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저물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몇권의 책과 좋은 영상들로 나의 영 (spirit)을 채우고 또 그 여정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느끼고 생각하는것들을 글로써 풀어내보고 싶다.
이번글은 내가 느끼는 두가지 큰 영적 흐름에 대한 글이다. Monk (수도사)로 대표되는 하나의 영적 흐름과 Xealots (Christ follower를 지칭하기 위해 Dave Gibbons가 가져온 용어) 로 대표되는 다른 하나의 영적 흐름에 대하여 나의 생각들을 풀어내보고자 한다.
크게 세 부류의 독자를 생각하며 썼다. 1 – 영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 2 – 수도자로 대표되는 “나를 찾는” 영적 프랙티스를 실천하거나 관심가지는 사람 3 – 크리스천으로 대표되는 유일신을 믿고 기성종교를 가진 사람.
들어가며: 오늘날 서구사회의 영적 빈곤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한 지금 세대, 특히나 서구 사회를 보면 물질적 풍요와는 정 반대로 영적 고갈을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외로운 세대”.

위는 내가 좋아하는 트리니피 포럼 팟캐스트이다. 미 상원의원 Ben Sasse와 러셀 무어 박사는 현재 미국인의 상태를 “외로움”으로 진단하며 그 원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제시한다. 무릎치고 공감한 내용이다.
- 디지털 혁명이 우리를 고립시킨다
- 지금의 디지털 혁명은 그전의 기술 발전과 그 파급력, 영향력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나 정보습득에 있어서 알고리즘 기반의 머신러닝이 우리에게 본인이 선택한 정보만을 계속 줌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고립시키고 좁힌다.
- “우리” 란 정체성을 상실했다
- 가족시스템이 붕괴했고, 의미있는 친구의 숫자도 20년전에 비해 반 이하로 줄었다. 행복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가 행복은 공동체속에서의 “우리”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다고 밝히는 반면, 이 시대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있을뿐 삶과 감정을 교류하는 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란 정체성을 잃고 뿌리를 잃고 방황한다.
하버드 교수이자 행복연구 학자인 아더 브룩스 박사가 아틀란틱 지와 같이 만든 How to build a happy life 시리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아래 목차만 소개한다 (관심있는 분께는 강추 – 내용이 너무 좋다).
- 어떻게 스스로를 더 잘 알것인가 (how to be self-aware)
- 어떻게 우리가 외롭다는 것을 알것인가 (how to know you’re lonely)
- 어떻게 스스로에게 가장 나쁜 적이 되지 않을 것인가 (how not to be your own worst enemy)
- 어떻게 우리는 아는게 없다는 것을 자각할 것인가 (how to kow that you know nothing)
- 어떻게 의미있는 일을 찾는 비밀을 발견할 것인가 (how to find the secret to meaningful work)
- 어떻게 고통에 대처할 것인가 (how to live when you’re in pain)
- 어떻게 우리가 무엇을 진정 즐기는지 발견할 것인가 (how to identify what you enjoy)
이 연구가 밝힌 것, 말하고자 하는것을 한마디로 하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우린 스스로를 모르고, 스스로를 해치고, 외롭고, 행복하지 않다…
한가지만 더 소개한다. Vulnerability (한국어로 맞는 단어가 없다. 풀어 설명하자면 “마음을 여는것”) 의 파워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그래 과거 그 어느 인류보다더 더 풍족하게 살지만 더 마음을 닫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 마음을 여는것은 세가지 C로 설명된다. 용기 (Courage), 공감 (Compassion), 관계 (Connection)
- 마음을 여는것 (Vulnerability)는 무섭지만, 그것 없이는 참 행복도, 기쁨도 없다.
- 마음을 닫고 우리가 하는것은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마비 (numb)시키고, 모든걸 확실하게 만들려 하거나 재단하고 (certainty), 나와 주위에 완벽을 요구한다 (perfection)
- 마음을 여는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이시대의 두려움을 한마디로 하자면 이렇다 – “난 충분히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영적 움직임 – 수도자: 세상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나를 찾자
시대가 이렇다 보니, 특히나 선진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고민하는 사회계층일수록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것이 느껴진다. 종교나 규범이 “정체성”과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시대가 아니라, 개인주의/유물론에 기초한 시대이다 보니, 특히나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에 하위 욕구 (생리, 안전) 가 충족된 사람들일수록 상위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그리고 초월의 욕구 (실제 매슬로의 욕구 5단계는 6단계이며 자아실현 위에 초월 (transendence)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의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다.
Eat, Pray, Love란 베스트셀러 작가 엘리자베쓰 길버트는 위 테드 톡에서 바로 이 시대 개인주의가 얼마나 얕은지를 꼭집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린 인류역사상 최초로 번뜩이는 창조성 (creative genuiness)이 한개인 안에 있다고 믿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번도 우린 모든걸 개인에게 걸지 않았죠. 실제로 우주에, 우리 밖에, 어떤 영적인 세계와 에너지 같은게 있을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의 인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죠. 우리만 그렇게 생각 안하는거에요.
그녀가 이야기하고 그녀가 대표 (represent)하는 영적인 흐름을 내 나름대로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외적인 것 (extrinsic)에 대한 집착으로 부터 나를 정화하고 세상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연결되어 나를 찾자.
수도자의 삶
아래 최근 (또 그 전에) 읽은 이런 영적인 탐구와 여정 (quest)을 다룬 책들을 소개해본다.
- Jay Shetty –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think like a monk): (영국 출신 인도인, 승려와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서구사회의 영적 빈곤에 매우 적합한 메세지와 솔루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임애린 (Aerin lim) – 아임인 (I’m in): (아이비리그 – 뉴욕투자은행 – 실리콘밸리 테크를 거쳐 라이프 코치로 거듭나기까지 한 여성의 영적 성장과 여정을 다룬 자서전적인 책. 그 고백과 성찰이 아름답다)
- 윌 스미스 (Will Smith) – Will: (윌스미스의 자서전. 어렸을때 가정학대에서부터, 어떻게 우연히 랩을 접하고 래퍼로서 성공했는지, 어떻게 최고의 영화배우가 됐지만 영적 빈곤에 시달렸는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랄만큼 영적이고 재밌고 감동적이다. 올해 읽은 최고의 책 – Audible로 들을 것을 추천한다)
- 김수영 –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가난과 가정불화 왕따를 경험한 한 여성이 도전 골든벨에 출연해 골든벨을 울리고 인생이 바뀜. 후에 골드만삭스 입사했지만 암 수술후 죽기전에 이루고 싶은 꿈 목록을 쓰고 한국을 떠나서 72개의 꿈을 이룬 이야기. 한참 전에 읽었지만 여전히 감동의 여운이 남고, 그 삶과 영적 여정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 궁금해진다)

위는 제이 쉐티의 웹사이트에서 캡쳐해온 그의 팟캐스트 (On purpose) 주요 출연진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리리 부터 윌 스미스의 아내 제라 스미스, 코비 브라이언트, 프린시플 (principle)의 저자 레이 달리오, 엘리샤 키스 할 것 없이 정말 쟁쟁하고 이야기하는 주제도 하나같다 – 어떻게 하면 나를 찾을 것인가. 참고로 제이 셰티는 토니 로빈스를 능가하는 이 시대의 영적 구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점쳐본다. 그의 시그시쳐 프로그램 중 하나의 이름은 “천재 (Genuis)” 이다. 질문을 통해서 참여를 유도하고, 무료 트라이얼을 제공하고 하는게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저리가라 수준이다.
혁신과 이고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도 이런 영적 흐름이 다양한 버전으로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많은 테크 리더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잭 도시 등도 테크 금욕 (Tech Fast), 간헐적 단식 또는 금식 (Fast)등을 실천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적 흐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난 그 실마리를 레이 달리오가 제이 쉐티의 책에 남긴 추천사에서 찾는다. 그는 제이의 책이 “탁월한 방식으로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실용주의를 결합했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이 영적 흐름은 고대의 지혜 (힌두교, 불교 등)와 현대의 개인주의/실용주의를 융합한다. 그것이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현대판 수도자의 모습이다.
나를 찾는 과정 – 비우고 변화하여 자유롭게 살기
이 영적인 과정을 매우 단순화 하자면 크게 세가지 단계로 나눌수 있으리라. 첫째는 비우기, 둘째는 변화하기, 셋째는 자유롭게 사랑하고 섬기고 즐기며 살기 이다. 위에 소개한 제이 쉐티의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think like a monk) 목차가 딱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아래 목차만 소개한다.
- 1부 내려놓기: Let go of external things that are holding you.
- 정체성: Identity – I am who I think I am
- 부정적 생각: Negative thoughts – protect myself from it
- 두려움: Fear – Reign Fear by achknowleging it
- 의도: Fear, Desire, Responsibility, Love – need to move from fear/desire to love/responsibility
- 2부 내면으로부터의 변화: Change – from within
- 목적 – find your calling (다르마), the intersection of your innate gift + passion
- 일상 – Routine – regain your time/energy
- 마음 – use intellect to take control on feelings, regain self-compassion
- 자존심 – Pride – let go of pride and grow self-esteem
- 3부 밖으로 뻗어나가기: Go outside – share and love
- 감사
- 관계 – how to regain relationship through proper trust and love
- 섬김 – serving others heal us.
임애린 (Aerin lim) – 아임인 (I’m in)의 목차도 비슷한 순서를 따른다.
- 남들이 원하는 삶: Life others wanted – chasing success
- 나와 멀어진 삶: Life distanced from myself – suffering
- 나를 되찾는 삶: Life regaining myself – cacooning
- 자유를 찾은 삶: Life of freedom – to serve and savor
할리우드의 성공방정식 스토리텔링도 비슷한 플랏을 따른다고 알고 있다. 주인공은 매우 어려운 역경을 만난다. 그 역경을 가까스로 극복하고 결국 주위와 세상을 섬기고 사랑하고 밖으로 뻗어나가는 삶을 산다. 그래서 임애린 작가는 본인의 마지막 장에서 이 여정을 “영웅의 여정 (Hero’s journey)”로 소개한다. 우리의 영적 성장의 증명된 길 (proven path)가 아닐까.
수도자에게 던지는 크리스천의 화두: What “Monk” can learn from “Xealots”
이런 영적 성숙의 과정을 거친 많은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고 믿어. 난 특정 종교에 관심있기 보다는 영적인 흐름과 성숙에 관심있어. 나의 영적 세계는 특정 기성종교 하나에 국한할 수 없어.
오픈 마인드 (Open minded)를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로 생각하며 영적 탐구의 과정을 거쳐왔던 (그리고 초월적명상부터 다양한것을 실천해본) 나로서도 충분히 공감과 이해가 가는 견해다. 나또한 이런 생각을 가졌기에. 그리고 워낙에 영적 성숙을 겪어 왔기에, 구태의연해보일 수 있는 기성 신앙의 모습에 충분히 별로 끌리지 않을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가지 이유를 들어, 크리스천이 던지는 화두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비슷한 영적탐구를 거쳐 크리스천이 되거나 크리스천으로 돌아온 사람도 많이 있다. 윌 스미스가 그렇고, Power of vulnerability 의 주인공 브렌트 박사가 그렇다.
- 우리가 경험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기성종교의 모습은 그 본질이라기 보다는 형식이나 문화일 가능성이 있다.
- 종교가 갖는 인간소외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그리고 여전히 세상엔 수많은 아름다운 일들이 신앙인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관심이 있다는 전제하에, 크리스천으로서 두개의 화두를 던진다.
첫째, 문제의식은 비슷하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관점 차이이다.

최근 복음주의의 거장 팀 켈러 목사님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포스팅이다. 그는 비슷한 견해를 여러 토론장이나 그의 대표작 하나님을 말하다 (The Reason For God)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골자는 이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불교/힌두교를 포함하여, 인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만 특정 영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그런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독교 – 크리스천의 삶은 복음 – 좋은 소식으로 이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된다고, 이미 모든게 이뤄졌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제이 셰티는 수도사처럼 살면서 목적을 찾아가는 11가지 방법론을 아주 구체적으로 책에서 나눴다. 거기에는 정말 많은 지혜가 있지만 그것들은 인간이 그것들을 통해 영적인 완성에 도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이 전제를 질문해보자 –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우린 지극히 순수하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성경은 인간의 노력으론 지극히 완벽하고 선하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인간이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자와 질럿의 문제의식 – 세상은 오염되어 있고 우리의 영은 외적인 것에서 진정한 목적과 만족, 평화를 찾을 수 없다 – 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 (기독교적 용어로 “죄”에 대한 인식)이다. 아직도 가야할길의 저자 스캇펙 교수도 40대에 이후 크리스천이 되면서 그 이유를 “죄”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어서 – 라고 한 바 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인간은 신과 분리된 상태 (“죄”에 빠진 상태)에 있어 스스로의 힘으론 신과 다시 하나될 수 없다. 제이 쉐티도 “자존심 – Pride”의 부분에서, 우린 겸손으로 나아가며 Pride를 경계해야 하지만 그건 끝끝내 도달할 수 없는 평생 해야할 일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성경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성육신) 모든 문제를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십자가) 새 생명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복음, 은혜). 영적 탐구 가운데 곱씹어 씨름해볼 만한 내용이 아닐까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내가 죽는 삶 – 그건 철저한 인간소외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대답이다.
영웅의 여정 (Hero’s journey) vs 사라지기 (Fade): 두번째 화두를 가장 잘 설명하는게 이 두 단어가 아닐까 한다: 앞서 소개한 임애린 (Aerin lim) – 아임인 (I’m in) 의 에필로그가 “영웅의 여정” 이란 이름으로 우리 각자를 영웅에 비유한다면, 데이브 기븐스의 책 질럿 (Xealots)의 에필로그는 “사라지기” 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고 홀연히 사라진 세례요한에 빗대어, 우리의 역할은 그분 (예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장을 깔고 사라지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신이 살고 인간이 죽는 삶 – 이건 어찌보면 철저한 인간소외이다. 종교가 신이란 이름 하에 인간을 얼마나 철저히 소외시킬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안다. 아니 지금도 많은 기성 종교의 신앙생활, 문화에서 우린 인간소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라지라고? 이건 철저한 인간소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불안전한 우리가 온전히 사라지고 완벽한 신이 대신 전면에 나설 수 있다면? 완벽하고 선하고 공의로운 신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각자가 사라지기 까지 내면의 이고를 죽일수 있다면? 그건 완전한 대답일 수 있다. 그래서 영적으로 성숙한 크리스천들은 때론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희생으로 자기를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자유롭고 충만하고 스스로를 남보다 낫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크리스천과 교회에 던지는 화두: What Church can learn from “be like a monk” – lack of vulnerability
그럼 크리스천과 교회는 이런 영적 흐름에게서 배울게 없을까? 난 매우 많다고 본다. 교회로 대표되는 기성종교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굳어짐” 이다. 위에 소개한 Power of Vulnerability의 저자 브렌트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음을 여는것 (Vulnerability)을 연구해보면 틀릴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걸 인정하는 Vulnerability의 문화가 없이는 진정한 기쁨, 평화, 관계맺기가 불가능함을 알수 있어요. 하지만 이 사회는 온통 “확실한” 것 투성이죠. 틀릴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해버리지 않을때 Vulnerability는 불가능해요. 기성 종교를 보세요. 우린 미스테리를 확실한 것으로 (Certainty) 바꿔버렸죠.
진리를 이야기하는 종교집단에선 참 쉽지 않은 이야기임을 안다. 하지만 Vulnerability가 없는 조직은, 문화는 건전한 비판과 대화를 차단함으로써 건강한 자정기능을 잃고 속으로 썪어들어 가게 마련이다. 편가르기와 획일적인 사고방식만이 재생산되고, 심지어는 그 집단의 리더조차 “질문”을 던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정당정치도 마찬가지고 교회/성당도 마찬가지이다. 고인물은 썪게 마련이고 Vulnerability의 유연성이 없는 종교와 집단은 지속될 수 없다.
종교의 영역에서 Vulnerability 잘 설명하는 단어가 지적으로 틀릴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것 “intellectual openness”이다. 그리고 이런 열린문화가 없는 조직은 한마디로 말해 “Turn off – 밥맛” 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교회가 이렇게 자라나는 세대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게 아닌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ps: 비슷한 이유에서 위에 소개한 수도자의 영적탐구 과정 전체를 뉴에이지 또는 적그리스도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TGC의 이 글도 그래서 무슨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브렌트 박사의 책을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성공회교도인것을 감안할 때 그녀가 쓴 표현들은 사실 성령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ps2: 사실 하나의 화두가 더 있는데 그건 아직 나의 영적 탐구가 짧아서 – 후에 좀더 고민해본후에 나눠보고 싶다)
마치며 – to 3 groups of people
이 글은 참 쉽지않은 글이다 – 간단치 않은 주제의 내용들을 긴 설명과 도입없이 다뤘기에. 이하 내가 독자로 생각한 세가지 그룹의 사람들에게 짧은 메세지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로 수도자 (Monk)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룬 반면 질럿 (Xealots)의 삶에 대해선 이 글에선 별로 다루지 않았다. 이것도 언젠가 더 써볼기회가 있으리라).
- 영적세계에 관심없는 사람에게 – 호기심을 가져보자: 위에 소개했듯이 시대는 영적 빈곤의 상태이고, 영적인 성숙 없이는 진정한 행복과 의미, 평화를 찾을 수 없음을 수많은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 Monk에게 – Christ를 상상할 수 있는가: 완전하고 선한 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십자가를 진 사건 –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 Xealots에게 – 미스터리와 Vulnerability를 회복할 수 있는가: 교회가 유연해질 수 있을까. 어떤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어떤 단어를 쓰는 것이, 어떤 삶을 사는 것이 그 vulnerability를 살아내는 삶일까.
매번 화두를 던져주시네요… 새해도 잘 부탁드려요!
ㅎㅎ매번 읽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가 저야말로 새해에 잘 부탁드려요
지난 몇 년간 미국에와서 유학 취업 실업을 겪고, 결혼을 했고 또 크리스쳔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산님의 오래 전 블로그를 읽으면서 공감도 하고, 위로와 동기부여 도 받았습니다.
또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생기는 고민들을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 예수님, 교회에 관한) 탐구를 해가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또 재미난 글을 선물로 주시네요. 윌 스미스 책, Power of vulnerability 읽어볼게요 ^^
제가 크리스쳔이 되면서 받은 감동을, 영적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논리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좌절하고 했는데.. 결론은 저의 vulnerability 보여 제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녹여내고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걸 또 한번 깨달았네요.
감사합니다~ 또 다음 글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 Diane님, 제가 이 글을 쓸때 딱 이런 고민 (다양한 영적 감동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서 출발한건데 그걸 딱 짚어주시니 너무나 감사해요. 이 글은 Diane님께 전달된것 만으로도 충분히 역할 한 것 같습니다. 네 다음에 또 써볼게요 감사해요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따뜻한 커멘트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