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지난 11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그 다섯번째 이야기다.
- 미국을 떠나며#1_들어가며 – 아픔을 나눈다는것
- 미국을 떠나며#2_아이덴티티가 흔들리며 악순환에 빠지다
- 미국을 떠나며#3_맘대로 되지 않은 여러 시도들
- 미국을 떠나며#4_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
중년의 절박한 호소
중년 학자로 잘 알려진 한성열 교수님의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 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되고 타협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스스로 나이들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한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살았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그리고 노년이 되면 아무것도 할수 없을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힘과 자원이 남아있을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끝마칠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과 같은 절대자에게 그런 기회를 한번만 달라고 타엽하게 된다. 이들의 절박한 심정은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라는 간절한 호소로 요약할 수 있다.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간절한 호소 – 나의 마음, 기도와 연결된다. 나의 호소는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라기 보다는 내가 살아날수 있게 해달라 라는 거였다. 마른뼈들에 숨을 불어넣었을때 생기와 함께 살아나는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처럼 내 삶에 생기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나왔다.
붙들었던 소망
에너지 잔고는 이미 바닥난지 오래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이 버거운 쉽지 않은 시기였지만 아직 내게 남은게 하나 있었다. 내가 놓지 않은게, 놓을수 없었던게 하나 있었다. 그건 소망이다. 부적절하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마음 (Inadequecy)와 낮아진 자존감, 외로움, 닫힌 마음, 우울증상 등으로 심장이 꺼진듯한 일상이었지만 내겐 소망이 있었다. 이건 절대 놓칠수가 없었다. 그리고 절대 놓지 않으신다는 신뢰가 있었다. 이미 절대자의 선하심과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신비를 체험했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소망마저 놓치진 않을수 있었다.
나의 소망은 결국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마른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심장이 다시 뛸 것이고 신나게 일하며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할 것이다” 였다.
아래는 이당시에 끄적거려 본 것이다. 원망과 절망은 싫으니 난 우울을 차라리 택하고 있었다. 그 늪에서 내가 놓치 않았던 동앗줄이 소망이다.
- 소망, 절망, 원망
-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표출 – 원망
- 부정적인 감정을 안으로 표출하거나 차단 – 절망
- 부정적인 감정을 차단 – 우울
- 무언가를 붙잡음 – 소망
너무나 작고 부끄러운 마음마저 받아주신 은혜
그렇지만 기도의 자리에 가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마음이 닫히자 기도할말이 없었다. 감사도 없고 기쁨도 없는데 기도의 자리에 가서 뭔가를 바꿔달라고 늘 똑같이 조르는건 나의 “inadequecy – 부적당함”을 그 키우게 되서 전혀 내키지 않았다.
위에서 소개한 나의 소망 –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마른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심장이 다시 뛸 것이고 신나게 일하며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할 것이다”의 주어가 결국 ‘나’ 인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부끄러웠다. 나의 기도도 너무 작고 나도 너무 작았다.
그러던 어느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예배의 자리에 가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너무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듯 느껴졌다.
산아, 너의 기도가 너무 작다고? 괜찮다. 그런 말 말거라. 이거에서 시작하면 되지. 그래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걱정할거 없다.
내가 니 마음 안다. 얼마나 힘든 시기인 줄도. 조금만 더 참으렴. 분명 너가 바라는 것처럼 새로운 생기와 신명나는 일거리와 재밌는 모험들이 또 너를 기다리고 있어. 걱정할거 하나도 없다. 넌 신나게 일하고 살거야.
산아, 사실 니가 지금 상상도 못할정도로, 내가 설명해줘도 니가 이해할수 없는 많은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넌 사회를 변화시켜야지. 세대를 변화시켜야지. 그럼 니가 내 아들인데. 니가 누군데. 넌 할수 있다. 내가 너를 믿는다. 큰 꿈 품자꾸나.
산아, 교회가 뭔지아니. 교회는 세단계야. 첫째, 마음을 풀어주는것. 둘째, 비전을 제시하는것. 셋째, 끊임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용하면서 응원하는거란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응어리가 있어. 그걸 잘 듣고 끄집어내주고 어루만져 줘야 사람들은 비로소 숨통을 트고 새로운것을 듣고 볼 수 있지. 그러면 비전을 제시해 줘야되.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말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주위가 무엇인지, 어떤 비전이 있는지 이런것들을 볼 수 있게. 그리고 나선 그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 시도하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때 끊임없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거란다.
니가 바로 그 교회야. 주위사람들 부터 그 교회를 만들어가보자.
너무나 기다리던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그 따뜻한 품에 안겨 많이 울었다. 이날의 기도는 많은 힘이 됐다. 일상에서 변한것은 없었지만 붙들고 있던 소망의 동앗줄이 더 단단해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를 믿어주고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목소리
앞선글 미국을 떠나며(4)_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 에도 나눴듯 내게는 나를 믿어주는 목소리가 절실했다. 위의 기도와 은혜의 체험은 목마른 내게 생수와 같았고 꺼져버린것 같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들 – 가슴뛰는 일, 미션, 내가 쓸모있다고 느껴지는 공간과 사람들, 말과 생각을 주고받을 친구, 자산 (Asset) – 진정한 자산인 사람과 관계들 – 이 모든것들을 짧은 순간, 내가 다 형언하고 표현할수 없는 언어로 그분은 내게 말씀하셨고 불어넣으셨다. 마른뼈 같았던 나의 삶에 생기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날의 기도이후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난 더 단단히 나의 소망을 붙들수 있었다.
니가 지금 상상도 못할정도로, 내가 설명해줘도 니가 이해할수 없는 많은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넌 사회를 변화시켜야지. 세대를 변화시켜야지. 그럼 니가 내 아들인데. 니가 누군데. 넌 할수 있다. 내가 너를 믿는다. 큰 꿈 품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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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 우리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자산, 재테크보다 크신 하나님이 크십니다.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달려갑시다!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담대함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