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딸이 준 소망, 친구가 준 도전

친구 딸의 장례식에서 받은 소망 – 우리는 영원토록 사랑받는 존재이고, 서로에게 심어져 새롭게 피어나는 씨앗이다

미국을 떠나기 얼마전에 충격적인 메일을 받았다. 6개월된 MBA친구의 딸이 어느날 비명횡사 한것. 친구는 그 충격의 사실을 이메일로 전달하며 나를 장례식에 초대했다. 그리고 미국을 떠날지 말지 고민하며 마음이 아주 복잡하던 9월의 어느날, 난 친구 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어린 아이의 갑작스런 사고사. 부모라면 누구나 그게 얼마나 끔찍한 악몽일지 알것이다. 한번도 본적 없는 아이의 장례식이었지만 난 마음을 여몄다. 많이 슬프겠지, 많이 같이 슬퍼하자.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미국을 떠나는게 맞을지 안맞을지, 내가 이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지, 회사를 옮기는게 맞을지 아닐지, 내 머리와 가슴은 온통 이 생각과 걱정으로 뒤덥혀있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다른 것들에 할애할 수 있을 공간이 있을지 가늠할수 없었다. 이 끝도없는 고민과 생각에 지쳐갔지만 출구를 몰랐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내 마음은 온통 내 진로고민으로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로부터 몇시간후 난 최근 몇개월간 가장 희망차고 가장 가슴이 벅찬 상태로 장례식장을 나왔다. 몇주간의 체증이 내려가고 엉켜있던 가슴이 뻥뚤렸다. 그리고 난 가볍고 가뿐한 마음으로 한국행을 결정할수 있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 한 장을 마무리하는데 이 장례식이 중요한 마침표를 찍어줬다. 상상도못했던 일이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먼저 친구가 장례식장에서 나눈 딸에 대한 추도문을 일부 공유한다 (친구의 허락을 받고 공유하는것임을 밝힌다).

이 사진의 아이가 제 딸입니다. 그녀는 6개월전 어느날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내의 자궁에서 나오는 그녀를 직접 받았습니다. 슈퍼볼 하루 전이라 그녀를 떨어뜨리지 말라는 농담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192일 동안 그녀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저의 품에서나 제가 안고 있는 아기띠안에서 보내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그녀는 제가 핸드드립커피 내려마시는것, 그리고 그저그런 수준의 요리를 하는걸 늘 지켜봤습니다. 우리는 같이 운동했고 – 대부분 스쿼트를 – 그리고 그녀의 세 명의 형제와 함께 탁구와 피클볼과 콘홀 (미국에서 하는 게임의 일종) 을 했습니다. 저희는 설거지도 하고 옷장을 정리하고 차고에 선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새로운 반지를 가지고 아내에게 다시 프로포즈한 때 가장 앞 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달 어느 화요일에 사망했습니다. 그 192일 중 어느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이었습니다. 어느 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 최고의 날은 그녀 없이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떠난후 내몸 가장 깊숙한 곳으로 부터 질문들이 시도때도 없이 거품처럼 떠올라 터집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잔인한 질문들: “왜?” 왜 이렇게? 왜 그녀가? 왜 우리가? 왜 지금?” Why why why why….

하지만 Why에 대한 질문에 해답이 없다는걸 본질적으로 느꼈습니다. 대신에, 저는 다른 질문에 빠지게 됐습니다. Who – “누구였을까요?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그녀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의 접시에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특히 가슴에 마찰을 일으키는 그것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크고 회갈색의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저에게 다가올 때나 볼을 움켜잡을 때, 혹은 응가를 할 때, 그녀의 시선은 온전히 집중되었습니다. 그녀의 웃음 은 어떤 어둠이든 물리칠 수 있는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그녀 육체의 모든 존재와 흔적들이 – 그녀의 머리카락, 눈, 웃음 소리와 목소리 – 그 모든 것은 한줌의 재로 사라졌습니다. 말 그대로. 그렇다면 그녀는 그저 육신이었을까요?

그녀의 추도문을 준비하면서, 그녀가 85세에 사망했다면 그 추도문은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있지 않았겠지만, 누군가는 그녀의 월드컵의 승리, 그녀가 쓴 책, 창업한 벤처,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으로, 관대하게, 기쁘게 사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그녀를 그녀로 만들었을까요? 그녀의 이력서와 평판, 역할들이 그녀의 존재를, 그녀의 삶과 가치를 궁극적으로 정의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종종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종종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내 존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망했을 때, 그녀는 그 모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녀는 한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존재는 “하지않은, 하지못한 미완성의 많은 일들”일까요?

그녀는 그냥 잔해와 미완성인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는건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절대로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일까요?

그녀가 물리적인 육체뿐이 아니라면, 그녀는 영적인 존재여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치가 그녀가 일군 업적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라면, 그건 사랑으로 거저 주어져야 합니다. 오랜 고통과 번민의 시간 끝에 난 이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나는 그녀가 영원한 영적인 영혼으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고 믿습니다 – 주변의 나와 다른 이들에 의해 사랑받기는 물론이고, 주로 그녀의 창조주에 의해 사랑받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과 사랑의 완벽한 요약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영과 사랑의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인 내 딸을 사랑받기 위한 존재로 창조했으며, 그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와 살고 죽고 다시 부활하여 내 딸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도 부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단지 살아나는것 뿐 아니라 영원히 사랑받으면서요.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사투와 함께 난 또다른 사투를 싸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녀의 사진, 동영상, 추억들은 아름다운 별들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붕괴하여 블랙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블랙홀에 아무런 받침대나 바닥없이 영원히 자유낙하 했습니다 – 어릴적 악몽처럼. 그래서 때때로 나는 그녀를 떠올리는 것 자체를 피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그녀를 기억하는 것이 무서워서요. 그녀를 피하는 스스로를 대하는건 고통스러웠습니다. 스스로가 너무도 작게 느껴졌습니다.

죄책감도 있습니다. 주위사람 모두와 수많은 카운셀링관련 책들이 그녀의 죽음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이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의 일정부분은 제 탓이라는걸요. 나의 이성은 그녀의 죽음이 내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양심은 계속 속삭였습니다 – 그건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으면 피할수 있는 죽음이었다고. 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을까. 왜 좀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완벽한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습니다.

공포와 죄책감 안에서, 그리고 내 가슴속 많은 어두운 골목들 안에서, 난 더 많은 정보, 새로운 마음과 인사이트 이상의 것이 필요한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정보와 새로운 시각이 나쁜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족하죠. 난 관계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내 딸도 가졌다고 믿는 – 내 영혼의 사랑, 바로 그 관계요.

난 내 가장 어두운 공포를 함께 마주할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난 내 가장 깊은 실패를 보고 나를 완성시켜줄 신이 필요했습니다. 난 나를 끈임없이 괴롭히는 죄책감의 소리를 대적하고 끈임없이 침작하는 나의 마음을 건져줄 진짜 소리가 필요했습니다. 최악의 순간에서 내게 소망을 주고 소망이 되어줄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인지요?

내 딸이 응급실에 실려갔을때 난 그녀의 심장이 다시한번 뛰기를 바랬습니다.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그것만 얻는다면 난 모든걸 걸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녀가 살아났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세상에서 바랄수 있는 소망의 운명이죠. 언젠가 죽음과 이별로 끝나고 마는.

내 가슴저변의 블랙홀까지, 나의 그 모든 죄책감과 공포를 함께 마주하며, 사랑으로 세상 어디까지, 아니 죽음 이후에도 나를 사랑으로 추구하고 원하는 신 – 그게 내가 상상할수 있는 유일한 “영원한 소망” 입니다. 그 소망은 내 영혼의 무게를 감당할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내 딸이 그립습니다. 오 정말로 그립습니다. 그리고 난 내가 그리워하는 그 존재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고 크고 영화로운 것이라는걸 깨닫습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내 딸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엇이 그녀를 그녀로 만들까요? 소리내어 대답할 필요는 없고 나와 동의할 필요도 없지만 한번 생각해보실수 있을까요?

아마 여러분도 나와 같이 이 질문에 대답하는건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걸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여러분도 저와 같이 서로 양립할수 없는 두 극단의 답을 찾을지 모릅니다. 하나는 우연이 나왔다가 의미없이 사라져버린 미완성, 한줌의 재라는것. 다른 하나는 소망의 존재에 의해 영원토록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자 이제 한번 생각해보고 대답해보세요. 그녀는 누구인가요? 그리고 나와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그는 이 글을 MBA 10주년 동문회에서도 나눴다. 친구의 이 질문앞에 똑똑하고 말 많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백명의 친구들이 침묵했다. 그녀는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

난, 이 짧은 글로 설명하기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친구가 이야기한 그 소망을 장례식장에서 생생하게 느끼고 접할수 있었다. 친구 딸 장례식의 제목은 “씨앗”이었다. 친구는 성경구절과 함께 씨앗을 한웅큼씩 모두에게 나눠줬다. 난 그녀가 내 마음에 하나의 씨앗으로 심겨짐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한국에 가서, 새로운 내 인생의 장에서, 누군가의 가슴이 한알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했다. 아래는 내가 장례식 끝나고 친구에게 보낸 메일의 일부이다.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도무지 찾을수가 없어. 하지만 또 글로 쓰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어. 어제는 정말 내게 특별한 날이었어.

신이 네 딸을 통해 내 영혼에 씨앗을 심었어.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셨어. 그리고 너의 말처럼 그녀는 큰 축복이 되어 내 마음에 심어졌어.

이해를 돕기위해 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사실 난 최근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앞두고 마음이 온통 헝크러져있었어. 한국으로 가는게 맞는 결정일지, 후회하지 않을지, 가족은 잘 적응할수 있을지, 난 잘 적응할수 있을지. 대답없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끈임없이 내 머리를 멤돌며 나를 괴롭혔지.

내가 한 매우 작고 초보적인 기도는 이거였어 – 하나님, 다른 생각좀 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어제 장례식에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내가 상상한것보다 훨씬 더 크게 응답해주셨어.

그건 바로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것. 우리는 하나의 씨앗으로 누군가에게 심겨져 또 새로운 형태로 열매맺어 가면서 그분안에서 하나되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그런 소망이었어. 네 딸이 내게 씨앗으로 와서 새로운 소망과 개대를 줬어. 내 가슴을 위로해주고 평안을 선물했지. 이젠 맘편히 한국에 갈수 있을것 같아. 누군가에게 나도 하나의 씨앗이 될거란 그런 소망과 함께.

친구에게서 받은 도전 – 삶의 우선순위를 알고 실천하는 단순한 삶

MBA 10주년 동문회를 마치고 (이전글 참고), 친구를 따로 만났다. 그간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그간의 삶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나눴다.

그러면서 이 친구의 삶에서 몇가지를 더 알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충격적이었다.

  1. 구글을 그만뒀다. 인도네시아로 가서 사업을 하기위해 준비중에 있다.
  2. 넷째 딸의 죽음 이후에도 자녀를 더 나을 계획이다.
  3. 작년도 삶의 가장 우선순위는 아이들이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경험시켜주는것이었다.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서 매일 부르며 그걸 실천중이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막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이 여정을 기록중에 있다.

하나같이 아이비리그와 스탠포드 MBA를 나오고 컨설팅, 구글을 거친 사람의 선택이라기엔 생소한 것들이었다. 궁금한거 투성이었다. 아래는 나와 그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산: 구글을 그만뒀다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수 있어?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친구: 아시아로 가는건 내 오랜 꿈이었어. 아내와 몇년전부터 계속 상의만 하고 있었지 타이밍을 못잡고 있다가 이제서야 결정하게 된거야. 넷째가 나오고 또 사고를 당하고 하면서 늦어진거지. 이제 때가 된것 같아.

산: 왜 가기로 결정한거야? 가서 뭘할거야? 불안하진 않아?

친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굶어죽을것 같진 않아. 뭐라도 해서 집에 쌀 정도는 공급할수 있어.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내가 하는일은 결국 더 잘사는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거야. 여기서 많은걸 배웠고 브랜드도 쌓았어. 이젠 그걸 갖고 내가 진짜 하고싶은걸 해보고 싶어. 크게 두가지야. 첫째는 일반적인 조건에선 좋은 제품/서비스를 공급받지 못하는 계층에게 비지니스모델 혁신과 기술혁신으로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는거를 하고 싶어. 둘째는 영혼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 지금 있는 곳과 환경에선 그 둘다 어려워. 인도네시아에 가서 사업/창업을 해볼 생각이야.

산: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야. 나로선 상상도 못할일이야. 언젠가 나도 그런결단을 할수 있을까

친구: 무슨말인지 알아. 나도 이런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래걸렸어.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도 참 중요한거 같아. 우리 주위엔 이렇게 저개발국으로 가거나, 실리콘밸리의 통상의 성공방정식을 탈피해 자기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 꽤 있어. 그러다보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계속 이런데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고 고민해볼수 있었던것 같아.

산: 사실 난 요새 다른 고민도 하나 있어. 집에서 아이들이랑 어떻게 지내? 특히 아이들의 영적인 가장 역할을 사실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고민이야.

친구: 리터지 (litergy)라고 알아? 카톨릭에 있는 전통인데 꾸준히 무언가를 반복하는거야. 마치 구호나 표어를 반복하는것처럼 하나의 리츄얼을 만드는거지. 그게 엄청 중요하고 파워풀한것 같아. 난 애들한테 아빠의 사랑을 알게해주기 위해 시를 써서 라임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어서 그걸 매일 같이 부르고 이야기하는 습관/리츄얼을 만들었어. 너도 해봐. 완전 강추야.

산: 너 이야기 들으니까 현실감이 없다. 어떻게 그럴수 있지? 그리고 넷째가 그렇게 되고도 더 자녀를 낳는다고? 무섭거나 힘들거나 하진 않아?

친구: 아이들은 축복이지. 너무 이쁘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감격스럽잖아. 우리는 힘 닿는데까지 나아보려고. 그리고 사실 너한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있어. The common rule이란건데, 쉽게 말하면 습관의 힘 같은거야.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해 할것과 하지말것을 정하는건데, 한번 읽고 해봐. 되게 쉬워. 예를들면 눈뜨고 바로 핸드폰 보지 않기, 하루에 한시간은 핸드폰 꺼두기,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휴식하기, 이런것들? 그런 습관들을 지키면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인것에 집중할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을거야.

질문 하나하나에 대답하는 친구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지혜가 신선하고 소중했다. 시간이 너무 짧고 아쉬웠다. 나보다 한두살 어린 이 친구에게 자존심이고 어색함이고 다 미루고 멘토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친구의 삶에서 아래 세가지 지혜를 얻었다.

  1. 하나 – 우선순위를 확실히 알기. 영원한것과 그렇지 않은것. 내가 버릴수 있고 버려도 되는것과 버려서는 안되는것
  2. 둘 – 주위에 닮고 싶고 비슷한 사람들을 두고 꾸준히 교류하기
  3. 셋 – 삶의 습관을 하나님과 이웃을 더 사랑할수 있도록 단순하고 절제되게 만들어가기

한국에서 산다는것 – 핸드폰을 꺼놓는것처럼 내게 오는 정보와 인풋의 양을 조절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거짓말같았던 MBA10주년 행사, 그리고 꼭 순례자처럼 삶을 사는 친구와의 대화를 뒤로하고 온 한국은 여전히 바빴다. 나의 핸드폰은 정신없이 울렸고, 모든 알림을 다 확인한 후에도 난 습관처럼 카톡을 열고 인스타를 열고 페이스북을 열고 이메일을 열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회사에서는 내가 책임지고 있는 제품/사업의 매출이 실시간으로 찍혀 매일 업데이트 된다. 눈뜨면 이메일과 카톡을 체크하고 매출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확인하며 걱정하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삶이 다시 반복됐다. 페이스북과 링크딘, 인스타에는 본인 삶의 최고의 모멘트들을 기념하는 포스팅이 넘쳐나고, 지하철에서 핸드폰만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루에 몇번씩 마주하고, 카카오톡 단톡방에선 경조사와 찌라시와 각종 투자 정보가 돌고, 유투브 피드엔 미래를 확신에 차서 예측하고 어떻게 살아야 더 성공하고 실패하지 않는지 강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삶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다. The common rule. 크게 보면 아래 여덜가지의 습관을 권하는 책이었다.

  • 매일:
    •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할것, 하지 않을것 각 1개 (작가의 경우, 하루 세번 무릎꿇고 기도하기, 눈뜨고 핸드폰바로 보지 않기)
    •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할것, 하지 않을것 각 1개 (작가의 경우, 하루 한끼는 다른사람과 같이 먹기, 하루 1시간 핸드폰 꺼놓기)
  • 매주:
    •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할것, 하지 않을것 각 1개 (작가의 경우,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쉬기, 음식 또는 미디어/기타 좋아하는것을 24시간 금식 (Fast)하기
    •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할것, 하지 않을것 각 1개 (주1회는 친구와 편한 대화나누기, 미디어 4시간 이상 보지 않기)

한국에서의 보통의 삶은 스마트폰 과잉사용 (중독주순의)의 삶과 참 닮아있다. 끈임없이 오는 정보의 홍수. 그리고 뇌를 식히려고 또 미디어를 본다. 삶을 더 낫게 하고 싶어서 계속 스마트폰을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또 계속 스마트폰을 한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모든걸 해내기 위해 바쁘게 살다가, 아무것도 안하고 놔버리거나, 또 다른 바쁜 무언가로 나를 채우며 부족한 휴가와 휴식을 안타까워한다. 너무 많이 하는게 안좋다곤 알지만 손에서 놓을수 없는 스마트폰처럼, 한국 사회의 끈임없는 인풋도 조절이 어렵다. 인풋이 꺼지면 불안하고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한꺼번에 갑자기 삶을 바꾸긴 어렵다. 하지만 좋은 습관으로 조금씩 삶을 정돈해가고,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근육과 힘은 기를수 있으리라. 친구 딸이 내게 준 소망, 친구가 내게 준 도전과 격려를 잊지 않고 싶다. 내일 아침엔 눈뜨자마자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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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4 comments

  1. Hyeongyu Bae's avatar
    Hyeongyu Bae

    안녕하세요!
    ‘한꺼번에 갑자기 삶을 바꾸긴 어렵다. 하지만 좋은 습관으로 조금씩 삶을 정돈해가고,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근육과 힘은 기를수 있으리라.’
    저도 생각해보면 쉬기 위해 스마트폰을 더 보고,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던 때가 많습니다.
    근데 정말 쉬는 게 아니더라구요^^
    인풋을 조절하는게 어렵지만, 저도 노력 중에 있습니다. 서로 화이팅하시죠!

  2. BH OH's avatar
    BH OH

    안녕하세요.
    저도 글 마지막에 설명해주신 에서 얘기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할애하던 시간을 하루 2~3시간 정도에서 20분으로 줄였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3번정도 달리기를 합니다. 그러니 삶이 훨씬 윤택해지고 활력이 넘치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3. Cindy choi's avatar
    Cindy choi

    안녕하세요, 오래전 알게된 블로그(아마도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님의 블로그를 접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의 인연으로 오늘 이글을 만났네요. 솔직히 격무로 메일함에 오는 메일을 긴급한 업무가 아니면 일일이 보지못하는 오늘의 삶을 살고있는 제게…이상하게 오늘아침 이메일에 바로 손이갔고…(제목이 친구딸의 장례식이라강렬하긴했습니다. 제가 요즘 여러 이별에 좀 아픈상태라) 블로그주인님과 또 훌륭하신 친구분의 대화에서 저 역시 고민하고 있는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도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오신듯합니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사랑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드립니다.

    • sanbaek's avatar

      네 이 친구의 나눔과 딸의 삶이 Cindy 님께도 여러가지 perspective 를 전달했다니 큰 기쁨이고 감사네요. Grace and peace to you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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