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단상들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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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지 참 오래됐다. 애 키우고 일하고 교회생활 하고 뭐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훅훅 간다. 그때 그때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꼭지들이 참 많은데 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것들을 다 모아버렸다. 그래서 꽤 많다 허허.

1. 나의 Value

요새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뭘까, 단어 몇개로 요약하자면 뭐가 될까 이런걸 종종 생각한다. 좋은 value는 너무도 많지만 모든 가치가 다 나의 Core 가치가 될수는 없으니. 일단 vulnerabilityauthenticity, 이 두개에 꽂혀 있다. Vulnerability -> 이건 한국말로 딱 번역되는 단어는 없는것 같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용기 같은게 아닐까. Vulnerability 가 너무 좋아서 이제는 이게없는 사람, 이야기, 환경을 잘 못견뎌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찌보면 다 문제투성이에 상처도 많고 부족함도 많은 존재가 아닐까. 그걸 인정하고 공유하면서 자신의 헛점을 드러내는 사람은 참 온전해 보이고 함께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 다가가기 어렵다. 목사님의 설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 (struggle), 일주일간 묵상하면서 생활하면서 있었던 수많은 진짜 삶 (authenticity)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하나님을 붙들었는지가 훨씬 더 와 닿는다. 나의 삶에는 나의 이야기에는 이 둘이 꼭 살아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용기를 갖고 싶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꾸미지 않는 용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발생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상처를 잘 아우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 삶의 아픔을 공개하는 순간 내 아내, 내 부모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직장동료들이 자칫 피해자나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2. 중국 이야기

아주 짧게 중국 다녀오고 사람들 만나고 이원복교수님 먼나라 이웃나라랑 책 한두권 읽고 든 생각들

  • 지금의 중국은 정말 빠르고 재미있다. 일년 일년이 다르다. 한강의 기적 시기의 발전 속도를 모바일 시대로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랄까. 이렇게 사회변화가 빠르다 보니 빈부격차, 의료문제, 결혼관련 문제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냥 사회가 돌아간다. 희망이 있고 역동성이 있다.
  • 사람을 연결시켜주는게 너무 쉽다. Wechat으로 순식간에 서로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일단 단체방을 만든다. 거기서 이야기하고 팔로업 하는건 본인들 몫이다. 미국처럼 하나하나의 인트로가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다. 재밌다 이 민족.
  • 아직 사회가 많이 투명하지 않다. 그래서 누구를 아느냐가 너무 중요하다. 내가 텐센트 출신 누구를 안다, 알리바바 누구를 안다 이런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누구누구와 알아가면서 발전에 동참하고자 하고 그 불확실성에서 아비트라지 (arbitrage)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물론 어느사회라고 안 그러겠냐만은, 사회가 투명하지 않다보니 게임의 룰이 정확하지 않아서 사기꾼도 많은거 같고 사람들이 집중하는 부분도 실력 양성보다는 사람 알기, 관계 쌓기가 좀더 있는거 같기도 하다. 과거 중국 개화기, 아편전쟁 발생하고 하던 그 시절, 항구도시에서 서양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누가 누가 안다더라, 나도 어떻게하면 그 소사이어티에 들어갈 수 있을까, 뭐 이런 식의 그림인거 같다. 한편의 영화같다.
  • 상해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 많았다. 성숙하고 겸손하고 강단있고. 누가 나를 만날때 그런 느낌을 받을까 돌아보니 부끄러움만 나왔다. 멋있는 사람은 정말 겸손하다. 일단 들어줄 줄 안다. 시간을 내거나 마음을 낼때는 아예 확실히 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참 지혜와 성숙이 필요한거 같다.
  • 그 중에서 한명이 해준 말인데 자기는 한국사람이 중국에 많이 와서 중국 메인스트림에 진입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단다. 한국엔 시장도 작고 일자리도 너무 한정되어 있는데 성장하는 대국에 와서 도전해보는 젊은이가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 한편 중국 지방정부와 은행권의 부실은 얼마전 Economist Special report 에 나올 정도로 아주 심각한 문제인거 같다. 아시아 외환위기도 그렇고,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보면 전쟁이나 국가부도 같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항상 유대인 자본이 움직였다. 그리고 유대인이 가는 곳에 과학, 수학, 금융, 의학 같은 것들이 옮겨가면서 문명의 축이 옮겨져 왔다. 이슬람문명 번성, 포르투갈, 스페인의 시대, 네덜란드의 번성, 영국제국, 그리고 지금 미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유대자본이 투입되면서 유대인이 중국으로 또 많이 오면 지구를 거의 한바퀴 도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거 참 흥미진진한 인류역사다. (완전 비 전문가로서 아주 제한적인 지식으로 소설 써본거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아주세요 =))

3. 먹고사는 이야기

  • 요새 아내와 같이 현실적인 고민들을 좀 하게 됐다. 애기는 자라는데 생활비는 늘 많이 들고, 아기에게 필요한 다양한 환경, 나중에 들어갈 교육비용 이런 것들이 미리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아내가 다시 일을 해야할지, 그렇다고 애기를 다른사람 손에 크게 하기는 싫고, 그런 남들 다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우리는 별로 안해오고 그냥 룰루랄라 살아왔는데 요새들어 좀 하게되는 컨텍스트가 있었다. 내가 좀 충격받았던건 아내가 돈 아낀다고 혼자있을때 샌드위치랑 만두 사먹은걸 매우 미안해 하고 나한테 이야기하는걸 어려워 한다는걸 알면서이다. 어느 남편이 이런 소리에 태연할 수 있겠는가. 누가 들으면 우리가 진짜 궁상맞게 사는거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시간엔 가진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너무도 풍족한 곳에서 좋은 집에서 밥 잘먹고 좋은차 몰면서 인류 상위 0.1% 의 삶을 살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는 정말 쉽지 않다. 저축한 돈이 있는것도 아니고, 생활비에도 늘 걱정이고, 부모님께 용돈한번 제대로 드린적 거의 없고, 미래 대책은 허허…
  •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밖에서 보면 난 먹고살 걱정 안해도 될거 같기도 할텐데. 그래도 막연한 자신감은 있다. 내가 우리가족 밥 못먹게 하겠는가. 너무 좋은것 누리고 살지 않으려 하면 되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만서도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걱정할 상황일수도 있다. 우리부모님 아프면 어떻게 하나. 형 사업이 잘 안되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난 언제쯤 월세걱정안하고 살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이게 버거운데 다른사람들은 얼마나 더 버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 지난번 글에서도 썼고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책에서도 다시 확인하고 공감했지만 월세 걱정을 안하고, 내일 먹을것 걱정 안해도 되는 그런 재정적으로 해결된 안정적인 삶이 맞다고는, 지향할 삶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머릿속으로는. 풍부에 처할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줄도 알았으면 좋겠다. 평생 비지니스 클래스가 안타고 싶어지고 그런걸 안 부러워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월급이 줄고 상황이 안되면 가지고 있는 환경을 과감히 포기하고 더 낮은 생활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때 감사하고 예배드리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 못시켜주고 부모님 호강 못시켜드리면 그건 참 마음 아프겠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론, 머릿속으론 그거 때문에 부를 축적하고 삶의 안정을 이뤄놓은 삶이 꼭 내 삶에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애들을 외국인 학교에 안보내고 현지학교에 보낸 선교사님, 교단의 교리가 변절되었다고 판단하고 자녀 대학교 학비지원과 연금을 다 포기하고 나온 목사님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우리 가족은 참 안됐다…허허.
  • 내가 뭐라고 한들 배부른 소리고 걱정일 수 있다는거 안다. 난 좋은 학교와 좋은 주위 사람들, 수많은 배경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 걱정하면 우리 형은 코웃음 칠거다. 니가 뭘 아냐고. 내가 취직안된다고 힘들어 했을때도 그냥 니가 워낙 눈이 높아 그런거 아니냐고. 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머릿 속으론, 이왕이면 어려움겪고 혹시 누릴 수 있어도 덜 누리고 살면서 먹고사는 문제에 늘 씨름하는 사람들과 같이 눈높이를 맞추고 같이 힘겨워 하면서 (struggle) 공감하면서 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주 썩 잘못살고 있는거 같지는 않다.
  • 인류 역사를 볼 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의 비율은 정말 극소수가 아닐까. 평생 노동을 해야 먹고사는 게 원래 모든 동물부터 인간도 그렇게 창조된게 아닐까. 이게 오히려 정상이다.
  • 한편으로는 형한테 “형, 남자는 원래 평생 밭갈아야 겨우 먹고사는거고 우리 지금 인류에서 매우 상위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는데 너무 사회적 압박이 심한거 아니야? 이거 뭔가 잘못됐어.” 그러니 형이 “니 말이 맞아. 그래도 남자는, 수컷은 늘 가정을/아내를 안심시켜야 하는 숙명도 있어. 가진게 쥐뿔도 없어도 집에가서는, 내 여자한테는 항상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다 먹여살리고 공급하겠다고 말하고 안심시켜 주고 안아주고 그런거 해야하는거야.” 라고 하더라. 형 인정.
  • 우리 부모님 사회는 진짜 끼니 걱정을 늘 했고, 자식들 학교도 잘 못보내면서도 그래도 지금처럼 사회가 골병들지는 않았던거 같다. 어찌보면 문제는 단순히 먹고사는 떡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사람과 비교해서 내 환경이 어떻냐는 것이지. 남들은 다 마룻바닥에 다 좋은 프리스쿨가서 애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영어/중국어, 창의성교육, 코딩 배우는데 왜 우리애는 못하냐는 것이지. 한국사람이 갖고 있는 남과 비교하는 속성, 인생의 먹고사는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고 싶은 안정을 추구하는 욕구, 이런 것들이 더 문제를 악화시키는게 아닐까 한다. 정말 인생의 “떡”의 문제를 대학교나 취직 한방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회분위기가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이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고 극성인 부분인것 같다.
  • 개똥철학이 길었다. 떡의 문제가 모든걸 해결해주진 절대 못하지만 당면한 떡의 문제는 너무 실재적이고 또 커서, 인생의 보다 근본적인 가치나 장기적인 안목/기준을 생각하고 살기가 참 버겁다. 돈의 문제는 정말 무섭다. 장기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축복이다.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잘 정리해놓고 기준을 또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4. 핸드폰의 세계와 진짜 세계

  • 세상의 힘은 외모(섹스), 권력, 돈 – 육신/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 으로 결국 귀결되는게 아닐까. 이런 정욕과 자랑의 문제에 핸드폰, 인터넷이 갖는 영향력은 정말 엄청나다. 인터넷에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세지와. 자극적인 미디어와. 누구나 송중기, 설현, 재벌, 힘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 되기를 꿈꾸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피곤하고 지치면 사회 욕도 좀 하고 오락도 좀 보고 그렇게 살아가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거 같다. 말그래도 3S –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Sex, Sports, Screen을 말함 – 가 현대 버전으로 엄청 업그레이드 됐다. 마녀사냥도 아주 재밌는 가십거리 기에 조금만 흠잡을게 있어도 마녀사냥을 한다. 옛날엔 옆집에 순이나 철수 정도와만 비교되면 됐는데 지금은 정말 비교되는 대상이 끝이 없다. 인터넷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에 비해 그 사람을 만나보면 너무나 보통 사람이고 순수한 영혼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아를 불러일으키는 사이버 사회가 참 interesting 하다.
  • 확실히 한국이 좀 심하다. 맨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사회.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앱에 포르노부터 각종 자극적인게 난무한다는게 그리 놀랍지는 않다. 나만해도 청소년때 별의별걸 다 접해봤으니. 그걸 막을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걱정이 안되는게 아니다. 차라리 산속에서 뛰놀게 하면서 키우고 싶기도 할거 같다. 어떤 가치관을 심어주고 어떤 꿈을 꾸도록 할 수 있을지.
  • 자연에서 난 음식을 먹을때와 가공 식품 (processed food)를 먹을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안다. 가공식품은 맛있고 더 자극적이고 먹기도 편하고 좋은게 많지만 결국 자연스럽지 않고 건강에 더 좋을리 없다. 가공식품에 중독되면 자연에서 난 음식을 먹고는 만족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연물 – 진짜 사람들과의 대화, 산/들/바다/풀/동물들, 이런 것들에 비해 인터넷에서 접하는 사진들, 대화들, 이야기들은 확실히 훨씬 자극적이다. 어쩜 난 가공식품만 계속 먹고 있는건 아닐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것들에 비해 인간이 가공한 것이 더 우수할 수 있을까.
  • 확실히 핸드폰과 인터넷은 하나의 툴이고 양날의 검이다. (Double edge sword). 과거엔 정말 접하기 어려웠던 성경과 명 설교와 수많은 선현들의 고전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한편 과거엔 접하기 어려웠던 포르노도 내 손가락 클릭 몇번이면 있다. 그 작은 스크린에 너무 많은게 있다. 어떨때는 그게 참 원망스럽다.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 한다. 남들 뭐라고 할것 전혀 없다. 나부터. 자꾸 인스타그램에서 photos, videos you may like 에서 자극적인 사진/영상이나 보고 있는게 너무 좌절스럽고 한심해서 지워버렸다. 남는 시간이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갈 바에는 잠깐 밖을 보고 먼산을 응시하며 멍때리는게 더 나한테 좋지 않을까. 난 멀티태스크의 화신이라고 감히 자만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킹은 없는것 같다. 뇌는 한번에 하나만 집중할 수 있는것 같다. 긴 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집중하면서 많이 웃고 많이 생각하는 연습을 해봐야 겠다.
  • 온갖 거룩한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최근 꽤나 자주 인스타그램의 Photos/videos you may like section 에서 자극적인 사진들, 영상들을 보고 있었던 스스로의 작음을 고백한다. 보면서 느꼈던 복잡한 심정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1) 어린 한국 여자애들 중에는 정말 똑같은 표정과 화장으로 셀카만 찍고 그런사진만 upload하는 친구들도 있던데 얼마나 예쁘건 간에 결코 정신적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다양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리고 그런 친구들 얼글 중에는 참 부자연스러운 경우도 많다. 2) 내가 1번 같은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는건 내가 그런 사진 중 일부를 가끔은 보는 독자였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한표를 행사하는게 엄청난 의미가 있는것처럼 세상에 있는 수많은 부조리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그것의 소비자(consumer)가 안되는 것이 가장 먼저 있어야할 일이리라. 간디한테 한 여성이 우리 애한테 설탕좀 그만 먹으라는 충고를 해달라고 데리고 오자 간디는 일주일 있다가 오라고 한다. 일주일 후에 간디가 그 아이에게 “설탕은 몸에 해롭단다. 적당히 먹는게 좋아.” 정도의 아주 일반적인 충고를 해주자 엄마가 왜 지난주에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묻는다. 간디의 대답은 간단하다. “지난주엔 저도 설탕을 먹었거든요.”. 3) 가끔은 어떤 사진이나 영상은 과연 내가 이걸 평생 거부하는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냥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건 어떨까 (아주 가끔 완전 포르노가 아닌 소프트한 것만 본다든지), 그냥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때도 있다. 자꾸 넘어지니까 좌절감이 몰려온다. 4) 그래도 다시 소망을 품어본다. 전에는 남의 물건 보면 탐나는 마음이 생겼던 내가 이제는 안그러고, 이제는 시식대의 유혹이 아무렇지 않고 음식폭식증상도 사라진 것처럼 어느순간 이 또한 극복되지 않을까. 성숙과 연단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5) 이런 얘기하면 어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어느한순간 씻은듯이 이런 욕구나 내적갈등(struggle) 이 사라진다고도 얘기하는데 과연 그럴지는 지켜볼 일이다. 6)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상대적으로 안목의 정욕에 더 약한것 같다는 나 나름의 이론 (theory)이 있다. 보고 자란 환경이 워낙 미디어와 외모에 가중치가 높았던 환경이라 자연에서 뛰놀고 성형외과 광고와 조각미인이 덜 있는 데서 자란 친구들이 좀더 무딜수도 있을거 같다. 7) 세상의 욕구 – 술, 성 (sex), 도박, 이런 쪽 산업은 항상 돈이 된다. 모텔쪽을 꽉 잡고 있는 야놀자에 다양한 다른 서비스가 있지만 모텔쪽 수익비중이 꽤 크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같은 것도 사진/짧은 영상이라는 product이 정말 훌륭하기도 하지만 결국 photos you may like 부분에는 요가선생님, 헬스장멋쟁이 남자/여자, 모델들, 노출사진들 이 음식사진이나 애기사진, 풍경사진을 압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욕구와 서비스들은 돈이 된다. 과연 나는 어떤 산업에서 돈을 벌며 살 것 인가. 그런 욕구에 반하는 산업에서 모티브에서 더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만들 수 있을까.

5.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 눈에 보이는 세계, 눈에 보이는 시각적 크기가 다가 아니다. 전 우주의 시각에서, 자연의 시각에서 인간세계를 보면 정말 티끌보다도 작다. 우리집이 남의 집보다 얼마나 크건 작건, 내 차가 남의 차에비해 어떻든, 내가 남들보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돈과 물질과 이 실물 세계의 그 엄청나게 커 보이는 것들이 조금만 비행기 상공에서 보면 너무나 작아보인다.
  • 그러나 상대적으로 아무리 작은 차이가 작아보인다고 해도 이게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핸드폰의 세계는 정말 작지만 정말 크다. 아주 작은 사진이나 영상에 엄청 큰 자극을 받고 정신과 감정이 움직이기도 한다.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나의 몸과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걸어다니는 사람이 다 비슷해 보여도 어떤사람은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움켜쥐고 있는 듯 괴로워하기도 하고, 어떤사람은 아무 생각없이 게임을 하면서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나 평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에 선행을 배풀기도 한다.
  • 그래서 인간세계는 우주에서 보면 정말 정말 너무나 작은 티클깥은 존재이지만,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육과 영을 가진 존재이고, 창조세계에서 가장 중심적인 존재인, 크리스티아니티의 시각이 또한 말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인간의 뇌가 우주에 비해 티끌보다 작다고 한들, 그 뇌 속에는 우주를 담고도 남을 공간이 있다. 신비는 매우 작은데에도 매우 크게 존재한다.
  • 영과 정신의 세계를 시각화 해볼 수 있으면 어떨까. 영의 세계를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난 믿는다. 간디 같은 사람 한명이, 마틴루터킹 같은 사람 한명이 그 사회와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은 정말 엄청나다.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이런분들은 더 말할것도 없다. 아주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정신과 철학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모두는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 말고 영과 정신의 세계에서 정말 많은 것을 안고 간다. 이런걸 만약 시각화 (visualize) 해볼 수 있으면 어떨까. 영의 눈으로는 이런게 시각화 되서 보일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들면 세상적으로는 너무 멋있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사람이 영적으로는 매력 꽝이라든지, 마치 게임에서 다양한 캐릭터에 다양한 능력치가 있는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때로는 훨씬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는것 같다.

6.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그 너머

  • 영화 In a better world, 감상평을 보면 폭력에 대해 아이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나온다. 학교에서 괴롭힘 받던 아이들에 대해 힘으로 응징하는 것과, 사회에서 폭력과 힘으로 업악하는 세력에 대해서 힘으로 대항하는 것, 이런것들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결국 관점의 차이고 스케일의 차이지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똑같다는게 영화의 메세지중 하나이다.
  • 중학교2학년때 생각이 난다. 중1때 강남 새로운 중학교에서 얻어맞어 보기도 하고 힘센 애의 권위에 굴복해 보기도 하면서 끝간데 모르는 나의 자신감도 꺾이고 많이 힘들었었다. 그래서 중2때 새로 알게된 소위 말해 성숙하고 잘나가고 쿨한 친구들 그룹에 끼기 위해 참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했었다. 그래봤자 난 가장 잘생기지도, 키가 크지도, 집이 잘살지도, 옷을 잘입지도 않았지만 공부를 잘 하는데 평범한 모범생 같지 않고 다양한거 하면서 어울린다고 애들이 좋아해 줬던게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정도 어떻게든 껴 볼려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좀 부질없게 느껴져서 관뒀지만 아직도 그때 학교에서 내가 얼마나 약했는지, 내가 얼마나 폭력을 두려워했는지, 내가 얼마나 힘을 갈망했는지 생생히 기억난다. 어떤 기억들은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이다 (화장실에서 한번 맞을뻔 해서 엄청 쫄았던 기억 등).
  •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즉 정신은 어른인데 몸은 중1, 중2라면 어떨까. 아마 그런 것들에, 쿨함에, 폭력에, 권위에 끌려다니지 않을수 있지 않을까. 누가 나를 뭘로 위협하든 내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다면 오히려 그런 애들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을까. 아님 더 좋아하거나. 반에서 나보다 더 약하고 소외받고 있는 애들을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 지금 나는 밖에서보면 어쩌면 상당히 세계의 쿨한 그룹(?)에 끼어있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내면은 절대 그렇지 않다. 내 MBA 동기들 중에는 큰 회사의 CEO도 있고 벌써, 자기들끼리 매 주말 만나고 부부끼리도 잘 지내고, 같이 항상 어울리면서 실리콘밸리의 아이콘들이 되어가고 있는것 처럼 느껴지는 애들도 있다. 이런 애들과 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한국교회, 한국사람들이 나의 자연스러운 인맥과 아이덴티티가 되어 너무 감사하고 좋다가도 아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할애하는 시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할애하는 시간도 있지만, 나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 같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다는 갈망이 항상 충족되지 않은채로 있다.
  • 만약 50년 후의 내가, 또는 내세의 내가 (만약 그런게 있다면)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해줄까. 아마 이렇게 얘기해주지 않을까. “산아, 넌 충분히 지금 너대로 괜찮아. 꼭 저 쿨한 애들 그룹에 끼지 않아도 되. 꼭 세계의 파워를 니 손에 쥐지 않아도 되. 꼭 너랑 쟤들이랑 비교하면서 니가 영향력이 더 부족하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되. 쟤들은 태어날때 부터 어떤 부분은 너보다 훨씬 많이 갖고 태어났어. 너에게 있는걸 돌아보고 너 자리에서 너 할일 열심히 하면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 고민하는 사람들 더 많이 보살펴줘. 그 편이 훨씬 더 너의 삶을 온전하고 충만하게 만들거야.”. 말은 쉽지 매우 어려운 이야기고 맞는 균형점이 있겠지만…. something to think about.
  •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이 podcast 의 1:26분 부터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젊은시절 자신에게 또는 후배세개들에게 주는 조언을 듣기를 추천드린다. 참 재밌다. 쉽게 말해 “떠나라” 이다. 미국에 살고 있다면 떠나라. 넌 니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으로 가라. 너의 세계와 시각이 완전히 뒤집혀 질거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자녀들은 꼭 2년씩 오지로 군대를 가든 선교를 가든 뭘 하든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과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기회가 종종 있으면 좋겠다. 이 세계의 중심 같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열린 시각을 지향하는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고립(?)된 시각을 갖지 않으려면.

7. 우리 대화의 주제들

  •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할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고 쓸데없는 얘기만 (순전히 내 기준에서) 하고 나왔다고 생각이 들면 참 그런걸 잘 못견딘다. 그래서 누구 만날때 미리 이야기할 주제를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 신변잡기 이야기 – 먹고사는 이야기, 직장일들, 가정일들
    • 주위사람 이야기 – 주로 주위의 잘난 사람들 (또는 매우 어려움에 처한 사람 이야기도 가끔)
    • 쓸데없는 이야기 – 스포츠, 연애, 최근에 본 이쁜여자, 과거 이야기 (맨날 했던 군대얘기, 고등학교 때 얘기 등등)
    • 정치이야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남자들이 주로 좋아하는 이야기, 시국평론
    • 책/영화/예능 등 컨텐츠 이야기 – 좋은 컨텐츠 추천
    • 고민상담 –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들.
    • 관계 이야기 – 부부사이에, 직장동료와, 부모자식간에, 우리 관계에서의 이슈와 감사와 의미들을 이야기해보기
    • 하나님 (또는 신앙) 이야기 – 최근 하나님과의 교제, 생활,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것들, 간절히 붙들고 있는 기도제목들
  • 난 마지막 세개나 네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가족들과는, 진짜 친한 사람들과는 어젠다 없이 이야기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생각해볼만한 주제가 아닐까.

8. 요즘 신앙 이야기

  • 요새 신앙생활에 기쁨이 많이 줄어들었다. 조금 지쳤나보다. 실제로 삶의 참 많은 부분이 교회생활이다. 작은 부부 공동체 소그룹 리더를 맞고 있고 찬양팀을 섬기고 최근에 민경이가 인도한 찬양중심의 예배 찬양팀을 같이 준비하기도 했고 얼마전엔 주말내내 아버지학교 봉사를 가고 등등. 주말내내 교회에 있는 적이 꽤 있고 주중에도 저녁에 교회가는 일이 한두번은 있어 왔다.
  • 문제는 교회 활동이 자꾸 ‘일’ 이 되는것처럼 느껴지고, 주님과의 교제가 얇거나 최근에 거의 없다보니 내적으로는 자꾸 고갈되어 간다는 것이었다. 뜨겁게 기도하는 목사님이나 예배중에 은혜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같이 은혜가 되기도 하지만 질투같은 감정도 들고 소외감이나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 진짜 시기, 질투, 교만, 음욕 뭐 가지가지 하고 있다. 전에는 내가 죄인인게 솔직히 잘 안와닿는다고 고백도 하고 기도도 했는데 요새는 가끔은 자괴감에 자포자기 심정이 될때도 있다.
  • 항상 가지고 있었던 아래와 같은 문제의식도 계속 내 머리를 괴롭혔다. 1.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수많은 신앙생활 – 한국 교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통성기도도 해보고 모임해서 나누고 등등 – 하는게 그들만의 리그 처럼 그냥 한국교회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닐까. 2. 그리고 맨날 교회에 있고 기도하고 이래도 난 늘 문제투성이인데, 과연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인가. 왜 내겐 기도의 능력이 없을까. 3.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다 좋은데 막상 탐구하고 공부하고 나누고 실천하고 이런 시간이 너무 부족한게 아닌가. 적절한 균형점은 어디에 있는가.
  • 1. 이 모든것 또한 환경때문이 아닌가 하는건 참 피해가기 어려운 명제이다.
    • 한국에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목사 형을 만났는데 형이 이런얘기를 해줬다. “산아, 청년부에서 섬기면서 난 내가 정말 뜨거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았어. 근데 영국에 유학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을 조용하게 계속 만나야 하고, 교제할 사람도 없고 사역할 사람도 없으니까 너무 어려운거야. 내가 가진 신앙의 모습이 환경에 이다지도 좌우된다는 사실이 나를 많이 힘들게하더라. 신앙은 참 어려운거 같아.”
    • 한편으로는 이런 환경에 매우 감사하기도 하다. 한국에서 백주년 기념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힘들었다. 날도 덥고 주차도 어렵고 사람도 정말 많고 자모실에 가서 우는 애기들과 함께 스크린 보면서 아주 보수적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자니 집중도 안되고 은혜도 안되고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애기와 함께 뜨겁게 찬양하면서 예배드리고 교회 커뮤니티가 나같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자로 하여금 다양하게 섬길 수 있는 기회도 준다는게 다시금 참 감사했다.
    • 최근에 MBA 미국 친구들중에서 크리스천이 여기저기 숨어있다는걸 알게됐고 그들 몇명이 매주 비디오콜로 진행하는 기도모임에 동참하게 됐다. 기도제목과 삶을 나누고 비디오로나마 중간중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잡는 모습이 너무 큰 은혜와 도전이 되더라. 그리고 영어로 기도하고 신앙을 들으니 또 참 새롭고 좋았다. 하나님의 용사는 여기저기 숨이 있구나. 이게 그냥 한국만의 모습은 아니구나.
    •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나의 신앙생활, 지금 한국교회에서 많이 주로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서 객관화 해보고 싶다. 내가 한국인임으로 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들 신앙의 모습들 – 예를들면 한국인이 세상에서 거의 가장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한방”, 좋은대학가기, 고시나 의사나 평생 걱정을 해결해줄 평생직장 가지기 이런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신앙의 모습도 예수믿고 천당가기, 구원가기, 어떤 신앙의 모습이 됐든 언제 믿었든 예수님 믿고 “결과” 로서 천국가기 이거에 목숨거는 것 같다. 인생의 골이 쉽게 잘먹고 잘살고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거고, 신앙의 골도 어떻게 됐든 믿어서 천국가서 평안을 누리는 거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신앙을 대하는 자세에도 나온다. 인생의 골이 결과 지향적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사는지에 대해선 참 관심이 부족하다. 우리의 unique 한 모습이고 알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해야하지 않을까. – 이런 것들을 알고 대처하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싶다.
  • 2. 나의 부족함을 묵상하면 힘이 빠진다.
    • 앞서도 고백했지만 맘에 안드는 나 자신의 모습들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기도를 잘못하는 것인지 기도도 한다고 하는데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것 같아서 더 안타깝다.
  • 3. 난 통성기도도 싫고 그냥 별 의미없는 나눔이나 맹목적인 기도만 하는것도 잘 와닿지 않는다. 공부도 하고 미리 생각해와서 나누고 그러고 싶은데 그런 모임이나 기회는 잘 없다.
    • 일단 기도하는데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집중이 잘 안된다. 그리고 분위기 끌어올려서 찬양과 통성과 함께 기도하는건 좀 진짜 같지가 않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는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난 귀막고 기도할 때 가장 집중이 잘된다.
    • 책을 읽거나 성경을 미리 읽고 공부를 많이 해오고 나눔을 하고 싶다. 그걸 갖고 토론하고 싶다.
  •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했는데 그렇다고 신앙심이 줄어들거나 신앙에 회의감이 오는건 아니다. 오히려 신앙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이런 생각이 복잡하게 계속 드나보다. 최근에 민경이가 많이 기도해오던 분 한분이 크리스천이 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고 얼굴 표정도 완전히 달라졌다. 정말 새 사람이 됐다. 영혼 하나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면 이렇게 변하는구나, 다시한번 느끼고 많은 도전이 됐다. 하나님이 있는 곳에는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고 변화가 있고 진짜배기 삶이 있다는게 느껴진다. 그게 너무 좋다. 계속 그런 곳에서 같이 울고 웃고 싶다. 적절한 균형을 찾아갈 지혜를 구할 뿐이다.
  • 그리고 우직한 신앙인이고 싶다. Ups and down 은 있겠지만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때도 자리 지키고 우직하게 믿고 나가는. 꾸준하고 성실한 것으로라면 지고 싶지 않다. 얼마전에 기도하는게 이런 환상을 봤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영적 전쟁을 하신다면 나를 뭘로 쓰실까. 어떤 역할을 주실까. 나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나. 아주 꾸준히 연마하다 보면 돌격대장 같은거 시켜주시지 않을까. 그러면 너무 좋을것 같다. 너무 큰 영광일거 같다. 주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지만 혹시나 내 신앙생활중에 그런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때가 있다 할지라도 꾸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마지막으로 이럴때일수록 주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personal) 관계를 붙잡고 억지라로도 찬송하고 억지로라도 중보기도하고 예배드리면서 붙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이런생각이 있다. 문봉주 이분은 주님이 내 안에 없으면 금식기도하며 업드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던데 그렇게까지는 못할지언정, 말에는 힘이 있으니 감사하고 찬송하다 보면,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중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교제와 소통이 있지 않을까. 얼마전에 우리 목사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같이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헤어지는데, 특히나 내가 목사님 중보기도 할때 한 일분정도 아무 말도 못하겠고 눈물만 나는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해주신, 아주 오랜만에 내 심장을 그냥 들었다 났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그냥 꺼이꺼이 눈물만 나오도록 나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신 때가 있었다. 목사님이 오죽 기도를 많이하셨으면 나같이 부족한 인간에게까지 기도할 때 그런 역사가 있는지도 신기했고, 그냥 그게 너무 좋았다 너무 그리웠었으니까.

9. 내 영혼의 스승들

끝으로 요즘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책 한권을 소개하고 싶다. 필립얀시의 “내 영혼의 스승들” 이란 책이다.

C.S.Lewis 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작가는 ‘인류 역사에는 사탄의 책략과 유혹을 이기고 그 비밀을 폭로한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사탄이 그것을 알고 시대를 단절시켜서 우리는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라고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다.

오지랖 넓은 작가들. 특히나 보이티우스같은 인간이 이미 그 비밀을 폭로해 버리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마침내 서유럽 전역에 퍼뜨리는 데 성공한 현재의 지적 분위기로 볼 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학자들만 옛날 책을 읽는 데다가, 그런 치들 역시 우리가 워낙 잘 손봐 놓은 탓에 옛날 책에서 지혜를 얻을 가능성이 극 히 희박해졌거든. 이건 우리가 역사적 관점을 주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이다. ‘역사적 관점’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학자가 옛 저자의 진술을 읽을 때 ‘이것이 진실인가’ 라는 한 가지 질문만큼은 끝끝내 던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지. 학자들은 그 저자에게 영향을 준사람은 누구인가,이 진술을 같은 저자의 다른 책과 비교할 때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 이 진술은 저자의 발전 단계나 전반적인 사상사 속에서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가, 후대의 저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얼마나 잦은 오해를 받아 왔는가(특히 자기 동료들 사이에서), 과거 10년 간 전반적인 비평의 흐름은 어떠했는가,  ‘이 문제의 현 단계’는 무엇인가 하는 따위만 물어댄다구. 옛 저자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 여기는 것 ─ 그  저자의 말이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말도 못하게 단순 소박한 태도로 치부당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인류전체를 내내 기만할 수는 없는 일이니만큼, 이런식으로 각 세대를 단절시키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다. 배움이 세대간의 자유로운 교환의 장(場)이 되는 한, 한 세대의 특징적인 오류가 다른 세대의 특징적인 진실에 의해 수정될 위험성이 늘 생기는 법이야. 하지만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와 ‘역사적 관점’덕분에, 고명하신 학자님들이 과거로부터 받는 혜택이라고 해봤자 ‘역사는 순 헛소리’라고 믿는 무식한 정비공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참 많이 와닿았던 말이다. 그래 과거 선현들의 삶을 공부해보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던 차에 필립얀시가 자신의 영혼에 영감을 준 스승들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 자신이 영향받은 부분에 대해서 엮은 책을 읽은건 크나큰 은혜였다. 많이 울고 웃고 손뼉치고 밑줄그으며 본 책이다. 긴 말보다 내게 많이 와 닿았던 구절들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마틴 루터 킹, 흑인 차별에 대항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목사

나도 여러분과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I ain’t like no other man.) 여러분이 시위에 지쳤다면 나 역시 시위에 지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젠 죽이겠다는 위협에 넌더리가 납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순교자가 되는 따위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이일을 계속 잘해나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드는 순간들고 있습니다. 주먹다짐을 당하는 데도 지쳤고 얻어맞는 데도 지쳤고 감옥에 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저도 평화롭게 가족들과 오순도순 오래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지쳤다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느냐 입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제약조건들을 없애버리고 행진해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산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산 위에서 저 너머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한 백성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오늘밤 전 행복합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운동의 토대입니다. “거짓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땅바닥에 짓밟혀도 다시 일어납니다. 그 어떤 어둠이 깔려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둠속에 우뚝서셔서 그분의 백성을 계속 지켜보고 계십니다.

미움과 원한은 두려움이라는 질병을 키유하지 못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두려움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미움은 삶을 마비시키지만 사랑은 삶을 해방시킵니다. 미움은 삶을 헝클어놓지만, 사랑은 조화롭게 만듭니다.

G.K. 체스터튼,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역설들을 잘 사용함으로써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던 20세기 대표적 영국작가

첫째, 세상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신비한 힘에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의미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내부에 존재한다. 세상에는 예술작업처럼 무언가 인격적인 것이 존재한다. 셋째, 이 목적은 본래의 의도아래 있을때 아름답다. 넷째,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적절한 형태는 겸손과 절제의 자세다. 과음을 삼가함으로써 술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선은 하물어진 어떤 고대유적지의 유물오서 어떻게든 잘 보관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선을 잘 쌓아두어야 한다.

폴 브랜드, 제 3세계를 돌며 나병환자 (문둥병) 치료에 평생을 바친 의사

제3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과의사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한때 환자였던 수많은 친구들에게 억만금보다 더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움에 떨던 시절에 그들을 처음 만났고, 담당의사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들어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의 사랑과 감사야말로 내 인생의 길을 환히 비춰주는 등불이었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한 곳에 스스로 뛰어들었던 한 인간이 바로 거기에 참 기쁨의 실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라다니. 참 뜻밖의 일이지요. 세상의 고통 가운데 자기몫을 떠 맡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걸 피하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행복을 간직하게 될것을 믿습니다.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노동자들의 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일의 종류와 위험이 있다. 이동, 일꾼들이나 감독 또는 다른 종교와 국적을 가진 사람과 나누는 교제, 자연이나 맹수와의 싸움, 짐승들과 느끼는 교감, 자연속에서 벌이는 작업들… 그 속에서 그들은 힘과 희망과 용기를 경험한다. 반면 노동도 생산도 없이 소비를 일삼는 귀족들의 감정은 결국 교만, 성적인 욕구, 삶에대한 권태 같은 어리석은 세가지 정서로 귀결된다.

간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많은 크리스천에게 영감을 준 인도의 성자

간디는 그 작은 체구의 금식으로 대표되는 작은 저항으로 전체 인도인 뿐 아니라 영국과 세계를 움직인 인물이다. 역사가들은 그의 행동이 불러온 외형적인 결과에 주목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적인 삶으로 파고든다. 본인의 자서전에서 인도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소금행진에 대해서는 한단락 정도로 설명하지만 채식주의자로서 염소젖을 먹을것인가에 대한 내적고민은 네장에 걸쳐 서술한다. 간디는 스스로 살아온 삶을 영혼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과정을 본다.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식견과 영적인 삶의 자세, 생활속의 실천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간디 왈: 나(간디)는 수많은 크리스천을 존경한다. 찬송가들도 참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신념과 바꿔야 할 이유를 찾을수는 없다. 난 크리스천이 되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온 독생자라는 것도. 기독교 안에도 어느정도 진리가 존재함을 믿는다. 하지만 오직 인간에만 영혼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크리스천이 경건한 삶을 산다지만 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에서도 나타나는 경건한 변화를 보았다. 철학적을 보면 크리스천의 생활 원리는 특별하다고 할만한 것들이 없다. 자기희생만 보더라도 힌두교가 한수위다.

헨리 나우웬, 카톨릭 사제이자 작가, Vulnerability 가 살아 있었던 영혼의 소유자

글쓰기에는 직업적 위험,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입히는 불가피한 상처들이 있다. 작가는 처음엔 부드러운 어머니처럼 스토리를 끌어낸다. 그러나 일단 글쓰기 단계에 들어가면 독재적이고 객관적인 아버지가 되서 판단을 내놓고 일관된 글이 나올때까지 계속 글감을 추린다. – 프레드릭 부흐너

글쓰기는 우리안에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글쓰기 자체가 그것을 드러내준다. 글쓰기가 주는 가장 큰 만족은 그 전에는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우리안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는데 있다. 글쓰기는 최종 목적지를 모르는 상태로 떠나는 여행이다. – 헨리 나우웬

글쓰기를 통해 금세 지나가는 내 덧없는 삶에서 영구한 가치를 지닌 어떤것을 건져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 헨리 나우웬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6 comments

  1. 백산씨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백산씨 블로그 가끔 방문해서 글 읽고 때론 내용에 대해 생각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6월 첫주에 샌프란에 여행갔는데, 주일에 그 곳의 한인교회에서 예배 끝나고 서 계신 백산씨 멀리서 보고 혼자 반가워했어요! ^_^ 글 정말 잘 읽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해요 !

  2.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갈 바에는 잠깐 밖을 보고 먼산을 응시하며 멍때리는게 더 나한테 좋지 않을까.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갈 바에는 잠깐 밖을 보고 먼산을 응시하며 멍때리는게 더 나한테 좋지 않을까. ” 이 부분 정말 공감해요 ㅠ 백산님 힘내세요!

    • 네 항상 변함없는 응원 정말 감사해요 저 글은 이렇게 썼지만 습관적으로 페이스북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3. 오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고 계시다니 응원이 많이되네요. 네 그런거 같아요 정말. 우리세대(?, 저는 30대고 경래님은 아직 너무 어리지만)는 우리세대만의 mission 이 있을거 같아요. 계속 많이 공유해볼게요

  4. pocket 에 추가시켜놓고 이제서야 읽어봤습니다. 무엇보다 ‘4. 핸드폰의 세계와 진짜 세계’ 이야기에서 큰 공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무의식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가보고,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을 보면서 – (대한민국에는 몸매좋은 요가선생님, 모델, 트레이너들만 있는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 인스타그램 행동패턴이 photos you may like 알고리즘에 포착이 된 것이겠지요.) –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낭비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게 없네요.

    아무튼, Real world 에 좀 더 집중하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 OTL

  5. 팀 허스

    댓글을 남길 수 있다니 감사하네요.

    아웃라이어를 최근 읽었던 사람으로, podcast도 감사하고 필립 얀시도 추천 받은 덕에 구매해서 읽고 있어요.

    도전이라고 말하기보단, 늘 힘이 되는 말씀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 사는 곳과 환경, 여건, 생각은 달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민은 같다고요.

    좋은 글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6. 김봉린

    산 형, 안녕하세요!
    (경영대 축구부 쪼금 하다 말았던…) 03학번 김봉린이라고 합니다.

    3-4년 전 MBA이야기때 부터 종종 블로그에 놀러와서 재미있고 열정이 넘치는 글을 많이 읽고 갔는데,
    시간이 흘러, 졸업, 미국에서의 정착, 또 신앙 안에서의 새로운 성장에 대한 글들도.. 읽으면서 많은 도전도 되고 그랬습니다..!
    저도 연고 없는 휴스턴에서 생활한지 이제 2년이 되어가는데, 직장, 가족 그리고 신앙 등에 대해서, 형님의 글이 점점 더 공감이 되어서, 뒤늦게나마 댓글을 남겨봅니다!
    가족과 늘 건강하고 기쁨이 넘치는 하루 되시고, 기회가 되면 인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 반가워 기억이 잘 안나는데 (축구부나온거맞니 ㅋ) 휴스턴에있구나. 그래 언제 볼기회있음좋겠네. 인도하심이있겠지. 화이팅

  7. SH

    다행히 아직 2016년 입니다 🙂

  8. 백산님 잘 지내시죠? 근황 궁금해요~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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