 왜 쟤는 허구한날 쓰레기 한번 안버리고, 물이 다 떨어져도 갈지도 않는거지. 왜 쟤는 또 늦게오고 일찍가고 업무시간에 딴짓하지, 뭐 이런 말도안되게 작은 것부터 자꾸 눈에 걸렸다. 기도하고 직장일을 시작하기도 어려워졌고,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아니 즐거움이었던 아마존 문제처리, 고객 세일즈 뒷바라지, 재무제표 마무리, 고객관리 시스템(CRM system) 하나라도 더 업데이트하기 등의 일들이 전처럼 재미가 없어졌다.

기도가운데 어렵게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뭘 기도해야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일단 기도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왜이럴까요. 없애주실 수 있다면 없애주시고 다시한번 200% motivate 된 상태로 바꿔주세요. 아니라면, 제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하는게 맞는건지 지혜를 주시옵소서” 

가장 크게 고민됐던 것은 대표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였다. 아무리 대표와 친한 사이고, 거의 친형같은 사이였지만 이건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아직 아무런 옵션이 있는것도 아니고 답이 있는 이야기도 아닌데, 내 모티베이션에 문제가 생겼다는걸 굳이 이야기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서로의 신뢰에 금만 주는게 아닐까. 마치 결혼한 아내한테 “요새 좀 안좋다. 이혼 생각까지 해본적 있다” 이런 이야기 하는거 같이 느껴졌다. 

기도하면 할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그래도 하는게 맞는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대표라면, 해주길 바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대표가 나에게 베풀어준것을 생각해서라도, 이건 하는게 맞다. 입장바꿔 생각해봐도 이건 하는게 맞다. 그래서 큰맘 먹고 이야기 했다. 따로 1:1 시간을 잡아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좀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메일까지 보냈다. 이야기하고 나니 해결된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은 좀 후련했다. 

대표 형은 생각보다 더 차분히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이야기 잘했다고, 충분히 펀딩 되고 다음 스테이지로 가면 해결가능한 고민들이라고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대표형한테 듣게 된 이야기지만, 정말 이 이야기가 아주 아주 가슴아픈 비수로 자기 가슴에 꽂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미어지더라.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너무 미안하고 가슴아팠다. 아 그리고 늘 내 안부와 안위를 생각하는 대표에 비해 난 정말 대표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구나 라고 느꼈다. 나의 마음은, 헤아림은 그만큼 작았다. 그걸 알았다면 같은 말이라도 조금은 다르게 할 수 있었을것 같은데. 지금도 이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나서도 대표와 한번씩 이 이야기를 했지만 이야기는 조금씩 겉돌았다. 대표는 “그래서 만약 나가면 뭘 하고 싶은데 라고 물어봤고”, 난 “일단은 다음 펀딩 크로징 할때까지는 열심히 일하겠다. 그리고 어떤걸 할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보겠다” 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018년 여름에 레쥬메, 링크딘 등을 업데이트 하고 주위에 지인들, 주로 우리회사와 관련없는 MBA 친구들을 만나며 potentially 이직에 관심이 있다는걸 넌지시 알렸다. 

그러면서 계속 기도했다. 정확히 뭐라고 기도해야 될지도 처음엔 몰랐지만 일단 뭔가 답답하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고 기도를 부탁하다 보니 크게 몇가지로 기도가 정리가 됨을 느꼈다. “1. 이 과정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하시고 주님을 더 경험하고 주님안에서 더 성장하게 해주세요 2. 나와 내 주위 환경들이 주님이 보기 좋으신 모습으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일이 나의 우상이자 정체성인 것을 발견하기

그리고 신앙공동체에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알리고 같이 기도를 부탁했다. 내가 섬기고 있는 한어부 목장에도, 그리고 요새 나가고 있는 영어부 남자 모임에서도 나눴다. 고맙게도 EM 형제들은 나의 이런 나눔에 그저 그런 뻔한 대답을 주거나 대충 넘기지 않고 본인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해주거나, 나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내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봐 줬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줬다.

산, 왜 옮기고 싶은거 같아? 왜 모티베이션이 떨어진 것 같아? 그 밑바닥에 정말 뭐가 있는지 한번 꼭 파헤쳐봐봐” 특히 목사님은 조금은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으로 물어보셨다. “예수님보다 더 바라는게 있는거니? “Is there something you want more than Jesus?” 

우상숭배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질문. 그래 이걸 붙들고 기도하자 내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는걸 알게 됐다. 분명 난 하나님도 원하지만, 이것도 원한다고.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 같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이걸 원하는지. 이게 얼마나 나의 우상인지. 그리고 주님은 질투하시는 분이다.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원하는 마음은 받지 않으신다. 한 3개월쯤 기도했을때, 몇번의 예배 가운데 이게 얼마나 나의 우상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난 커리어의 성공, 성취, 주위의 인정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 커리어의 성공은 나의 정체성 – 아이덴티티였다. 내가 왜 더 나은 직장을 원하는지 그 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나의 저 밑바닥에, 내가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이 보였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나의 정체성 이란것을, 아니 적어도 내 정체성의 아주 많은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사람을 볼때, 그 사람의 Professional status를 가장 중요한 잣대중 하나로 여긴다는것도 알게됐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걸수도 있지만 분명 정도가 지나쳤다. 나에게 중요한건 내가 공부를 잘했고 세상에서 이것저것을 이뤄왔다는 거였고, 그건 내가 아무리 겸손한척 해도 내가 가진 자부심이었고, 도저히 놓기 싫은 나의 Badge of honor 였다. 그리고 그게 남들보다 뒤쳐지는것처럼 느껴지는건 죽기보다 싫었고,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잘 안될때 난 나의 정체성이 상실되는것처럼 힘들어했고, 나의 전체 삶이 흔들리는걸 느꼈다.

눈물로 회개. 그래 난 정말 약하구나. 한걸음씩 해봐야 겠다.

그러다가 예배중에 기도할때 하나님이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주셨다. 바로 내 딸이 장난감 인형 옷 입히면서 잘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내는 모습이었다. 진짜 별거 아닌데. 세상의 인정을, 칭찬을 구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는게 어렵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을때, 하나님은 내 딸이 울부짖는거처럼 마음껏 울부짖으라고, 괜찮다고, 마음껏 이야기하라고 응원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산아, 당연한거야. 이건 너한테 아주 약한 부분이라고. 어렸을때부터 칭찬을 먹고 살아왔고, 주위에서 주목받아 왔고, 각종 소셜미디어부터 해서, 다양한 환경에서, 넌 주위의 인정과 칭찬에 매우 약하게 성장해왔고 프로그램 되어 있었던 거야. 아주 걸음마 수준이야. 두살짜리 니딸 하루처럼. 게으름이나 나태에 약한 사람도 있고, 화나 시기하는 마음에 약한 사람도 있고 각자 약점이 다 있는데, 이게 너의 약점이야.

걱정하지마. 한걸음씩 하면 되. 세상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나의 인정만을 온전히 구하는 훈련을. 너 딸 하루가 인형옷 입히는거 지금 하듯이. 어느순간엔 이런것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될테니 한걸음씩 계속 잘 따라와 보렴.

영으로 하는 회개, 생명으로 이르는 회개 (repentance that comes to life). 그 회개는 진짜 달콤하다. 정죄(accuse)하지 않고, 비난하거나 질책하지 않고, 더 나은 삶으로, 자유의 길로의 초대이다. 그래, 몇개월을 이걸갖고 기도하며 씨름한 후에 내가 받은 첫번째 응답은 회개 (repentance) 였다. 2018년 가을, 그렇게 나는 내가 얼마나 커리어에, 주위의 시선에 약하고 이거에 의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인시큐어(insecure) 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내적성숙과 외적열매 – 에 적은바 있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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