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세대 (Anxious Generation): 스마트폰에서 아이들을 지키자

이번글은 다소 무거울수 있고 논란의 여지도 있는 주제이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한국이 가진 다양한 사회문제 중에서 최근 내가 가장 관심있는 분야기도 하다. 그래서 가지고 왔다.

워낙 광범위한 내용이기에 여러글에 나눠쓸까 하다가 그냥 내스타일대로 한 글에 담았다. 작고 부족한 글이지만 워낙 중요한 주제이기에 스마트폰에서 아이들을 지켜내는데에 아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시대에, 더 늦기 전에 이 흐름을 꼭 바꿨으면 한다. 꽤나 광범위한 내용이기에 아래 간단한 목차를 요약 차원에서 소개한다.

  • 들어가며: 한국은 유독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대하다.
    • 스마트폰/SNS 안번불감증에 빠진 한국?
    • 시스템이 잘못 구축됐을때 가장 피해를 보는건 그 시스템에 맞서 싸울수 없는 약자이다.
  • 스마트폰/SNS가 진짜 문제인가:
    • 그렇다. 2010년이후 10대에서 전세계적으로 급증한 정신질환 문제를 설명할수 있는 공통분모는 스마트폰이 유일하다.
  • 무엇이 문제인가: 불안한 세대 (Anxious Generation) 발췌
    • 첫번째 문제: 놀이기반 어린시절의 소멸
      • 놀이는 어린이의 성장에 선택이 아닌 필수인데, 가상세계 등장과 함께 놀이가 실종됐다. 현실세계에서 모험을 통해 위험대처법을 배우는 다양한 경험도 실종됐다. 이에 아이들은 전혀 적절치 않은 성인컨텐츠를 가상세계에서 보고 자라며 현실세계에선 매우 미성숙한 성인이 되어간다.
    • 두번째 문제: 스마트폰 기반 어린시절의 급부상
      • 스마트폰은 크게 네가지 병폐를 가져온다. 1) 사회성 결여 2) 수면결핍 3) 주의력 장애 4) 중독. 여자아이들은 특히 소셜미디어에 취약함을 보였고 남자아이들은 게임과 포르노에 취약하다. 성별 관계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서 영적인 퇴보가 일어나고 있다.
    • 한국사회의 문제: 한자녀, 사교육, 그리고 물질만능주의
      • 대부분이 한자녀인 한국사회에서 미디어 노출은 극히 유아기때부터 진행되기에 중독이 너무 빠르다. 그리고 사교육 열풍으로 현실세계의 경험이나 놀이가 전무하기에 가상세계에 더 빠진다. 마지막으로 극도로 세속화되고 물질만능주의 중심의 가상세계는 아이들을 더 냉소적이고 헛똑똑하게 만든다.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단행동과 개인행동 모두 필요하다.
    • 집단행동: 정부와 테크회사의 제도개선, 학교차원의 새로운 룰, 그리고 부모의 집단행동 모두가 필요하다.
    • 개인행동: 가정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면 부모부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때 부터 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질 나이가 되면 이미 늦다.
  • 마치며: 잘못 끼워진 단추는 빨리 갈아껴야 한다.

들어가며: 한국은 유독 아이들의 스마트폰사용에 관대하다.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스마트폰/SNS 안전불감증에 빠진 한국?

세계에 부는 미성년자 SNS금지법을 다룬 슈카월드

미국에 살면서 임산부의 식사를 보고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첫째가 태어난 병원에 있을때 일이다. 막 출산한 산모를 위해 미역국에 뭐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장모님은 옆방의 갓 해산한 미국 산모가 햄버거 먹는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임신 중에도 아무거나 막먹고 출산하고 바로 패스트푸드 먹는 미국사람들. 건강과 몸을 끔찍히 생각하는 한국인이 보기엔 놀랄노자다.

건강을 이다지도 끔찍히 챙기는게 우리 한국인이지만 정신 건강도 과연 그럴까? 미국인들이 보면 놀라 뒤집어질 일들이 한국에 벌어지고 있는데, 그중 단연코 꼽을수 있는건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이다. 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대의 애들 – 열살도 되기 전의 애들의 상당수가 자기 소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거나 사실상 스마트기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 첫째딸은 초등학교 2학년 – 만 8살인데, 친구의 과반수 이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같다. 9-10살 되는 애들에게 이토록 재밌는 기기가 또 있겠는가. 당연히 아이들은 빠져들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뭣도 하고 하는 애들한테 친구들이 몰리고 없는 애들은 소외되기도 한다.

며칠전에 슈카월드에서 세계에 부는 “SNS금지법”을 다뤘다. 이미 미국의 일부 주에선 고등학생 이하의 나이에는 SNS를 금지하거나 강력한 부모 동의를 요구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유럽이나 일부 국가에선 더 강력한 법이 입법되기도 하고 논의중에 있다. 한국에서 느끼는 온도와는 차이가 정말 크다. 한국은 학생인권조례 (?)라 하여 스마트폰을 학교에서 뺐거나 금지하는것도 허용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고 알고 있다. 스마트폰, SNS가 특히 미성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만 안전불감증에 걸린건 아닌가?

가장 큰 피해는 누가 보는가 – 가장 힘없는 사람들

소득이 비만에 미치는 연구결과가 일관되게 이야기 하는 것은 가난할수록 비만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건강에 좋은 음식은 비싸다. 특히나 정크푸드가 사회의 기본 시스템이 된 미국, 멕시코 같은 나라에선 이런 상관관계가 더 높이 나타난다. 공립학교에 가면 급식으로 냉동 피자가 나오는데, 도시락을 싸거나 건강한 음식 사먹일 여력이 안되는 집의 애들은 늘 이런 음식을 먹고 중독되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서도 비만이 된다. 반면 잘사는 집 애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고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사회 전반에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이 즐비한 시스템에 싸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SNS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스템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부모는 그 흐름에 거스를 힘이 없다. 맞벌이 하고 애 하나 키우는데 초등학교 방과후 애와 연락이 되야하고 애는 학원버스를 타야하는데? 애랑 놀아줄 시간도 여유도 없고 애를 좋은 환경에서 뛰놀게 할 여력은 더더군다나 안되는데? 장기적으론 가장 위험할수 있지만 당장 가장 쉬운 해결책은 애 손에 스마트폰을 안겨주는 것이다. 특히나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게 일반적인게 되면 더더군다나 더.

반면 힘입는 집은 다르다. 위 영상에서도 잘사는 애들은 휴대폰이 없다며 얼마전에 대형 로펌에 다니며 대치동에 사는 선배형이 대치동/개포동 일대에 본인이 아는 집들은 애들에게,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절대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중학교 때도 심지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스마트폰을 허용할 생각이 없고 미디어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계획이라도 했다. 한국에서 이다지도 스마트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거의 처음 만났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힘있는 지역인 강남 8학군에 있다는걸 들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 SNS가 진짜 문제인가: 그렇다. 다른 원인으론 설명할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스마트폰, SNS가 중독적인 부분도 있고 안좋은 부분도 있지만 좋은 부분도 많은데 이걸 꼭 아이들에게서 보호해야 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이 이렇게라도 스트레스 해소할 수 있게 열어줘야 하는것 아닌가?

이에 대해 객관적인 데이터로 대답할만한 데이터가 지금까지는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스마트폰과 SNS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어린아이들에게 까지 퍼진건 불과 지난 10년정도의 일이다. 코로나 이후에 더욱 가속화 된것으로 보이는 이 트렌드에 대해 지금까지는 충분한 통계자료와 연구 결과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얼마전 출간되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조나탄 하이트의 “불안한 세대 (The Anxious Generation)”란 책이 최근의 연구결과와 통계들을 집대성하여 스마트폰, SNS가 10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이 책은 95년 이후 출생한 세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린 이미 텔레비전/라디오 등이 성장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를 알고 있다. 하나의 변혁은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2009년 소셜미디어에 “like (좋아요)” 버튼, 리트윗/쉐어 버튼이 등장이다 – 좋아요와 공유기능은 소셜미디어의 파급력을 극대화시켰다. 마지막 변혁은 2010년 정면향 카메라의 등장과 2012년 페북의 인스타그램 인수이다. 이 변화는 소셜미디어를 셀피/이미지 (정제되고 가공된)로 도배시켰고, 여자아이들에게 특히나 더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의 변혁 이후 청소년기를 보낸 2000년생이 이상의 GenZ 세대들은 “대대적으로 재구성된 어린시절 (Great Rewiring of Childhood)”를 보냈다. 

아래는 이 책에서 주로 발췌한 내용으로 자세한 통계들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SNS가 10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한 책, 불안한 세대

2010년부터 미국 십대의 우울증이 급증한다.

주로 불안, 우울증 같이 내면을 향하는 정신질병이 급증했다.

정신질환 증가는 젊은 세대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종합하면 이렇다. 10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은 2010년-2015년 사이 급증하고 특히나 여자아이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십대 뿐 아니라 대학생들의 정신질환도 같은 시기에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25세 이상의 나이대에서 불안증상이 높게 증가했고 나이가 높아질수록 불안증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청소년의 자해, 자살시도도 같은 시기에 급증했다.

2010-2015년 미국 십대의 생활이 대부분 핸드폰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 “핸드폰기반의 어린시절”로의 대대적 재구성이, 2010년이후 급증한 십대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외에 경기침체, 사회불안 등으로 이 현상을 설명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위의 현상은 전세계적인 트렌드이며 모두 2010-2015년이 변곡점으로 나타난다. 이를 설명할 공통분모는 스마트폰이 유일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놀이의 소멸, 스마트폰 과사용, 한자녀과 사교육

첫번째 문제: 놀이기반 어린시절의 소멸

놀이는 왜 선택이 아닌 필수인가

영국 아이들이 보내는 시간이 1975년부터 2015년까지 40년간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보여주는 그래프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의 폐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조나탄 하이트는 어린시절에 “놀이 (Play)” 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진화론과 뇌과학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놀이기반의 어린시절이 빠르게 소멸한 사회현상을 문제로서 제기한다. 어린시절의 자유로운 놀이가 한 개인의 성장과 성숙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진화와 뇌과학에 입각한 체계적인 접근을 들으니 훨씬 더 이해가 됐다. 놀이의 기능과 역할은 실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심히 초과한다. 이하 내용을 소개한다.

인간의 육체적 발달과 성장은 유아기 때 급속히 일어나고 어린시절엔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다가 사춘기때 가속화된다. 이는 인류 진화의 산물로 주 이유는 교감능력, 사회성, 그리고 뇌가 충분히 발달되도록 하기 위함이고, 이 모든 것에 자유로운 놀이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놀이에는 별도의 목적이 없고 재미자체가 목적이기에 아이들은 본연의 기질을 맘껏 놀이에 발산하고 발전시킨다. 놀이에선 실수가 용납되고, 상호관계에 기반하며 육체를 동반한다. 종종 다툼이 일어나기에 다툼을 해결하는 법을 배워간다. 이렇게 놀이는 교감능력과 사회성 발달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반면 스마트폰에서의 모든 활동은 거의 정 반대이다. 모든 포스팅은 전략적이고 목적성을 동반한다. 실수는 엄청난 결과를 낳을수도 있다. 관계는 피상적이고 육체는 손가락 말고는 쓰이지 않는다. 다툼이 일어나면 관계를 끊어버리면 그만이기에 다툼을 해결해가는 경험을 할수 없다. 교감능력을 예로 들어보자. 실시간으로 타인과 교감하며 육체, 감정을 상호작용하는 것은 정서발달에 필수적이며 사회적 동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활동이지만, 이런 기능은 스마트폰세상에선 발달하기 어렵다. 잘 모르는 상대방의 포스팅에 반응하고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소셜미디어에 무언가 올리는 행동은 기쁨을 동반하는 교감이라기 보단 의무, 중독, 도파민을 위한 습관이 되어버렸다. 육체의 교감은 손가락 활동으로 대체됐다. 

사회적인 배움과 성장은 어떨까. 진화론적으로 볼때 청소년기는 최고의 롤모델을 발견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를 맞춰가는 시기로 볼수 있다. 청소년들은 대중의 눈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또 스스로 가장 탁월한 롤모델을 찾아가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런 롤모델의 역할은 플랫폼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들로 대체되었다. 청소년기의 발달에 큰 역할을 하는 인플루언서의 자리를 사회적으로 저명하고 탁월한 사람들, 개인과 좀더 연관된 사람들이 아닌 소셜미디어에서 상대방을 더 자극하고 다룰줄 아는 인플루언서들이 독차지하게 됐다. 

건강한 성장을 가능케하는 현실의 경험들이 차단되고 무분별한 가상세계의 위험에 과다노출됨

놀이기반의 어린시절 소멸의 연장선상에서 조나탄 하이트는 위험 노출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뇌엔 두가지 모드가 있다 – 탐험 모드와 방어 모드. 탐험모드는 적당한 위험에 계속 본인을 노출시키지만 방어모드는 위험을 기피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성장엔 무엇이 더 좋을까? 정답은 둘다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놀이, 위험에 어느정도 노출된 모험을 통해 성장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립된 성인이 되는데 꼭 필요한 스스로 불안을 극복하고 공포에 대처하며 위험을 관리하는법 등을 배워간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아이들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안전이란 미명하에 아이들이 탐험모드로 감내가능한 위험에 노출되도록 하는 양육방식이 사라지다 싶이 했다. 아이들은 그렇다할 모험 한번 한적없이 극도로 위험을 회피하는 경험만 축적된 채로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탐험모드의 뇌를 가동할 기회 자체가 박탈된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온라인, 가상세계가 채웠다. 스마트폰은 직접 경험을 통한 성장을 차단시킨다. 아이들의 삶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 뇌 발달에 꼭 필요한 다른 모든 경험들이 사실상 차단된다. 그리고 나이에 맞는 적절한 모험과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대신에 아이들은 가상세계에서 나이와 전혀 맞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현실세계에선 모험의 기회가 차단됐지만 너무나 과다한 위험이 넘쳐나는 가상세계에선 아이들을 제어하는 것은 전무하다. 놀이, 탐구를 통해 감당가능한 위험 하에서 적절한 시행착오를 해가며 불안을 극복하고 위험을 조절하며 자아정체성, 정서를 형성해가는 경험 대신에,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다양한 가상세계의 경험들이 아이들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춘기는 뇌가 급속도로 재구성되는 시기이기에 이 시기의 경험이 뇌 구성에 절대적이다. 사회생활에 가장 근간이 되는 자아정체성, 정서 등이 이 기간중에 형성된다. 과거에는 사춘기,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전 부모로부터의 분리, 변혁, 재편입 등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성인으로 성장해갔다. 일정 나이가 되어서 또래끼리 여행을 간다거나 돈을 벌고 사용해 본다거나 심지어는 몰래 술이나 담배, 연애를 하거나 하면서 위험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자유와 책임을 한단계씩 더 확보해가는 이정표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가상세계로 넘어오면서 이런 통과의례와 이정표들이 사라졌다. 10대도 되기전에 스마트폰을 접한 아이들은 너무 빨리 성인의 세계에 노출되어 버렸고, 가상세계에서만 살면서 현실세계에서의 중요한 경험을 못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미성숙한 아이로 남아있게 됐다.

두번째 문제: 스마트폰 기반 어린시절의 급부상

네개의 병폐: 사회성 결여, 수면결핍, 주의력 장애, 중독

위 그래프는 미국의 청소년들중 매일 SNS를 하는 사람들의 비율로 2015년에 접어들자 그 비율이 중학생부터 이미 75% 이상에 육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구결과 10대 아이들은 하루 평균 일곱시간을 스마트폰 등의 스크린을 보며 레져시간으로 즐긴다고 한다. 2024년의 한국의 상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이런 과다한 스마트폰 사용, 그리고 특히 SNS사용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조나탄 하이트는 크게 네가지를 이야기한다.

  • 첫번째 병폐는 사회성 결여이다. 친구들과 직접 얼굴보고 보내는 시간이 그전세대에 비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 두번째 병폐는 수면결핍이다.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아이들 수면의 절대량과 질 모두가 줄어들었다. 수면결핍은 우울증, 불안증, 인지부조화, 사고증가, 성적감소 등과 직접적 연관관계를 보인다. 
  • 세번째 병폐는 주의력 장애이다. 스마트폰에서 끊임없는 도파민자극에 익숙해진 뇌는 한가지에 집중하는 주의력을 저해시킨다. 그리고 이런 주의력 저해는 의사결정능력 저해로 이어진다. 
  • 네번째 병폐는 중독이다. 스마트폰 사용은 뇌를 도파민 분비에 중독시킨다. 도파민은 각성을 주지만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 도파민이 멈출때 불안, 강박, 불면증 등이 야기된다. 

왜 소셜미디어가 여자에게 더 치명적인가

위 네가지 병폐는 일반적인 스마트폰 사용에 해당하고 남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면, SNS의 폐해는 여성에게 더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소셜미디어 사용과 우울증 및 기타 정신질환은 강한 인과관계를 보이고, 여성에게서 이런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의 결과이다. 왜 그럴까?

근본적으로 이는 상대방과의 교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의 특성에 기반한다. 동기부여의 큰 두가지 카테고리는 1) 관심/영향력 증대 2) 상대와의 교감이다. 남자아이는 상대적으로 전자, 여자아이는 후자를 중요시 한다. 소셜미디어는 두번째 동기부여와 더 관련되어 있다. 상대와의 교감을 원하는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소셜미디어를 훨씬 더 많이사용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소셜미디어가 여자에게 치명적인 네가지 이유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

  • 첫째, 여자는 시각적 비교에 더 취약하다. 시각적인 비교를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인스타, 틱톡 등) 에서 횡행하는 외모에 대한 비교와 평가는 여자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평가하게 만들고 또 평가받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의해 진화된 “완벽주의” 외모의 기준에 더 취약한 것도 여자다. 
  • 둘째, 여자아이들의 공격성은 상대방의 평판이나 관계를 깨는방법으로 주로 나타나는데 반해 남자아이들의 공격성은 육체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소셜미디어는 여자아이들의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는 셀수없이 많은 방법을 제공한다. 
  • 셋째, 여자아이들이 감정표현에 더 적극적이고 전염성에 취약한데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전파되는 우울증과 불안에 여자아이들은 쉽게 전염된다. 
  • 넷째, 여자아이들은 남성의 성범죄, 성착취에 소셜미디어에서 더 많이 노출된다. 

이렇게 소셜미디어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를 더 많이 더 자주 덫에 빠트린다. 교감과 관계를 약속하지만 실제론 앗아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아이들은? 포르노, 게임, 그리고 사회 부적응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아이들의 정신건강도 2010년 이후 악화되었지만 악화의 정도는 더 천천히 일어났다. 남자아이들은 몸으로 놀고 교감하는 일반세계에서 벗어나 가상세계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은 어떤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에 비해 “사회진출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교육이나 고용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가상세계에 은둔하는 사회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가정과 공동체생활보단 온라인 세계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남자아이들은 무규율, 무질서의 세계에 더 익숙해져 갔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세계에서의 모험과 놀이에 의한 성장 기회는 박탈되었고, 성장과 성숙을 저해하는 다양한 가상세계의 해악에 노출되었다. 그 가장 큰 두가지 축은 “포르노”와 “게임“이다.

포르노로 인해 남자아이들은 많은 노력과 위험이 수반되는 현실세계의 도전 없이도 손쉽게 성욕을 해소할수 있게 됐다. 이는 진화에 의해 형성된 강력한 욕구 – 성욕 – 충족에 필수적이었던 성인으로의 사회적/육체적 발달이 이제는 기술발전에 의해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된 가장 좋은 예중 하나이다.  또다른 축이 비디오 게임이다. 비디오게임은 긍정적인 영향도 많이 주지만 약 7% 정도의 아이들에겐 중독 등 여러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현실세계에선 도저히 줄 수 없는 양의 자극을 줌으로써 남자아이들을 가상세계에 중독시키고 현실세계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영적인 퇴보

조나탄 하이트는 무신론자이지만 (불가지론자) 학자이다. 지식인이자 학자로서 그는 영적인 성장과 퇴보에 대해서 인지하고, 스마트폰이 가득 채운 어린시절이 영적인 퇴보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놀라운 통찰이다. 이하 살펴보자.

사람들은 도덕적이고 아름다운 일들을 보면 영적으로 더 신성한 것과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반대로 도덕적이지 않고 퇴폐적이며 혐오스러운 일을 보면 더 낮아지고 퇴보했다고 느낀다. 스마트폰에 기반한 삶은 전반적으로 우리삶을 영적으로 낮아지게 만들고 퇴보시킨다. 그건 우리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전반적인 기제 –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하는 등의 – 를 변화시킨다. 그건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행하는 영성을 증진키기는 여섯가지 행위와 양립할수 없다. 

  • 첫째, 영성증진을 위해선 “나”에서 벗어날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 의례, 공동체 의식 등. 가상세계는 모든것이 “나”에 기반한다. 
  • 둘째, 종교의식은 대부분 육체를 동반한다. 예를들어 성찬은 함께 음식을 먹는 행위이다. 가상세계는 육체를 동반하지 않는다. 
  • 셋째, 영성증진 과정은 무언가를 내려놓는 과정을 동반한다. 침묵, 명상, 묵상 등 일상의 자극과 복잡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신이나 영적인 것들에 마음을 열도록 공간을 만드는 행위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은 항상 끈임없이 우리 마음을 분주하게 하는 자극으로 가득차 있다.
  • 넷째, 자기초월이 필요한데 소셜미디어와 가상세계는 늘 “나”를 브랜딩화 하고 선전하게 만든다. 
  • 다섯째, 대부분의 종교는 타인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타인에 대한 판단을 적극 장려한다.
  • 여섯째, 자연은 우리에게 경외감을 주며 우리를 영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선 이런 경외감을 받을 길이 거의 없다.

우리안에 “신”만이 채울수 있는 공간/구멍이 있다는게 대부분의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가상세계는 그 구멍을 사소하고 수준낮은 것들로 메꾸려한다. 

세번째 문제: 한자녀, 사교육과 물질만능주의

이하는 The Anxious Generation에서 가져온 내용이 아닌 내 사견이다. 2020년대에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는건 어떨까? 놀이기반 어린시절의 소멸, 스마트폰 기반 어린시절의 급부상은 당연하고 여기에 세가지를 더하고 싶다. 한자녀, 학원/사교육 기반의 어린시절, 그리고 극도의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한 가상세계.

한자녀: 미디어 노출이 빨라도 너무 빠르고 많아도 너무 많다

위 사진은 잘 보면 우리주위에서 흔히 찾을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늘 흔히 보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아이있는 가정의 자녀가 하나다 보니 부모가 늘 놀아줄수 없는 환경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특히 식당에 가거나 공공장소에 가면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영상에서 오은영 박사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육아도우미로 쓰면 안된다고 일침을 가하시지만 한자녀 육아의 현실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부모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어서 애들도 늘 부모가 스마트폰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줘선 안된다는 관념은 전세계 탑 수준이고 아이들 땡깡에 대한 관용 (똘레랑스)는 최하 수준이다.

놀이기반 어린시절은 사교육에 뺏긴지 오래다

한국의 사교육과 아이들이 받는 경쟁과 성과에 대한 압박감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수준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놀이기반의 어린시절이 빠르게 사교육 기반의 어린시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놀이의 기능들 – 정서발달, 교감능력, 사회성 발달들은 건너뛴채 아이들은 성취와 경쟁의 논리의 세계에서 아주 전략적이고 아주 효율적이 되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건강한 정서 성장대신 우울증, 불안이 증가하는것이 당연한 구조이다.

물질만능주의가 넘치는 가상세계, 그리고 영적인 퇴보

한국은 유교와 자본주의의 나쁜 점 만을 가져왔다는 미국작가의 팩폭

세번째 폭탄은 물질만능주의이다.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은 한국이 다른사람을 판단하고 수치를 주는 유교의 단점과 물질만능주의라는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받아들였다며 이렇기에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일침을 날렸다. 동의하지 않을수 없는 인사이트이다.

한국의 물질만능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임을 보여주는 예는 쉽게 찾을수 있다. 이 영상에서 보면 모든 다른나라 출신의 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한국 출신 학생들은 “돈”이라고 이야기한다. 창업이나 일을 하는 동기를 묻는 질문에서 돈을 이야기하는 비중이 한국이 OECD국가중 가장 높다.

인스타그램등의 SNS와 인터넷은 이런 물질만능주의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재생산, 확대 강화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본인 거주지역이나 아파트 브랜드를 인스타 아이디로 삼고, 수많은 익명 답글이나 유투브/인스타 쇼츠가 물질만능주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조나단 하이트가 이야기한 영적인 퇴보를 이야기하고 싶다. 도덕적이며 아름답고 선한것들을 생각하고 꿈꾸며 순수하고 맑은 성인으로 성장하는 대신, 물질만능주의의 가상세계는 한국 아이들을 영적으로 퇴보시킨다. 냉소주의, 헛똑똑, 어른인척 하기, 이런 모습이 초등학생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은 이유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집단행동, 그리고 가정에서 할수 있는 일들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 아마 부분부분 동의하기 어렵다거나 질문을 유발하는 포인트도 있을수 있지만 아이키워보신 분 또는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대부분 많은 부분 동감하시리라. 하지만 해결책 이야기를 하자면 다들 무력감을 호소한다. 모두가 문제라고 하지만 도저히 해결책이 없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상황에서 나혼자 어떻게 하겠는가. 특히 청소년기에 접어든 애들에게 스마트폰을 뺐으려고 했다간 엄청난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과연 해결책이 있기는 한걸까. 이하 두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집단행동의 준비

조나탄 하이트는 책의 네번째 목차에서 집단행동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현상이 사회문화가 되면 그 흐름에 저항하거나 돌이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면 들어가는 비용과 에너지가 너무나 큰 것이다. 이를 돌이키는 것은 개인의 힘으론 불가능하고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크게 네가지 방법을 이야기한다.

  • 자발적인 집단행동 (예 특정 지역사회 학부모와 학교에서 스마트폰 금지 정책을 만들고 실천함)
  • 사회적인 합의 (예: 사회적으로 아이에게 핸드폰을 주는게 인권인지, 뺐는게 인권인지를 합의함)
  • 기술적인 해결책 (예: 부모없이는 성인인증이 없도록 인증방법을 바꿈)
  • 법과 제도 (예: 학생인권조례 등)

정부, 학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들

아래는 조나탄 하이트의 주장이다. 미국현실에 좀더 맞는것도 있어보이지만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이하 살펴보자. (실제 책에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정부: 정부는 아이들을 일반세계에서 과잉보호 하는 규제를 줄이고 가상세계에서 과소보호하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인터넷 성인의 기준을 13세에서 16세로 높이고, 회사로 하여금 성인과는 다른 기준으로 미성년자를 다루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 테크회사는 연령을 검증할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로 하여금 아이들의 기기들을 더 잘 관리할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아이들이 더 현실세계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하고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개선을 해야한다. 

학교: 학교는 교권이 흔들리고 아이들의 성적과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현상을 눈앞에 보고도 정작 가장 중요한 근본원인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두가지를 제안한다.

  • 첫째, 핸드폰 없는 학교. 수업시간에만 핸드폰을 못쓰게 하는것은 의미가 없다. 학교시간 내내 못쓰게 해야한다. 중학교 까지는 이렇게 해야한다. 
  • 둘째, 놀이가 많은 학교. 핸드폰 없이 운동장에 가서 아이들끼리 놀도록 하는 시간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특히 중학교 까지는.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할수 있게 계속 그런 과제를 내주고 장려하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아이들에게 더 직업관련 훈련이나 기술 교육을 받게 하는것도 좋다. 

부모: 부모의 역할은 “정원사”와 “목수”로 비유할수 있다. 목수는 직접 연장으로 다듬고 만들지만 정원사는 다듬고 가꾸며 정원이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더 많은 정원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 정원사 역할로서 현실세계에서 아이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더 많이 놀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독립성과 책임감 증진에 필수적이다. 정원사 역할로서 가상세계에서 줄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가상세계로의 진입 시작을 늦추는 것이다. 
  • 아이들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육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의 불안이다. 부모는 본인의 불안을 잘 다스리고 가상세계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현실세계에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의 기회를 계속 주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에서 할수 있는 일들: Tech-wise family

위 영상은 부모의 핸드폰 사용에 대한 아이들의 고백이다. 사실 스마트폰과의 전쟁은 우리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아이들이 아주 어릴때. 이때 부모가 주로 핸드폰을 한다면 아이들도 그걸 당연시 여기고 나중에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가질 나이가 되면 더욱 통제불가능이 된다.

이 영상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에 대해 다룬 “Tech wise family”란 책의 소개영상이다. 이제는 스마트폰, SNS, 인터넷 없이는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집 밖에서 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가장 큰 전쟁터, 그리고 가장 싸워볼만한 전쟁터는 집 안일수 있다. 테크가 집 안에서 적절한 위치에 놓일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마트폰 중독을 야기하는 충동과 욕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루함, 게으름, 시기, 주의력 장애, 음욕, 욕심, 이런것들이 스마트폰 중독을 부추기고 가상세계에서 확대된다. 이거에 대항하려면? 역시 우리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지혜가 필요하다. 성품, 용기, 인내, 지혜와 같은. 그래서 가정의 원칙과 문화들이 성품, 용기, 인내, 지혜를 길러낼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야 하고, 그럴때 우린 “기술에 의해 문제가 생긴 가족” 에서 “기술을 잘 다루는 가족” 이 될 수 있다.

참 한국 현실에선 쉽지 않은 이야기 임을 잘 안다.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아주 어리고 핸드폰이 없을때 부터 저녁시간 (6-9)을 핸드폰 없는 시간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부모부터 절대 핸드폰을 하지 않고 이 시간은 절대 스마트폰이나 미디어가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늘 주지시킨다. 그럴려면 부모로서도 많은 노력과 참을성이 필요하리라. 하지만 스마트폰 감옥을 사용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때 우리 아이들을 스마트폰에서 지키는 큰 기반이 될것임을 확신한다.

마치며: 아이들을 화성에서 데려오자

스마트폰 SNS가 우리 아이들, 다음세대에게 미치고 있는 악영향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난 조나탄 하이트와 견해를 같이한다. 그건 마치 화성에서 아이를 키우는것과 같은 실험이었다.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 어떤 억만장자 기업가가 아이들을 화성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당신의 아이를 보내겠는가

부모라면 이런 익숙치 않은 질문에 대답부터 하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할것이다. 자 여기 – 화성에서 자란다는건 인류역사상 지구의 중력과 환경에 길들여지게 진화한 몸이 완전히 새로운 중력과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적응된 몸은 나중에 지구에서 자란 몸과 완전히 다른 상태일수 있고, 골육종, 골다공증, 각종 질병에 걸릴확율이 예측불가능하게 높아질수 있다. 자 이제 당신은 당신의 자녀를 보내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만약 부모의 동의없이 애들을 화성에 보내버린 기업이 있다면 당신은 고소하고 엄청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21세기에 인터넷/모바일 기술 발전과 함께 테크기업들은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완전히 다른 영향을 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었다. 광고수익이란 모델에 기반해 모두가 가장 오랜시간동안 자신의 서비스를 쓰도록 고도의 머신러닝/AI기술에 의해 설계된 제품은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이런 영향에 대한 연구에는 극히 소극적이고 부모의 동의를 받는 절차도 형식에 불과하다. 일부 기업은 담배회사와 비슷하게 행동하다 – 매우 중독적인 제품을 만들고 자신의 제품에 제동을 걸수 있는 규제에 반하는 활발한 로비를 진행하는. 

물론 이런 테크회사가 담배회사와 같다는건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성인에겐 분명 유용한 도구일수 있다. 하지만 욕구제어 등을 총괄하는 전두엽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아동/청소년에겐 담배 이상으로 위험할수 있다. 사춘기 전 또는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은 사회적 비교와 인식에 극히 민감하여 소셜미디어의 중독성이나 해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을수 있다. 10대 이전 아이들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지난 10년은 아이들을 화성에서 자라게 한 집단 실험에 가깝다. 이제 통계 결과가 이 실험이 처참하게 실패했음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아이들을 데려오자.

마치며: 잘못 끼워진 단추는 빨리 바꿔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면서 한국이 시스템적으로 첫단추를 잘 끼운 부분을 여럿 발견했다. 몇가지를 꼽자면. 1) 의료제도 2) 마약/총기류 3) 음식문화/제도 이다.

의료제도는 너무 잘 알려진 주제라 큰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잠깐만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의료와 교육은 공공 성격이 있어서 시장에 두면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영역이다. 의료보험을 예로 들자면 시장에 맡겨두면 병에 걸릴 확률이 높고 병원비를 많이 쓸 사람 중심으로 보험가입 유인이 높기에 점점 보험회사 입장에선 받고 싶지 않는 사람만 남게된다 (경제학적 용어로 개살구 현상). 그래서 강제적으로 모두를 보험에 가입시키는게 필요하다. 한국은 그 공공보험이 매우 강력하고 미국은 공공보험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간에 전체로 다 맡겨버렸을때 발생하는 수많은 시장실패의 결과를 미국에서 의료제도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느낀다.

총기나 마약도 마찬가지이다. 마약이 많이 커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아직 청정지역이다. 미국은 자유의 미명하에 총기 규제를 할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결과는? 한국사람으로선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이다.

마지막으로 음식문화. 이건 문화적인 부분도 있지만 제도적인 부분도 크다. 담배와의 싸움에서 미국은 승리했지만 거대 음식 기업들과의 싸움에선 패배했다. 점점더 많은 음식이 고도로 가공된 식품이 되었고 몇몇 음식기업 카르텔의 힘이 절대적이 되면서 정치적인 힘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공립학교 급식이 냉동피자와 크래커가 되는 지경까지 왔다. 일반적으로 가축을 키우는건 거의 불가능하기에 대부분 마트나 식당에서 찾을수 있는 육류는 다 유전자변형 가축이나 그런 사료를 먹고자란 가축이다.

국뽕이 차오르는가? 괜찮다 그럴수도 있다. 그럼 이제 스마트폰도 좀더 잘썼으면 한다. 스마트폰관련 규제와 시스템에 있어서 한국은 단연코 전세계적으로 가장 안좋은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늘 핸드폰을 하는 나라. 이제 그게 10살도 안된 아이들에게 까지 내려가고 있다. 더 길어지면 이 단추는 영영 못 바꿔 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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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5 comments

  1. bc's avatar
    bc

    산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친구들에게 공유합니다. 다음 뉴스레터 또 기다릴게요. 그동안 잘 지내시구요. ☀️

  2. rachel0804blog's avatar

    안녕하세요, 산님.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약 10여년 전 2013년 스탠포드 공부중이실 때 이 블로그 통해 글 보고 인사드리고 학교로 직접 찾아뵈었던 정현수(Justin) 이라고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귀한 시간 내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 해 주셨던 것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연히 옛날 생각이 나 블로그 방문해봤는데, 여전히 활동 중이셔서 기쁜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서울로 돌아오신 듯 한데, 기회가 닿는다면 뵙고 식사 대접이라도 하면 좋겠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연말 감기 유의하셔요. 감사합니다.

  3. rachel0804blog's avatar

    안녕하세요, 산님.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약 10여년 전 2013년 스탠포드 공부중이실 때 이 블로그 통해 글 보고 인사드리고 학교로 직접 찾아뵈었던 정현수(Justin) 이라고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귀한 시간 내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 해 주셨던 것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연히 옛날 생각이 나 블로그 방문해봤는데, 여전히 활동 중이셔서 기쁜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서울로 돌아오신 듯 한데, 기회가 닿는다면 뵙고 식사 대접이라도 하면 좋겠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연말 감기 유의하셔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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