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년여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스트러글(struggle) 하면서 겪은 나의 솔직한 간증문 – 일로부터의 자유, 그 여섯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 전 이야기는 아래 다섯 글을 참고바란다.
- 일로부터의 자유_1. 직장을 나오기로 마음먹기까지
- 일로부터의 자유 2. 믿음으로 정해진 곳 없이 직장을 마무리
- 일로부터의 자유 3. 일본에 갈 것인가
- 일로부터의 자유 4. 거품이 꺼지고 찾아온 가정불화
- 일로부터의 자유 5. 신앙안에서 회복하고 성장했던 풍성한 4월
아내를 5월중순 터키선교 보내기로 결정하다
부활절 주는 정말 마법같았다. 새벽기도를 매일 아내와 함께 나갔는데, 매일같이 눈물바다였고, 매일같이 새로운 말씀을 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부활주일 새벽기도의 주제는 중동선교 였다. 중동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이 선교사역을 간증하며, 아랍 스프링과 시리아 난민이후 그 난공불락이었던 중동 이슬람의 성지 터키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을 나눴을때, 나도 내 아내도 가슴속에서 성령의 감동을 많이 느꼈다.
목요일 아침예배를 마치고 오면서 서로 거짓말처럼 5월 터키 선교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조금더 기도해보기로 했다. 그도 그럴것이, 아직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선교를 간다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인 부담뿐 아니라, 그 기간동안 내가 리크루팅을 못하고 육아를 해야한다는걸 의미한다는걸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크루팅이란게, 한번 모멘텀이 떨어지면 다시 픽업하기 참 어렵기에, 중간에 열흘이나 방학을 하고 쉼을 둔다는건 참 위험한 모험이었다.
금요일 (성금요일) 예배를 마치고 오면서, 이게 그냥 우리의 충동적인 마음이 아니라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인터뷰 보는거 최종면접이 다음주 월요일에 있으니 예배 보고 피드백 듣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예배에서 둘다 펑펑 울고 나오고 그냥 결정해버렸다. 그래. 굳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때 조건을 달지 말자. 사실 내가 받은 마음은 아내를 보내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아내를 통해, 하나님이 하는 일을, 직접 보라는 거였다.
산아, 난 내 아들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알고 더 보기를 원한단다. 아내를 통해, 아내의 눈을 통해, 아내의 영을 통해, 그것을 느끼고 보려무라. 그럴 수 있겠니? 쉽지 않다는거 안다. It’s completely your choice my son.
장인 장모님도, 처음엔 많이 놀라고 황당해 하시다가, 응원해주며 서포트해 주셨다. 쉽지않은 결정이셨을텐데 참 감사했다. 그래, 그렇게 5월 6일-16일, 열흘간, 아내를 터키 선교에 파송하기로 같이 결정했다.
덜컥 결정은 했지만, 직장은 내맘대로 되지 않고
그렇게 결정하고 나자, 아내는 정말 너무너무 좋아했지만, 정작 내게는 엄청난 부담감이 점점더 엄습해 왔다. 사실, 파이널까지 간 곳은 월요일에 최종으로 내가 발표 (in person presentation)를 하는 한곳 이었고, 거기가 안되면 그만큼 많이 진행된 곳은 또 없었다. 그리고 말이 열흘 육아지, 리크루팅이라는게 한번 모멘텀을 잃으면 얼마든지 늘어질수 있는게 아닌가. 지난 몇개월간 리크루팅 하면서 진이 다 빠져있어서, 5월 중순까지 꽤 가능성 높은 옵션이 없으면 그냥 자포자기가 되어버릴까 걱정이 저으기 됐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몸도 진짜 안좋았다. 부활절 주일은 진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구글 싱가폴과 면접을 봤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무슨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아 진짜 미뤘어야 했는데, 미루자니 곧 민경이 선교도 갈거고해서 안미뤘는데, 면접보고나니 안미룬게 후회가 막급했다.
그런 걱정반, 기도응답을 기억하며 편안한 마음 반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월요일에 최종 면접장으로 향했다. 워낙 주말엔 바빠서 월요일 하루종일 마지막 발표 자료준비를 마치고 제대로된 예행연습 없이 바로 발표했다. 발표는 거의 1시간가까이 진행됐는데, 피드백은 글쎄,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일단 할 수 있는걸 했다고 생각하며 집에 왔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전화 연락이 오기전 수요일까지는 진짜 진짜 힘들었다. 리크루팅이란게, 펀드레이징/세일즈와 마찬가지로 결과가 좋으면 바로 연락이 오는 법이다.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바로 그날 연락이 안온것 부터가 마음이 많이 걸렸다. 나를 많이 도와주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친구는 내 문자를 씹거나 답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화요일, 수요일에는 마음이 너무 안잡혀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아무 말도 하기 싫고 할 수 없어서 바보처럼 그냥 멍하게 있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기도 하고, 계속 잠에 빠지고 싶기도 하고, 시간이 확 가버리면 좋겠기도 하고, 진짜 거의 처음 느껴보는것같은 우울증 비슷한 이상한 기분이고 증상이었다.
수요일 오후엔 사실 목장형제들을 대상으로 간증 모임이 있었다. 이번 구직과정을 통해 역사하신 주님과 은혜를 나누고자 시간을 잡았는데, 모임시간은 다가오는데 유니슨에선 연락이 없었다. 민경이는 이미 터키 비행기표도 사고 들떠 있는데. 진짜 안간힘을 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고 마음을 모아서 어떻게 목장에 가서 간증 발표를 했다. 마침 하루는 아파서 민경이는 하루와 함께 응급실에 갔고, 난 하루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가야되서 목장모임끝내고 거기에 갔다. 정신이 멍했다. 그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산, 기다려줘서 고마워. 짧게 결론부터 이야기할게. 너는 좋고, 그 포지션은 아니야 (Yes to you, no to the role). 그 포지션은 이 시장을 잘 아는 아주 전투적인 사람이 필요한데, 너의 발표는 워낙 컨설턴트 같은 하이레벨 발표였던 데다가, 사람들이 과연 니가 충분한 싸움꾼인지 확신이 없다는 피드백이었어. 그러나 너에 대해선 다들 좋아했어. 우리는 포지션을 만들어 너를 데려올 생각이야. 그걸 이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이런저런 포지션 아이디어가 있어. “
아, 이제 이해가 됐다. 왜 연락이 늦었는지. 마음이 풀렸다. 내가 워낙 잘 모르는 분야라 이 피드백은 어찌보면 당연한 거였다. 그래, 그래도 나를 원한다니, 내게 포지션을 주겠다니, 그게 너무 고마웠다. 참 오퍼 하나 받기가 이렇게 이렇게 어렵구나. 아직 정신이 돌아왔는지, 어떤지 모르겠는 멍한 상태로 집에 와서 작게나마 축하했다.
아내의 어텐션을 구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다
그렇게 연락이 오고나서 사실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던 리크루팅은 계속 질질 끌었다. 일단 오퍼를 준다고, 이런저런 롤 사이에서 알아보자는 나의 메인컨택 제이슨은 그주 주말까지 연락이 없었다. 구글 싱가폴 면접도 말아먹었고, 다른 확실한 리드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 무언가를 시작할 에너지도 정신도 좀 없었다. 제이슨의 연락은 계속 더뎠고, 기다리는 입장에서 매우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이미 장인장모님한테도, 어떻게든 오퍼는 받았다고 이야기해놨는데, 이거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기다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너무 컸다.
아내는 터키선교를 앞두고 정말 바빴다. 가기 전에 마무리할 수많은 일들 – 본인 학교 공부관련 데드라인, 애들관련 챙겨야 할 것들, 등등 – 때문에 계속 내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 보니 원래 매주 가고 있었던 기도모임을 못가게 되고, 자주 육아를 도와야 했다. 그 와중에 몸은 정말 안좋았고, 답 안나오는 연락 기다리고 민감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새로운 곳에 면접을 보려고 또 지원하고 하던 이 시기는 참 심신이 지치는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이상하게도, 아내와의 intimate 한 시간, 부부관계를 갖거나 아니면 침대에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긴장을 푸는 그런 시간을 갈구했다. 터키간다고 온통 맘이 뺏겨있고 다른 할일들에 치여있는 아내를 보는데 내 마음이 많이 공허했다. 전에 아내가 부부상담을 신청할 때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갑가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난 이것저것 힘이 너무 빠지는데, 아내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아내와의 intimacy를 갈구했지만, 그녀는 늘 바쁘거나 지쳐있었고, 그걸 나 혼자 원하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졌다. 한두번 그런시간을 내보려고 애쓰다가 아내가 거부하자 완전 마음이 얼어버렸다.
아래는 아내가 선교에 떠나기 직전에 쓴 일기이다.
주님, 영적 공격인가요. 짜증나는 일이 너무 많네요. 주님께 애기처럼 하소연 해보겠습니다.
몸도 안좋고 직장도 아직 결론나지 않은게 짜증나고 애들도 진짜 driving me nuts. 그리고 무엇보다 민경이한테 자꾸 짜증이 나는데, 자꾸 저와의 intimacy 보다는 다른것들 챙기고, 다른거에만 마음 쓰고 하는걸 보면서, 그리고 “삐지지좀마” 이런 이야기 하는걸 들으니 오만정이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두고보자, 내가 똑같이 아니 배로 돌려주리라 이런 생각도 들고요. 잘 생각해보면 민경이 입장에서도 억울하고 유치할 수 있는것 압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기에도 얼마나 한심하고 유치할까요. 참 이렇게 밖에 안되나요. 응석이 부리고 싶은 건가요. 저한텐 basic needs가 있는데, 아내도 그걸 몰라주고, 상황은 자꾸 저한테 스트레스를 주고, 마음을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주님. Quick stress reliever 를 찾고 싶네요 너무나도. 힘을 주세요. 기도를 부탁하기 조차 싫어지는자신을 발견합니다.
Lust 에 대하여 – 외도를 하거나, 술집을 하거나, 아님 Porn 등으로 lust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어쩌라고. 이렇게 태어났는데. 아내는 협조를 안하는데. I did what I can do. So don’t judge me. Don’t tell me what to do. Don’t tell me what’s right or wrong. I have a desire to fill and I have no interest in being lectured. 정죄할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남녀의 needs는 왜이렇게 다를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희생을 practice 하라고 이렇게 쉽지 않게 만들어 놓으신 걸까요.
주님, 이 신비가 너무 오묘합니다. 주님, 죄는 너무 달콤하고 무섭습니다. 이렇게 많이 아는데. 이렇게 많이 깨달음을 주셨는데도, 지옥의 문인줄 알면서도 그 길로 너무나 가고싶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의 죄성은 이렇게 무섭네요. 예수님한테 지적 당하고도 그대로 행한 유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이런 느낌이었 을까요. 목장 형제들한테 제가 할말이 뭐가 있나요. 저도 똑같은데 아니 어떤 면에선 더 나쁜데….
주님, 아이들과 열흘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요. 힘을 주시옵소서. 주님, 직장은 어떻게 될까요. 인도하심이 있겠지요? 주님, 민경이 그래도 잘 다녀오겠죠? 민경이를 더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그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주소서. 잘 보내주고 싶습니다.
아내는 선교를 떠나고 나는 육아 삼매경에

그렇게 시간이 갔고 민경이는 터키로 떠났다. 난 본격적으로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엄마 없이는 몇시간씩 울고 잠도 못자는 아이들도 생각보다 오래 안울고 잘 협조 해 줬고, 장인 장모님 (특히 장모님)이 요리도 다 해주시고 워낙 도와주셔서 생각보단 수월했지만 그래도 정말 정신없었다. 몸도 계속 안좋았기에 육체적으로 힘든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엄청나게 밉고 원망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진짜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시기에, 늘 바쁘고 다른것에 빠져있는 아내가, 그리고 훌쩍 떠난 아내가 그냥 원망스러웠다.
아내가 떠나자 마자 그날밤, 난 꽤 오랫동안 잘 참아왔던 lust를 홧김에 해버렸다. 삐뚤어진 마음에 맘껏 죄를 짓고 싶었다. 내 안에는 이미 충분히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도 할만큼 했어. 그리고 아내도 자기할것만 하다가 떠났고 한데, 나보고 더 뭘 어쩌라고. 이런 마음으로 될대로 되라지 그런 심정으로 lust를 실컷 하고 나니, 기분이 영 별로였다. 마치 폭식을 하고, 폭음을 하고, 다음날 후회하는것처럼. 그래, 이제 진짜를 맛봤으니, 이런 가짜에는, 이런 싸구려 성에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걸 아는데, 역시 영 별로였다. 자연산 과일과 인공 색소/단맛의 차이처럼 주님이 창조한 성에 비하면 너무 저급했고 좋지도 않았다. 후회가 몰려왔다. 아 정말 죄는 무섭다.
다음날 평소 잘 알고지내던 교회 자매, 다른 애기엄마와 플레이 데이트를 했다. 내가 사실 아내한테 쌓인게 최근에 엄청 있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자 본인은 그런게 있으면 최대한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푼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오빠, 저도 그맘 알아요. 계속 애 보다가 너무 힘들면 그때는 이야기하고 싸워요. 그렇게라도 해서 푸는게 건강한거 같아요.
그래서 그날밤, 아내에게 장문의 메세지를 보냈다. 요새 영 평화가 없고 힘들다고. 말은 길었지만 요지는 그거였다 – 당신이 밉다. 아내는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고 황당했는지 좀 황당하다는 듯이 나왔다. 왜 안 그렇겠는가. 결혼하고 근 5년간 애들 보면서 한번도 선교 못가고 늘 출장가고 선교도 가고 하는 나를 자기는 묵묵히 뒷바라지 해 왔는데, 그러다가 딱 한번 가게된 선교 첫날, 그것도 진짜 힘들게 뒷정리 다 하고 나와서 이제서야 맘껏 선교에 집중하려고 하는 그때 이런 메세지를 받았으니. 그러다가 아내는 정말 성숙하게도 미안하다고, 더 헤아리고 더 공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돌아가서 잘 해결해 보자고 했다.
아내에게도 털어놓고, 주위 여기저기에도 기도부탁을 하고나니 맘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다른 스케쥴로 아이들과 빡세게 노니, 열흘이 훅 갔다. 전에도 주말 하루나 이틀정도는 애들을 본적이 있었지만, 내가 주 보육자로서 일주일 이상 애들을 보다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아래 몇가지 적어본다.
1. 육아는 생각근육을 마비시키고 모든 에너지를 앗아간다
생각할 여력이 없다. 짧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냥 쉬고 싶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다. 책같은거 읽는게 어렵다. 집중할만할 cadence가 없어서 그 근육이 다 없어지는 느낌이다. 항상 지쳐있다. 애들은 육아는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애들은 너무 이쁘다가도 한번씩 돌게 만든다. 화낼수도 없다는게 포인트(kicker).
그래서 육아 외의 것을 하려면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그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상대방이 나를 들어줘야 하고, 상대방이 나에대한 사랑과 공감을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지만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
육아하다가 잠깐씩 시간있으면 뭔가 재밌는거나 즐거운게 땡긴다. 거의 생각안하고 즐길 수 있는 일상의 낭만이 필요하다. 머리를 식힐 스타벅스 커피나 보바 같은거, 인스타 같은거, 드라마 같은거, 내 손가락안에서 바로 액세스(access)가 가능하고 컨트롤이 가능한것.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 같은걸 들을수는 없다. 생각할 근육이 없어져 있다. 그럴려면 모드 전환이 필요하다. .
2.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느끼기 – 육아의 축복
우리는 모두 이런 애들이었다. 부모의 희생, 특히나 primary care giver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 그만큼 많은 사랑과 용서를 필요로 한다. We all are really high maintenance.
하루(우리 첫째딸)는 절대 완벽한 애가 아니다. 사교성이 엄청 좋지도 않고, 자기만의 세계가 엄청나다. 곧잘 혼자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고 만들고 나면 친구가 와서 자기가 만든거 부술까봐 노심초사다. 생긴것도 내눈엔 너무 이쁘지만 세상적으로 제일 이쁜애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아이가 어떻든, 어떤 결함이 있든 내게는 너무 사랑스럽다. 내 자식이니까. 그래서 보호해주고 싶지만 언제까지 보호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은 터프하고 악하기도 하니, 그거를 이길 수 있는 강하고 사랑많은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게 부모 마음이 아닐까. 세상의 악과 시험에서 보호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족한 우리 한명 한명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하나님의 마음, 악하고 죄많은 세상에 우리를 둔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게 아닐까.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것, 하나님 본인이 직접 육신이 되어, 가장 약하고 가장 낮은자리로 오셔서 가장 약하고 가장 아프게 우리의 결함을 없애주신게 아닐까.
삶이 얼마나 많이 성취(achieve) 했는지, 얼마나 집중해서 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는지, 이런거라면 육아는 참 이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비생산적(unproductive)이고 단순노동인 (1st dimensional 한) 시간일 때가 많다. 생각할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짬짬이 뭐를 하자니 에너지가 없고 단순한 욕구충족을 하고 싶어질때가 많다.
하지만 삶이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특히 하나님의 사랑(godly love)을 했는가 라면? 얼마나 많이 희생적인 사랑을 했느냐 라면? 그렇다면 육아에서 느끼는 감정들, 만들어가는 성품들(build하는 character들)이 삶의 충만함으로 한걸음 더 나가는 길이리라. 그래. 육아에는 참 기쁨과 충만함이 있다. 진짜가 있다. 이게 무조건 힘들고 무조건 3D라는건 세상의 거짓말이다.
3. 아내가 더 이해되는 부분들
이걸 다 하면서도 늘 밝고 긍정적이고 밥도 해놓고 하는건 정말 말도 안된다. 부부관계 같은게 생각 안나는게 당연한거 같다.이러다가 뭔가 맘에 집중할게 있으면 (공부든 선교든 뭐든 본인 맘에 가는거든) 그건 진짜 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게 더 느껴진다.
나는 이런 집중해서 결과를 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듯한 늘 반복되는 엄청난 육체적, 감정적 노동인 육아를 하고 있을때 상대방은 계속 삶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리고 내가 우선순위가 아닌것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진짜 위험하다. 그렇게 되지 않게 어떻게든 육아를 하는 주 보육자(primary caregiver) 한테 더 많은 어텐션과 사랑과 휴식을 줘야 한다. 육아를 하다보면, 가사만 하다보면 불안해진다. 워낙에 dependant 해지기에.
애들이 갑가지 너무 이뻐보이는 것, 애들이 사달라고 하면 충분히 가진거 많은줄 알면서도 하나씩 더 사주고 싶은 마음들 (사주면 얼마나 좋아할지 알기에), 오늘 뭐 했냐고 물어보면 할말없는것, 하루종일 머리가 멍했기에. 그래서 짜투리 시간이 엄청 소중한것. 그래서 혼자 커피숍가거나 맛있는 음료수 하나 마시는게 큰 행복이 되는것. 그래도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분명 축복인 면이 있는것. 이런 것들…
선교에서 은혜받은 아내의 보살핌으로 서서히 회복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열흘이 지나고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는 거의 광채가 났다. 더 이뻐지고 더 밝아졌다. 기쁨과 감사와 충만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새로운 눈이 트인것 같았다. 나의 니즈도 아주 더 세심히 배려해 줬고, 애들이 엄청 짜증내도 다 받아줬고, 거의 초인적인 수준의 인내와 사랑과 관용과 평안함을 선보였다. 평소에도 엄청난 아내였는데 초사이어인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그래 선교보내면 이런맛이라도 있어야지 ㅎㅎ
그런 아내의 기도와 서포트 덕분에, 난 서서히 회복했다. 몇주를 끌던 유니슨에서도 최종 오퍼가 구두로 나왔고, 협상까지 다 마무리 되어서 난 5월말부터 출근하기로 결정하고 최종 페이퍼 사인만 남기고 있었다. 그렇게 참 길고 드라마도 많았던 이 삼십대 중반 리크루팅이 끝나는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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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예전에 백산님 강의를 들었던 한국인입니다! 그 뒤로 꾸준히 백산님 글을 구독 하고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 사회인이 되고 난 뒤에 많이 방황을 했었는데, 백산님께서 쓴 글을 보면서 많은 용기와 힘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보면 오딧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받아 크레타 섬을 방황하면서 좌절도 겪고 그 과정에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잖아요. 마치 백산님을 보면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직 저는 미혼이고 직장인이지만, 언젠가 백산님처럼 그리고 어릴적 제가 읽었던 책속의 주인공처럼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혹시 나중에 공부(학업)부분이라든지… 해외에 나가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조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항상 뒤에서 응원 많이 하겠습니다!
극찬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서 응원해주셔서. 네 다같이 성장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나누고 교감할 수 있으니 또 더욱 감사하고 의미가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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