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OTE 일상기_1 한국 정부와 실리콘 밸리 스타텁의 평범한 하루 비교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중 하나인 EVERNOTE의 International Business 팀에서 Business Development Specialist Intern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하면서 느낀 것을 써보겠습니다.

먼저 쓰기에 앞서서 전에 현유형이 써주신 삼성과 구글의 문화 차이에 관한 글들 1편, 2편, 3편, 4편, 5편이 얼마나 맞는지 많이 느끼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전 조금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에버노트에서 나의 평범한 하루

6:00~8:00 운동과 출근 : 아침에 Gym에 잠깐 갔다가 자전거 타고 15km 가량의 출근길에 오른다. 아침에 자출족들이 참 많다. 날씨도 좋고 음악을 최대한 크게 틀고 (난 음악은 왠만하면 가요가 좋다. 역시 한국사람인지라) 오늘은 임재범이 ‘나 가수’에서 부른 “여러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출근하니 역시 스트레스가 확 날라가는 느낌이다. 길가는 사람들도 내가 노래 부르며 가는거 웃어주는 이동네 좋은 동네다. 

8:00~8:30 업무시작 : 요새 나의 사수인 APAC헤드는 오후에는 가족 이사를 도와주고 있어서 아침 7시에 나와서 오후 1시면 퇴근한다. 내가 한국이었으면 얘보다 무조건 일찍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Attitude를 보여주겠지만 여기선 그거 아무도 신경안쓰는 분위기라 뭐 맘편히 얘보다 늦게온다. 얘는 오늘 아침에도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가 나 오자마자 또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Hey San, good morning. what’s up with your Red Shirt? Any love story recently? ” 뭐 적당히 농담 맞장구 쳐주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모닝커피를 뽑아마시며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역시 쓰다. 그러나 에스프레소 마시는 시크한 남자가 되는데 이정도의 고통쯤이야. 

8:30~9:30 이메일 : 여긴 전화가 없다. 민원전화 올일도, 관련 부처에서나 국회에서 나 찾는 일도 없다. 집중해서 수없이 많은 이메일을 보내고 이메일을 읽고 하는게 업무의 반 이상이다. 어제 뿌려논 이메일을 대부분 처리하고, 새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메일 보내니 시간이 훌쩍 갔다. 9:00부터 30분 동안은 사흘전에 예약해놓은 싱가폴쪽 담당자랑 스카잎 통화로 싱가폴쪽 시장 현황을 설명받았다. 

9:30~10:00 사수 회의 따라가기내 사수는 지금 대만에서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내부에서 개발자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시 반에 사수가 개발자 2명과 회의를 하는데 이 회의를 보는것 만으로도 너무 재밌었다. 일단 약 5분은 역시 농담으로 분위기를 좋게 다진 다음에 이 회의가 왜 중요하고 이 회의에 지원하는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으며 개발자들한테도 도움이 될지 멋지게 설명한다. 우리 사수지만 말빨은 정말 청산유수다. 그리고 나자 개발자들이 사실 자기들이 시간이 없지만 어떻게든 한번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사수는 개발자 Manager한테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다시 약 3분간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회의가 끝났다. 아 이렇게 회의하고 이렇게 다른 팀의 지원을 구하는 구나. 다 개인 능력이구나. 

10:00~11:00 회의 : 오늘은 내가 맡고 있는 아시아 교육시장에서 에버노트의 인지도를 어떻게 높일지를 연구하는 차원에서, 현재까지 EVERNOTE School Project를 하고 있었던 Ron과 우리 아시아 퍼시픽 팀과 회의를 했다. 회의라고 해도 미리 회의자료를 만들거나 그런거 전혀 없고 그냥 Calendar에서 상대방의 빈 시간을 보고 예약해서 잡은 거다. 모두 Laptop을 들고 회의장으로 온다. 회의 시작 약 5분은 거의 농담따먹기, 주말에 뭐했는지 얘기, 이런 Chit chat들이다. 본격적으로 회의를 할 때는 정말 효율적이고 진행이 빠르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케이스 스터디, 학교와의 파트너쉽, Pitch 자료들을 보고 같이 연구하고 더 낫게 만들 방법을 논의했다. 너무 자유로운 분위기라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뭐든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학교에 학생 Representative같은걸 두고 좀더 Ownership 도 갖게 하고 하는 방법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는데 모두들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칭찬해줬다. 내가 기안해서 모두에게 메일로 공유하기로 하고 회의가 끝났다. 

11:00~12:00 기안 : 내 사수는 오후 1시면 퇴근하고 내일부터는 출장이다. 내가 볼때 이 학생 Ambassadar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적어도 이번주 내에는 내부 결정이 끝나서 실행을 해야되는데 그럴려면 얘가 오늘가기전에 적어도 Draft는 보여줘야 할것 같다. 맘 급한건 나지 얘가 아니다. 대학교때부터 수없이 많은 행사를 기획해본 짬으로 1시간만에 후딱 하나 만들었다. 역시 대학때 동아리 열심히하기 잘했다. 

12:00~1:00 점심식사 + 회의 : 회사에서 매일 밥을 주는 관계로 밖에 나갈 일이 없다. 오늘점심은 아랍 음식이다. Lamb 으로 만든 Wrap과 아랍 샐러드를 먹자니 맛은 있지만 된장찌개와 콩국수가 그립구나. 그러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농담따먹기 좋아하는 내 사수한테 기안한걸 보여줘가며 이야기를 진행하자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얜 진짜 일을 하자는 건지 농담을 하자는 건지. 그러나 일단 밝고 행복한 사람이랑 일하는건 참 좋다. 역시 칭찬으로 시작했지만 날카로운 포인트를 주기 시작한다. “산, 오우 아주좋아. 근데 이부분은 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흠. 감이 오지 않는데, 이런 방향은 어때? 그래 그거야. 그걸로 오늘 좀만 보완해서 이멜 보내주면 내가 밤에 답줄게! 역시 산 최고야!!” 그리고 얘는 가버렸다. 진짜 멋진 퇴근시간이다. 

1:00~1:50 남의 회의 참석 : 내 일만 하기도 바쁘지만 내가 누구냐. 이렇게 온 김에 회사 전체에 돌아가는 이것저것을 다 배워가겠다는 의지를 품고 오늘도 어제 오후에 만난 Product Manger 두명 David 과 Tom이 새로 에버노트 Mac과 PC버전에 Product Feature를 바꾸는 회의에 참석했다. 이거야 뭐 회읜지 농담따먹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 한다. 그래도 얘들이 이 회의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보니 분명 어젯 밤에도 얘 열심히 일했으리라. 참 똑똑하고 잘난애 많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1:50~2:30 새로운 기안 : 얼마전에 모 회사 중역들과의 회의 이후 이들을 대상으로 에버노트와의 파트너십을 만들기 위한 재밌는 비디오를 촬영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2시반에 그거 관련 회의가 있어서 1시간동안 어떻게하면 비디오를 재밌게 만들지 기안했다. 내 맘대로 사람들 여러명한테 물어봐가며 기안했는데 참 이대로 찍히면 제대로 재밌겠다 ㅎㅎ 이거 기안하면서 “한국이었으면 당연히 이런 일이 위에서 떨어졌을텐데 역시 얘네는 뭐 하나 일 시키는게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한명한명이 바쁜것도 있지만 상당수 일이 관련 담당자가 주도적으로 기안한거고, Manager급에선 결재를 해주거나 가이드라인을 주지 절대 쪼거나 일을 떠안기려 들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일을 시작해서 끝내고 그걸 잘 마케팅하고 사람들 시간과 자문을 구하고 이런게 다 능력인듯 하다. 어쩔땐 이렇게 설렁설렁 일해서 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일 기안해서 하는거라 책임지고 하고 열심히 하고 창의성과 독창성도 살아있다. 

2:30~3:15 회의 : 비디오 기안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지만 그래도 Product VP와 마케팅 VP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경험으로 시나리오는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내일 바뀐 시나리오로 바로 찍기로 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서 너무 신기하다. 

3:15~5:40 업무 : 아시아 교육시장 진출을 위한 마케팅 비디오와 발표자료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거야 원, 너무 가이드라인도 없고 데드라인도 없고 모든게 나한테 맡겨져 있다. 이거 책임도 내가 지고 내가 다 알아서 하는거니 더 긴장된다. 빨리 하고 싶은데 일이 진척이 더디다. 수많은 이메일 보내고 조사하고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Skype통화하고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갔다. 물론 그 중간중간 간식도 먹고 지나가는 애와 농담따먹기도 하고, 그랬지만 결국 일은 내가 다 해놔야 된다. 아 중간에 CEO Phil Libin이 지나가길래 어색하지만 그래도 쿨하게 한마디 “Hey Phil, How’s it going. Your speech on last global conference was really amazing. I was so inspired from it.” 이라고 야심찬 인사를 던졌는데 “Thanks” 라면서 식 웃고 가버린다. 이건 내가 ㄷㅂㅈ이라서일까. 아님 그가 엔지니어 출신의 숫기 부족한 CEO기 때문일까. 후자라고 위로해본다. 그래도 한국같으면 CEO랑 이렇게 이름불러가면서 이야기하는건 상상조차 못할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잘하는 CEO랑 일하는것도 너무 행운이고 신나는 일이다. 퇴근시간은 내 맘이다. 누구 눈치하나 볼일 없다. 5시가 넘으니 벌써 많이들 퇴근했고 누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쓴다. 방금전 4시 반부터는 해피 아우어로 회사내에서 맥주먹고 hang out 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오늘은 바빠서 거기까진 못가겠더라. 

6:00~9:00 운동 + 저녁 : 방학중 야심찬 프로젝트로 새로 저녁에 무에타이를 시작해볼까 하고 도장에 갔다. 땀냄새 물씬나고 각종 히스패닉과 아시안이 많은 이곳은 지금껏 내가 접한 실리콘밸리와는 너무 다른 곳이다. 그래도 난 이런 헝그리한 분위기가 좋다. 오늘은 나보다 허벅지가 두꺼운 여자애와 같이 샌드백을 찼는데 쟤한테 맞으면 아무래도 다리가 부러질거 같다. 그래도 땀좀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다. 저녁은 전부터 나한테 만나자고 했던 한국 형이랑 간단히 기숙사 근처에서 먹었다. 먹으면서 형 고민도 듣고 내가 도움줄 수 있는 것도 연구하고 하니 적어도 이메일 3통은 보낼 일이 나왔다. 뭐 이쯤이야 내겐 gum이지. 

9:00~12:00 업무 + 각종 이메일 : 3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까 마무리 못한 기안과, 기타 수십통씩 오는 이메일을 처리한다. 며칠을 미뤄논 이멜들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영 좋지만 그래도 전부터 하고싶었던 A 교수님께 이메일 보내서 질문하기, Startwave 에 다음 회의진행 이메일쓰기, B 인큐베이터 학기중 인턴십 지원하기 등은 오늘밤에도 결국 못했다. 집에 와보니 내 사수 APAC헤드가 내 기안을 수정하고 커멘트 달아서 보내온 이메일이 있어서 그거 확인해서 기안서 다시 수정하고, 대만에 있는 친구랑 11시에 스카잎으로 대만시장 관련 통화를 하고 나니 어느새 12시다. 역시 실리콘밸리회사, 출퇴근은 자유로워도 모두가 24시간 온라인이고 항상 일하고 책임지는 문화가 기반이 되어있다. 그래도 재정부였으면 벌써 회식도 한번 하고 진짜 친해져서 부탁도 좀더 마음껏 하고 했을텐데 하는 생각에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여기선 옛날같으면 10분만에 처리될 부탁이 개인사정이네 뭐네 해서 함흥차사인 경우도 많고, 가서 찾아가고 요구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별로 그러기도 어렵다. 다들 자기 가정사랑 바쁜 삶이 있고 일과 Professional Relationship에 쏟는 시간도 대략 정해져 있다. 갑자기 한국에서 찾아온, Public Sector에서 일하다온 이방인을 웃으며 맞아는 주지만 따뜻하게 챙겨준다는 느낌은 없달까. 뭐 너무 많은걸 바라지 말자. 다 나 하기 나름이리라. 

재정부에서 나의 평범한 하루

5:50~6:50 기상 및 출근 : 아침 첫차를 타고 과천 정부종합청사로 간다. 역시 다년간의 내공으로 버스에서 20분자기, 지하철에서 20분자기를 성공적으로 구사하며 가뿐히 출근했다. 

6:50~8:00 운동 : 과천시민회관에서 요새 수영하는게 인생의 낙이다. 여기 아줌마 아저씨는 나이도 40은 넘은거 같은데 힘이 어디서 그리 나시는지 오늘도 박태환 저리가라 접영으로 내 기를 죽이셨다. 오늘도 끝나고 저녁먹고 맥주마시자며 꼬시시는데 모르시는 말씀, 전 저녁약속 못잡아요. 

8:00~9:30 업무시작 : 사무실 책상 도착, 다행히 과장님보다 일찍 왔다. 과장님이 매일 이시간쯤 오니 그보다 먼저와서 일하는척이라도  하고 있게 그래도 내 도리. 마침 오늘은 아침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는 날이라 그나마 여유있다.    엊그저께 부터 밀려있었던 물가정책장관회의 참고자료를 작성하고 금요일 회의 장관님 말씀자료를 쓰고나니 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이번달은 우리가 워낙 열심히 해서 그런지 물가가 좀 낮아져서 상당히 보람이 있다. 특히 배춧값이 잡힌건 큰 수확이었다. 

9:30~10:00 회의 : 국과장 회의 이후 과장님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늘아침 통신비 기름값관련 신문기사가 많이 떠서 불안했는데 역시…국장님이 새로 일을 시킨 모양이다. 안그래도 OECD회의 준비, 저번부터 밀려있었던 “독과점시장 현황 및 개선방안” 분석보고서랑 할일이 태산인데 또 이건 또 뭘까. 아니나 다를까 회의가 하나 새로 생겼다. 역시 민생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보여주려면 내 삶이 망가질 수밖에 없구나. 이번 기름값, 통신비는 또 어떻게 잡을지 도대체 이건 뭐 요술방망이도 아니고. 우리 과장님도 몸도 안좋으신데 또 계속 야근에 시달리실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다. 내가 일을 더 잘해서 과장님을 집에 일찍 보내드리고 싶건만 능력밖이다. 

10:00~12:00 관련부처와 전화통화 : 관련 부처랑 1주일만에 새로운 대책을 만들기 위한 통화를 하고, 자료를 구하고, 대책 만들 전략을 짜는 전화를 하느라 오전이 훌쩍갔다. 이제 공정위랑 지경부 사무관은 내 전화는 안받으려고 하는것 같다. 전화할때마다 일이 새로 생기니, 그래도 동기들, 형동생, 예산실 등 통해서 당근 + 채찍으로 옥죄이고 있어서 내 업무협조는 비교적 잘 들어주신다. 

12:00~1:30 점심 : 오늘은 내가 재정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배 형이랑 이번에 새로들어온 대학교 후배랑 근처 닭백숙 집에가서 회포를 풀었다. 점심시간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사회생활을 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이것저것 하는 성역과 같은 시간인지라 왠만하면 1시 반까지 터치하지 않는다. 오늘도 대화 주제는 언제 어느 부서에 가고 어느 과장 밑에서 일을 해야하고, 어떤 길이 더 좋고 하느냐였다. 모 선배가 이번에 유학간 얘기, 모 국장 과장이 이번에 승진한 얘기, 윗사람 뒷담화 등 갖은 야설비화가 오가고, 끝에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도 할일이 태산이고 저번주말에도 계속 출근했고, 이런 얘기가 오가다, 역시 남자끼리 모이니 누가 예쁘냬, 누가 헤어졌냬 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대화가 마무리 된다. 역시 앗싸한 형과 후배를 만나서 썰을 푸는건 즐거운 일이지만 언제까지 남얘기만 불평만 해야하나, 이젠 이런 대화주제가 진짜 견디기 힘들고 지겹다. 

1:30~5:00 보고서 작성, 관련부처 및 내부 업무협조, 각종 업무 : 오늘은 반드시 독과점시장 분석보고서를 마무리해서 국장님 보고를 할 생각이었던 차라 막판 정리에 박차를 가한다. 공정위 팔 비틀어 나온 보고서랑 교수님들, 연구소 박사님들께 사정하고 부탁하고 각종 썰을 풀어서 구해온 보고서를 바탕으로 무려 30pg짜리 보고서를 만드는데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정말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내가 어떻게 하란건지. 과연 내가 독과점시장을 없앨 수 있을지, 이거 써서 도대체 어쩌자는건지, 많은 상념이 오가지만 어쩌겠냐. 써야지. 그리고 혹시 또 모른다. 저번에도 내가 쓴 보고서가 어쩌다저쩌다 청와대까지 올라가서 관련대책도 나오고 했으니 이번에도 계속 파다 보면 괜찮은 정책 하나 나오고 법도 바뀔지 모른다. 그래도 막상 일할때는 그런건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몇년째 하다보니 짬이 붙어서 생각도 꽤 빨리 정리가 되고 내가 봐도 은근히 맘에 드는 보고서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과장님이 목차잡는데 도와주시고 고참 사무관 형들이 많은 자료랑 팁을 줘서 정말 도움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집중하기가 너무 어렵다. 중간에 말도안되는 민원전화와 각종 찌라시, 국장님 장관님 인터뷰자료, 국회의원 자료요구, 옆 과의 업무 협조 등 처리하느라 어느새 오후시간이 훌쩍 다 갔다. 특히나 마지막 1시간 반은 오탈자 보고, 국장님이 좋아하는 용어넣고, 보기좋게 페이지 편집하느라 간것 같다. 옆자리에 앉은 막 들어온 후배 수습사무관이 나의 화려한 한글 편집실력을 보고 놀래자빠진다. “짜식, 너도 몇달 밤새가며 구르면 금방 배워. 단 거저먹을 생각은 마시게. 나도 저 5년째 주무 서기관 하는 형에 비하면 피래미야” – 이러면서 살짝 나의 디그니티를 확인한다. 

5:00~6:00 과장보고 : 과장님께 최종 재가를 받고 국장님께 보고드리기 위해 국장실에 갔더니 기다리란다. 국장님은 정말 대통령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고계신것 같고 스티븐 잡스처럼 모든걸 다 알아야 하는 분인지라, 내게는 어쩔때는 대통령 이상으로 어려운 존재고 무서운 존재기도 하다. 정말 일을 향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순수하게 일을 사랑하시는 분이고 조국에 몸을 바치신 분이다. 그래서 더 작아지는 내 자신을 어찌하리. 보고를 위해선 거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평소부터 국장님 비서님께 각종 칭찬 + 선물로 막강한 환심을 사 놓은 터라 오늘도 내게 가장 좋은 보고시간을 빼준다. 가장 좋은 보고시간 = 국장님이 기분이 좋은 시간 + 저녁약속에 나가시기 전에 시간이 많지 않아서 보고가 최대한 짧게 끝날 수 있는 시간, 즉 6시다! 

6:00~6:30 국장보고 : 국장님이 오늘 기분이 좀 안좋으셨나, 별로 표정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보고서가 1주일 넘게 끈걸 기억하고 계시나보다. 역시 주말에 밤새서 했어야 했어. 국장님이 천천히 읽어보시더니 하시면서 몇마디 지적하시더니 하시는 말씀 “저녁먹고 와서 보자” 두둥 !

6:30~8:00 저녁 : 오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가 결혼한다고 애들 모은 여의도 고깃집에 갈 수도 있다고 말 해놨는데 역시나… 국장님의 한마디에 모든 약속은 전격 취소돼고 국장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하릴 없이 과 형들이랑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형들은 어차피 과장님을 충실히 모시고 해서 국장님 과장님 퇴근 전에는 퇴근하는 적이없는지라 아들이 갓 5개월 지난 형도, 신혼 누나도 할것 없이 거의 매일 야근이다. 오늘은 그대신 과장님 휘하 과원 전원이 부대찌개에 간단히 소주까지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다. 우리 과장님이 역시 앗싸한 면이 있으시다. 역시 주제는 국장님 불평, 업무 많은거 불평, 그리고 언제 어디로 가서 승진하고 뭐 하고 먹고 살고 뭐 이런것들이다. 그러다가 결국 마무리는 “산아, 넌 결혼 안하냐? 결혼하고 나면 말짱 끝이야. 선택 잘해야된다. 아직 쓸 카드가 남았을 때” 참 이주제는 지겹지도 않나. 그래도 난 업무도 척척, 희생정신에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까지 너무 넘치는 형 누나들이 너무 좋다. 

8:00~9:00 업무 : 국장님 연락을 기다리면서 오늘 새로 떨어진 기름값 안정을 위한 대책 작업에 들어갔다. 청와대 보고가 다다음주고 장관 회의가 다음주니 적어도 이번주말까지는 뭐라도 대책이 나와야하는데 정말 묘수가 없다. OECD각국가 정책사례를 들여다 봤지만 우리나라에 맞는건 하나도 없다. 과거 자료, 각종 인터넷 서핑부터 교수들 보고서, 국회 회의자료 등을 뒤적이지만 나로선 역부족이다. 저번에 비슷한 업무를 한 고참 사무관 형님께 물어보니 정말 내공은 X로 쌓이는게 아니라더니 너무 멋진 아이디어와 진행방안을 줬다. 그리고 내 지경부 동기가 몰래 준 자료랑 해서 뭐라도 만들어보니 조금씩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다. 

9:00~10:00 국장님 피드백 : 국장님 전화에 당장 달려가니 나의 보고서가 거의 빨강펜 노트처럼 난도질 돼있었다. 윽. 이럴수가. 국장님이 약 235가지 새로 보완할 점을 말씀해주셨다. 역시 국장님이 정말 똑똑하긴 하시다. 뭐 하는 말씀마다 반박할 말이 별로 없다. (물론 있어도 왠만해선 할 수 없다.) 이거야 원 돈데기리 돈데크만이라도 부르고 싶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국장님의 마지막 한마디 “내일 보자” 

10:00~12:30 보고서 보완 : 국장님이 내일 보자고 하셨으니 뭐라도 만들어놔야 한다. 이 시간에 교수님들께 전화드려 물어볼 수도 없고, 다행히 공정위 친했던 사무관님이 아직 퇴근안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봐서 몇개는 해결했는데 나머진 도저히 답이 안나온다. 국장님은 오늘도 11시넘어 퇴근하셨고 (메신저가 Offline으로 바뀜) 과장님도 국장님 가시는거 보고 11시반쯤 “너무 고생하지 마. 오늘만 날이냐” 라고 말씀해주시며 들어가셨다. 자정 넘어서 선배 사무관형이 “산아, 그냥 가자 야. 그거 뭐 지금 머리싸매고 있다고 뭐가 나오겠냐.” 라고 하며 차태워주겠다고 해서 나왔지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 내일 새벽에 정말 일찍와서 많이 해야겠다. 아마 꿈에 나올거 같다. 목차를 이렇게 잡고, 이 자료를 더 조사하고… 이래봤자 기사는 정부 공무원은 뭐하냐고 욕하는걸로 가득할거고 친구들이랑 술먹으면 “야 도대체 내 세금으로 너 모하는거야” 이런말이나 들을텐데 도대체 내 삶은 어디가서 찾을지… 일단 잠이나 자자.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27 comments

  1. JaeHoon Oh

    저는 행정고시만을 강요하는 학부에 재학중인 대학 새내기입니다. 우연하게도, Evernote 하루일과와 재경부의 하루일과 포스팅을 보게됬어요. 음… 참 보고 멍~~해졌던것 같네요…아직 확고한 진로계획은 없지만, 형?의 글들이 많은 생각할거리들을 줄 거 같아요ㅎㅎㅎ 좋은하루되세요^^

    • 정말 치열한 고민없이 고시공부하는 것 만큼 자기 자신에게 못할짓도 없는것 같습니다. 후배님! 꼭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알아보세요!! 화이팅입니다.

      백산 드림

  2. 와… 이야기 정말 감칠맛 나게 쓰시네요.

    관공서의 고통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

  3. Pingback: 고시 제도 단상(斷想) «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4. Ryan Ahn

    나름 객관적으로 비교해 주신 것 같아 감사하지만 둘 중 어느 삶에 만족하시는 지를 명확하게 밝혀주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 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로도 충분히 알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짐작이니까요ㅎ

  5. douglas

    아 우리나라의 일하는 시스템은 언제바뀌려나요.
    너무 비효율적임

  6. Pingback: 어떤 삶을 살것인가 – Learnings from Mormons « San's playground

  7. Developer

    안녕하세요.
    현재 한국에서 개발자로 살고 있지만, 주변에 실력 좋고, 좋은아이디어를 가진 친구들과
    실리콘벨리로 가서 사업을 해볼까하는 꿈이 많은 20대입니다.
    간략하지만 실리콘벨리에서의 삶이 잠시 느낄 수 있어서, 흥분되네요.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8. Pingback: 2012년 블로그 결산 « San's playground

  9. 에버노트의 일상 재미있게 봤네요~ 앞으로도 실감나는 체험기 부탁드립니다.

  10. sdfksdfsdf

    아잘보고 갑니다.우리나라에서 개발자로 일하지만,
    말도안되는 일정에 야근강요에 주말에 출근강요합니다.ㅠㅠ
    실리콘벨리가서 일하고싶군요.

    • 예 고생이 많으십니다. 개발자에겐 정말 꿈같은 곳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 있다보니 또 한국이 그리워질 때도 종종있는걸보니 참 마음이란게 무섭네요.

  11. 이현동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ict회사에 다니는데,,,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 많은것 같군요 !

  12. mark ki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머리통 다 크고 외국사람과 일하기 시작한터라…아 ~ 우리나란 왜 이래 외국인 저런데
    외국이면 다 좋은 줄 알았습니다. 헌데 막상 일하다보면 칼가따던 독일 사람이며, 똑 부러진다던 미국 사람이며 성에 안차더군요. 정확한 비교를 위해선 한국에 스타트업과 미국의 스타트업 혹은 미국 공무원대 한국 공무원에 하루였으면 더 좋았을 듯 하네요. 윗 댓글에서 보듯 단순 비교하며 오해 하시는 분들이 계신듯 하여. 외국계 회사에서 외국상사 몇분 모시며 몇개 회사에서 일해 봤는데 크게 다른걸 모르겠더라구요. 결국은 조직과 사람의 차이인것이 아닐까 하는

    • 예 맞는 지적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제한적인 경험으로 써본 거라 꼭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고 싶었던건 아니고요. 그냥 솔직한 하루 일상 그 팩트자체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3. kongjingyu

    조성문님 블로그에서 타고 와서 좋은 글 읽다가 갑니다. 현재 군인 신분이라 컴퓨터 사용시간 제한 때문에 에버노트에서의 삶만 읽고 재경부에서의 삶은 내일 읽으려고 아껴두었습니다 🙂 멋진 삶 살고 계신 백산 선배님 응원합니다!

  14. Pingback: 창업 강요하는 사회 유감2 | 인터넷 혁신과 인터넷 정책 사이

  15. 포스팅 잘 봤습니다!!^^ 정말 문화 자체가 다르니 일하는 환경도 확연히 다르네요 ㅎㅎ
    궁금한 점이 있는데 공무원은 그럼 그만두신건가요??

  16. YJ

    안녕하세요! 블로그 글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술술 읽히네요!
    저는 아직 대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진로에 대해서, 또 전공선택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이 있어서 이런 저런 것들을 하다 보니 이 블로그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쓰신 것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특히 모순이 많아서 좋다는 부분!), 또 주변에서 고시준비를 권유하지만 아직은 이런저런 분야들을 경험하면서 정말 좋아하는것을 찾고 싶어하는저에게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각각의 삶이 다 장단점이 있는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 멋지세요!

    • 감사해요 인생 어떻게 펼쳐나가실지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되네요. 언제든 편히 연락주세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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