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며#6 한국으로 갈 것인가

이번 글은 지난 11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그 여섯번째 이야기다.


한국과 싱가폴에 대한 생각

악순환에 빠져 허덕이다가 소망을 붙잡고 버티던 2022년의 상반기였다. 나와 나이또래가 비슷한, 또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나왔던 주위분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같이 보던 한국인 친구들이 한국으로 가는 일이 몇번 생겼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에게서 들은 한국으로 가는 이유는 대략 아래와 같았다.

  • 미국에서 계속 커리어를 키우는 것에 비해 한국에 가면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일할 수 있다 (특히 커리어의 중반을 지나는 40대 이후).
  • 아이들이 아직 어릴때 한국에 갈수 있다. 아이들이 너무 크면 어딘가로 움직이는게 훨씬 힘들고 한국의 초등교육은 매우 잘되어 있지만 고등교육은 여전히 우리때와 비슷한 입시위주의 교육이다.
  • 한국의 테크업계가 많이 발전하면서 보상이나 대우 측면에서도 미국과 충분히 경쟁력있는 수준으로 왔다.
  •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들기전에 한국에서 손주손녀도 보여드리고 시간 보내고 싶다.

다들 지극히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가는 지인들을 보면서 내게도 언제 기회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커리어와는 조금 다른, 내가 원하는 무브먼트 (movement)가 한국에서 더 일어날 수 있는 좋은 퍼즐조각들이 보이기도 했다. 일과 영성 (Faith and Work) 무브먼트에서 미국의 다양한 단체들과 매우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던 친한 친구가 한국으로 가게된 것이다. 이 친구와 함께, 미국에서 내가 경험하고 접했던 일과 영성의 여러 무브먼트를 한국으로 가져갈수만 있다면 너무나 즐겁고 신날것 같았다. 한국의 다음 세대들이 일에서 의미를 찾고, 수고와 레저의 악순환이 아닌 일과 쉼의 선순환을 만들고, 본인의 의미와 선순환을 넘어서 사회를 더 이롭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건 내가 살면서 가장 풀고 싶은 문제이자 인생의 미션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여름에 마치 한국, 싱가폴에 출장갈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대해선 대략 어떤 상황인지 알것 같았지만 싱가폴은 좀더 막연했다. 싱가폴 가서 여러 지인들을 만나면서 느낀점을 적어본다면 아래와 같다.

  • 싱가폴은 아시아의 서방과도 같음. 아시아로서의 장점 (한국과 가까움, 한국인을 좋아함, 인종적으로 차별받을 우려 없고 안전하며 예의를 중요시 여기고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특유의 아시아 문화가 있음)과 서구사회의 장점 (가족중심의 문화, 합리적 실용주의, 위계보다는 역할을 중시, 폭력적인 상명하복이나 건강치 않은 술문화를 보기어려움, 너무 북적하지 않고 개인이 자기 페이스대로 살수 있음)을 다 가진 거의 유일한 곳 (홍콩이 중국영향권에 완전히 들어간 이후)으로 볼 수 있음
  • 싱가폴 산업은 테크와 금융이 다양하고, 특히 테크업계의 경우 아시아 헤드쿼터 또는 글로벌 헤드쿼터들이 있는대신 인력풀은 미국 등에 비해 얇아서 승진 등의 기회가 많음.
  • 싱가폴 현지인과 엑스펫 (Expat) 모두에게 만족도가 상당히 높음.
  • 물가가 비싸고 진입장벽이 낮지 않음. 세금은 싸지만 집값, 의료비 등이 상당하고, 비자를 받는데도 오래걸림. 정착하는데까지 들어가는 수고는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에 정착하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듯.

결론적으로 싱가폴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으로 기회가 있다면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가서 새로 정착하고 살기엔 해결해야하는 부분과 넘어야하는 산이 상당히 많이 느껴졌다. 마음으로 부터 아쉽지만 싱가폴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퍼포먼스 극대화 PM으로 새로운 곳에 오퍼를 받다

공교롭게 이당시 한국의 몇군데 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야기해봐서 손해볼것 없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족들을 다 데리고 이주하는 생각을 염두에 뒀기에, 어느정도 규모가 있어 가족들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회사들과만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야기를 해볼수록 어느 한곳에 조금더 마음이 갔고 핏이 있다고 느꼈다. 사실 지난 일년여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몰로코에서 머신러닝을 다루는 광고 PM으로 일하는 그 일 자체는 나와 참 잘 맞는다고 느껴왔다. 워낙에 효율극대화를 좋아하는 성향이기에 (친구들은 내 별명을 맥시마이저 (Maximizer)로 부르기도 했다) 머신러닝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 일,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보며 논리싸움을 하는 일 자체는 내게는 수학문제를 푸는것 같은 쾌감과 즐거움이었다. 또 제품매니저(PM)로서 여러 팀을 조율하고 의견을 모아 결과를 만들어 가는 일에도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다. 이제 40대에 하나의 전공을 선택한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퍼포먼스/옵티마이제이션 (optimization) PM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락이 온 회사중 한곳이 딱 그런 역할의 PM을 찾고 있었다. 바로 쿠팡 광고사업부 였다. 그리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오퍼가 나왔다.

이게 붙들었던 소망에 대한 답일까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에너지도 힘도 빠져 있었던 나에게, 한국으로 오라는 오퍼는 적잖은 힘을 줬다. 오퍼가 오기 직전, 그리고 온 후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갈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각도로 고민했다. 아래 간단히 소개하고 이하의 글에서 더 자세히 나누겠다.

1. 커리어 (Career): 커리어 적으론 지난 일년간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에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변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좀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한국/아시아로 장을 바꿔서 40대를 보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한국과 싱가폴에 있는 지인들도 대부분 한국 테크 업계에서 지금시기에 일해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아래 한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지만 커리어적으로 이게 맞는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여전히 남았다. 이건 다음 글에서 자세히 나누겠다.

글로벌에서 봤을때 한국시장은 지금까지 테스팅베드 (제품의 시장에 대한 반응을 테스트하는곳)의 성격이 강했지. 하지만 최근 테크업계가 많이 성장하면서 이젠 테스팅베드를 넘어 서비스와 제품의 완성도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을 가지는 기업들이 꽤 나오고 있어. 한국 소비자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잖아. 거기에 무한 경쟁이 더해져 최고수준의 서비스가 나오는거지. 일해볼만 할거야.

반면 인력풀에서도 기회가 있어. 특히 제품을 잘 이해하고 리드할만할 사람이 많지 않아. 개발자 리더는 훌륭한 분이 많고 사업분야도 마찬가진데 제품쪽은 인력풀이 넓지 않아. 할일이 많을거야.

2. 가족 (Family) : 가족을 봤을때 가장 걱정이 됐던 것은 아내이다. 아이들은 미국생활의 여러 장점 (가족중심적 문화, 자연친화적 환경 등)이 좀 아쉬울수도 있지만 아직 어리기에 잘 적응할 것 같았다. 우리부모님, 형제 식구들과 근처에서 살 수 있는것도 너무나 끌렸다. 하지만 아내의 부모님과 동생은 미국에 있기에 워낙 가족중심적인 아내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됐다. 또 워낙에 바쁜 한국 사회에서 우리각자가 편리하게 이것저것 잘 하는것 말고 가족으로서 단단해질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다음 글에서 더 나눠본다.

3. 기타 현실적인 문제들 (Others) : 살면서 처음으로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제대로 들었다. 한번도 재테크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아본 적이 없을정도로 난 이상주의자이자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주로 에너지를 쏟고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40대가 되자 앞선 글에서도 소개했듯 자산을 모아야겠다는, 그럴때가 됐다는 생각이 꽤나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한국에 오면 조금씩이나마 자산이 모일수 있을것 같았다.

4. 신앙 (Faith) : 오랫동안 내가 붙들었던 소망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마른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심장이 다시 뛸 것이고 신나게 일하며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할 것이다” 의 응답이 한국으로 가는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을 내리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것 같았지만 이게 내가 억지로 밀어붙여서 받은 답인지 헷갈렸다. 워낙에 자리지키며 순종의 자리에서 문제를 정명승부하는걸 좋아하는 아내는 내가 어려움을 정면승부하기 보다는 피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이후 글에서 더 자세히 나누겠다.


다음글: 미국을 떠나며#7 어려웠던 결정의 시간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6 comments

  1. Pingback: 미국을 떠나며#5 붙들었던 소망 | San's diary

  2. love

    산님은 정리의 달인 같아요 ㅎ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생각들이 정신없이 흩어져있을텐데 결국엔 그런 걸 다 모아서 정리해내고 정의해내고 블로그로까지 써주셔서 그런걸 그냥 지나보내기 바쁜 저 같은 사람들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해주시네요.
    아 드디어 미국에서의 챕터가 끝나는군요! 쿠팡 광고사업부라니! 앞으로의 쿠팡 기대해봐야겠네요!
    미국의 교회나 패밀리십이 워낙 전통적이고 안정적이라 거기에 역시 잘 적응하셨나 싶으셨는데 또 체질상 좀이 쑤셨나봐요. 사실 한국 씬에서 더 하실 일들이 많을 거 같으시니 기대됩니다. 응원합니다! 가족들 모두 한국에서의 주어질 시간들도 풍성하시길!

    • 네 부족한 제 삶의 나눔에 이렇게 반응해 주시니 많이 감사해요. 체질상 힘들었던게 맞는 것 같습니다 ^^ 주 안에서 님도 풍성 하시길

  3. Brian

    안녕하세요! 백산님!
    저도 외국계회사에 다니면서 앞으로 어떤 location에서 근무하는 것이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싱가폴도 좋은 선택지가 될수 있다는 Insight를 얻고 갑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싱가폴이 다양한 회사의 asia 본부 or headquarter가 많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백산님!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많이 응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방향으로 백산님을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4. Pingback: 미국을 떠나며#9 회고 그리고 작별인사 | San'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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