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며#2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며 악순환에 빠지다

이번 글은 지난 11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이번글은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멋진 일꾼”이라는 나의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다

전에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오빠가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이 뭐야?“.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산, 대단해. 이건 정말 너만 할수 있는것 같아. 정말 멋져”. 이 질문은 본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생각해볼수 있게한다. 난 어디에서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며 나를 실현하는가. 나의 경우는 정말 멋지고 의미있는 도전을 하고 기어이 미션을 완수해냈을때 그것을 느낀다. 내게 있어 일은 레져/쉼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며, 놀이이고, 자아실현의 중요한 부분이다. 좀 쑥쓰럽지만 단어를 붙여본다면 “멋진 일꾼 (Awesome Worker)” 은 내 자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바로 그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는 일이 일어났다. 직장의 성과평가(performance review)에서 Fair 등급을 받은 것이다 (1-5 ranking 중 3). 직전 스타트업에선 내가 늘 성과평가(performance review)를 주는 입장이었고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이번 회사에 와선 늘 적어도 기대이상(beyond expectation) (4)이상의 리뷰를 받아왔다. 3은 처음보는 숫자였다. 매니저는 막 승진한 후고 PM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오래되지 않은 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거라고 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텐티티가 흔들리자 전에는 보이지 않는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리며 불안감이 커져갔다. 여름에 한국에 가서 만난 주위사람들은 죄다 앞서나가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 회사의 대표나 중역을 맡든, 투자자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든 – 분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반면 난 또다시 새로운 직군 – PM으로 전환하여 또 바닥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면 된다고, 이 일도 재밌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생각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니 갑자기 현타가 왔달까. 발밑에 든든하게 의지해왔던 무언가가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신앙의 성장이 멈추다

난 2019년 일로부터의 자유를 체험하고 시작된 새로운 여정에서 다양한 신앙의 성장과 재미를 맛보는 데에 푹 빠져있었다. 성령사역, Faith and Work 사역 등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사역가운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배우고 느끼고 연습해 보는것은 내 삶의 또하나의 큰 축이었다. 거기서 느낀것을 바탕으로 여러 글도 써보고, 꿈도 꿔보고, 부족하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기쁨과 재미, 에너지를 받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순간 사라졌다. “멋진 일꾼”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흔들린게 먼저인지, 신앙의 성장이 멈춘게 먼저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아마 전자가 아닌가 싶다. 한쪽 균형이 무너지자 다른쪽 벽도 허물어지는게 느껴졌다. 그전엔 너무 큰 의미를 갖던 다양한 교제의 시간, 기도의 시간, 내가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던 시간들에서 더의상 그만큼의 무게를 느껴지지 않았다.

교회에서 열정을 다해 노력하던 Faith and Work 사역을 한템포 늦춰서 쉬엄쉬엄 가기 시작했다. 청소년 사역은 이미 주일이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하고 있다고 느끼지도 못했고 그냥 의무감과 관성으로 하고 있었다. 한국 테크업계 사람들과 “좋은 일” 이 뭔지, “우리는 왜 일하는지” 이런걸 이야기해보는 컨퍼런스를 기획하는것도 중단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신앙과 사역들이 주던 기쁨과 에너지와 선순환들이 사라져갔다.

두려움의 엄습 – 이게 다인가

중년학자로 잘 알려진 고려대 한성열 교수님의 그의 저서 “이제는 나로서 살아야 한다” 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년이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젋었을 때의 꿈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삶이란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비록 안정적으로 느껴질지라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자각과 노년기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적 고려가 중년기를 절박하게 만든다.

일을 통한 아이덴티티가 흔들리고 신앙의 성장이 멈추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게 다인가. 나이의 무게가 느껴졌다. 내년이면 만으로도 40이라 이제 내게 남은 찬스는 많게 잡아도 몇번 되지 않는다. 모아둔 돈도 없고 자산도 없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곧 돈들어갈건 더 많아질 터였다. 부모님도 아직 은퇴도 못하셨고 부모님 은퇴계획도 불분명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자 나의 가장 가슴 깊숙히 있는 두려움 – 내 삶이 그저그런 평범하고 재미없는 삶 (mediocre life) 으로 끝날지 모른다 – 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생활의 무거움이 나를 덮치다

이렇게 되자 그전엔 버틸만했고 감사한것도 많았던 나의 일상이 갑자기 몇배로 무겁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사소한 짜증에도 화가 났고 일상은 점점 그 색과 맛을 일어갔다. 쳇바퀴 도는듯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면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일상이 시작됐다. 심지어는 모바일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난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게임 등을 하고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보다는 쌓인다). 머리를 식히려고 모바일 게임을 하자 그때는 잠시 일상의 무게를 잊을수 있었지만 끝나고 나면 기분이 더 안좋아졌다. 아내는 2021년엔 주중엔 육아, 금/토/일은 교회 사역으로 너무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어서 아내와의 intimacy, 소통도 쉽지 않았다. 내가 자꾸 징징대는 남편이 되는것 같아서 더 맘에 안들고 마음이 닫히다 보니 아내와 대화도 잘 될리가 없었다. 이렇게 악순환이 시작됐고 난 탈출구를 모른채 점점더 침잠해갔다.

Work-Rest가 아닌 Toil-Leisure의 악순환

2:43분 부분부터 Andy Crouch의 Work/Rest, Toil/Leisur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않는 작가/학자 Andy Crouch는 얼마전에 있었던 Faith Driven Entrepreneur 컨퍼런스에서 일과 쉼, 수고와 레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혹자는 쉬기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좋은 일 없이는 좋은 쉼도 있을수 없다. 일로부터 기쁨, 의미, 성취감, 무언가에 집중할때 느껴지는 몰입감, 관계가 주는 윤택함과 결과에서 느껴지는 보람 등이 있을때 비로소 우리는 푹, 아주 잘 쉴수 있다. 일과 쉼은 이렇게 상호보완적이다.

하지만 만약 일에서 아무런 기쁨도 만족도 의미도 느낄수 없다면? 일이 수고와 고통뿐이라면? 그러면 우리는 제대로 쉴수 없다. 지친 영혼을 달래줄 그 무엇에든 매달리게 된다. 일이 아무런 의미와 열매없는 수고가 될때 쉼은 아무런 의미와 열매없는 탈출이 된다. 이하 이런 쉼을 “레저”라 부른다. 삶의 무게에 허덕일때, 우리는 그런 삶을 잠깐이라도 잊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에든 – 그것이 핸드폰이든 게임이든 넷플릭스든 인터넷 음란물이든 – 집착하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인류역사의 대부분에는 수고하는 계층, 레저를 누리는 계층이 따로 존재해왔다. 극소수의 레저층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수고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테크로 대표되는 현대 물질문명의 발달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레저를 선물했다. 핸드폰이라는 주머니속 컴퓨터가 그 변화의 상징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일과 휴식, 수고와 레저는 어떤 모습일까? 저녁식사를 예로 들어보자. 저녁을 만들고 밥을 먹는 행동은 일과 휴식이 될수 있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힘을 합쳐 요리를 하고 그 과정에서 팀워크, 가족간의 사랑을 느끼며 일한 후에, 식사를 즐기고 담소를 나누며 휴식할 수 있다. 반면 레저는 너무나 편리한 배달음식으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는 모습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우리삶을 가득채우고 있는 레저가 우리에게 축복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우리모두는 너무 피곤하고 지쳐있다. 레저는 결코 우리삶에 꼭 필요한 쉼을 주지 못한다. 일상의 고통을 잠시 잊게해주지만,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데는 속수무책이다.

우리에겐 좋은 일과 좋은 쉼이 필요하다. 더욱더 많은 좋은 “일”을 만들때, “쉼”이 회복되고 우리는 수고와 레저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수 있다.

이당시 나의 삶은 수고와 레저의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쳇바퀴도는 일상에서 허덕이며 일하고 집에와서 애셋 어떻게든 재우고 나면 핸드폰이 주는 작은 레저, 작은 탈출의 도파민에 의존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내 마음도 몸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수고와 레저의 악순환의 고리는 점점더 깊어져 갔다.


다음글: 미국을 떠나며#3_맘대로 되지 않은 여러 시도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1 comments

  1. Pingback: 미국을 떠나며(3)_맘대로 되지 않은 여러 시도들 | San's diary

  2. Pingback: 미국을 떠나며(4)_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 | San's diary

  3. Pingback: 미국을 떠나며(5)_붙들었던 소망 | San's diary

  4. Pingback: 미국을 떠나며#1 들어가며-아픔을 나눈다는것 | San's diary

  5. Pingback: 미국을 떠나며#6_한국으로 갈 것인가 | San's diary

  6. Brian

    솔직한 경험을 공유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예배는 드리지만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었습니다.
    수고와 레저의 악순환을 저도 겪었기에 충분히 그 마음 공감합니다.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 Pingback: 미국을 떠나며#7 어려웠던 결정의 시간 | San's diary

  8. Pingback: 미국을 떠나며#8 아낌없이 받은 소망 | San's diary

  9. Pingback: 미국을 떠나며#8 넘치도록 받은 소망 | San's diary

  10. Pingback: 미국을 떠나며#9 회고 그리고 작별인사 | San's diary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