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8. 하나님과 열애에 빠지다

이 글은 지난 1년여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스트러글(struggle) 하면서 겪은 나의 솔직한 간증문 – 일로부터의 자유, 그 여덟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 전 이야기는 아래 일곱글들을 참고 바란다.

참고로 간증문을 쓰다보니 부득이하게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들, 내 마음이 가난하고 내가 무너졌던 부분들을 주로 쓰게되는 경향이 있다. 나를 생각해주시는 내 주위분께는 나는 너무나 괜찮다고, 그리고 나를 보지 말고 어떻게 하나님이 역사하셨는지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디 나는 가려지고, 온전히 그분이 드러나는 글일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의 마음의 묵상과 글이 그분께 기쁨이 되기를 기도한다. When I’m weak, then I’m strong.

하나님의 능력이나 은혜가 아닌, 하나님을 구하기

그렇게 7월이 되고, 난 몇군데 리크루팅을 계속하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신앙서적을 읽는데 보내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받은 마음은 집중하라 – 였다. 사람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시기가 내게 주님이 주신 영적 각성의 기회라는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집중하자. 모든 소셜미디어를 다시 끊었다. 

삶에서 군더더기가 없어지자 집중이 훨씬 잘됐다. 어차피 나를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이메일도 안오고 소셜 미디어도 다 끊은 상태였다. 더이상 폰을 습관적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더이상 세상의 어텐션을 갈구하거나 습관적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영과 혼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접한 것이 잔느 귀용이다. 제시펜 루이스 십자가의 도를 다 읽고 나자, 잔느 귀용의 삶 간증집 (잔느귀용의 삶) 과 아가서 묵상을 사모님께서 빌려주셨는데 한달음에 다 읽었다. 이럴수가. 이런 세계가 있구나. 이런 삶이 있구나. 잔느 귀용이 얼마나 순수하게, 얼마나 모든걸 바쳐서 예수님을 사랑했는지 느꼈다. 그러면서 머리를 한데 얻어맞은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 난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난 한번도 하나님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게 뭔지 경험해보지 못했구나. 그 사랑이 하고 싶다. 그 사랑을 구해보자.

I’ve been praying for the lord to use me, give me a job, give me a people to serve, etc. I was trying to go but I wasn’t ready. I don’t even know who I am and who he is. I should seek him first. I should really know him, shaken/broken completely, and find a new identity in him. Then, only then, I will be a vessel, I will be a 흠없는 offering, and he will be able to work through me. 

주님, 믿음의 시련이, 시험이, 무엇이든, 통과하게 해달라고, 제대로 통과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Let me not forget my prayer. As you are so beautiful.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말고는 그 무엇도 구하지 않으며 기도하니, 그 기도가 실로 꿀송이 처럼 달아졌다.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에어팟에 찬양을 틀어놓고, 말씀을 읽다가 필받으면 눈감고 기도하고 눈물흘리다가, 또 눈떠서 말씀읽고 책보고, 또 기도하고 그런식이었다. 기도도 그냥 하고싶은대로 했다. 찬양을 하기도, 말씀을 선포하기도, 가만히 침묵하며 주님과 대화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생각했던 것들 중 하나는 내가 나의 가치와 안정 (Significance and security) 을 어디에서 얻느냐였다. 전에는 나의 직업이나 나의 학위가 그 보호막이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일수도 있고, 집안일수도 있고, 외모일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보통 세상의 것에서 가치와 안정을 찾고, 그것을 구하며 살아간다. 직업이 없는 내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이 시기에, 난 정말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봤다. 난 하나님 한분안에서 나의 가치와 안정을 찾을수 있는가. 그러고 싶었다. (관련하여 팀켈러 목사님의 이 설교를 강추한다.)

주님, 가장 아름다운것을 주시옵소서. 연단과 십자가가 필요하다면 주시옵소서. 주님이 보시기 기쁘지 않은것 모두를 가져가 주시옵소서. 저의 자아를 송두리째 죽여주시옵소서. 드러나지 않는 길로 가야한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가장 드러나지 않는. 주님, 글을 쓰지 않기 바라시면, 말을 하지 않기 바라시면, 그렇게 하시옵소서. 아무 주목도 못받는 곳으로 가서 오직 주님만으로 충만한 상태를, 성숙을 구합니다.

주님, 풍부에 처하게도 비천에 처하게도 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의심을 고백합니다. 저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 이 의심까지 말끔히 가져가 주시옵소서. 주님께 의지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적 교제가 심화될때의 경지는 크게 네가지가 있지 않을까. 과연 나는 어디에 와있나.

  • 초급: 영적인 교만에 빠짐. 영적인 교제가 없거나, 자기보다 적은데 나대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음 
  • 중급: 영적인 교제가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굳이 상대하지 않음, 정죄하기 싫어서 피하고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사람에게 감
  • 고급: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죄가 보이고, 교만에 빠진 사람이든, 영적인 교제가 없는 사람이든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게 보임. 정죄함이나 교만 없이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음 
  • 마스터: 영적 교만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을 지적하는 말이든, 아니면 그 사람들의 질투에 따른 핍박에 침묵하는 것이든 뭐든 기쁨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달게함. 주님께 의지해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강력한 경고로, 거칠것 없이 그때그때의 성령님의 인도함에 의지함. 

특히 아가서가 묵상이 많이됐다. 아가서를 읽으면서 기도하면서 이렇게 펑펑 울다니.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아가서 5:3). 그래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 이제 다시 뒤로는 못갑니다. 앞으로, 오직 주님 안으로, 집중해서 나아갈 뿐입니다. There is no way back. 저는 온전히 주님을 원합니다. 주님은 온전히 저를 원합니다.

잔느귀용은 진짜 멋진 선생님이었다. 어떻게 성별도 다르고, 카톨릭이 었던, 17세기에 살았던 귀족출신 이 과부의 신앙의 색이, 이렇게 나에게 울릴 수 있단 말인가. 이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붙잡았고, 이분의 묵상 한마디 한마디가 내 영을 울렸다. 잔느 귀용의 묵상집 (창세기, 출애굽기, 아가서 등)과 성경을 펴놓고 번갈아 읽으며 그녀의 묵상/기도를 읽고 나도 기도를 드리며 교감했다. 잔느 귀용이 가르쳐준 대로 기도했다. 이런 식이었다. 아가서 3장을 묵상하며 잔느귀용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찾은 이후에는, 더이상 스스로에서 하나님을 찾아서는 안된다. 이제는 하나님 그 자체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 십자가의 길을, 버려지고 고난받는 광야의 길을 정주행해서 주님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다. 잔느귀용이 알려준 기도의 비유 – 성령의 바람을 느끼고 처음 바람을 받을때 까지는 돛을 올리되, 일단 배가 가기 시작하면 가만히 키를 잡고 있는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 그렇게 성령의 바람을 느끼고 가만히 돛을 올리고 키를 잡고 있는 기도를 드렸다. 아래 관련한 기도문을 소개한다.

아가서 잔느귀용: This is one of the best books, best spiritual mentor I’ve ever had. 주님의 저를 향한 사랑, 저의 주님을 향한 사랑, 그 ultimate interdependency, the dance, rejoicing 을 느낍니다. 

And when you are done with your self-reflection, which was very fruitful up until a certain point, you should find God from him, not from inside you. You should not look back. And you should go through the time of wilderness, abandonment, the time that you take up your own cross and crucified. 

주님, let me experience, let me attain that status. That status of complete loss of me. Complete unification with you, in you. 

주님, who am I. How sinful I am. All of my past selves, I don’t even know who I am. And who are you. What can I do. I am in total loss. I’m so confused. I feel deeply incompetent. 

주님, 집중하라 하십니다. Time to focus. No distraction. This is it. This is the time. This is the the moment you do the surgery. 전화기를 내려놓아라. Social media를 끊어라. 세상적인 관심도 모두 내게 가져와라. 집중해라. This is no joke. It wouldn’t be easy. I want your 100%. 

Don’t worry about other people, the world. 지금은 오로지 하나님과 나에게만 집중할때. 이 시기가 끝나면 다른 사람, 다른 cause 얼마든지, 감당안될정도로 주시리라. 지금은 너에게 집중해라. 

I want you. I love you. Yes, I am pleased by you do XYZ. But don’t you see? I have to work to do on you. 

저는 온전히 주님을 원합니다. 주님은 온전히 저를 원합니다. We will rejoice, we will be united. We will have a beautiful dance. 저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매시기 전 요한복음 15-17장 기도. 하나되게 하시는 주님, 그 희망과 사랑을 보고 당당히, 주님이 주시는 잔을 마십니다. 십자가를 집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을 견딥니다. 그 Circumcision 을 견딥니다. 그것이 도려내진 후에야 온전히 저는 주님의 messenger가, 주님의 사랑과 영을 담는 진흙토기가 될것임을 느낍니다. 

주님, 제 영의 군더더기를 봅니다. 제 영의 더러움을, 그 fat을, 그 얼룩을 봅니다. 본연의 것이 아닌 모든것을 destroy해주세요. 새로운 영으로, 새로운 날개로, 새로운 옷으로 저를 transform 시켜주세요.

그때에 주님, 저는 새로운 날개로 주님과 함께 날 것입니다. I’ll be the best surfer. I’ll be the best swimmer. I’ll be the best bird. 

주님, 혼자 할 수 있는게 없음을 느낍니다. 고백합니다. 순결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모든 distraction 에서, 모든 그 abhole 한 lust, greed, pride, ego, jealousy, worry, anxiety 에서 holy하라 하심을, 겸비하라 하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 어떤 사람 앞에서는 그래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거군요. 잔느 귀용이. 사모님이 해주신 말씀이, 그리고 아가서를 주신게 이런것 때문이군요.

주님, 주님께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그것도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가 제 몫의 십자가를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나 감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모든 책과 resource is on my fingertip. 언제든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성경을 읽고 선현들의 묵상을 접할수 있습니다. As long as I can stay away from the distraction and things of the world, my trajectory will be even better. That’s the advantage of living now. 

죽음의 계곡을 지나다

잔느귀용과 제시 펜 루이스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이야기가 있었다. 영이 완전히 죽고 다시 태어날때, 죽음의 계곡 처럼 지나가는 시기와 관문이 있었다고. 전에는 혼의 힘으로 예배하던 것에서, 즉 자기의 감정으로 머리로 의지로 예배하고 신앙생활 하던 것에서, 성령님 만으로 예배하는 것을 새로 배워갈때,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한다고. 그래 왠지 나도 그런 시기에 온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연단의 기도를 주님께 계속 올려드렸고, 믿는 동역자들에게 중보를 부탁했다. 아래는 사랑하고 흠모해 마지않는 Josh가 해준 기도이다.

산이 이 연단의 시간을, 당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겨내고 잘 견디게 하시옵소서.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당신은 거룩하십니다. 터널의 반대편에서, 당신은 산이를 정금같이 빚어내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새 창조물로, 본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케 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주신 수많은 은사들이 본연의 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좋으신 분입니다. 어떤일이 있을지 기대가 많이되네요. Let San go through this time of refinement, with the confidence in you alone. You are faithful. You are holy. And the other end of this tunnel, you will make him like a pure gold. A beautiful new creation. All the gifts you had on him will come into order. Oh lord, you are good. We are excited to see what to come.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혼을 죽이고, 나의 아담의 영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 영을 덧입으려 하자 모든게 혼란스러워 졌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 란 존재는 무엇인가 – 이런 철학적인 기도들이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 – 당신은 누구인지. 과연 이 성경이란 책이 하나님인지. 아님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 하나님을 알게해주는 설명서이며, 하나님에게 가는 관문이지만, 하나님 자체는 아닌건지. 내가 아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든 근간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잔느귀용 말처럼 자신감이 하나도 없어졌다. 갑자기 바보가 된것 같았고 애기가 된것 같았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애기처럼, 그렇게 난 나의 존재를 그분께 맡겨보고 있었다.

혼의 힘으로 예배하지 않으니, 전에는 온 감정과 마음을 다해 뜨겁게 예배하던 예배시간이,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음악은 음악대로 놔두고, 영의 흐름은 영의 흐름대로 놔두면서, 고요하게 침묵하고 기다리며 예배했다. 전처럼 눈물 펑펑흘리는 예배가 아닌, 잔잔한 수면위나 해저 가장 밑 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예배가 드려졌다. 엄청난 뜨거움으로 불타오르는 예배가 아니라, 잔잔히 촛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그 예배가운데, 난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었다. “Spread your wings over your servant, for you are a redeemer. Ruth 3:9″ 룻이 자신의 구속자이자 후견인으로서 보아스의 발치에 앉아서, 보아스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보이며 옷자락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그 complete vulnerability. 그 complete nakedness로 주님앞에 나아갔다. 이런게 묵상이 되는게 너무 신기했다. 난 신랑이신 주님을 묵상하는 신부였다.

Complete surrender, complete faith, and complete vulnerability

잔느 귀용의 책: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 –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기도하고 묵상하고 실천해봤다.  잔느귀용이 가르쳐준 대로, 아무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나의 육적인 세상적인 니즈 뿐 아니라 영적인 니즈도 잊고, 오직 주님만을 구하는,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의 열병에 빠져 아무것도 안보이는 사람처럼 기도가운데 주님만을 구했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온 힘을 다해 나의 ‘혼’을 주님앞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의 과거의 영을 십자가에 죽이고, 내 모든것을 주님앞으로 집중하는것.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돛을 올리고 혼자 힘으로 해보려다가, 과감히 돛을 꺽어버리고, 난 키를 잡고 나 자신을 온전히 바다에 내맡겼다.

이 시기에 또 계속 기도하며 기다렸던 것은 하나님, 그분의 영광 – the glory of the lord 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완성했을때 하늘에서 내려온 그 하나님의 영광. 엘리야 선지자가 번제를 드릴때 하늘에서 내려온 그 불. 욥한테 임했던 하나님의 음성. 모든걸 태우고 정케 하시는 그 하나님의 불을, 영광을 기다렸다. (Then the cloud covered the tent of meeting, and the glory of the Lord filled the tabernacle. 출애굽기 40:34)

사랑하니까 믿는다

이 시기에 한번 내가 절대 내려놓고 싶은게 뭔지, 아직도 내려놓지 않는게 뭐가 있는지 써봤다. 아래 세가지로 정리됐다. 그래, 난 내 삶의 주도권을, 내 미래를 완전히 내려놓기 싫었다. 커리어를 잘 만들어서 (나의 경우는 돈보다는 커리어) 계속 스스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은근한 자랑과 교만은 정말 내려놓기 어려웠다. 그 모든것을 주님께 올려드렸다.

  • 1) Self sufficiency about my future – 스스로 할 수 있다는것. 그건 지금 제겐 돈이 아닌, 저의 커리어, 저의 미래임을 고백합니다. 
  • 2) Pride, don’t care, lack of love – 열심히 살지 않거나, 치열하거나, humble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judging 이나 condescending 한 look, or pure 무관심, lack of love. 
  • 3) Lust from being recognized/popular/looked upon – 스스로를 높일수록, 스스로의 outer being 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수록, 유혹을 하지는 않을지언정 유혹당하는걸 마다하지는 않는, 그 숨겨진 lust. 

결국 내가 내려놓기 어려웠던 것은 1) 나의 미래 2) 판단하는 마음 (나와 남을) 3)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였다. 최근 ‘내려놓음‘을 다시 한번 보면서, 이게 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그 치열한 성령님과의 씨름가운데 힘겹게 내려놓고 깨달아간 문제라는걸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나’를 내려놓는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전까지는.

막상 내려놓고 주님께 다 올려드리자 거짓말처럼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마음이 들었다. 난 아무것도 필요없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한테 이렇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아내와 자식들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이시기에 나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은 비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뭐든 할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서라면 접시닦기도 좋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고 해도, 집에서 애를 보라고 해도 할 자신이 갑자기 생겼다. 난 한번도 이런 상상을 해본적 조차 없다. 나의 커리어를 내려놓다니 – 그건 하나님에게도 손해라는 내 위주의 논리로 그런 생각이나 상상자체를 일축해왔는데. 내 안에 내가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을 바라보니, 모든게 덧없고, 또 모든게 의미있어 보였다.

엄청난 믿음이 나왔다. 한번도 난 이런 믿음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그냥 믿어졌다. 그분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냥 믿어졌다. 나의 환경이나 나에 대한 어떤걸 믿는게 아니었다. 그분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난 그분을 믿고 난 복음 (gospel)을 믿는 것이었다. 리크루팅에 대한 생각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분이 그분의 때에 가장 맞는 것을 주실 것이다.

낙담이나 필요이상의 겸양 또한 교만이다

이번 믿음은 지금까지의 믿음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랑에서 난 믿음이었고, 근본적으로 내가 아닌 온전히 그분에 집중해 있었다. 내가 완전히 죽었기에 낙담 (frustration)이나 실망이 있을수 없었다. 낙담하는 것도, 나는 못한다고 나는 부족하다고 필요이상의 겸양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또한 교만 (pride)이라는 잔느 귀용의 말이 너무나 공감되고 너무나 brilliant 하다고 느꼈다. 그래, 낙담이나 억지 겸양 또한 교만이다. 그럴 시간에 한번더 믿고 한번더 기뻐하고 한번더 사랑하자.

교만 – 가장 어려웠는데, 교만이 너무나 민감하게 느껴졌다. 이 팀켈러의 교만에 대한 설교 – Sermon about Pride: Proverbs 11:2, 12, 13:10 – 가 이 시기에 내가 느낀걸 너무나 잘 요약해줬다. 교만은 내가 남보다 무언가에서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끝까지 자기 ‘스스로’를 묵상하게 만든다. 그 근저에는 끝없는 정죄와 끝없는 스스로에 대한 묵상이 있다. 내가 완전히 죽은 자리에서, 교만도 완전히 죽는다. 그리고 교만이 죽을때, 나또한 그 끝없는 판결의 장에서, 법원에서 해방된다.

내 안에 나가 없으니, 교만도 낙담도 설자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이 훅 들어왔다가도 불이 붙지 않았다. 훌훌 털어졌다.

전에는 샤워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에 내 마음을 묵상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 누군가의 관계때문에 힘들어하는 마음.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이젠 그런게 훌훌 떨쳐졌다. 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주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면서 평안을 찾았다.

살아있는 모든게 아름다워

이 시기엔 배가 안고팠다. 툭하면 금식이 됐다. 별로 바랄게 없었다. 장모님도 아내도 자꾸 살빠진다고 먹으라고 그랬지만 (^^) 기도에도 도움도 되고, 안먹어도 배가 불러서 저절로 금식이 됐다. 기도하고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냥 배고플때 밥 먹었다. 억지로 하는 금식이 아니었다.

아내가 고맙고, 가족이 소중하고, 살아있는 모든게 아름다워 보였다. 살아있는 모든것에서 주님을 느꼈다. 애들이 자면 밖에 나와서 산책을 하면서 별을 보며 하나님을 노래했다. 귀에 에어팟 꽂고, 좋아하는 찬양을 듣고, 걸어가며 기도하고 찬양하고 혼자 춤추고 생쇼를 다했다 (부디 아무도 못봤기를). 아들과 놀이터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주님을 느꼈고 (아래 일기 참고, 아들이 나를 못찾아도, 난 항상 아들이 어디있는지 아는 그 술래잡기 놀이가 나와 주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아내와 사소한 농담따먹기, 장난, 이런것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느꼈다. 이시기에 쓴 일기 한편을 소개한다.

아침 예배: 주님은 제게 물댄 동산과 같습니다. 에덴동산. 주님과 뛰어놀기. 장난치기, 농담따먹기, 무술연습, 새로운 경지를 뽐내기, 유머, and Sex is something that you do pure for each other, pure for other people’s joy and 희열….

우주와 지구/인간: 내면의 영의 세계도 똑같다. 모든건 heart에서 시작. 그리고 orbit을 돈다. 마치 개인/지구가 우주 차원에서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실제론 우리의 모든것이 되듯, 우리 인체에서 보면 우리의 heart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모든 것이다. Spirit! -> Soul. 육체는 내 혼을 지배하지 못한다. 속박에서 벗어나자. 

과학기술과 영의 세계: Zoom 같은거 – 공간을 뛰어넘기. 영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Big data, bilogy, etc. 다 영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 영을 가진 인간은 신을 따라하는 것이다 영의 세계를. 

하율이와의 숨바꼭질에서 주님을 봅니다: 

– 내가 눈 가리고 주님을 안볼수 있다. 내 자유의지

– 내가 보려고 해도 주님은 숨기실수 있다. 하지만 난 주님한테서 숨을수 없다. 

– 내가 주님을 못찾아도 주님은 다 듣는다. 이야기하면 다 듣는다. 그리고 혼자 웃고 계실거다 킥킥하면서

– 주님은 나의 리밋을 아신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면 나타나실거다. 

민경이와의 관계:

– 힘들텐데 짜증안내고 묵묵히 할일하면 감동한다. 감사하고 사랑이 더 생긴다.

–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사는게 참 보기 좋다. 그걸 appreciate 하게 된다. 

– 이것저것 농담따먹고 놀고 하는것 참 재밌다. 하나님도 그걸 즐기신다.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고 중보의 은혜에 빠지고

영적으로 민감해지니, 하나님과 계속된 대화 가운데 과거의 수많은 상처나 무의식 중에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무엇을 물어봐도 하나님은 대답해 주셨고 세밀하게 치유해 주셨다. 여러 사람에 대한 중보가 절로 나왔고, 중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깊숙히 느낄수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산: 하나님, 당신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선포하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 앞으로 나아갑니다.

God: 아들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시간좀 보내자꾸나. 가슴속에 무엇이 있니? (마치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물으시듯 – 요한복음4장)

산: 일하고 싶어요. 일할수 있으면 너무 좋을것 같아요.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것을 예비하셨음을 믿습니다. 사실 지금 이직장에 가고싶긴 한데, 그리고 하나님이 돌려달라고 하시면 다시 돌려드릴수도 있을것 같긴한데, 암튼 심정적으론 그렇네요. 그리고 요새 한일관계나, 동성애 관련 문제들, 무엇이 옳은지를 두고 싸우는 정치이야기들, 이런게 제 머릿속을 복잡하게 합니다.

God: 슬프지 않니? 무엇이 옳은지 놓고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이 서로 싸우는게 너의 눈에는 슬프지 않니? 산아, 넌 어떤 커즈(cause)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니? 넌 어떤 사람을 가장 사랑하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내 아들을 보내고 싶구나.

산: 네 진짜 슬퍼요. 뭔가 제가 할일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이걸가지고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고 영혼이 다쳐가는게 너무 안타깝네요. 그리고 하나님, 요새 가족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멋진 가족을 주셔서 감사해요.

God: 전에 너 아내와 육아방식을 놓고 많이 갈등했지? 이제는 어떻니? 둘이 한마음이 됐지? 내가 너희 가정에 어떤일 하는지를 보거라. 너희들이 나의 지혜를 구하니,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서, 너희 둘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단다. 그래, 앞으로도 계속 나를 구하렴. 내 안에서 너희 둘은 한 마음이, 한 영이 될 것이란다.

산: 아멘. 주님, 이런 저런 사람들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Joshua, 목장식구들, 누구, 누구

God: 그래 산아,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거라. 이런게 나의 그들을 향한 마음이란다.

산: 주님, 갑자기 과거에 제가 저질렀던 수많은 lust들이 생각납니다. 이런 일도 생각나고 저런일도 생각납니다. 하나님, 이걸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What do you want me to do with this?

God: 난 이게 거짓말인것을 니가 확실히 알기를 원한다. 그것들은 나에게서 온게 아니야. 악한 영이 만든 싸구려 복제품이란다. 내가 창조한 성(sex)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야. 다 태워버리기 원한다. 완전히 태워버려서 니가 여기로 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단다. 그래서 악한영이 너를 어떻게 자극하든, 니가 전혀 반응하지 않기를 원한단다. 니 안에서 악한영이 태울 구석이 땔감이 하나도 없기를 원한단다. 넌 시험에 들지도, 불이 붙지도 않을 것이다. 힘들다는거 안다. 그 힘든과정을 거쳐야지만 완전히 거룩해지고 순결해질 수 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해내지 못하지. 하지만 내 아들 백산아, 넌 이걸 할 수 있단다.

산: 아멘 아멘!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던, 불같이 화를 내던 그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이걸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What do you want me to do with this?

God: 안다. 잘 안다 아들아. 너의 아버지의 화 – 그건 안타까운 일이었지. 그런 일이 너에게 너의 가족에 일어난걸 난 참 미안하게 생각한단다. (It wasn’t ideal and I feel really sorry for that. ) 하지만 아들아, 넌 이걸 극복할 수 있단다. 넌 내 안에 있지 않니. 진짜 아버지의 품에. 난 신실하고, 쉽게 성내지 않으며 (slow to anger), 무한하게 친절하고, 젠틀하고, 나의 인내심엔 한계가 없단다. 넌 이제 안심해도 되. 그런 화나, 불같은 감정을 만나도 놀라지 마려무나. (Don’t feel timid when you face those. ) 왜 너의 아버지가 그런 화를 갖게 됐는지 생각해본적 있니? 너의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상상해본적이 있니? 너의 아버지는 진짜 아주 불행한, 아주 힘든 어린시절을 겪었단다.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아니?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를 아주 어린 나이에 겪었는지 아니? 난 진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뿐이란다. 아버지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완전히? 아버지를 사랑해줄 수 있겠니? 아버지를 안아줄 수 있겠니? 아버지를 위해 그냥 울어줄 수 있겠니? 난 너의 아버지를 치료하고 싶구나. 너의 아버지는 많이 상처입었어.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어린시절을 다 잊어 버렸단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사랑을 느낄수도 없고, 사랑을 받을줄도 모르게 되버렸지. 난 그걸 다 끄집어내서 그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단다. 그리고 난 니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단다. 나의 메신저가 되줄수 있겠니. 그냥 사랑해주렴. 그냥 받아주렴. 그냥 울어주렴. 많이 상처입었단다.

God: 그래 아들아, 니가 아주 어릴때, 넌 아무 걱정없이 내 앞에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마음껏 행동했지. 그러다가 세상이 에덴동산이 아니란걸 깨닫고, 넌 다친거란다. 넌 화가 났고, 또 위축됐지. 넌 세상의 만만치 않음을 느꼈어. 그리고 이제 넌 더이상 날것 그대로의 자유의 상태가 아니라, 옷을 입고, 가드를 올렸지. 그건 참 슬픈 일이란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내가 내 아들 예수를 보낸거란다. 이제 나를 만났으니, 다시 그 어린시절로 돌아가도 된다. 다시 아이가 되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에덴동산에 맘껏 초대해주렴. 그래서 우리 같이 기뻐하자. 같이 신나게 놀자. 그게 내 바람이다 아들아.

(그리고 그녀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노래할 것이다. 내가 그녀의 입에서 바알을 없애버리고, 내가 다시 새 언약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영원히 너와 결혼할 것이다. 내 공의로, 내 정의로, 내 사랑과 연민으로, 내 신실함으로 난 영원히 너와 결혼할 것이다 – 호세아 2:15-20)

Real time, On the job training from the Spirit – 에피소드

이 죽음의 계곡 시기에 분명 하나님은 고요하고, 말씀을 많이 하시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못들은 거였겠지만), 완전 버려진(abandon)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사실 필요하실때마다 아주 개인적으로 아주 은밀하고 필요하게 (intimate 하게) 역사해 주셨다. 이시기는 날마다 간증이고 날마다 에피소드였다. 이런식이었다. 

난 이 시기에 뭔가 안좋은일이 생길수 있다고 (영적인 공격?)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잔느 귀용같은 경우도 엄청난 시집의 구박을 받는다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그런 일들이 신앙적인 turn around가 있을때 있었다고 했고, 그런걸 여러번 읽다보니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다. 아니나다를까, 아내가 후진을 하다가 차를 긁는 사태가 있었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마침 새 벤츠를 긁어서 보험처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처리할 것도 많고 돈도 나가고 하니 모두가 그걸로 스트레스였다.

장인어른도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아내는 그날밤 정말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싫겠는가. 돈걱정 하는것도 지겹고, 사소한 실수로 부모한테 한소리 듣고 눈치보는 것도 싫을 수 있고, 부모님 걱정시키는 것도 얼마나 싫겠는가. 그리고 워낙에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고 어쩔수 없이 부딪히는건 생기는데, 나한테는 스트레스를 안주려고 워낙 배려해주시다 보니, 모든 스트레스가 아내에게 주로 몰릴 터였다. 다들 힘들어하는 가운데, 감정이 격해지는게 느껴지자, 그 순간 내안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있었다. 나의 의를 주장하거나, 상대의 교만을 지적하는.

나도 할말 있다, 이건 당신이 초래한거다, 나도 지금 상황이 싫다, 금방 없어질거다. 왜 차를 당신이 긁고 집안분위기 엉망을 만들고 나한테 짜증내는 거냐. 이건 사실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밥굶은적 없고 먹고사는데 문제도 없는데 감사할 것도 많다.

이것들이 나의 육과 혼이 주장하는 생각이란걸, 나의 죄성의 발로라는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었다. 이건 다 내가 살아 있기에 나오는 나의 혼의 반응이었다. 바로 그 거짓말을 닫아버리고 (난 완전 죽은 사람이기에),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을 구하니, 성령님이 옆에서 속사여 주시는게 느껴졌다. 성령님은 아내에게 공감하고, 미안하다고 하게하고, 기도하게 하셨다. 주님의 선하심을 선포하게 하셨다.

아내를 위로해줘라. 아내 마음이 지금 이렇고 이렇단다.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겠니? She is going through a lot. 내 아들은 위로해 줄수 있지? 그래 그래 그렇게 하는 거란다. 그렇게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같이 기도하려무나.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고, 나땜에 이런일이 있는거라고 하고 아내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정말 그 실시간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움을 느끼니 너무 재밌었다. 와우. OJT도 이런 OJT가 없고 멘토링도 이런 멘토링이 없다. 진짜 재밌었다! Fun! It was crazy fun! 이건 그날밤 쓴 일기였다.

God, can I be honest with you? This is such a joy. Such a fun. What you are training me. How beautiful. How amazing. How miraculous. 저의 머리로, 저의 감정으로, 저의 경험으로 하고 싶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닫으시고, 생각을 바꾸시고, 저의 self를 죽이시고, 상대방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sovereignty 를 proclaim 시키는, 그 Faith로 모든 enemy의 공격을, 그게 무엇이든 아예 annul 시켜버리는 하나님의 힘을, 신비를 찬양합니다. And thank you so much for inviting to this awesomeness. This glory. The things of the flesh will lead to the death. But things of the spirit will lead to life. Spirit will intercede with my spirit, with the wordless groaning. You are amazing. You are the lord. 

제의 경험을 상기시켜 봅니다. 

– 차사고 난것에 대해서 어머님/아버님이 다양한 속상함을 충고함. 민경이가 속상해하고 그게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서 아버님도 스트레스 더 받으시고. 그 타이밍에 감정이 살짝 올라왔지만 I was able to shut it. This is not him. This is enemy’s attack. 민경이가 그 스트레스에 하나님께 원망을 하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걸 다 받아주시며 민경이를 다독이시고 중보를 시키심. How amazing that is.  애들이 stress를 주고, 육체적으로도 졸렸지만, 민경이와 함께 기도하고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 민경이의 frustration이 나에게 다양한 emotion 과 생각 – 나의 의를 주장하거나, 상대의 교만을 지적하는 (나도 할말 있다, 이건 당신이 시작한거다, 나도 지금 상황이 싫다, 금방 없어질거다, or 이건 사실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죽는건, 어떻게 되든 더 dependant해질수도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아직 교만이 있다 등). 하나님은 그 모든걸 막으시고, 공감하고, 미안하다고 하게하고, 기도하게 하셨다. 주님의 선하심을 proclaim 하게 하셨다.  It’s amazing what you are doing Lord. It’s amazing who you are. And you know what? I can’t stop but thinking this is quite fun. I love the new learning. And more than any other learning, this is beautiful. This is magical. This is amazing. 

이것말고도 에피소드가 너무 많다. 하루는 장모님 앞에서 이런 농담이 나왔다.

“장모님, 요새 많이 신경쓰이시죠. 제가 생각해도 나중에 하루 (우리딸) 결혼시켜서 사위 우리집에 들여놨는데 돈은 안벌어 오고 혼자 룰루랄라 하고 있으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뜨리고 싶을것 같네요. “

장모님은 웃으셨다. 알건 아네 뭐 이런식의 농담을 하시며 금새 우리는 더 화기애애해 졌다. 성령님은 참 사소한 데서부터 많은 지혜를 주셨다.

그래. 그렇게 7월이 가고 8월이 찾아왔다. 그리고 8월의 어느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분의 영광이 내게 강력하게 임했다. 그건 다음글에 소개하겠다. 이시기에 쓴 일기 하나를 소개하며 이글을 마무리한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 Eden – tree of good/bad. 지금도 계속된다. It’s still ongoing. As long as we don’t eat this and trying to decide on our own (our soul), we will remain innocent, and we will rejoice in him, eating from tree of life.  You get conscious. Than you are on your own. You are responsible. Self-centeredness.  With sin in us, if we eat the tree of life, than we will live forever and be a devil? 

A love letter to the God:

Dear LORD,  I’m writing this email thanks to Jesus Christ, our lord and savior. I thank you and thank him for that.  I don’t know much about what you’ve been working on. I just want you to know that it seems amazing and I’d love to be part of it.  I have a bit of things about me (my needs, my family, etc) but you know all that.  I’ll be waiting. I love you. I long for you. I’m here. I don’t want anything else. This is the only thing that I want. 주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쉴만한 물가로. 주님을 더 잘 알수 있는 길로. 고난의 길이든, 역경의 열매/환난의 떡이든 다 좋습니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1 comments

  1. 안녕하세요? 신앙 안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내는지, 어떻게 예배하는 가정을 이뤄나가는지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나눠주시는 글들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늘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부족함이 많아서 은혜가 크더라고요. 제가 너무 제입장에서만 쓴다고 아내한테 혼났어요 ㅋㅋㅋ 사실아내가 한게 훨씬 많은데. 감사해요 응원해주셔서.

  2. 영하

    간증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있는데요.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모든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백산 형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너무나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내주하심이 충만한 간증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놀랍죠. 정말 놀랐어요. 하나님의 일하심에. 매일같이 살아내는게 쉽지만은 않지만 축복의 길임을 맛봤으니 놓지 않으려고요. 영하님도 주님안에서 아름답고 기쁜 교제하시길!

  3. Wooseok Shin

    산아 늘 응원한다

  4. Jacob Park

    예전부터 종종 블로그 보곤 했는데 이번에 8편에 걸쳐서 올려주신 글 보면서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열심히 아둥바둥 최선을 다하는것’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그것을 내려놓아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감이 찾아올때마다 참 쉽지가 않은데, 하나님께서 백산님을 정말 깊은곳까지 다 ‘박살나시고’, 직접 만지시고 새롭게 빚어가시는 과정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도 회개 많이 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나누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텐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5. Kwangil

    안녕하세요!
    백산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진심으로 중보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완벽한 시간에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시리라 굳게 믿어요.
    평안한 주말 되셔요!

  6. Pingback: 일자#9, 성령님의 가장 달콤한 초대,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 San'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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