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년여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스트러글(struggle) 하면서 겪은 나의 솔직한 간증문 – 일로부터의 자유, 그 네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 전 이야기는 아래 세 글을 참고바란다.
일본을 접고 컨설팅도 접고
일본에 이렇게 다녀오고, 구글/아마존 일본지사를 비롯해서 순수 일본 회사에도 지원해보고 이야기도 했지만 진척은 더뎠다. 사실 내가 입장바꿔 생각해도 나라는 사람을 일본회사에서 지금 뽑을 이유가 없었다. 구글에 다니는 친구도, 아마존에 다니는 친한형들도 나를 도와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일본외 지역에 투자할 사람을 뽑는 일본회사 하나와 천천히 이야기하는것 말고는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에는 전 직장에서도 아직 못다한 일이 남아서 Advisor/Consultant 로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친하게 지내는 성문이형이 이런 제안을 줬다.
“산아, 그래 요새 어떤 생각하니? 일본? 난 잘 모르겠다 답답할수도 있을거야 너 성격에서. 나도 그때 회사 나와서 새 일 찾을때까지 참 별의별 고생 다했는데 너만 관심있으면 우리회사 프로젝트 하나 안해볼래? 나도 너 도움좀 받고, 너도 완전 수입이 없어지는것 보단 용돈정도 벌면 좋을수 있잖아.”
이렇게 고마운 제안을해줘서 성문이형과 프로젝트도 했다. 아침에 나와서 갈데가 있다는게 감사했고, 같이 점심먹을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게 감사했다. 프로젝트도 참 재밌었다. 형이랑 일해보는것도 재밌었고. 참 멋진 비지니스를 자기 스타일대로 운영하고 있는걸 볼 수 있어서 참 좋았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이것말고도 전부터 같이 뭐 해보자고 한 사람과 사이드로 프로젝트도 해보고 나름 바쁘게 지냈다.
이런것들은 다 재밌는 일이었지만 내 본업이 될 수 없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 본업은 리크루팅이 되어야 했다. 리크루팅, 이거 진짜 해본사람만 아는, 참 겸손해지게 만들고 (humbling) 참 할려면 끝도 없고, 안할려면 한없이 늘어지는 참 진이 빠지는 프로세스 였다. 펀드레이징, 세일즈, 다 비슷한 부분이 있는것 같다. 수없이 많은 no를 들어야 하고,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될때까지 도전해야 했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계속 나를 사주세요 나를 사주세요 하고 벌거벗고 몸팔러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안사주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아래의 것들에 익숙해 져야 했다.
- 기다리는것에 익숙해지기
- 거절에 익숙해지기
-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것에 익숙해지기
- 끝없이 부탁하기에 익숙해지기
그래서 다른 모든것들은 거의 접기로 했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최대한 삶을 정돈했다. 그렇게 3월이 오고 있었다.
아내의 불안을 알고(recognize) 터놓고 이야기하고 보듬기
이당시에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나누고 싶다. 내 아내는 참 고맙게도 먼저 회사를 마무리하고 리크루팅하는걸 지지해줬다. 작년도에 선교를 다녀와서 내가 이렇게 할까 생각하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자 “기도응답 받은거잖아? 하나님이 그러시라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선뜻 응원해줬다.
그리고 대책도 없고, 몇개월치 버틸 저금(deposit)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일본으로 비행기 타고 가는 남편도 배웅해줬고, 수없이 많이 바뀌어 가는 내 방향도 기본적으로 다 응원해줬다.
“오빠, 난 뭐든 괜찮아. 내 생각엔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데 가는것도 괜찮은거 같긴해. 아직 오빤 그런 경험이 없잖아. 그래도 그건 내 욕심이고 진짜 난 다 괜찮아. 일본도 좋고, 어디든 가자.”
그렇지만 그녀는 여자고, 두 아이의 엄마였고, 살인적 물가의 실리콘밸리에서 외벌이 남편에 의지하고 있는 아내였다.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구글, 애플 이런 회사의 안정적인 베네핏을 유지하고 있었고 집을 사는 사람도 많고 그랬다. 어느날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그녀가 이런말을 하자 정신이 번쩍 났다. “사실 불안해하면 안되는데, 제 남편한테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데, 가끔씩 불안한건 숨길수 없는것 같아요.”
그래서 그날 집에 돌아와서 어색해하는 그녀 손을 잡고 이야기좀 하자고 하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민경아, 잠깐 나랑 이야기좀 하자. 불안하지? 불안한게 당연하지. 지금 상황이 그런데. 괜찮아. 불안해 해도 괜찮아. 억지로 그걸 참지마. 정신건강에 안좋아. 불안한게 뭔지 꼭 피하지 말고 숨기지 말고 스스로에게도 이야기하고 나에게도 이야기해줘.
쉬울거라고 장담은 못하겠어. 내가 친구들 만나보니까 나보다 훨씬 더 멋지고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친구들도 수개월씩 리크루팅 하더라고. 그런애들도 3개월씩 걸리는데, 나도 충분히 몇개월은 걸릴 수 있을것 같아.
내가 몇가지 약속할게. 적어도 6월까지는 일자리를 구할게. 5월까지 해보고 안되면 어디라도 가서 적으로 이정도 이상은 돈 벌어올게. 우리 그때까진 괜찮잖아. 그러니까 내가 한번 맘껏 해볼수 있게 응원해줄수 있겠어? 분명 이 시기는 우리한테 쉽지 않은 시기일거야. 우리 스스로를 잘 보살피고 서로를 잘 보살펴주자 (let’s look after each other and ourselves first). 그리고 다른건 과감히 내려놓자. ”
이때는 미쳐몰랐다. 6월이란 시간이 그렇게 금방 올줄은…

그러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리크루팅 상황을 Streak CRM 로 정리한걸 보여줬다. 민경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나름 비장했고 짠한 상황이었다. 참 이 상황을 이해해주는 아내가 정말 고마웠다.
아내와 결혼생활 통틀어 가장 컸던 부부싸움
그렇지만 항상 좋았던건 아니다. 3월초에, 나도 그녀도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때에, 우리는 별거 아닌걸로 결혼생활을 통틀어 가장 크게 싸웠다. 내가 둘째 하율이를 안고 있다가 얘를 침대에 내려놓으려 할때 갑자기 얘가 내 품에서 침대로 뛰어서 침대에 반동하며 땅바닥에 부딪히는 일이 벌어졌다.
깜짝놀란 아내는 “아 오빠!!” 이러면서 나를 비난하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난 반사적으로 “내가 뭘 잘 못했는데?” 하면서 되받아쳤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아내는 내가 애를 너무 신경쓰지 않고 다루는거에 늘 스트레스 받고 있었고 (어느 엄마가 안그렇겠는가) 그거에 최근에 이것저것 스트레스와 불만이 쌓여있던 차에 이게 도화선이 된 거였다. 이 별거 아닌 일로 시작해서 순식간에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다양한 폭탄을 서로에게 터뜨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공격수위를 높이자 나도 높이고, 계속 신무기(?)로 업그레이드하며 싸워보니, 대한항공 땅콩의 조모시기처럼 나도 소리지를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내 안의 악을 그냥 마음껏 let go 하면 얼마든지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것 같다는 그런느낌). 한참 퍼붓는 과정에서, 민경이가 “솔직히 요새 오빠가 일도 안하고 시간도 좀더 있을텐데 도와주는게 뭐가 있어? 지난번에 이런때도 안도와주고, 누구는 어떻다는데, 내가 비교하려는건 아니지만 ~~” 이런 말을 했는데, 민경이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그게 그렇게 내게 상처가 될수가 없었다. 그녀도 조금 후에 이성을 찾고 나한테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는 나한테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를 꽂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도저히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이런글을 썼다. 정말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제목은 남자구실 못하기 였다.
남자구실 못하기
남자에게 있어서 제일 서러운게 뭔지 누가 내게 물어본다면, 난 수컷 구실 못한다고 느낄때 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찌질해서, 내가 가진게 없어서, 그 어떤 암컷도 내게 오지 않을때, 아니 곁에 있던 암컷이 떠나갈 때, 수컷은 이 경쟁 치열한 세계에서 아주 냉혹한 현실을 접한다. 세상은 만만치 않구나. 그리고 많은 힘을 가진 수컷이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지 본다. 이 열등감, 이 분노, 이 패배감, 이 수치심, 이 모멸감은 아주 강력한 drive 이다. 선에 의해 부여된 drive 보다 훨씬 더 powerful 할때가 많다. 실제로 많은걸 이뤄낸 남자들 중 상당수는 이런 drive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내게도 분명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군대가서 여자친구한테 차였을때, 찌질하게 고시공부 하며 신림동에 있을때, MBA준비할 때 여자친구할 때 차였을때, (MBA 졸업하고 가진것 하나 없이 계속 리크루팅 할때), 그리고 지금 나때문에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어쩔줄 몰라하는 아내를 볼 때 이다.
가진 돈은 떨어지고 세상에서는 번번이 no를 받고 가정에서도 자기를 appreciate 하지 않는 spouse를 만나면 남자는 궁지에 몰린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좋지 않다. 안좋은 행동들이 나온다. 자기 포기나 자기 방어나, 거기에서 무리수가 나오고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나 흠을 남긴다.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들, 보증을 서달라는 사람들,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고, bridge 를 burn 시킨다. 나도 아내도 궁지에 몰리는걸 원치 않는다.Insecure한 사람은 더 쉽게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그래서 그런사람을 상대하는건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지금의 나는 분명 insecure하다. 세상의 거짓말인 것을 알고, 내 아내도 그 거짓말의 희생양임을 안다 피해자임을. 그래도 때때로, 아니 자주 그렇게 되는걸 막는게 거의 불가능한것처럼 느껴진다.
이 Insecurity를 분노로 넘을 것인가. 나를, 남자구실 못하는 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내 주위 사회와 사람들과 심지어는 과거와 현재의 스스로에게라도 나는 분노로 대할 것인가. 너무나 그러고 싶은 자신을 발견한다. 두고보자. 내가 나중에 진짜 보란듯이 잘되서 어떻게 사나 한번 보여주지. 이 순간의 모멸감을 잊지 말라고 분노에 땔감을 끼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나님은 이걸 은혜로 넘으라고 하신다. 괜찮다. 내가 다 이루었다. 너를 너무 사랑한다. 무엇이든 나의 사랑을 막지 못하고, 난 너의 아픔까지도 쓸 것이다. 모든것에는 때가 있으니 이걸 분노로 승화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와 충만과 절제와 어려운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해라. 내가 이겨나갈 힘을 주겠다. 이겨나갈 하루의 빵을 주겠다. 이겨나갈 사람들을 주겠다. 너의 삶은 이미 보호되어 있다. 불안해하지 마라. 분노하지 마라. 증오하지 마라. 미워하지 마라. 괜찮다. 내가 다 안다. 그래서 아파하는 너를 위해 내가 내 아들을 희생시켰다. 그래 괜찮다. 와서 밥이나 먹자.
하나님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아니였으면 자기연민이나 자기학대, 분노로 나 자신을 활활 태워버렸을것 같다.
안녕하세요
1년전부터 구독해온 25살 취준생 입니다^^ 이메일로 알림설정해서 시간 날때마다 보고있습니다
하루하루 누적해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 그리고 솔직하게 공개하는 모습에 늘 감동받고 많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 졸업하고 현재 긴 취준생활에 밤낮을 설칠때가 많습니다
8월에 23개의 자소서 9월엔 32개의 자소서를 쓰며 이젠 인적성공부에 없는돈 모아서 인강도 들어야하네요
그래도 여러 취업카페 합격수기를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있습니다
제가 감히 힘이 되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사시고있고 충분히 잘하고 계시다는걸 알려드리고싶어요
지친몸을 이끌고 울면서 도서관에가도
항상 어머니가 보내준 응원문자를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두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 모두 원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살면서 지금처럼 힘든 시련은 없었기에 하늘에서 성숙해질 시간을 마련해 준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감사하고 겸손해질줄 알고 자기 자신을 가꾸어라…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키워라 라고 계시를 내려주신게 아닐까요.?
물론 백산님은 저보다 더 많은 깨달음이 있으시겠지만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차원에서 응원의 메시지 보냅니다
일면식은 없지만 제가 존경하는 분중에 한 분이고
블로그를 알음알음 보며 정말 많은 동기부여가 됐어서요..^^
그럼 주말 잘보내시고…화이팅하세요..!!
안녕하세요 민희님, 이렇게 커멘트 달아주셔서 많이 감사드려요. 응원과 위로가 많이 되네요. 어찌보면 같은 취준생으로서^^
네,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성숙의 시간임은 정말 공감해요. 민희님도 저도 이 길의 끝에는 더 성숙해 있겠죠? 감사합니다 화이팅 이에요.
백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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