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안정사이 (부제: 사랑과 두려움)

블로그 시작하고 나서 가장 오랜기간 (6개월 넘게) 글을 안쓴듯 하다. 그만큼 삶에 여유도 없었고 에너지도 나오지 않고 나름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던듯 하다. 더 길어지기 전에 가슴에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보고 싶다. 이번글은 요새 내 머리와 가슴을 오가고 있는 두 단어에 대한 글이다. 불안과 안정.

들어가며: 하루의 짜증 폭발

눈이 너무 이쁜 우리공주님

우리 첫째딸 하루는 눈이 정말 이쁘다. 기분좋을때 애교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렇지만 절대 쉬운 아이는 아니다. 한번씩 (아니 사실 꽤 빈번히) 뭐가 자기맘대로 안되고 속상하면 있는대로 짜증을 분출해야지만 진정이 된다.

“엄마, 아빠: 어 저기 너구리다”

“하율: 아 보인다”

“하루: 난 안보여”

“엄마, 아빠, 하율: 지나갔다. 못봤어?”

“하루: 난 못봤어. (울먹울먹). 왜 도대체 나만 뒤에앉아서 너구리 못보게 하는거야. 나도 보고 싶은데. 너구리~~”

벌써 오늘만 세번째였다. 한번 터진 짜증과 울음은 무슨 말을 해도 그치지 않았다.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보고 협박도 해봤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고성과 괴로운 신음을 계속 내며 차를 심술로 가득 채웠다. 참다못해 차를 세우고 난 거칠게 하루를 차밖으로 꺼내며 소리쳤다.

“아빠: 나가! 나가서 너구리 니 맘껏 보고와”

울다가 겁먹은 하루는 그대로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의 눈물과 달램과 설득 끝에 그녀의 눈물은 잦아들었고 우린 겨우겨우 집에 돌아왔다. 내 마음은 내딸의 짜증에 질린 마음과, 화김에 애를 겁준것에 대한 후회로 여전히 엉망진창이였다. 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었고 힘도 다 빠졌다. 뭔가 그래도 이렇게 끝내기는 싫어서 애랑 조금 이야기를 시도해 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들어왔고, 여전히 울먹이는 하루를 끌어앉고 아내는 한참을 설명했다.

“엄마: 하루야, 하루는 엄마아빠가 하루를 덜 사랑하거나 별로 안사랑하는거 같아? 그래서 늘 그렇게 짜증을 있는그래도 뭔가 조금만 맘에 안드는게 있을때마다 내는거야? 그런거야? 한번 이야기해봐. 어떤거에서 엄마 아빠가 하루를 사랑하지 않는거 같아? 하루 카시트가 뒤에 있는거? 그건 바꿔줄게 그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카시트가 더 뒤에 있다고 덜 사랑하는거 아니야. 하임이 울때 달래주는거? 그건 하임이가 애기고 아프니까 그렇지. 하루가 애기땐 훨씬 더 많이 하루를 달래줬어.

하루야, 기분안좋고 속상할 수 있어. 표현할 수도 있어. 하지만 한두번 표현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거야. 있는그대로 계속 끝까지 아무것도 아닌거 가지고 짜증내면 가족이 그걸 다 받아줄순 없어.

하루야, 엄마가 느끼기엔 니가 마음을 닫고 안여는것 같아. 사랑을 받지 않으려고 꽁꽁 닫고, 엄마/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너무 자주 생각하려 하는거 같아. 맘을 열고 받아들여 줄 수 있겠어? 그리고 나면 하루 마음도 좀더 편안해 질거야. 짜증도 줄거고. 잘 할 수 있어. 잘해보자.”

불안과 공포와 후회로 온통 얼룩진 그녀의 마음에 그제서야 안정이 찾아왔고 하루는 쌕쌕 잠들었다. 어제 우리 와이프 좀 멋있더라.

불안과 안정: 두려움이 들어올때 우린 불안하고 사랑이 채워질때 안정을 찾는다. 이는 서로다른 욕구를 낳고, 그 욕구는 행동으로, 행동은 다시 마음으로 이어진다.

행동은 욕구에서 나온다. (Action comes from a desire). 욕구는 두려움에서 온다. (Desire comes from fear). 어느 사람의 행동을 이해햐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된다.

윌 스미스 (Will Smith)

윌 스미쓰가 그의 자서전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폭군 아버지로부터 받은 두려움, 그 두려움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욕구) 본인은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주위를 웃기고자 했다 (행동) 며 어린시절의 기억을 회상한다. 크게 공감했지만 반쪽짜리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욕구는 두려움에서 오기도 하지만, 사랑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래 이를 발전시켜 조금더 자세히 풀어본다.

행동은 마음에서 나온다
  • 우리의 마음은 감정과 욕구로 이루어진다. 감정에서 욕구가 오기도 하고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돈을 벌고 싶어짐) 욕구 충족여부에 따라 다시 감정이 오기도 한다 (돈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불행함).
  • 욕구는 행동을 낳는다 (폭군 아버지로 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 -> 어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어떤 아들은 아버지의 비위를 맞춤 (행동)).
  • 행동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마음 (욕구와 감정)을 자극한다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자 아버지가 폭력을 멈춰서 자기보호 욕구가 충족되고 안도감이 찾아옴, 또는 비위를 맞췄지만 폭력이 계속되어 공포와 두려움이 가중됨)
  • 마음을 움직이는 큰 두가지 외부 인풋은 두려움과 사랑이다. 어느 사람의 욕구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을 움직이는 불안이나 사랑을 살펴보면 된다.
두려움과 사랑에서 시작된 마음과 행동의 2×2 모델

2×2 매트릭스로 이걸 정리해보자. 가로축은 우리의 마음 (욕구와 감정)이 두려움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세로축은 우리의 행동이 외부로 뻗어나가는 동적인 상태인지, 내면에서 머무는 정적인 상태인지를 나타낸다. 각 사분면에 대해 살펴보자.

  • 3사분면은 마음이 두려움으로 채워지는 가운데 정적으로 있는 상태이다. 이때 우리 마음은 불안하고 우리의 생존본능은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는 곧 짜증이나 이상행동 (식사거부, 폭력, 손톱물어뜯기 등) 으로 이어지고, 불안이 일시적으로 달래졌을 지언정 두려움은 그대로 남는다.
  • 2사분면은 마음이 두려움으로 채워져 불안 가운데 동적으로 있는 상태이다. 이때 우린 그 두려움을 없애고자 무언가를 계속 채운다. 증명 (prove) 하려 하고 분투하고 (striving) 소비하고 소유하려 든다. 여기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와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고 그것에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기도 하지만 여전히 마음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는다.
  • 4사분면은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지는 가운데 정적으로 있는 상태이다. 이때 우리 마음은 평온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마음의 힘 (자존감)이 길러지는 상태이다.
  • 1사분면은 사랑 가운데 동적으로 있는 상태이다. 사랑이 가득차 밖으로 분출되면서 우리의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우린 마치 아이처럼 꿈꾸고 만들고 즐긴다. 이 상태를 몰입 (Flow)라고 부른다.

즉 마음이 두려움으로 찰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고 그거에 신음하거나 (불안증세, 강박), 그걸 없애기 위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채운다. 하지만 근원적인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고 계속 2,3 사분면을 맴돈다. 이것을 이하 불안의 악순환이라고 부른다.

반면 마음이 사랑으로 찰 때 불안은 평안으로 바뀌고 우린 안식하거나 몰입한다. 이때 우린 자유롭게 쉬고 일하고 사랑하고 또 쉬며 1,4 사분면을 맴돈다. 이것을 이하 사랑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주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성서에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외적 동기 vs 내적 동기: 두려움은 외적동기에 기반한 삶으로 내몰고, 거기엔 참 자유도 행복도 없다

복잡한 이야기를 잘 따라왔다. 불안으로 부터 출발한 2/3 사분면 (불안의 악순환) 과 사랑으로 부터 출발한 1/4 사분면 (사랑의 선순환) 에 대해, 특히 우리를 움직이는 욕구에 대해 조금더 살펴보자.

불안할때 외적 동기가 마음을 채우고 평안할때 내적 동기가 마음을 채운다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

우리 욕구는 크게 내적/외적 동기로 나뉜다. 내적 동기는 그 활동 자체에 대한 흥미나 재미에 기인한 동기부여이고, 외적 동기는 그 활동이 주는 결과에 기인한 동기부여이다. 내적 동기의 대표적인 예는 호기심, 열정, 재미 등이고 외적 동기의 대표적인 예는 승리, 보상 등이다.

마음이 불안할때, 우리의 뇌는 생존 모드로 향한다. 이때 우리 마음은 내적 동기에 귀기울일 마음의 여유를 잃고 외적 동기로 안정을 찾고자 한다. 반면 마음이 사랑으로 안정을 찾을 때 우리 마음은 내적 동기에 귀기울이게 된다.

외적 동기는 내적 동기와 단기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낼수도 있고, 때론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둘은 전혀 다른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나를 움직인 두가지 사이클 – 외적동기와 내적동기.

이 두 동기는 단기적으로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위는 내 삶을 관통한 두가지 동기이다. 하나는 사랑과 안정에 기반한 내적 동기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데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재미), 다른 하나는 불안에 기반한 외적 동기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잃어버리는데에 대한 두려움, 거기에 기반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주위의 인정을 추구)를 바탕으로 했다. 둘 모두 나를 열심히 살게 만들었다 (동일한 결과). 때론 사람들의 인정을 잃는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대한 갈망이 훨씬 더 큰 동기로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고 여전히 이끌고 있다. 하나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의 상상력의 나래를 맘껏 펼치게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에 기반하여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바라게 만들었다. 어떤 동기가 더 지배적이냐에 따라 나의 행동/선택은 달라지게 될 것이고 이게 쌓이면 전혀 다른 삶의 방향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다.

외적 동기에 기반한 삶의 가장 큰 한계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둘다 효과적이라면 – 열심히 살게 만들고 성공을 가져온다면 – 외적 동기부여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 안에 참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한계 효용 체감이 법칙이 있다. 외적 동기, 외적인 결과의 한계 효용은 항상 체감하고 궁극적으론 마이너스에 이르기도 한다.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사랑이기에, 사랑이 아닌 그 무엇 (외적 동기가 바라던 결과들: 주위의 인정, 돈(힘), 성공 등) 도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단기적으로 불안을 덜어줄 지언정 결국 우리를 더 목마르게 하고 허무하게 한다. 그 안에는 참 안식도 없고 행복도 없다.

금쪽같은 내새끼: 불안에서 안정으로

금쪽같은 내새끼 73회 – 엄마의 사랑이 고파 불안해하는 금쪽이 (한국에선 안나올수 있다)

우리 부부의 최애(?)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새끼는 늘 나를 울린다. 오은영 박사가 늘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교육의 목표는 우리아이들을 마음이 편한 아이로 키우는 것입니다. 공부의 목표는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녀는 표면의 행동을 넘어서 아이의 마음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의 안정이 행복의 근원인 것을, 그리고 아이의 특성에 맞춰 아이의 눈높이로 충분히 사랑받을 때에만 아이가 안정을 찾을수 있는 것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금쪽 처방은 항상 “북풍이 아닌 태양” 이다. 두려움과 공포로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고 사랑과 안정으로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건 절대 쉽지 않지만, 매우 파워풀하다. 안정을 찾을때 아이는 웃음을 되찾고 이상행동을 멈추고 다시금 자유롭게 즐기며 살아나고 피어난다. 늘 봐도 질리지 않는다. 한영혼이 살아나고 피어나는 모습 – 그건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장면이다.

이날도 펑펑 울었다. 자주 집을 떠나있는 엄마를 그리워 하는 금쪽이 (첫째딸)은 불안으로 가득차서 동생을 때리고 엄마가 오면 눈치를 본다. 그리고 관계에서 안정을 찾고자 친구의 사랑을 갈구하며 친구에게 집착한다. 엄마도 불안에 차 있는건 마찬가지이다. 어렸을때 부터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구멍과 삶의 다양한 상처들이 그녀를 더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었다. 그녀도 2, 3사분면을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이 안정을 찾고나서야, 그리고 금쪽 처방으로 아이를 더 이해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고 나서야, 아이의 마음이 차츰 불안에서 안정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달라졌다. 3사분면에서 4사분면으로 넘어오는게 느껴졌다. 그 안에서 충분히 안식한 후에 그녀의 삶은 몰입과 안식을 반복하는 사랑의 선순환을 살 수 있으리라.

하루의 마음: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위에 처음 소개한 에피소드에서 하루의 마음에 빙의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건 하루의 마음은 불안했고, 사랑잔고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 불안함 위에 작은 외부자극이 왔을때 (너구리를 못본것), 하루는 고래고래 짜증을 냈다 (3사분면). 아빠가 차를 세우고 그녀를 가혹하게 꾸짖었을때, 불안은 더욱 가중되어 공포로 이어졌다. 공포가 충분히 커지면 그녀의 행동은 일단 중단될 수 있을지언정 상처가 남고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이상한 형태로 베베꼬여 나타날 수도 있었으리라. 나중에 10대가 되고 자기 나름의 분출을 할 수 있을때 하루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불안을 달랠수 있을 것이고 (친구들로 부터 인정받기, 자신의 짜증을 받아주는 남자/상대 만나기, 핸드폰-소셜미디어로 달래기), 이런것들이 가중되고 굳어졌을 때, 그녀의 삶은 2, 3 사분면 (불안의 악순환) 에 머물게 될수 있으리라.

엄마가 하루를 앉고 하루가 왜 힘들어 하는지, 무엇이 어긋났는지 하루에게 차분히 설명한 후에, 하루를 꼭 안아주며 잘 할 수 있다고 했을때 하루는 안정을 찾았다. 그녀의 사랑잔고가 채워졌고 비로소 안식할 수 있었다. 그 안식이 반복되었을 때, 하루는 진정 하루답게 꿈꾸고 즐기고 소망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으로 한발자국 더 내딛을수 있다. 사랑안에서 안식하고 사랑으로 꿈꾸며 아이처럼 일하는 1, 4사분면의 삶 (사랑의 선순환) 을 살 수 있게 되리라.

하율이의 마음: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왼쪽에서 두번째가 우리 둘째 하율이 (맨 왼쪽이 막내 하임, 세번째는 조카 Jackson, 오른쪽이 첫째 하루)

막내가 태어나고 부터 하율이는 위 사진처럼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상호작용으로 (동생이나 누나를 때리는 등) 라도 스스로의 존재를 드려내려는 듯 말썽이 점점 심해졌다. 유치원에 가면 영어를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앉아 있지 않고 계속 말안듣고 말썽 피우는 아이로 선생님과 엄마아빠를 걱정시켰다. 말도안되는 장난을 치거나 주위사람들과도 트러블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하율이의 마음에 쉼이 없고 무언가 불안에 하고 있는게 보였다.

하율이는 날 보고 할말이 없으면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프린트 해줘”. 그리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프린트 해주면 그걸 열심히 색칠해서 자랑한다. 하율이가 색칠을 잘한다고 계속 칭찬해 주니 그것이 듣고 싶은 모양이다. 네살밖이 둘째가 이렇게나마 안정을 찾으려 하는 모습이 안쓰러울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집중적으로 하율이를 케어해보기 시작했다. 난 나대로 최대한 하율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이나 잘못에 화내지 않고 최대한 놀아주고 하율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려 했다. 아내는 스티커 시스템을 도입해서 잘못했을때 감정적으로 하율이를 꾸짖지 않으면서도 하율이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그 결과를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잘못하면 스티커 떼고 잘하면 스티커 받아서 하율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살 수 있도록 하는것). 잘 표현하지 않는 하율이 마음을 꺼내서 어루만져 주고자 자기전에 하율이 앉고 이런저런 물음으로 그 마음을 꺼내서 앉아주고 보듬어주려 노력했다. 우린 하율이가 더 승리하는 경험을 쌓을수 있도록 하율이가 무엇을 할때 잘하고 또 즐기는지 계속 관찰하고 시도해보고 있다. (하율이가 몸쓰는걸 좋아해서 닌자클래스를 신청했고 만들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사서 같이 해볼 생각이다). 하율이의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질때면 이상한 행동도 줄어들고 그 웃음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게 보였다.

하율이는 여전히 불안과 안정 사이를 오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하율이가 안정을 찾고 자존감이 높아질까. 하율이가 1, 4분면 (사랑의 선순환) 에서 피어나길 바라는게 부족한 엄마 아빠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 불안과 안정사이에서

최근에 여러가지 마음에 안드는 일들 – 내게 두려움을 주고 불안을 키우는 일들이 있었다. 여기에 솔직하게 나열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두려움의 악순환들

  • 8월말에 2년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가서 너무나 행복하고 좋은 일이 많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커리어 성공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커리어 적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잘 할 수 있는지 두려움이 들어왔다.
  • 회사에서 반기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최고의 평점이 나온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 평점은 기대 밑이었다. 두려움이 들어왔고 불안이 가중됐다.
  • 애들 셋은 늘 우리삶을 들었다 놨다 했고, 아내와 충분한 교감하는건 잘 되지 않았다. 아내는 나와 너무 다르다 – 난 모험을 추구하고 영감과 열정으로 사는 사람이다. 아내는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그대로의 삶을 즐기며 충실한 사람이다. 그녀의 삶은 이미 아이들과 교회 일 등으로 꽉 차 있었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그녀에겐 쉼이 필요했다. 난 영감을 주는 대화와 시간들,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고 싶었고 그러기 어려운 현실에 숨막혀 했다. 뭔가 핀트가 자꾸 맞지 않았고 아내가 나를 거절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이 들어왔고 불안이 가중됐다.
  • 난 점차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바쁜 하루가 끝나고 나면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게임/넷플릭스/인스타/유투브로 빈공간을 채웠다 (불안해소). 다음날 애들 울음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일하다 와서 애들보고 애들 재우고 다시 핸드폰 보는 일상이 반복됐다. 내 영혼은 점점더 시들어 갔고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은 커졌지만 난 탈출구를 알지 못했다.
  • 이렇게 지쳐가고 시들어가는 삶은 나의 가장 큰 두려움 – 그저그런 평범한 삶 (mediocre life)으로 끝나버릴 것이라는것 – 을 부추기고 키웠다. 그 두려움은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와 다양한 판타지로 이어졌고, 나의 일상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고, 마음은 점점더 평안을 잃었다.

반면 나에게 다시 사랑을 주고 안정을 준 시간과 순간들도 있었다. 사랑의 선순환들

  • 스스로에게 뿌듯한 경험: 회사에서 어렵게 준비한 제품을 런칭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미팅을 조직했다. 스스로에게 뿌듯했고 사람들이 성장하는걸 돕는게 즐겁고 재밌었다.
  • 아내의 사랑: 아내와 솔직하게 힘든 것들에 대해 대화했다. 여러번 대화를 시도했고 늘 잘 되진 않았지만 아내는 최대한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려 줬다. 그리고 같이 데이트도 하고 나만의 시간도 가지게 해주며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주려 했다. 마음이 안정을 찾고 안식했다.
  • 책과 사람에게서 받는 영감: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영감을 받았다. 특히 최근 읽은 이런책들은 나를 다시금 꿈꾸게 해줬다. 내 영혼에 다시금 진리의 언어들로 채우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과 욕구들이 설명되고 어루만져졌다.
  • 주위사람에 대한 관심: 교회에서 만난 동생 하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매주 한번씩 zoom call로 일과 믿음 (Faith and Work)를 나누기로 했다. 박사과정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수년간 좌절과 불안을 오가던 이 친구의 마음이 새로운 생각의 변화로 평안해 지는것을 같이 경험했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다.
  •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사실 가장 마음의 빈 공간을 온전히 메꿀 수 있는 것은, 예배/기도/찬양 중에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는데 얼마전 예배에서 막혔던 기도가 뚫리고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그 위로와 어루만짐에서 많이 울고 마음이 많이 녹아내렸다.
  • 이런것들이 이어지자 내 마음은 다시금 안정을 찾고 내면의 동기들에 귀기울이게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진정 재미와 기쁨, 충만을 주는 것들을 시도하고 소망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도 불안과 안정 사이를 오가고 있다.

숨어있는 두려움을 끄집어내 어루만지기

홍석천을 상담한 금쪽 상담소 에피소드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난 두려움 없다고. 그리고 난 사랑타령할 여유 없고, 내게 중요한건 사랑이 아니라 돈, 성공, 더 나은 커리어, 풍족한 삶이라도.

하지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단지 성인이 된 후 그것들이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고통과 아픔 많은 삶을 살면서 받은 다양한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어도 일정부분은 2, 3사분면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인가? (What is our greatest nightmare)?

내가 가장 두려운 인생최악의 시나리오 – 그걸 곰곰히 생각해보고 되살펴 볼때 우리의 근원적인 불안에 귀기울일 수 있게된다

위 에피소드를 보면서 또 많이 울었다. 홍석천은 2000년에 커밍아웃 한 이후 20여년간 수없이 많은 사람을 상담해주며 살고 있었는데, 그 상담이 자기를 너무 많이 힘들게 한다며 고민을 상담했다. 오박사는 홍석천의 행동 너머에 있는 욕구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구출해줌으로써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싶어함)를 끄집어 냈고, 그 욕구 밑에 있는 두려움 (어렸을때부터 접한 기독교 교리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고 신 앞에서 죄인으로 낚인 찍힐것을 두려워함) 마저도 끄집어 내서 만져줬다. 그 두려움이 따뜻한 위로와 공감, 사랑으로 어루만져 졌을때 홍석천의 마음이, 그의 영혼이 비로소 안정과 안식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 이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던 토니안의 스토리

토니안의 스토리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부재 (주로 술을 드시며 곁에 없었던 아버지)는 어린 토니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마음의 결핍을 다른 것들로 채웠지만 (HOT에서의 인기, 그 후 돈 등) 그는 오히려 더 큰 우울과 허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도 아버지처럼 가정에 실패할 것이고 아이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두려움을 앉고 살고 있다. 그의 두려움 (버림받는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주는것)은, 그 안의 어른아이가 사랑으로 채워질때 (오박사는 토니의 두려움을 꺼내서 괜찮다고, 당연한 거였다고, 더 잘할수 있다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어루만져 줬다) 비로소 사라지고 안정을 찾았다. 토니가 자유를 찾아가는게 보였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채워진 사회를 소망한다

Why young South Koreans are posing in their underwear

몇주전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기사를 냈다. “왜 젊은 한국인들은 속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가”. 한국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바디프로필 에 대한 기사였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외적인 자극과 인정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기자는 조목조목 짚으며 설명했다.

사회에 사랑은 보이지 않고 두려움이 넘치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움 (외로움 등), 남들처럼 멀쩡히 못살까봐 두려움, … 방송/언론도 이걸 자극하고, 비지니스/광고도 이걸 자극하고, 부모도 이걸 자극하고, 소셜미디어도 이걸 자극한다.

이 두려움과 불안이 엄청난 동기가 되어, 최고의 K pop과 드라마들을 나을지언정 마음이 평안할 수 없다. 상처입고 불안한 마음은 안식없이 떠돌다가 쉽게 분노하고 쉽게 지루해지고 쉽게 우울해 진다. 두려움이 낳은 불신들에서 서로 상처받고 서로 공격한다. 공격의 화살이 남에게 향할때 사회에 더 큰 불신과 혐오를 남길수도 있고, 나에게 향할때 우울과 자기비하에 신음한다.

금쪽같은 내새끼는 육아의 세계에서 어떻게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지 가르쳐 주고 초대했다. 우리 삶의 수많은 영역에서 – 직장세계, 부부관계, 비지니스, 정치, 미디어 등등에 이런 문화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고 채우고 소비하려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유하여 끊임없이 몰두하고 창조하는 삶을 우리모두가 살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치며: 우리힘으로 서로의 사랑탱크를 다 채우는건 불가능하다. 우리에겐 더 큰 사랑의 공급원이 필요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나의 사랑은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는걸 또 알고 체험한다

아이들의 마음이 불안해 보여서 아내가 아이를 재워주려 들어갔다. 조금 후에 들어가보니 아내도 자고 있었다. 나도 아내와의 시간을 원했지만 아내의 몸은 하나이고 아이들 마음의 빈 공간을 메우기에도 부족해보였다. 마음이 허했다.

하루도, 하율이도, 부모의 사랑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리라. 아내도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때가 많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유한한 사랑잔고로는 서로의 니즈를 채우기에 부족할때가 많다.

우리의 사랑은 유한할 뿐 아니라 불완전하다. 또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상처주기도 하고, 상대방을 더 무언가에 의지하게 만들어서 구속하기도 한다.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구속하고 부부는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를 구속한다. 하율이가 동생을 때렸을때 하율이 행동을 고쳐줘야 한다는 생각에 따끔하게 혼냈다. 하율이를 사랑하지만 그 순간엔 내 화가 들어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이가 더 불안해 하는걸 느낄수 있었다. 아빠의 사랑을 더 확인하려 들었다. 그럴수록 더 이상행동을 했고 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각자의 사랑잔고는 유한하고 불완전한데, 우리의 사랑니즈는 지속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갈구한다. 아이를 키워보면 확실히 느낀다. 마치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하듯 우리 마음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으로 자란다. 하지만 서로의 니즈는 다르고 우리의 사랑을 불완전하기에 우린 곧잘 상대를 실망시킨다. 이런일이 반복될때 우린 마음을 닫고 사랑을 받는것도 주는것도 중단한다. 점차 우리의 문화는 – 그게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든 – 불안, 불신, 채움, 소유, 소비의 문화가 되어간다. 저마다의 사랑으로 서로 케어도 해보려 하고 스스로도 케어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으로 느껴질때가 많고 우울과 불안, 냉소, 지루함이 그 빈공간을 채워간다.

그래서 우리에겐 지속적이고 온전한 사랑의 공급원이 필요하다. 그 사랑이 나와 우리모두에게 임하기를 소망한다.

(사실 이번글에서 다루지 못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번글은 세상에 문제가 많을 지언정 세상은 본질적으로 두려워하며 살아야할 곳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만약에 세상 자체가 두려워할 곳이라면? 사랑 같은건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가변적인 허상이고, 사회는 유한한 자원을 승자가 가져가는 약육강식이라면? 그렇다면 자유는 사치이고, 두려움에 의한 동기부여가 오히려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미덕 (virtue) 이리라. 이에 대해서 언제 또 써볼수 있기를)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6 comments

  1. 정성헌

    잘 읽었습니다~!
    요즘 저의 무덤덤함 뒤에는 사실 여러가지 두려움들이 있고,
    저의 무의식들이 이를 그냥 억누르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글 읽고 잘 정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변이 너무 늦었죠? 정리가 되셨다니 큰 기쁨입니다. 제가 글 쓰면서 소망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 누군가에게 조금더 clarity를 주고 스스로와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울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이런. 응원해요 =)

  2. sin gu ha

    안녕하세요~! 백산님! 1년만에 블로그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블로그 글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한국은 오늘 12월 겨울 동지에 들어서서 매우~ 춥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일본의 한 대학의 교수님이 쓴 사랑에 관한 책을 봤는데 미움과 사랑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거라고 하더라구요. 정 반대말은 ‘무관심’ 이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아직 결혼도 안해봐서 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실증 또는 힘든과정에 대해 모르겠지만 이번 글 읽고 좀 간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것같아 도움이 됩니다.
    늘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남은 2021년 마무리 잘 하시구 메리크리스마스~

    • 오 이렇게 또 따뜻한 글 남겨 주시니 감사드려요. 네 그럴수 있을것 같아요 정말 무관심이 무서운것 같습니다. 좋은 인사이트 늘 감사드려요. Merry Christmas!!

  3. TB

    제가 10년전 대학교때 백산님의 블로그를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스탠포드 MBA 준비하시던 시절) 너무 오랜만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되었네요. 저도 지난 시간들 동안 대학졸업, 취업, 커리어 쌓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2022년 새해 다짐을 하고 기도를 하는 와중에 이렇게 백산님의 블로그에서 그 동안 쓰셨던 많은 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같은 크리스쳔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너무나 큰 귀감이 되어 주시는 것 같네요. 믿음의 여정 속에서 솔직하게 나눠주신 수많은 고뇌들 너무나 공감하고 이렇게 정리해서 글로 공유해주시니 독자들의 신앙생활에도 너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젠 너무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계신 모습을 보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제겐 너무 멋진 인생의 선배이자 롤모델이 되어주시네요 (저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한살짜리 아이를 두고 있어요 ㅎㅎ). 생각날때마다 백산님과 가족분들을 위해 기도할게요. 그리고 아직 못다읽은 수많은 블로그 포스트들 읽을 생각에 너무 기대가 됩니다. 2022년은 믿음의 줄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보람차고 의미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길 바랄게요!

  4. 오 안녕하세요 너무 반가운 메세지네요 제게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언제든 san.baek@gmail.com으로 이메일 한번 주시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말씀 나눠보고 싶네요. 한살짜리 아이라 – 정신 없는 시기시겠네요 응원해요 메세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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