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며#1 들어가며-아픔을 나눈다는것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이 쓰고 싶어서 이 공간에 찾아왔다.

내 블로그에 왔는데 글쓰기가 망설여 지고 내가 어색하다니. 이건 마치 내가 회사를 차렸는데 출근하기가 어색해지는 느낌이랄까.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은 쉽지 않다. 리스크를 지고 vulnerable해진다. 이 공간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어느순간 이 공간은 내것만은 아닌게 되어버렸다. 더이상 놀이가 아니라, 적지않은 부담이 되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른사람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될수 있을지 얼마나 공감받는지 얼마나 반응하는지 얼마나 누군가의 마음이나 생각을 움직일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선뜻 키보드가 두드려지지 않을때가 많았다.

하지만 존경하는 작가 “Andy Crouch”가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위해 글을 써”라고 말했듯, 쓰지 않다 보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본다.

이번 글은 지난 11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정확히 몇부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 시작해본다.


고통은 좌표이자 권위이다

고통이 선물로 되기까지의 다섯단계

위의 그림은 존경하고 흠모하는 작가이자 마켓플레이스에서 목회를 주로 하는 Dave Gibbons의 Xealots이란 책에서 발췌한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상처/고통이 어떻게 진화하고 승화되는지를 아래 다섯단계로 설명한다.

  • 1단계: 감추기
  • 2단계: 고백하기
  • 3단계: 받아들이기
  • 4단계: 가이드받기
  • 5단계: 선물

1, 2, 3 단계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1단계 감추기 – 상처와 고통은 보통 숨기고 싶게 마련이다. 많은 경우 보호기제에 의해 우리는 상처의 존재조차 모를때가 많다 – 우리 뇌가 아예 잠재의식 저변으로 상처의 기억들을 꼭꼭 밀어넣어 놓았기에. 2단계 고백하기 – 상처의 치유는 고백에서 시작한다. 고백한다는것은 끄집어 내는 것이다. 내가 따를 당했거나 폭행/아픔을 당했거나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다면 그걸 끄집어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고 상처가 다시 끄집어내 졌기에 1단계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아픈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고백 없이는 그 다음단계로 나갈수 없다. 3단계 받아들이기 – 이건 상처를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나의 과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만약 그 고통과 상처에서 내가 한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과 부족함 까지도 인정하는 단계이다. 나의 경우 MBA때 나의 이상한 공짜에 대한 집착이 돈에 대한 컴플렉스와 집착에서 나왔다는걸 깨닫게되고 그걸 고백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짐을 경험했다 (관련글 참고).

재밌는건 4단계 부터이다. Dave Gibbons는 받아들이기의 다음단계로 상처가 우리를 가이드하는 단계가 있음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는 성경의 한 인물 – 느헤미야를 소개한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점령당해 망한 시대의 인물로 점령국 바벨론의 왕을 직접 접견하던 고위관료였다. 그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은 “고통”이었다. 망해버린 이스라엘의 아픔에 눈을뜨고 그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됨을 느끼면서 그는 바벨론의 영화로운 삶을 내려놓고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게 된다. 고통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것이다.

5단계는 고통이 선물이 됨을 체험하는 단계이다. 상처와 고통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겸손해진 자아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가이드에 따를때, 우리는 우리의 강점이 아닌 고통이 바로 다른사람과 자신을 가장 친밀하게 (intimate) 연결시키는 접점이 됨을 경험한다. 고통이 남과 나를 연결하는 선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사람과 아주 깊이 연결되고 싶어하고 다른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원한다. 고통이 바로 그 촉매제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별다른 공통분모가 없다고 해도 다른사람의 아픔, 실망, 상실, 실패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며 이에 반응한다. 우리의 상처는 타인의 삶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힘, 권위가 된다. 고통을 통해 우리는 치유와 화해의 문을 여는 축복의 통로가 될수 있다.

나의 부끄럽고 부족한 (inadequate 한) 어려움의 이야기

미국을 떠나는 글을 쓰기에 앞서 왜 고통이야기를 한참 나눴는가. 그건 앞으로 나눌 내 이야기가 바로 지극히 주관적인, 하지만 여느 고백이 그러하듯 생각지도 못한 객관성(?)을 가질지도 모를 나의 고뇌와 아픔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쓸때면 무엇보다 주위 사람이 많이 생각난다. 이글을 보면 내 아내는 어떤 마음이 들까. 내 부모님은? 장인/장모님은? 너무 나의 어려움들을 집중해서 고백하다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오히려 다른 아픔을 주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안드는게 아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게될 내 주위, 또는 나를 잘 모르는 분들께도 나의 보잘것없는(?) inadequate 고뇌의 이야기들이 너무 배부른 소리로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우려도 생긴다.

그럼에도 나눈다. 난 위의 다섯단계를 믿는다. 인스타그램처럼 산정상의 순간들을 나누는 것 보다는, 이 공간에서 골짜기의 순간들을 나누는 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을것을 믿는다. 1-2-3단계로 나아가려는 나의 노력이 4-5 단계 (좌표, 선물)를 열 것을 소망한다.

다음글: 미국을 떠나며#2_아이덴티티가 흔들리며 악순환에 빠지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3 comments

  1. 사실 저도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많은 사람이었죠. 조현병이니까요. 그런데 조현병에 대해서 공개하고 뭔가 나눈다는 것을 싫어하는 걸 넘어서 그걸 나누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협박하는 정신나간 사람도 있더군요… 결국 이전에 운영하던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여차하면 진짜 범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쩝.

    • 너무 슬픈 일이네요.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에 아픔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부디 상처받은 마음들이 아물어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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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brian

    한국에 들어오시게 되었군요!
    여러 고민이 있으셨을텐데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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