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삶의 궤적에 대한 글을 최대한 솔직하고 가감없이 써봤습니다. 잘난척하려고 쓴것도 아니고 사실 뜯어보면 내세울거 정말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쓰는건 제가 이곳에서 느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하나 공통점 없어 보였던 미국 애들, 전세계 각지의 애들도 각자의 삶을 진짜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많은게 보이고 느껴지더군요. 다른 사람의 삶을 알고 이해한다는건 그 사람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는거 같습니다. 이 공간은 제 생각과 행동과 삶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I wanted to share where all this coming from and welcome you all to my life. (And special thanks to Joey who gave me inspiration in here. 하나 차이가 있다면 Joey형의 글은 특정 임팩트 중심의 점이고 제 글은 시간 순서의 장입니다. 두가지 다를 고민해 봤는데 저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 그리고 저 자신도 저를 더 잘 알려면 – 어렸을 때 부터 한 막씩 뜯어보는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1. 첫번째 인생의 장 – 유년시절 – 사랑받고 자란 못된, 잘난 둘째 아들(1983~1988)
나를 너무도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친구같으면서도 한없이 강하고 존경스러운 아버지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사랑넘치는 희생정신의 대가 어머니 사이에서, 그리고 착하디 착해 나의 못되고 악바리같은 성격에 많이 디인 연년생 형 아래서 못되고 잘난척하는 유년시절을 보냄. 유독 작았지만 지는게 얼마나 싫었는지 싸우다가 안되면 어떻게해서든 이길때까지 싸워서 상대방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는 경우도 꽤 있었고, 샴푸의 환경오염 유발문제를 듣고 형이랑 주위 사람들한테 샴푸 쓰면 절대 안된다고 막 우겨대서 사람들 질리게 만들었던 기억도 있음. 그래. 그리고 별명은 백두산.
2. 두번째 인생의 장 – 세상에서 제일 잘난 초등학생 (1989~1994)
갈수록 기고만장해지던 나의 유년시절은 사립초등학교인 경희초등학교를 가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공부좀 한다는 이유로 3학년때부터 반장을 줄곧 하고, 6학년때는 전교회장까지 하면서, 떠드는 애들 선생님 말 안듣는애들 이름적어서 일러바치고 수업시간에 항상 손들고 발표하고 등등 상당히 Nerd + Egoist + 밥맛의 캐릭터로 생활함. 어찌나 사춘기가 늦었던지 여자에도 별 관심이 없어서 한명의 짝사랑만 가슴에 간직한채 오는 예쁜 여자 다 마다하고. 그래도 귀여웠던 면은 뭐든 열심히 하려 했다는 것, 특히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정말 춤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몰입해서 열심히 탈춤을 추다보니 선생님께 발탁되서 대표로 춤을 추게 됐던 것 – 노력하면 되게 돼있다는 신념을 갖게 됨. 어깨동무 국토순례 등등 참가하고 아버지, 가족들과 산들로 캠핑다니며 학원한번 안다니고 즐거운 어린시절, 기 펄펄 펼치며 다녔던 시절.
3. 세번째 인생의 장 – Identity crisis – 중학교 in 강남 (1995~1997)
꺽일줄 모르던 나의 콧대를 확실히 꺽어준 봉은중학교. 맹모 삼천지교로 강남 한복판으로 이사를 와서 봉은중학교에 아는사람 하나 없이 갔더니 이거야 왠걸, 잘난줄만 알고 살았던 나로선 처음으로 강적들을 만났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이 그 핵심, 계속 손들고 발표하고 나서대는 나를 도저히 못봐주는 애들이 생겨서 다툼도 자주 생기고, 상대적으로 작고 약했던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대로 얻어맞고 끽소리 못하는 충격적인 굴욕을 경험. 그 영향으로 중학교 2학년때는 제대로 삐뚤어져서 반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애들 (소위 껌좀 씹고 담배도 가끔피고 연애도 하고 반을 은근 지배하는 애들) 과 어울리며 쿨함을 표방. 선생님한테 수업태도 불량하다는 소리도 많이듣고. 사춘기까지 겹쳐서 최대한 삐뚤어졌던 시절(그러면서도 싯다르타와 같은 헤르만헤세 책을 즐겨읽으며 해탈을 꿈꿈). 중학교 3학년때는 조용히 죽어지내자고 노력해서 그나마 조금 안정적인 생활을 함, 첫 제대로된 연애를 경험.
4. 네번째 인생의 장 – 살맛났던 한영외고, 재밌었던 경기고 (1998~2001)
당시 여자친구가 한영외고를 가고싶다고 했덨지. “부모님 – 왜 대원외고 안가고?” “나 – 한영외고가 체육시간도 더 많고 체육대회도 있고 좋아. 한영외고 갈래” 라는 허접한 논리로 항상 나를 밀어주는 부모님을 간단히 설득한 후 한영외고로 진학. 공부잘하는 애들, 상당히 비슷했던애들과 어울리며 다시 나에게 기를 피게 만들어준 시간이고 참 살맛났던 시절들. ‘정석을 몇번 읽고 왔네’ 이런 자랑하는 애들 사이에서 “야 나는 과외한번 한적없어, 공부보단 우리끼리 재밌게 좋은시간보내며 잘지내는게 중요하지 않겠니” 이런 상당히 유치한 ‘쿨함’ 을 표방하면서 축구 열심히 하고 짝사랑도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설쳐댔던 나날이 다시 도래. 주로 공부하는 전형적인 한국 고등학생 삶이었으나 그래도 주위에 다 그러고 사니 학원앞 떡볶이와 오락실도, 가끔갔던 데몰레이션 노래방과 PC 방 스타크래프트도, 가슴설레게 만들었던 옆반 이쁜이도, 다 내게는 낭만이고 행복이었음.
그렇게 재밌게 살던 1년반 즈음, 여름방학 때 친구엄마 얘기를 듣고나서 “산아 서울대에 갈려면 내신때문에라도 전학을 가는게 어떻겠니”라는 어머니의 말에 대뜸 전학을 결심. 전 학교에서 가장 늦은 2학년 2학기 시작직전 경기고로 전학. 남고의 칙칙함에 화들짝 놀랐지만 또 그 부담없음은 친근함으로 다가왔고, 아이스크림 빨면서 신발 끌면서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낭만과 독서실에서 몰래보던 만화로 고2, 고3시절을 이겨냄. 태어나 처음, 겸손하고 마음씨 좋은 공부잘하는애 컨셉을 표방하면서 나름 안보이는 카리스마를 형성함. 그러나 속으론 항상 꿈을 품고 살았더랬지. ‘대학교 가서 진짜 전세계 제일 똑똑한 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 난 남들처럼 허술하게 놀면서 살지 않겠다. ‘.
5. 다섯번째 인생의 장 – 열심히살며 사회인으로 성숙 – 군대가기 전 서울대 경영학과 2년 반 (2001.3~2003.10)
법대 갈 생각은 없었고, 경제과 – 경영과 고민하다가 큰 생각 없이 경영으로 진학. (경제과 갔으면 어쩔뻔했어. 휴…) 한영외고보다 더 Nerdy한 환경에서 아 여기선 진짜 좀 설쳐도 되겠다는 오판을 다시 내리고 OT, 등등에서 설쳐대며 카키색 머리, 갈색머리 등등 염색해가며 역시 안좋은 첫인상을 형성. 만회하는데 1년이상 걸림. 그와중에 인생의 스승이 되준 축구부를 만나고 형들의 끊임없는 갈굼과 남송 거부기 등 붕우의 one to one 가르침으로 왕재수 범생에서 드디어 살짝 제대로된 사회인으로 탈바꿈. 축구부 주장, 동문회 회장, 수많은 미팅 소개팅, 각지 세계여행을 반복하며 내맘대로 즐겁고 행복하게 삼. 항상 뭔가 빨리 가고싶다는 갈증은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진짜 중요한 결정은 일단 군대 이후로 미뤄놓고 정말 행복했던 시절. 그와중에 터키의 국제 자원봉사 캠프, 서울대-게이오대가 공동주최하는 동아시아 대학생 포럼 등에 참여하면서 동아시아 인으로서의 Identity 형성. 운동하고 술먹고 어울리고 부데끼고, 자서전과 조정래 소설중심의 책을 읽으며 에너지를 얻음.
6. 여섯번째 인생의 장 – 군대 – 깡다구와 근성, 전진에 대한 강한 갈증 (2003.10~2005.8)
뽀록뿐인 인생에 또 한번의 Lucky 7 – 카투샤 합격으로 3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입대. 당시 이쁜여자친구가 눈에 아른거려 JSA는 절대 안갈거라고 버팅기다가 결국 끌려감, 초반에 고생했으나 곧 은근 빡세고 정많은 JSA문화에 흠뻑 젖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냄, 부대가 이라크를 가는 통에 용산으로 내려옴. 상병달고 용산17항공여단 와서 매주 밖에 나가자 세상이 다 내거 같아서 홍대가서 오버해서 춤췄던 우도 범함, 특히 재수없는 미군놈 콧대 꺾기위해 운동도 많이하고 모범보이기 위해 노력. 부대가 또 이라크에 가서 이삿짐 전문인력처럼 세탁기 – 드라이기만 나르다가 병장달고 마지막 501정보여단에 합류. 왕자 선명했던 복근과 Ruck 마치하거나 행군하면 무조건 1등을 놓치지 않는 빡셈으로 미군과 카투샤 모두로 부터 카리스마를 획득하고 내맘대로의 군생활을 즐김. 아침운동, 점심헬스, 저녁수영 + 공부를 하며 진정한 웰빙의 삶으로 복근을 가다듬음. 단 연애는 만만치 않았으나 군신분 + 짧은 머리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위로함
7. 일곱번째 인생의 장 – 제대하면서 물맛난 물고기 마냥 생활을 즐김 (2005.8~2005.12)
군 막판에는 모든게 맘먹은대로 되기 시작. 주말공부로 토플도 2개월만에 끝내고, 휴가내서 동아시아 포럼에도 참석하면서 맘먹은건 다 해내는 근성과 깡다구, 자신감을 기름. 군 막판에 이사람저사람 열심히 만나며 진지하게 진로고민을 함. 교환학생 + 외국계기업 vs 고시공부의 갈림길에서 뭔가 더 뽀대나는걸 하고 싶다는 욱하는 마음에 결국 고시공부를 하기로 결론냄. 제대하자 마자 물만난 물고기처럼 너무 빡세게, 재밌게, 행복하게 삼. 21학점 꽉채워 듣고 축구부, 동문회, IFS 재무동아리 등등 빡세게 하면서 물맛난 물고기처럼 즐겁게 삼. 군생활에서 생긴 습관과 자신감에 삶의 재미가 더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 단, 그만큼 모든걸 접고 고시공부를 한다는 것도 힘들었음.
8. 여덟번째 인생의 장 – 내 인생 최장의 잠수 – 고시공부 (2006.1~2007.6)
이때부터 성격이 점점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기 시작함. 사람만나기 좋아하고 나대기 좋아하는 나로서 하루종일 독서실에만 앉아 있는건 정말 힘들었던 시간. 삶이 팍팍해지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한테 자꾸 기대게 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효자로 둔갑. 복싱, ILO 국제 노동기구 아태총회 진행요원 알바, 영어캠프 교사 알바 등을 하면서 잠시 숨통 트고나서 다시 공부에 몰입. 군대 훈련소보다 힘들었고 정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그러나 하면 된다는 신념, 군생활에서부터 다진 습관과 체력, 깡다구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함.
9. 아홉번째 인생의 장 – 첫직장, 미숙했던 직장인, 뜻깊었던 경험 – 고시합격 및 국회사무처 (2007.7~2008.3)
2007년 7월부터 내 인생 첫 직장생활을 시작. 너무도 작고 따뜻했던 조직, 그리고 착하고 순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은근 술도 먹을줄 알고 놀줄도 알고 멋도 낼줄 아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그러나 갑자기 행정계장으로서 나보다 십수년은 더 나이드신 분들을 이끌기에는 너무 철없었던 시절. 일하면서 학교 마지막 학기도 다니고, 몰래 사내연애도 하고, 갖은 천방지축을 부리며 국회의원들 수행도 하고, 의원외교실 가서 졸기도 하면서 나답게 거침없이 직장생활을 함. 특히나 국회의원 세분과 베트남, 태국을 순방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른건 진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 리더 중 한분도 여기서 만남). 그러나 인생의 멘토를 찾지 못했고, 또한번 도진 욱하는 마음에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표를 내고 행정부로 옮김. 평생 못해볼 경험을 하고 평생을 같이할 입법고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잊을 수 없었던 첫직장.
10. 열번째 인생의 장 – 내 인생의 꽃, 정신없이 즐거웠던 시절 – COTI 행정고시 연수원 (2008.4~2008.10)
미국 전지역 IV League 방문 여행을 마치고 276명의 동기들과 6개월의 행정고시 연수원에 돌입. 내 인생의 꽃과 같았던 시간. 역시 초반부터 설쳐대며 안좋은(?) 첫인상을 남겼고, COTI 5대미녀를 모아 Economist 스터디 동아리 등을 만드는 등 무리가 가는 행동을 거듭했으나, 정말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정말 좋은 팀과 형들을 만나 부족함을 메꿔가며 즐겁게 생활함. 농민 백산(너무 디그니티 없다고), 염소 백산(풀을 좋아한다 하여) 등의 별명을 얻음. 사랑도 찐하게 해보고, 아픔도 겪어보고, 생활도 열심히 하고, 그러다보니 정말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연수원 최우등 졸업까지 하게됨. 인생이 이제부터 고속도로처럼 쫙 펼쳐질 줄 알았음.
11. 열한번째 인생의 장 – 수없이 밤새가면서 일에 몰입 – 기획재정부 전반(2008.10~2009.6)
2008년 10월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전 정부 제 1부처라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전 경제기획원 기획국 종합과)에서 꿈에도 그리던 모피아의 생활을 시작. 일주일에 툭하면 7일 출근. 사흘 이상은 자정을 넘기는 말도안되는 생활, 숨돌리기 힘들만큼 정신없이 일함. 너무도 우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하기위해 딴건 전혀 생각도 안하고 일에 몰입.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시간도 너무 잘가더라.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가끔은 술먹으며 “야 내가 경제난국 종합대책 세벽 3시반에 호치케스 찍어서 청와대 보고자료 만든 사람이야” 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데에 의미를 부여함.
12. 열두번째 인생의 장 – 뭔가 이게 다가 아니라고 계속 느꼈던 Identity crisis – 기획재정부 후반(2009.7~2011.6)
의료정책, 사회정책, 세계경제 분석보고 업무 등을 담당하며 가족 같은 사람들과 나름 알콩달콩 직장생활을 은근 빡세게 하던 나날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도 열심히 성실하게 묵묵하게 일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뺀질대고 항상 다른 옵션을 생각하는 성격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함. 업무보다는 체육대회, 국 장기자랑 등에서 훨씬 더 인정을 받으면서 과연 이 곳이 내가 계속 있을 곳인지에 대해 자문을 하기 시작.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 일단 꾹 참고 5년은 일해서 인정받고 좋은 실국 가야된다는 선배형들의 조언 등이 있었으나 과연 내 인생 여기서 계속 보내야 하는건가. 선배들의 삶이 내가 진정 살고 싶었던 삶인가를 계속 반문. 결국 풍훈아의 기질을 발휘해 몰래 유학을 준비. 이 과정에서 인생의 은인 이상원 과장님, 인생의 멘토 허경욱 차관님, 최상목 국장님들의 은혜를 받음. 아직도 MBA 준비를 한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을 때 이상원 과장님이 해준 말을 잊을 수 없음 “산아 너무 잘생각했다. 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유학준비에 몰입해. 지금 일 조금 더하는건 니 인생에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좋은 학교 가고 못가고는 너무 중요한거다. 일은 내가 적당히 막아줄테니 일단 넌 유학준비에 집중해 ” 그리고 정말 힘들었던 유학 준비가 너무도 좋은 결과를 내고, 치솟는 물가 잡으라고 막판에 기름값, 통신값 잡는 물가정책 열심히 하다가 유학길에 오름. 그래도 내겐 정말 친정같은 곳. 평생 잊지 못할 경험과 정말 충실히 묵묵히 일하는 너무도 우수한 선후배님들 – 사람을 준 곳.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법을 배운 곳.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 목차잡는것, 다 인재양성소 재정부 정책국에서 훈련받은 덕택에 그나마 정신없는 와중에도 글을 쓸 수 있다.
13. 열세번째 인생의 장 – 하루하루가 너무 놀랄정도로 Transformative한 곳 – Stanford MBA (2011.8~)
꿈에도 그려왔던 유학생활. 그렇게도 만나보고, 겨뤄보고, 조우해보고 싶었던 세계의 리더들과의 시간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Pre MBA Trip에서 부터, 모든 모임에 거의 다나가려고 하고, 어느 사람을 만나도 어울릴려고 하고,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끈기, 근성과 얼굴두꺼움으로 꼽사리의 화신으로 자리매김. Professional하게는 일단 Visa를 스폰서해주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 보겠다고 여기 저기 큰 기업에 원서를 냈다가 다 고배를 마심. 그러다가 소 뒷걸음으로 붙은 Evernote와 나의 리더십 Potential을 높이사준 Expedia 사이에서 역시 실리콘밸리 테크의 세계에서 승부해 보겠다는 욱하는 마음으로 전자를 여름 인턴으로 선택.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우루과이 쿠바 인도 남아공을 여행하고 1,2학년을 통틀어 800명 중 5~600명과 친분관계를 쌓아가며 그간의 목마름을 해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하는건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하루가 다르게 알게되는 Self Awareness, 그리고 나는 정말 복받은 사람이며 내가 하고 싶은거, 내가 믿는거 내가 정말 해낼 수 있다는 Intrepid warrior 로서의 자신감. 여전히 목말라 하는 성격에 이것저것 벌려놔서 수습하느라 허덕이며 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Intense하게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있는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나날들, Transformative한 순간들.
14.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