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며#3 맘대로 되지 않은 여러 시도들

이번 글은 지난 11 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그 세번째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걱정이 가슴을 울리다 – 부적절함(Inadequacy)

이 시기 내가 주로 느낀 감정은 외로움, 우울, 짜증 등도 있지만 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Inadequacy 였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부적절함, 보잘것없게 느껴짐 이런 단어가 생각난다. 잘못끼어진 단추, 조각, 미운오리 새끼 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내가 있는 공간과 내 환경에 지금 나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부적절, 부적당하다고 느꼈다.

연말에 부모님이 미국을 방문하셨다. 즐겁게 샌디엔고 레고랜드를 여행하고 오는 길에 아버지가 지나가듯이 한두마디 하셨다.

“직장에선 잘 지내고 있는거니? 앞으로 계획이 뭐니? 이젠 뭔가 좀 확실한 결과들을 내야지”

사실 내 마음의 가장 든든했던 기둥중 하나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인정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기뻐해주는것 (delighted), 자랑스러워 해주는것 (proud)이 내 자신감과 자존감의 근간이었다. 나이 40이 되어 일흔을 훨씬 넘기고도 여전히 생활전선을 뛰고 있는 아버지에게, 나를 늘 최고라며 인정해주고 자랑스러워해주고 기뻐해줬던 아버지에게 듣는 걱정은 생각보다 아팠다. 아, 난 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있구나. 아,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구나. Inadequacy – 내가 있을곳에 있지 않은 느낌이 더 커졌다.

아내가 사역을 내려놓다

2021년 하반기에는 금토일이 무서웠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까지 이어지는 아내의 사역이 부담됐다. 특히 일요일 아침에 먼저 출근(?)한 아내를 뒤로하고 애 셋을 준비시켜 교회에 갈때면 늘 뭔가 일이 터졌고 교회에 도착할 무렵이면 내안에 남은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다. 일요일은 가장 기대되지 않는 날이 되었다. 막내는 또 아토피, 천식으로 자주 아파서 같이 병원을 지키고, 아내가 사역하게되면 내가 병원에 있는 날들도 꽤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내와도 어렵게 몇번 이야기를 했고, 사실 아내도 내가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신앙 가운데에서 가정을 더 보살펴여 겠다는 마음을 받고 사역을 내려놓을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사역을 어찌됐던 제대로 서포트 못하고 부담줘서 내려놓게 한는것 같아서 맘이 안좋았다. 미안하고 고맙고 복잡했는데 내꼴이 영 별로다 보니 그런것도 제대로 표현못했다.

교회에선 아내를 많이 붙잡았고 아쉬어했다. 참 아내가 지난 2년반간 유치부 전도사로 Joyland를 섬기면서 많은 열매가 있었고 사역도 너무나 잘되가고 있었기에 당연했다. 그 과정에 있는것이 맘이 쉽지 않았다. 아내가 내려놓는게 기정사실이 되고 정말 많은 사람들 – 부모님들과 목회진과 등등이 아내한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난 아내가 빛나는 자리에서 내려놓게 한 속좁은 남편인것 같아서 마음이 더 작아졌다. 사소한 거에도 맘이 걸리는 내 작음이 더 맘에 안들어서 inadequecy가 커져갔다. 상처받기 싫어서 맘을 닫아버렸다. 안그래도 점점더 멀게 느껴지던 교회공동체가 더 멀게 느껴졌다.

시도하는 족족 작심삼일

2022년을 맞이하며 다시한번 힘을 내보자고 마음을 잡았다. 무언가 변화가 절실했다. 그래 뭐라도 해보자.

먼저 내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서 아내와 이야기해서 일주일에 며칠은 회사에 아주 일찍 가기로 했다. 마침 회사도 레드우트시티 다운타운의 좋은 공간으로 이전하여 참 쾌적한 공간도 생긴터였다.

글을 짧게라도 써보고 싶어서 일주일에 며칠, 트위터에 글을 썼다. 쓸때면 좋았지만 피드백도 거의 없었고 (그걸 원해서 페이스북 같은 매체가 아닌 트위터에 쓴거지만) 계속하게 되지는 않았다.

코칭을 더 배우고 시도해보고 싶어서 관련 책 (코액티브 코칭)도 사보고 이미 코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나름 주위를 통해 프랙티스도 해봤다. 코칭은 참 받을때도 좋고 할때도 좋고 프로페셔널 세팅에서 뿐 아니라 삶 전체의 관계를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너무나 좋은 스킬이란 생각을 하게됐다. 장기적으로 잘 발전시켜보고 싶은. 하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새로운 모멘텀이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유투브를 시작하거나 책을 써보고 싶어서 존잡생각을 흉내내며 mmhmm으로 한두개 찍어보기도 하고, 책 가안도 써봤다. 하지만 계속할 영감도 없었고 컨텐츠도 딱 클릭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에너지가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세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만들어보거나 참석해봤다. 몰로코 본사에서 스탠포드 MBA 한인 졸업생을 불러서 워킹디너 세션같이 하며 다양한 회사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는 자리도 만들었다. 그리고 비지니스 세계에서, 또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늘 부데끼며 목회를 하는것으로 알려진 Dave Gibbons를 알게되고 그가 주재하는 모임에 몇번 가보기도 했다. 이런 자리를 가면 새로운 에너지를 받기는 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사라졌다.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시도들중에 걸리는게 하나도 없자 힘이 더 빠졌다. 지친 몸으로 권투링에 올라가서 어떻게든 주먹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휘둘러보는데 하나도 안맞는 느낌이었다.

하와이 여행 – 아 나는 정말 없구나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가족사진

2022년 4월에 하와이 북아일랜드로 (카드 포인트 등등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사진이야 예쁘게 잘 나왔지만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출국전날 막내가 또 천식으로 아파서 아내와 막내는 비행기를 못타고 여행을 취소할까 하다가 환불도 안되는 여행인지라 나만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떠났다. 그리고 아내는 막내가 상태가 좀 나아진 며칠 후에 왔고 그런 과정에서 5박6일 일정에 애 셋 데리고 숙소를 세번이나 바꾸는 강행군이었다.

내가 내심기대했던 것은 예수전도단 열방대학 (YWAM) 베이스캠프에 있는 내친구의 동생 부부와의 교제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 전세계를 돌며 선교를 하다가 지금은 하와이 열방대학에서 일하며 있는 이 친구의 삶에 관심이 갔다. 신앙생활을 열정을 다해, 그 가장 본질적인 것을 붙잡고 사는 이 가정과 교제하고 나면 내 삶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놀게 잡은 새로운 숙소는 열방대학과 차로 거리가 꽤 됐고 결국 이 가정과의 제대로된 교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애들데리고 가족여행하면서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였지만 맘이 많이 작아져있던 내게는 이마저도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아 이제는 내가 원하는 단 한가지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며 내가 더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꺼져버린 심장과 고갈된 우물 – 에너지의 공급원이 필요하다

이 시기의 나는 심장이 꺼져있고 연료탱트가 바닥났다고 느꼈다. 아래는 2022년 5월 15일에 쓴 기도노트이다. 이당시 나의 마음과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듯.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여, 나의 친구가 되어줄수 있나요. 나의 주인(매스터)이 되어줄수 있나요.

  • 문제들
    • 지긋지긋한 죄, 시간을 허비하는것. 끌려가는 삶. 에너지고갈
    • 내가 만들어가는게 없다. 에너지를 주고 기대되는게 없다
    • 낮아진 자기효능감. 자존감
    • 사랑하는 사람들과 열정을 쏟을 문제가 없다는거. I need people and cause that I can pour over.
  • 나를 도와줄 사람처럼 대하기. 예수님, 절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 당신의 은혜를 이용하고 있나요?
    • 난 왜이리 약해져 있나요.
    • 나로 인해 기뻐하시나요? Are you delighted in me? Can you? Based on what…
  • 맘에 안드는것
    • 나 자신
    • 환경
  • 기도하는것
    • help me to turn things around. 이런 삶의 패턴 영 별로네요.
    •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것
    • 하나님 저 별거 아닌거에도 칭찬해주실수 있나요.
  • 해내고 싶은것 (Things I want to accomplish)
    • 1) 주위 사람이 flourishing하게 돕기
    • 2)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 일터에서? 사역으로? 책?

제가 당신을 예배할수 있나요? 예배하고 있나요?

이 당시는 기도가 너무 안됐다. 기도를 해도 허공에 하는것 같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기도가 더 안됐다. 에너지를 너무나 공급받고 싶은데 잘 안되니 맘이 힘들었다. 하나님을 원망할순 없으니 마음을 닫는 길을 자연스럽게 택하게 됐다.


다음글: 미국을 떠나며#4_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9 comments

  1. sweetwisdomj

    그간 글을 읽으며 영감많이 받았었는데, 어떤 길을 가시던 응원합니다.
    저는 한국에 있지만 같은 힘듬을 겪고 있어요. 저도 여러가지를 파헤치다보니 40대를 앞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귀엽기만한 시기는 지났고, 그 시기에 올인해야해기에 스스로의 자기계발은 어려웠는데 그 시간이 쌓여가고 있다는 불안감. 그런데 사회에서는 나이나 위치나 모두가 뭔가 성취를 명확히 보여주고 안정적이어야만 할것 같은 생각. 그런것들이 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더라고요. 늘 자신감 넘치시고 생각도 성찰도 많이 하시는 백산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해지네요.

  2. 대섭

    힘듦속에서도 계속 그것을 자각하고 변화를 주기 위하여 여러가지를 시도하는 것 그 자체가 저한테는 inspiration 이에요 형. 나도 이렇게 깨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지.

  3. love

    산님의 정체성은 뭔가를 얻었다, 이루었고 누리고 있다보다 새롭게 찾고 있다, 두드리고 있다, 갈망하고 있다의 정체성인 거 같아요. 힘드시겠지만 나이드셔서도 멈추지 마시길!

    • 늘 한결같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코멘트는 특별히 life giving 하네요. 큰 힘이 됩니다. 네 그게 제 정체성 인것 같아요. Notice 하고 알려 주셔서 감사드려요!

  4. Brian

    저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이런 나의모습도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와 형제님 마음 문을 항상 두드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 네 저의 inadequacy 를 자비로 덮고 adequacy 를 넘어 저의 시선을 제 밖으로 끌어내시는 그분의 은혜와 자유케 하심을 찬양하게 되네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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