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떠나며#7 어려웠던 결정의 시간

이번 글은 지난 11여년을 보냈던 미국생활을 마무리 (적어도 당분간은)하게된 이야기이다. 그 일곱번째 이야기다.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보니 쉽지 않았다. 아내와 마음을 같이 먹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다가 또 불안해서 이것저것 다시 생각해보기를 반복했다. 아내도 나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것들을 고려하며 불안해 해서 서로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질때마다 집안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9월과 10월은 이런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두가지 부분이었다.

커리어적으로 맞는 결정일까

몰로코에선 감사하게도 꽤나 강하게 내가 남기를 원하며 여러가지 제스쳐를 취했다. 몰로코에 남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건 아래의 부분들이다.

1. 글로벌 비지니스의 꿈과 비전: 회사를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대표님 등과 나눈 여러 대화에서 다시한번 몰로코가 가진 글로벌 비지니스의 꿈과 비전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확실하고 일관된 비전으로 오랫동안 한결같이 사업을 하면서 착실히 한수 한수 두며 만들어가는 회사는 본적이 없었다. 아래는 그때 나눈 주요 대화의 요지이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글로벌 비지니스, 이제 드디어 제대로 한번 해볼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몰로코를 떠나면 쉽게 잡긴 어려울수 있는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 테크산업의 발전을 본다면 지난 10년은 모바일 세대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며 전통산업이 디지털산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이 과정에선 자국시장(domestic)에만 집중해도 고속성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10년은 디지털산업 위에서 국경없는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기로 본다. 자국시장에만 집중한 비지니스는 한계가 있고 세계무대로 비지니스를 하는 회사들만이 성장하며 시장지배력을 높일수 있다.
  • 기술기반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최고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자본보다 더 귀한 자원이 인력이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는 결코 돈만으론 움직이지 않는다. 최고의 인적자원이 마음껏 일할수 있도록 자율과 위임에 바탕을 둔 조직경영, 문화가 회사의 존망을 좌우한다.
  • 퍼블릭 클라우드 위에 다양한 버티컬 기술을 입히는 버티컬 클라우드의 시대는 분명히 올것이다. 그 중 중요한 버티컬 중 하나가 머신러닝이다. 몰로코는 그 머신러닝 버티컬 클라우드가 가장 필요하고 가장 비지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광고시장에서 시작하여 기업들에게 머신러닝 버티컬 클라우드를 제공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충실히 한수한수 두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런 로드맵으로 일관된 플레이를 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2. 한분야의 전문가로 더 깊이 자리매김하기: 커리어는 결국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란 말이 있다.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할순 있지만 어느정도 이상 경력이 되면 갈수록 분업화, 전문화되는 생태계에서 확실한 전공을 갖는게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광고시장의 PM으로서 확실한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몰로코에 있는게 나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3. 오랜기간 호흡을 맞춰온 업계 최고수준의 사람들, 그리고 Pre-IPO라는 모멘텀: 마지막은 모멘텀이었다. 지난 3년여간, 회사 매출은 열배이상 성장했고 정말 우수한 수많은 인재들이 회사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몰로코 메인 제품 DSP의 퍼포먼스를 보는 PM으로서 아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관계를 만들어 오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침 올해, 내가 담당했던 제품 하나가 상당히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제품이 앞으로 6개월 정도만 더하면 아주 중요한 임팩트를 만들어 낼 것이 상당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회사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Pre-IPO기업으로서 IPO를 향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회사를 나서는게 많이 망설여 졌다.

한편 쿠팡으로 마음이 기우는 요인도 여러가지 있었다.

1. 내가 더 쓸모가 있지 않을까:

과거 경력: 앞선 글들에서 나눴듯이 내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부분중 하나는 “쓸모있다고 느껴지는 공간”이 부족하단 것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몰로코의 운영철학, 특히 제품팀의 운영철학(Discipline)은 구글 등 빅 테크에서의 광고산업에서의 경험, 제품매니저로서의 절대시간을 매우 중요시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경력에는 그 두가지 모두가 부족했다. 난 빅테크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밟아온 정통파와 거리가 멀었고 몰로코에선 나의 다양한 경험이 손에잡히는 (tangible) 자산이 된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려웠다.

반면 쿠팡에서는 데이터를 이해하고 개발자와 소통하여 제품을 만들수 있고 비지니스쪽 이해관계자와 잘 조율하여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더 높이사는 운영철학(Discipline)을 가지고 있으며 또 꼭 업계 경험보단 오퍼레이션/재무적으로 숫자를 이해하는 부분들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이런 철학 하에선 나의 다양한 과거의 경험들 (스타트업 경영, 오퍼레이션/재무 비지니스쪽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될것으로 생각했다.

커뮤니케이션 (언어 포함): 얼마전에 대부분의 경영진이 참석하는 매우 중요한 미팅에서 발표할 자리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분을 빼고는 대부분이 원어민 미국인들인 미팅이었다. 제품을 직접 담당한 나의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토론이 오갔다. 모두가 영어가 완벽한것은 당연하고 토론의 베테랑 들이었고, 그 설전이 한복판에서 말한마디를 끼어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겐 마치 전쟁을 보는것 같았다 – 말로 하는 전쟁. 나의 말이 토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길어지거나 논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바로 뭍여버리는 그런 총칼없는 전쟁. 그게 내게는 예술과도 같이 너무나 멋졌지만 한편으론 벽도 느껴졌다. 내겐 여전히 영어는 제2언어였고, 토론환경에서 자라오지도 않았기에 이런 설전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영향력을 미치는게 너무나 중요한 글로벌 비지니스의 전장에서 내가 얼마나 리더로서 앞으로 역할할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참고로 최근 스탠포드에서 리더십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2세와 나눈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영어구사능력이 자신의 동료나 매니저에 비해 높지 않다는걸 발견하고, 그 이유를 성장배경에서 찾았다. 한국인 2세는 성장기에 부모와 한국어를 하거나, 영어를 하더라도 부모의 영어실력 (어휘구사력 등)이 원어민에 비해 떨어지기 마련인데, 자신의 동료/매니저는 아주 고급영어를 구사하는 부모님과 늘 영어를 쓰고 들으며 자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배경에서 체화된 어휘구사력, 문장구사력은 나중에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이걸 듣고 왜이리 언어구사력에 차이가 있는지 다시한번 느꼈다. 극복해야할 벽은 한두겹이 아니였다.)

반면 쿠팡, 그리고 쿠팡에 가게되면 앞으로 내가 베팅하는 한국/아시아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나의 현재 영어실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지않을수도 있고 오히려 강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문서로 커뮤니케잇 하는게 좀더 일반적인 문화라면 그건 실시간 토론보단 더 자신있는 부분이었다.

2. 새로운 에너지를 내고 배움을 얻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몰로코에서 일하는 방식은 이제 많이 몸에 익었고, 전반적으로 삶에 새로운 에너지와 자극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쿠팡에서 근무하고 있는, 또는 근무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그 경험에 대해 물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줬고, 일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확실히 배움과 성장이 있었다고 나눴다. 특히 쿠팡의 리더십 원칙에도 나와있는 철저한 우선순위 매기기 (Ruthless prioritization), 꼭 고객입장에서 진짜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Customer obsession, dive deep), 문서를 통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빠른 스피드 등을 매일같이 체험하고 또 체화해야만 하는 환경이라고 이야기했다. 몰로코가 일하는 방식은 구글처럼 바틈업 (Bottom-up)이라면 쿠팡은 탑다운 (Top-down) 으로 상당히 다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는걸 대화를 통해 알수 있었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보였고, 분명 쿠팡에서 배울 것이 있고, 새로운 환경과 일하는 문화는 또 나에게 자극이 되어 새 에너지를 줄 것 같았다.

또한 쿠팡에선 조금더 리더십 포지션으로 일하게 되어, 제품 매니저의 리더 중 하나로서 사람관리 (people management), 이해관계자 조율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회사 규모가 더 큰 것 – 지금까진 일해본 적 없는 퍼블릭 회사 인 것 – 도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자극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3. 한국/아시아에서 커리어를 쌓는 초석이 될수 있지 않을까: 앞선글에서 나눴듯이 난 40대 커리어를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살면서 일하는 베팅을 해보고 싶었다. 더 많은 쓸모를 경험하며, 가슴뛰는 미션에 동참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친구들 속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며, 내가 원하는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는 등, 여러 에너지를 내며 일해볼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기에 쿠팡의 기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위에서 소개한 대로, 퍼블릭 회사로서 쿠팡이 갖는 네임밸류나 내 경력상 없었던 부분을 보완하는 것 모두 향후 한국/아시아에서의 커리어를 쌓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론적으론 커리어 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인지 내리기 참 어려웠다. 글로벌 비지니스의 꿈을 당분간 접는다는게 제일 아쉬웠다. 그렇지만 당장 내게 더 에너지를 주고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쿠팡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가족들이 잘 지낼수 있을까

다른 큰 부분은 가족이었다.

아내가 잘 지낼수 있을까: 가장 맘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아내 직계가족 (부모님과 동생네) 이 미국에 있고 늘 얼굴보고 지내던 사이기에, 특히 장모님의 경우는 하루에도 기본 30분-한시간씩 통화하며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는 사이기에, 한국으로 가면 아내의 적적함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또 나보다 훨씬 더 현재 섬기는 교회에 소속감을 느끼며 많은걸 주고받던 차라 아내가 한국에서 마음에 맞는 공동체를 잘 못찾게 되면 그 또한 큰 공백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반면 아내가 한국의 다양한 시스템으로 인해 육아부담에서 조금 벗어나면 아내도 더 커리어 쪽에 에너지와 시간을 쓸 수 있을것 같기도 했다. 영어/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곧 상담쪽 석사도 취득하게 되며, 아이들 사역 경력도 있기에 아내가 분명 한국사회에서 할 일이, 쓸모가 있을것 같다고 느꼈다.

아이들 교육과 육아환경: 아이들 교육은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쉬웠던건 신나게 뛰어놀 공간과 사회적 환경이 부족한것. 미국에선 학교갔다 오면 늘 동네 친구들과 거의 해질때 까지 노는게 일상이었다 – 내 어린시절처럼. 그리고 난 그게 아이들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라고 믿는다. 내게도 어렸을때 잘 놀았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온전한 내 행복이자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부분이기에. 동네친구들과 이렇게 편하게 매일같이 뛰어노는건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들었다. 반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편리함과 옵션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건 엄청 매력적이었다. 도시락을 안싸도 되고 학교에 매일같이 차로 실어내리는걸 안해도 되는것도 엄청난 특혜였다 (미국에서 살아보신 분은 이게 얼마나 큰 일인지 잘 아시리라).

가족으로서 하나됨: 한국에 몇년씩 나가 살다가 미국으로 들어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한국에선 각자 너무나 다양한 이유로 바쁘게 잘 지냈지만, 가족이 하나되고 가족으로서 잘 지내는건 쉽지 않았다고. 더 설명듣지 않아도 이게 무슨 말인지는 너무 잘 알것 같았다.

부모님, 형네 식구와 더 시간보내기: 이건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었고 상대적으로 아내가 많이 희생하는 부분이었다 (아내 직계 가족은 미국에 있기에). 우리 부모님이 처가족 보다 한 10세쯤 더 많으시기에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시간 보내려면 이 시기가 적기라고 생각했다. 또 더 늦기 전에 어떻게든 부모님의 은퇴를 돕고 싶었고, 형네 식구와도 더 자주보며 울고 웃고 힘이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론적으로는 미국에 몇년 후에 다시 오는걸 잠정적으로 생각하며 그럴 옵션을 최대한 열어 놓고 향후 몇년을 한국에서 보내며 지금시기에 할 수 있는걸 최대한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내의 지지와 믿음

사실 아무리 내가 스스로 결론내려도 한국으로 간다는건 아내의 지지와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족이 다 같이, 적어도 다시 돌아올 정확한 기약 없이 가는 것이기에 더더군다나. 아내는 처음에는 아주 반색은 아니었다.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국이 새삼 더욱 집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아내는 미국에 온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고 부모님도 형제도 친구들도 교회도 다 미국에 있었다. 중간에 중국에서 또 살아서 한국에서 산 시간은 채 10년이 안되었고, 최근 여름에 애 셋을 델고 한국에 차도 없이 방문하여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지내보니 한국생활이 만만치 않을수 있다는걸 느끼기도 했던 터였다. 또 아내는 이 모든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기 보다는 내가 조급하게 앞서서 진행하는게 아닐지 우려하기도 했다. 늘 한 3-4년 마다 새로운 환경으로 (그게 직장이든 지역이든) 변화를 줬던 나의 과거 전력을 봐서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 여지도 있었고, 새로운 변화를 통해 도전하며 길을찾는 나와는 달리 있는 자리에서 순종으로 극복하고 승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의 성향상 충분히 할 수 있는 우려였다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 당시는 섭섭하더라).

그래도 아내는 고맙게도 반대하지 않았다. 기도해보자며 본인도 기도해보며 고민했다.

그리고 아내도 기도가운데 한국으로 가는게 맞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나눠줬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일, 해야할일도 이것저것 느꼈고 다양한 정황상 한국으로 인도하시는것 같다며. 아내의 지지와 믿음 덕분에 어렵게 같이 마음을 모아 한국으로 가는것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막상 결정했다가 또 다양한 두려움과 걱정이 아내나 나를 사로잡았다. 그럴때면 서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힘들어 했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말했다.

오빠, 나 마음 정했어. 오빠도 마음 정했지? 그럼 이제 그만 고민하자. 오빠 말처럼 담대할 때가 된거 같아. 축복인것 같고 인도하심이 느껴져. 그러니 이제 우리 그만 고민하고 걱정하자. 누리고 이 시기를 잘 마무리하자.

우리아내 참 멋지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9 comments

  1. Pingback: 미국을 떠나며#8 아낌없이 받은 소망 | San's diary

  2. Sooeun

    ㅠㅠ.. 마지막 아내분 말에 저도 같이 울컥합니다. 한국에서의 시간도 응원합니다! 오랜만에 산님 포스팅 읽으니 너무 좋아요 🙂

    • 아 수은님 오랜만에 이렇게 또 응원 해주시니 많이 감사해요. 저도 이렇게 답글로나마 마음 나누니 너무 좋네요 🙂

  3. Brian

    백산님이 정말 많은 고민이 있으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저도 회사에서 외국 본사에 계신 분들의 세미나를 들으면 과연 내가 저렇게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백산님의 고민이 저에게도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함께 이러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산님이 걸어가는 길 가운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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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본받을점이 많은 가족이네요. 저는 조현병이라서 결혼하고 애낳는거는 진작에 포기한지라… ㅠ 솔직히 쬐끔 부럽기도 하네요. 가족이 있는만큼 책임감도 막중하시겠지요.

    • 그렇군요. 병이 잘 치료되고 계속 다양한 관계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해요. 가족은 참 감사하지만 늘 쉬운건 정말로 아닌거 같아요. 책임감이란 말이 맞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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