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가슴뛰게 하는가 – picking the right battle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Full disclosure: 이 글을 쓰고나서 최근에 마음이 더 착찹해 졌다. 멋지게 내 신앙얘기와 함께 열심히 싸울거라고 글은 써 놨지만 과연 이 글이 지금 한국의 젊은세대, 아니 한국 사회전체의 아픔을 어느정도나 느끼고,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쓴 글인지 돌아보면 부끄러울 뿐이다. 글을 쓰는 나의 목적이 무엇인가. 난 정말 아파하고 공감하고 같이 울고 분노하고 그러고 있는가 아님 한발자국 떨어져서 멋있는척 하고 있는가. 끝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계속 성찰하고 성숙해가고 싶다.

1. 들어가며

나라가 뒤숭숭하다. 마음이 많이 착찹하다. 그래서 새벽 3시에, 근 6개월간 미뤄온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세월호, 대우조선, 이제는 대통령 스캔들. 한시도 잠잠했던 적이 없는것 같다. 페이스북 Wall을 보면 가족들과 뒹굴거리거나 자연스럽게 활짝웃는 사진보다는 사회와 정권의 부조리를 향한 불만과 증오, 탄식섞인 목소리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페이스북에 기사를 쉐어하든, 광화문에 가서 시위를 하든, 이렇게까지 할일은 아니라며 조용히 있든, 자기만의 방법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참고로 정치 이야기는 정말 왠만해서는 하고싶지 않아서 자제한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더 할 기회가 있으리라.)

그래, 우리 안에는 항상 들끓는 피가 있다. 우리는 결국 다 자기자신보다 더 큰 의미를 찾고 싶어하고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사람이 떡만으로 살수는 없다. 어차피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은 객관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관적으론 다 버겁다. 우린 일상의 버거움 이상의, 자기의 안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무언가 가슴을 뛰게 만들어줄 것, 무언가 자신의 온 몸과 마음과 혼을 다하여 싸우고 싶은것. 우리 모두는 다 전투를 필요로 하는 전사가 아닐까.

근데 무엇을 싸울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가. 가슴뛰게 하는가. 일제강점기의 조국독립도, 해방이후의 민주화와 경제발전도, 미국개척시대의 서부개척도, 21세기 중반 흑인인권운동도 아닌 지금시대의 우리들을 가슴뛰게 만드는건 무엇인가. 무능한 정권의 퇴치인가? 세월호 참사를 이끌고 말도안되는 스캔들을 내는 정부의 전복인가? 그래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아님 어떤 크리스천처럼 동성애 입법에 반대하고 그런걸 옹호하는 정권 퇴치하고 이슬람가서 선교하고 그런건가? 이 시대에서 내 삶을 걸만한 내가 진정 싸워야말 한 적은 누구일까. 그리고 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30대 중반,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 서부와서 산지도 어언 5년, 21세기도 벌써 16년이나 지난 지금 내겐 독재자나 점령자 같은 명확한 적도, 모두가 마음을 같이하는 이념이나 사회운동도 없다. 심지어는 목숨바쳐 지킬 내 나라의 개념도 모호해진 시대에, 오직 넘쳐나는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자극적인 사진이나 단편적인 기사들, 정제되지 않은 비판들뿐 (물론 정제되고 꼭 필요한 비판들도 많이 있지만). Follow your dream, 이런 캐치프레이즈도, 식상하다. 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가슴뛰면서 살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가. 차라리 명확한 적이 있을때가 훨씬 쉽지 않을까. MBA 당시 나의 리더십 코치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 다시 생각난다. “산아, 니가 만약 살면서 단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단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니.”

마틴루터킹 목사에 대한 책영화를 봤다. 멋있었다. 시대의 응답에 부응한 사람이 아닐까. 간디, 김구선생님, 넬슨만델라, 이런 사람처럼 본인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서 좌표를 찾아가며 충실히 시대의 소명에 응한 사람들. 나에겐 참 중요한 문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엇이 나를 가슴뛰게 하는가. 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난 어떤 싸움을 싸울 것인가. 난 나의 소명과 역할에 부합되게 살고 있는가. 내 자리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있다고 믿고 정말 충실히 해내고 싶다.

2. 누구와, 무엇을 두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 Pick the right battle

누구와 싸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나의 시대적, 공간적, 개인적인 배경을 잘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무엇이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가 이걸 묻는게 더 쉽고 빠를수도 있을것 같다. 우리의 주적은 정부인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사회구조인가. 경제발전 없이 침몰하는 무능한 한국사회인가. 북한인가. 내 남편이나 아내인가 후후. 아님 그때그때 다른가. 사람마다 갖고있는 그 열정의 불씨가 다 다르다. 엄청나게 부당한 취급을 당해본 사람은 그 부조리를 해결하는데 평생의 열정을 바치기도 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하고 자본론을 집필해서 공산주의의 근간을 만들지 않았는가. 일제 강점기에 김구 선생님과 윤동주 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싸웠더랬지. 난 어디에 서있는가.

1) 좌표찾기

나의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짧게 나의 시간적 공간적 개인적인 좌표를 짚어본다. (이걸 언젠가 장황하게 쓸 기회도 있으리라.)

시간적으로 첨단 물질문명의 21세기를 살고 있다.  가장 풍요하고 편리하지만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시기. 스마트폰이 보급된지 10년도 안되서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졌는데, 이제는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지만 10년후에 난 맨날 또 무엇을 쳐다보고 있을까.나보다 10살 20살 어린 애들은 이제 한두살때부터 유투브를 보고 산다. “Sapiens”는 나의 시간적 배경을 잘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말 재밌는 책이었다. 전쟁이 없어지고 글로벌 시대가 도래한 지금, 작가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 그래서 인류는 더 행복해졌는지, 행복의 정의가 개개인의 만족인지, 우리는 무엇을 갖고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측정해야할지.

-> 수많은 의미가 있지만 Attention span이 정말 짦아지고, 너무많은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서 내면이 공허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우리가 소비하는 미디어는 정말 다양하고 자극적이고 짧고 정제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아주 똑똑한것 같고 모두를 다 아는것 같지만 Facebook friend 와 like button, instagram follower 숫자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공허한 삶이 될지 모른다.

공간적으로 난 한국에서 30년가까이 살다가 지금 또 미국에 와서 실리콘밸리란 잘난 땅에서 5년째 살고 있다. 한국.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한두마디로 요약하겠냐만 정말 만만찮다. 그 어느나라 보다도 identity가 강하다. 냄비주의 천민자본주의 등 문제도 많지만 정말 징하게 소속감 하나는 강하다. 유럽 룩셈부르크에서 자란 내 친구가 “룩셈부르크” 얘기를 하는걸 난 들어본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좋든 싫든, 지지고 볶든 내 머리속에서 내 삶속에서 한국은 항상 함께한다. 그만큼 강력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산다는거. 테크와 이노베이션이 세상을 지배하고 누구나 직접 무언가 시작해서 세상을 변화시켜보겠다는 꿈을 꾸는 곳. 전세계 수많은 탤런트가 모여서 피터지게 경쟁하는 곳. 너무나 평화로운 날씨와 환경이지만 실제론 먹고살기에 대부분 허덕이고 있는 곳. 메이저리그이고 이 시대의 로마일수도 있지만 엄청난 에고 (Ego)의 집합장소이다.

-> 미국땅에 살면서도 항상 한국을 생각한다. (물론 언제나 미국에 살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전쟁터인데 항상 한발자국 물러나 있는것 같아 죄스런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임시정부는 상해에, 광복군은 간도에 있었듯이 나도 내 역할을 이곳 미국에서 하고 싶다. 한국에 다녀올 때 마다 심장이 쿵쾅거리른 떨림과 의미를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실리콘밸리에 사는건 풍요속의 빈곤이고 나름 또다른 전쟁이긴 하다. 정말 만만치 않아서 재밌지만 그래도 나 또한 그 Ego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으려면 마음 잘 지켜야 하는 곳인거 같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있으리라.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하고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 가진 사람과도 많이 어울려본 만큼 배우고 느낀것을 많이 공유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더 발전하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하는 맛에 취해 앞만보고 나만 보고 달려가다가, 나름 꺾이고 제동걸리고 하면서 아주 조금씩 성숙(?), 조금씩은 삶을 또 알아가는것 같은 30대 중반 아빠이자 남편이자 직장인이자 한국사람이자 늦깍이 크리스천이자 그렇다. (요새 하도 신앙얘기를 많이써서 혹자는 내가 엄청난 신앙인인줄 생각하던데 고작 3년차 초신자이다.) 엄청난 사회부조리를 경험하지도 못한 온실속 화초이고 좋은환경에서 자라서 좋은학교 나오고 잘 차려입은 사람속에 항상 있어온 기득권 모범생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삶과 세상, 다른사람을 향한 호기심과 열린마음 (Empathy, Compassion) 을 더 갖고 싶다.

-> 삶의 에너지가 꺾인것 같지는 전혀 않다. 가슴은 여전히 불끓고 있고, 여전히 숨이 턱에 넘어갈것처럼 운동하는게 너무 좋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이고, 내가 하는말 한마디 한마디,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리는게 느껴지기도 한다. 멋지게 사회현상을 글로 표현하기에 앞서,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그 글을 쓰는 나의 의도가 뭔지 되짚어 보게된다. 블로그에 글 하나 쓰는것도 많이 조심스럽다. 그리고 글하나 쓰기에 앞서 나부터 실천하고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켜야하진 않나 그런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는가. 난 여전히말하고 표현하기 좋아하고, 성숙도가 기본적으로 좀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이다. 신앙 표현하는것도 더 성숙하고 지혜롭고 싶다. 늦깍이 초신자라서  표현히 거칠고 서툴수 있다는걸 미리 말씀드린다.

2) 무엇이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가

그래 내 상황인식 잘했다. 그래서, 무엇이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가? 한때 나는 한국과 동북아의 경제발전, 그리고 발전하는 나의 모습. 이걸 갖고 싸운적이 있다. 외국에 나가보니 한국이 너무 알려지 잊지 않은게 가슴아팠고 동북아 경제/사회통합을 이끌고 싶었다. 한강의 기적이 너무 멋있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경제나 기업을 일구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성취를 하나씩 일궈내는 스스로의 삶이 너무 재밌었고 계속해서 반짝이는 별을 따고 싶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아파하는게 크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아니 잘 몰랐다. 난 나름 부끄럽지 않게 충실히 열심히 살았지만,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앙이 생기고, 실패와 좌절도 나름 조금씩 맛보고,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물이 참 많아졌다. 몸에 지방과 군더더기는 계속 쌓여가지만 마음은 조금씩은 성숙해가는 것 같다. 지금의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건, 가장 눈물짓게 만드는건, 무너지는 가정들, 자라나는 세대를 기죽이는 사회, 소외되고 외로운 노인들이 갈곳없는 사회, 항상 자극적인 뉴스와 사회 부조리, 익명 기사들 같은 것으로 배해서 진정 생각하고 노력하고 기뻐할 시간을 주지 않는 미디어, 결혼에 대해 소망을 잃게 만드는 것들, 가정을 파괴하고 삶의 소소한 행복을 파괴하도록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각종 장치들 (포르노 산업, 술집, 성형외과 광고…) 이런 것들이다. 너무 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웃음을 잃고 있다. 한명한명 만나보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인데 그 속은 타들어가고 있는것 같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내 제일 친한 친구들의 가정이 아파하고 무너지고 있다. 내 가장 친한 주위 사람들이 결혼에 소망을 잃고 있다. 자메이카와 텍사스 출신 내 친구네 가정은 애들이 자라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같이 놀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가득한거 같은데, 내 친구중에 그런 사람이 많이 안보인다. 또 최근에 여기서 만난 20살짜리나 10대 청소년들 중에는 세상을 향해 자신감 가득한 애들이 많은데, 한국에서 접한 친구들은 많이 지쳐보이기도 했다. 이런것들이 나를 정말 화나게 한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마음이다.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영혼구원) 얼마전에 문득 우리 모두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 때문에, 먹고 살고 일하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와닿은 적이 있다. 내가 글을 쓰고 social media를 하고 하는것도 다 다른사람들과 공감하거나 다른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서임이고, 내가 가족을 이루고 무엇을 하는 것도 다 그 사람과의 관계속에 있고, 우리가 하는 회사일도 다른사람들이 쓸 무엇을 공급하고 먹고살기 위함이고, The list goes on and on. 근데 일하다 보면 까먹는다. 내가 사람때문에 일하는지, 아님 회사의 올해 수익목표 달성을 위해 일하는지. 살다보면 까먹기 쉽다. 난 한명한명 사람들이 진정 본연의 표정을 찾는 모습이 보고싶다. 남자들 한명한명이 이땅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직장의 직원으로서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지고 섬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걸 같이하고 싶다. 김구 선생님이 그러셨지. 난 조선이 가장 “아름다운” 나라였으면 한다고.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그래. 난 우리나라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기뻐하며 소망하며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싶다.

삼국지를 보면 상산땅의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유선을 안고 미친듯이 적진을 휘젓고 다니며 적들을 괴멸(?)하는 장면이 나온다. 베르세르크를 읽으면 돌격대장 ‘가츠’가 말도안되는 칼로 적진을 둘로 나누는게 나온다. 현대전에 오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오랜시간동안 전투의 큰 변수령은 돌격대와 돌격대장, 선봉장이었다. 난 돌격대장이 되고싶다. 선봉장이 되고싶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가 되고 싶다. 손가락 하나로 물구나무서기 할 수 있는 쿵후보이 친미가 되고싶다. 하나님이 한명의 사람을 전투에 쓴다면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그래 말은 멋있게 했지만 그래서 진짜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냐. 싸움의 방법은 다양하다.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할수도 있다. 닉슨게이트와 프랑스대혁명 처럼 정권퇴진을 외치며 페이스북에 글을 쓸수도, 광화문에 나갈수도 있다. 마틴루터킹이나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하고 이끌수도 있다. 이게 참 어렵다. I should pick the right battle. 근데 지금의 적은 너무 교묘하고 복잡해서 누가 적인지 분간이 쉽지가 않다.

3)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싸움을 준비할 것인가

훈련캠프 없이 어찌 병사가 되겠는가. 나 나름의 훈련원칙으로 크게 세가지를 붙들고 있다. 별로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올림픽경기 그 한순간을 위해 수년을 묵묵히 도장에서 땀흘리는 선수들처럼 나도 그렇게 내실을 다지고 싶다.

1) 성결케 되기, 경건하기 – Consecrate – Let’s pray like crazy

지난번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간디는 그 작은 체구의 금식으로 대표되는 작은 저항으로 전체 인도인 뿐 아니라 영국과 세계를 움직인 인물이다. 역사가들은 그의 행동이 불러온 외형적인 결과에 주목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적인 삶으로 파고든다. 본인의 자서전에서 인도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소금행진에 대해서는 한단락 정도로 설명하지만 채식주의자로서 염소젖을 먹을것인가에 대한 내적고민은 네장에 걸쳐 서술한다. 간디는 스스로 살아온 삶을 영혼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과정을 본다.

성경인물 다니엘을 보면 좀 멋있다. 다니엘은 식민지 국가의 포로로서 점령국 왕궁에 불려간다. 그 살엄을 같은 상황에서 다니엘은 당당하게 뜻을 정하고 왕궁에서 주는 음식을 거부한다. 음식에서 부터 몸과 마음을 정하게 이끈 다니엘을 하나님은 써주신다. 여호수아서 3장 5절에서 여호수아는 큰 전쟁을 앞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Consecrate yourselves, for tomorrow the Lord will do amazing things among you”

경건은 참 쉽지 않다. 인스타그램에서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술먹고 충동적으로 술집가거나, 사소한 데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정직하지 않거나, 이런게 훨씬 더 쉽다. 그래서 더 싸워볼만한 싸움이다. 수없이 지고 있지만 그래도 또 일어나서 또 싸운다. 중요한 운동경기를 앞두고 미친듯이 몇달간을 몸을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을 만들어서 준비하고 싶다.

2) 발전하기, 노력하기, 미친듯이 배우기 – Let’s learn like crazy

John Gardner 선생님의 Personal Renewal 이 글에서 처럼 우리는 평생 자신을 Renew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 누구도 지금 이순간의 자신이 되본적은 없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 또 새로운 사람이고 또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Renew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의 배움에 난 항상 목마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 직원이 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리더는 누구인가. 역사의 리더는 누구였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어떤 배움을 가졌는가. 삶의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배울 수 있는 장치들을 끝없이 만들어놓는게 중요하다. 출퇴근할때 읽는 Industry related Podcast듣거나 Audible 책 읽기, Agency 레퍼런스 콜 하다가 알게된 옆동네 스타텁 오퍼레이션 하는애들과 좋은 관계 만들어가며 Supply Chain Management 의 정수 배우고 이야기하기, 설거지 할때나 쓰레기 버릴때 최근에 보고싶었던 연설문 영상보기 등등. 깨알같은 즐거움이다.

3) 실천하기 – force myself into the situation – Let’s love like crazy

가장 좋은 공부는 가르치기 라고 하더랬지. 가장 좋은 훈련의 방법은 내가 그것을 머리로만 공부하고 말로만 할게 아니라 실천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나를 몰아넣는 것이리라.

회사에서 매니지 하고 있는 친구와 실리콘밸리 스타텁에서 우리가 최고가 되려면 남들보다 몇배는 노력하고 남들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끊임없이 배워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매주 배운 내용을 서로 나눠보자고. 사실 말이 쉽지 매일매일 꼭 해야할 일 하기만도 정신이 없는데 매주 새로운 배움을 나눠본다는게, 어떤 시간을 정해서 그 미팅에는 배움을 나눌 준비를 하고 온다는게 절대 쉽지 않다. 예상했던 대로 많이 버거워하더라. 그래서 나부터 해보고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그리고 결국은 사랑이다. 난 사랑 폭탄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난 진정어린 사랑을 주고 있는가. 그 사람의 성장과 발전을 응원하며 지지하는가.

3. 지금 나의 결론 – 내 자리에서 혼신의 힘을다해 살아내기

왜 당장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지? 왜 공무원이 되어서, 한국에서 더 적극적으로 그러면 일하지 않지? 광화문에 가서 촛불시위라도 해야되는거 아닌지, 분통터지는데 기득권의 비리를 하나라도 더 알려야 되는거 아닌지, 이런거 다 맞는말일 수 있다. 그래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 만은 않을수도 있다. 결혼에 소망을 잃은 내 주위사람들한테 내가 아무리 난 결혼생활 행복하게 잘하고 있다고 해도 들을 마음조차 없는경우가 많다. 그냥 너는 재수가 좋았다고, 아님 너는 공부도 잘하고 가진게 많아서 그런거라고. 모든게 운이고, 사회의 부조리에 따라 강자가 다 가져갈 수 밖에 없다고, 나도 어서 더 힘을 모으고 계단을 올라가서 이 억울한 내 삶을 더 좋은 위치에 올려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건 어렵다. 기독교 장로 대통령도 나오고, 촛불시위와 효선이 미선이 인터넷 파워를 힘입어 나온 대통령도 나오고 민주화 투사부터 기업가 출신까지 대통령 많이 나왔지만 존경받는 리더가 하나가 생각안나는건 그건 다 리더탓일까 아님 우리들 탓도 있을까. 내가 존경하는 공무원들이 언론에서 욕먹고 내가 존경하던 기업가가 구속수사 받고 이런거 보면서 참 쉽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 기사 를 보고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사회에 분개를 품게 만드는건 어찌보면 진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니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그 어느때보다 쉬워졌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모택동도 자신의 세력이 기울었을때 청소년들이 주축이 된 홍위병을 구축해서 문화혁명의 피바다를 일으켰다. 아프리카에서는 소년병들이 내전에 투입된다. 중2병으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이 들끓는 분개로 일어난다 한들 우리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 우리의 적은 매우 강하고 매우 교묘하고 매우 깊숙히 파고들어 있다. 단기전은 진다. 장기전만이 답이다. 답답해도 지금은 내면을 다지며 자기자리에서 더 충실할 때가 아닐까.

(그리고 크리스천들께. 매우 민감할 수 있고 교만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감히 이야기한다면, 과연 동성애 입법 반대가, 크리스천에 더 옹호적인지 여부를 놓고 리더를 뽑는게, 우리가 싸워야할 The 싸움인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죄나 판단, 독선 없이 사랑으로 임하고 있는가.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아예 전 사회를 지배했던 중세시대에 사회에 하나님이 슬퍼하실 만한 일들이 정말 많지 않았는가. 교회다니는 사람의 양적 수가 들어나는게, 일단 세례받고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 늘어나는게 우리의 목표인가. 중세시대에는 병이 나도 치료를 하는게 하나님 뜻에 거스르는 거라고 다 기도만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그러고 있는건 없을까? 우리 교회는 세계의 수많은 다른 문화의 교회들과 교류하면서 이 시대에 주님의 뜻을 더 찾을길을 놓고 기도하고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가. 나도 혼란스럽고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이시대의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내가 진정 싸울 싸움은 뭔가. )

하지만 정말 희망은 있다. 지금은 2차 세계대전 당시도, 일제 강점기도, 내전과 기근가운데 있는 아프리카도 아니다. 그리고 역사속에는 자기자리를 지킨 수많은 아름다운 선현들이 있다. 한명이 자기자리에서 충실히 마음과 영과 혼을 다해 (with all your heart mind and soul) 살때, 역사는 천천히 변해왔다. 넬슨 만델라는 거의 평생을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의 감옥에서, 그것도 많은시간 독방에서 보냈지만 반 노인이 되어 석방된 이후 나라의 대 통합 (reconciliation) 을 이끌었다. 유관순 여사는 그 어린나이에 일본의 총에 목숨을 바치셨지만 전국민에게 오래남는 희망과 뜨거움을 주셨다. 예수님이 오신 당시, 유대인은 로마의 지배속에 암울하게 살면서 메시아, 영웅을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병자와 약자만 돌보시다가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역설적으로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셨다. 성경을 보면 요셉은 억울하게 전혀 연고에 없던 이집트땅으로 팔려가 종살이를 하고 거기에 더해 옥살이를하다가 하나님을 잘 모시고 주위에 늘 신실하게 대하여 총리에 오르게 된다.조선시대에 아무 연고도 없는 땅으로 와서 평생을 바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를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상황에서의 그의 작은 씨앗뿌리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살리는 조건으로 의인 10인을 요구하시고, 노아 한사람을 봐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고, 엘리야 에게는 기도하는 동지 7000명을 예비하셨다. 영화 “동주“를 행동파 몽규와 계속 갈등하며 자기자리를 지키려는 윤동주가 대조된다. 난 묵묵히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길러야할 영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있을 때 공명정대한 판단을 내리고 뇌물이나 청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유혹이 들어와도 성적으로 순결할 수 있는 것. 자기 이름을 더 알리고 싶고 더 권력이나 명예를 갖고 싶을때 선뜻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전혀 화려하지 않게 묵묵히 다른사람의 성장을 도울수 있는 것ㅇ. 이런 영성들을.

크리스천으로서, 난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물론 때로는 성전의 잡상인을 혼내고 뒤엎기도 하겠지만). 내몫의 십자가를 묵묵히 질 수 있는 성숙함과 용기가 있었으면 한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아들로서, 사위로서 – 난 한번도 나이 34의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들이자 사위이자 동생이 되본적이 없다. 지금 내 자리에서 요구되는 역할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잘하는게 항상 쉽지만은 않다. 정권을 술안주 삼아서 친구들이랑 술한잔하는것보다 집에 와서 지친 아내를 도와 애기를 보고 아내를 맘껏 사랑해주고 엄마아빠장인장모님한테 전화하고 그런 것이 나도 더 어렵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때문에 상처입기도 하고 피해보기도 하고 그렇다. 맘껏 사랑해주고 싶다. 맘껏 섬기고 싶다. 맘껏 같이 기뻐하고 싶다. 특히나 남편으로서 민경이와 결혼생활을 할때 나의 싸움은 정말 작은데서 시작한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왔는데 민경이가 힘든 하루를 보낸거 같을때 내가 한번더 웃으며 아내를 안아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가, 순간 짜증났을 때 짜증안내고 나를 누를 수 있는가. 진정 한명의 사람으로서 민경이를 더 사랑할 수 있는가. 현대문명에서 제공하는 수 많은 탄산음료와 정크푸드 같은 자극적인 매체에서 나의 가족과 성을 보호할 수 있는가. 내가 경건할 수 있는가.

직원으로서 – 가족도 일구고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200% 나의 발전만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주위에 최대한 내가 가진 시간, 경험 나누면서 살면서도 충분히 일 열심히하고 회사에 보탬이 될 수 있는가. 이건 정말 항상 Struggle 하는 부분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거. 영어도 문화도 서툴고 테크에도 문외한인 내가 전혀 새로운 일을 새로운 분야에서 세계에서 제일 뛰어나다는 애들 틈바구니에서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난 눈뜨면 30~1시간은 기도와 찬양에 보내고, 평일에도 꼬박꼬박 저녁시간에 집에와서 저녁먹고 애기랑 놀고 (물론 애 자고 다시 일하지만), 주말에는 교회에서 거의 하루종일, 심지어는 어떨때는 이틀 내내 보낼때고 꽤 있고 그렇다. 과연 나는 나의 전부를, 아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쏟고 있는가. 가족도 없고 신앙도 없고 오로지 커리어에 올인하는 친구들보다 내가 더 effective 하고 productive할 수 있는가, 더 좋은 직원이 될 수 있는가.

성도로서 – 교회라는 조직이 나에게 이런 소속감 (identity)를 줄지는 정말 몰랐다. 이제는 교회 없이는 나의 주말도, 나의 친구집단도,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관계를 만들고 하는 공동체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교회는 내 삶의 일부분이다. 얼마전에 우리 목장 (small group) 젋은 부부들 중 남자들끼리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다들 어떻게 살고있나. 좋은 남편이 되고 있는지, 좋은 사위가, 아빠가, 아들이 되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각 가정마다 어려움도 있고 기쁨도 있고 그랬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아픈 부분까지 나누면서, 다시한번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 좋더라. 항상 내가 너무 한국사람과만 많은 시간을 보내는건 아닌지, 세상물정 모르고 교회안에만 너무 머무르는건 아닌지 부담이 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I felt like I’m in the right place. 그리고 난 항상 교만일수 있다곤 느끼지만 기성교회와, 교단과는 다르다고 느끼고 그럴 수 있다가 생각한다. 난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 이기적인 모습들이 지금도 너무 힘들다. 다른신앙이나 다른나라/다른 교회의 방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태도도, 시대와 공간에 따라 신앙이 수없이 변해왔는데도 지금 교회에서 하는 방식이 절대적일 거라는 맹신도, 동성애나 이런 이슈에 대해서 사랑보다는 거부감으로 (적어도 내 가족은 그런사람 곁에 두고싶지 않아하는) 대하는것 같은것도, 일단 생각하고 공부하고 사고하기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기만 하는것 같은 것도, 내 가족은 항상 신앙도 좋고 번듯한 집안에 결혼시키고 그런 학교와 환경에만 두고싶어 하는 것 같은 이기적인 면도,’사피언스’같이 진화론과 인류학에 바탕을 둔 생각이나 책에는 아무도 관심조차 갖기 않는것 같은 것도, 세상은 기독교의 타락한 모습, 그리고 신이나 절대적인 진리가 없을수 밖에 없는 이유를 수만가지 제시하는데 그런 공격에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도 너무 나를 힘들게 할때가 있다. 나의 이런 반골 기질이 잘 성숙해 가면 분명 기성 교회에 contribute 할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 아들로서 기뻐하기– 기뻐하는 삶 살기. 난 이게 싸움이라고 본다. 싸움에서 이기는 거라고 본다. 삶이 내게 무엇을 던질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되기. 지금 나는 주님과의 관계를 쌓고 있는가, 조금씩 성숙하고 있는가.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내가 나서서 신앙이 어떻느니 이렇게 살아야 된다느니 폼잡고 글한자 더 쓰기에 앞서 나는 행복한가. 나의 기쁨과 만족은 여전히 내 환경에 따른건 아닌가. 내가 공부를 잘해서 내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내가 어느정도 먹고살만하고 미래도 보장되고 여기저기서 인정받으니까, 나의 욕구가 다양하게 충족되니까 그런때 기쁜게 아닌가.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이 내게 있는가. 삶이 내게 다양한 고난을 던지더라도, 내가 건강도 잃고 사회적 지위도 잃고 다 잃더라고, 욥처럼 되더라도, 난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 정죄나 판단이나 미움이 있는건 아닌지. 죄책감이나 자포자기가 있는건 아닌지 항상 돌아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과 그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러면서 내가 마음을 잃고 있다면, 그건 정녕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은 아니리라.

4-1. 마치며 (일반버전)

시대의 소명에 부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갖고 싶다. 많이 울고 싶고 많이 섬기고 싶다. 사람들이 가슴벅차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대학 떨어지면 인생 끝나는줄 알고, 공무원이나 로스쿨이나 의전 시험을 통해 뭔가 보장되는 그 무언가에 매달리고 기득권에 올라가는게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걸 경험시켜 주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무너져 가는 가정에 힘이 되고 싶다. 룸사롱 술집문화를 없애버리고 싶다. 소외받고 있는 노인들을 섬기고 싶다. 결혼에 대해 소망을 잃고 고민하는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며 함께하고 싶다. 그래 하고싶은거 정말 많다. 가슴뛰는것도 정말 많다. 나부터 잘 사는게 먼저다. 그리고 시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귀와 눈과 가슴을 열고 손과 발에 땀흘리고 싶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로 이 긴 글을 마무리한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4-2. 마치며 (크리스천버전)

얼마전에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또다시 뻔뻔하게 기도하면서 주님을 찾았다. 할일 많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짜증도 내고 전혀 잘하지 않았고, 직장에서도 크게 잘하고 있는것 같지 않고, 집주위에 Gym membership 등록하는데 최근에 새로생긴 소득을 포함시키지 않고 등록하면 꽤나 큰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또 자극적인것도 본것 같고, 이것저것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죄책감에 빠지다 보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기도도 안되고 그냥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이었지만 일단 예수님 붙잡고 뻔뻔하게 엎드려 기도하는데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것 같더라. 그래 난 오늘도 은혜로 살아간다.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나는 내가 최고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싸움은 내가 싸우는게 아니니 이미 이긴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난 최고의 전사가 될거라고.

산아, 괜찮다. 불과 몇년전과 비교해보렴. 경건함도, 정직함도 많이 늘었잖니. 너가 일하는걸 생각해보렴. 몇년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많이 늘었잖니. 조금씩 발전하고 있잖아. 그래 잘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노력하렴. 발버둥치렴. 혼자싸우는게 아니니까. 내가 이미 이긴 싸움이란다. 넌 분명 잘 해낼거야. 그래 잘하고 있다 자슥아.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

“에베소서 6:10-17 10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11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12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13 Therefore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when the day of evil comes, you may be able to stand your ground, and after you have done everything, to stand. 14 Stand firm then, with the belt of truth buckled around your waist, with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in place, 15 and with your feet fitted with the readiness that comes from the gospel of peace. 16 In addition to all this, take up the shield of faith, with which you can extinguish all the flaming arrows of the evil one. 17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10 comments

  1. 존경하는 백산 선배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제 삶에 가슴뛰는 자극이 되어주고 계세요. 오랜만의 업로드인데 자주 이야기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 제 이야기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런 응원 정말 힘이 많이되요. 이 블로그에 이렇게 어리신 분도 오시는줄 몰랐어요. 언제든 또 연락주세요!

  2. Sehee Park

    이번 글도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

  3. 감사해요 매번 너무 큰 응원주시네요….부족한 부분 많죠 지적도 언제든 편히 부탁드릴게요

  4. jinmay

    나이가 같지만, 정말 많은 경험을 해오셔서 마치 저의 인생의 스승님 느낌이드네요. 정말 대단한 길을 용기있게 걷고 계신것같아 존경스럽습니다.

  5. Ava Street

    장문임에도 그리 읽을만한 내용이 거의 없어요. 실리콘 밸리에 대한 헛된 환상.. 본인이 공부를 잘하며 컸기에 타의반 자의반으로 심어진 우월의식.. 기득권 의식 – 사실 기득권에 대한 정의도 잘 모르는 듯 합니다, 본인이 기득권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다니.. – 이런 걸로 그냥 자랑거리도 아닌 걸 자랑하려는 그런 목적뿐이네요. 그걸 가리기 위해 무지하게 많은 수사어구와 주워들은 것들로 도배했을 뿐.. 그래도 좀 공부해서 생각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30 중반의 나이에 쓴 글이 이 수준이란 게 안타깝습니다.

    • 감사해요 이렇게 솔직하게 지적해 주셔서. 다양한 헛된 환상과 기득권 의식, 자랑 같은 것들이 많이 있을거에요 분명. 혹시 저땜에 무언가 기분이 더 안좋아졌을까봐 많이 죄송하고 걱정이네요. 지적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더 알거나 보면 좋을 것 같은 글이나 다른 지적있으시면 아끼지 말고 부탁드릴게요.

  6.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만으로 너무 감사하네요. 다들 모이면, 돈으로 버티자고, 대세에 붙어서 살자고 하는 이야기들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정답처럼 흐르는데, 이런 글이 있다는 게 참 눈물나게 감사하네요. 더구나 글쓰신 분도 이렇게 살고자 발버둥치고 싶어서 더 쓰시려는 것 같고 그 진정성이 글에서 느껴져 더 공감이 갑니다. 말처럼 쉬운 싸움은 정말 아니니까요.

    오늘 하루 나를 스쳐가는 작은 생각,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 쾌락의 이미지 같은 것이 별거 아니게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나를 향한 크고 깊은 선물을 빼앗는 장애물이란 걸. 늘 느끼면서도 마음과 영혼은 날마다 내 것이 아닌것처럼 버거워서 매일 고생하며 삽니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 이런 사회를 만든 것 같아 부채심도 들고요. 그래서 다시 걸어가야겠지요. 아직 더 가야한다면 ㅎㅎ 동북아 정세에 대한 깊은 고찰이나 경제나 주식의 대가들이 블로그에 쓰는 글보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이 더 아름다운 건 진심이 느껴져서겠지요. 게다가 요즘 제 고민과도 궤적들이 많이 비슷해서 더 그렇네요.

    예전에 서빙고 온누리에서 잠깐 지나가시는 걸 봤는데 다음 번에 뵙게 된다면 꼭 감사 인사드리고 싶네요. 서울에서 글 잘보고 있다고요^^. 그 곳에서도, 맡겨진 사람들과 함께 감사하며 승리하시는 연말되시길…

  7. ek kim

    안녕하세요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근심이 있어 며칠 밤을 뒤척이다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으로 응답해주시길 기도하며 나왔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응답을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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