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_6 나와 종교

* 지난 글 Reflection_5 내 삶의 Meaning_What matters most to me 에서 제 삶의 의미에 대해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의미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크게 세가지 축(종교, 주위 사람, 세상 경험) 중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전혀 어느 종교가 맞고 그르네를 논하고 싶은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저의 솔직한 이야기이고, 이렇게 이런생각을 거쳐 이런 의미를 생각하게 됐구나 이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들어가기에 앞서 이하에서 사용할 Christian이라는 용어는 사실 저는 정확히 잘 모릅니다. 주로 기독교인에 가깝긴 하지만 기독교, 천주교 이런걸 떠나서 그냥 성경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제가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다른 말로는 쓰기가 어려워서) 혹시라도 용어 사용에 잘못이 있거나 하면 지적해주시면 고치겠습니다. 

 

1. 종교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어린시절 – 기고만장한 콧대에 신을 부정 

 

난 모태신앙이 없다. 우리 아버지는 젊은시절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가 몇가지 사건으로 교회에 회의를 품으시고 무교가 되셨다. 어머니도 특별히 종교를 가질만한 기회가 없으셨던 분이다. 자연스레 나도 모태신앙 없이 종교에 대해 별로 고민해보지 않으며 자랐다. 아니 어렸을 때 나는 워낙 기고만장 했어서 혼자 나름의 논리를 세워 신이 없음을 증명하려 했다. 뭐 예를들면 신이 있으면 그렇게 많은 전쟁과 혐오와 죽음이 있었겠느냐. 신이 있다는걸 증명할 수 있느냐. 다양한 종교가 있고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기는데 어떻게 그중 하나가 맞다고 알 수 있느냐. 뭐 뻔한 것들이었는데 난 그런 식으로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우기기를 좋아하는 애였다. 

2. 해탈을 꿈꿨던 중학교 사춘기시절 

 

과거글 인생의 의미에도 썼지만 중학교 시절은 해탈을 꿈꾸며 불교에 조금 빠졌었다. 뭐 빠졌다고는 해도 갑자기 절에 가거나 관련 책을 사서 읽는 그런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도, 성공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정도였다. 난 인간으로서, 신의 자식이 아닌, 수동적 객체가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내면의 평화를 얻고 기공을 쌓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고 싶었다. 

 

3. 대학시절 – Christian이 좋으면서도 도무지 Christian이 될 수는 없었던 나날들 

중고등학교 때는 종교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치였고 그냥 시간이 잘 흘러갔다. 대학교에 와서는 종교에 대해 조금더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1) 종교학 개론 – 정진홍 교수님 강의 

나는 1학년 1학기부터 학점 이런거 보다는 서울대의 명강을 다 듣고 싶다는 마음가짐(?)에 상당히 고취돼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서울대 3대명강이라고 이야기 해준 이 수업을 덜커덕 등록해서 혼자 들었다. (친구들을 꼬셨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강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인류역사 최초로 거슬러 올라가 종교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이런것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해보는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종교 때문에 너무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너무 많이 죽고 다치고 싸우고 한 아이러니가 나의 종교에 대한 회의론을 더욱더 강하게 해줬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시간에 이거야 원 유저 서스펙트 카이저 소제도 아니고 한학기 내내 종교가 얼마나 허망한건지 해부학 강의를 해준 이 멋진 교수님이 “그러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라는 충격 선언을 해버렸다. 아니, 아무리 이성이 안통하는 영역이어도 그렇지 그래 그걸 다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그 교수님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내 대학시절 최저 학점도 주셨다. -_- 

 

2) 나의 진정한 멘토 – 준만이 형이 들려준 종교이야기 

대학시절 만나 지금까지 쭐레쭐레 쫓아다니는 내 멘토 형님이 있다. 나 축구부 1학년 시절부터 재미없다고 재미없다고 그렇게 구박해주셔서 나의 절망적인 유머능력치 향상에 혁혁한 공헌을 해주셨고, 끝없이 술사주고 밥사주고 헌팅, 미팅 등을 트레이닝 해주며 그냥 내 눈에 가장 멋있는 형으로 항상 남아 있었다. 워낙에 뜻이 크고 사람이 좋아서 뭐든 다 해낼거 같은 사람, 살면서 이 사람이 뭐 하자고 하면 난 그냥 믿고 따르겠다는 느낌을 가장 처음으로 준 사람. 그리고 내게 “술먹고 택시탈때 무조건 선배부터 태우고 택시운전수한테 3만원 쥐워줘. 이 돈 아끼면 나한테 맞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노력하기 나름이야. 가장 힘들때와 기쁠때 다가가야되.” “선후배라는건 힘들때 끌어주고 밀어주며 서로 자극하고 그러면서 계속 가는거지. 우리 서로 꼭 도와주고 자극주고 위해주자.” 등의 크고 작은 가르침을 항상 내려준 사람이다. 곧 교수님이 되실 것 같은데 형과 이것저것 같이할 생각만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 항상 소문으로는 접했지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이 형이 교회를 한번도 빼먹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렇게 술을 많이먹고 좋아하고, 내게 Ting 시리즈를 가르쳐준, 이시대의 영웅호걸 형님이 금주, 금욕과 Correlation 높아보이는 크리스천이라니. 2008년 급기야 와튼 박사를 하고 있는 형을 찾아가서 와인 2병을 까며 만취한 나는 형에게 물어본다. “형, 전 전부터 쥔짜 궁금했는데요, 형에게 종교, God는 어떤거예요? 저는 그게 와닿지가 않거든요.” 이때 형님의 대답을 나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산아, 나에게 God는 정말 정말 정말 나와 항상 같이 있는 나와 가장 가까운 분이야. 난 내 모든 삶을 그분앞에 보여주고 그분과 나는 상당히 Cool하고 Intimate하고 각별한 관계야. 너무 어렵게 생각할거 없어. 난 오늘도 “저기 이쁜애 봤는데 제가 이렇게 착하게 잘 살고 있으니 쟤랑 다음에 밥먹게 해주세요” 같은 멋진 딜을 맺어가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어. 내면에 귀기울이고 솔직하게 대화하는게 중요한거라고 봐. 교리는 다 해석일 뿐이지. 너에게도 분명 순간이 올거야. ” 

 

그 이후의 대화는 필름이 끊긴관계로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 만남 이후 내게 종교는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을 만한 것이 됐다. 그래 그런 관계라면 나쁠거 없지. 

 

3) 내가 닮고 싶었던 사람들, 삶의 모습들 – 크리스천 

나의 군시절 베스트 프렌드, 나의 신병 교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내가 존경했던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크리스천이었다. 내가 선택의 순간에 “아무도 안보니까” 라고 타협하며 이기적이고 값싼 결정을 내릴 때 그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저런 이타적인 결정을 내릴까… 너무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이 닮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결혼식도 교회 결혼식이고 – 서로 노래 불러주고 편지 읽어주고 부모님이 직접 축하해주고 그런게 너무 좋아보였다 –  크리스천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게 있어 가장 효과적이었던 선교는 절대 목사님 말씀이나 교리가 아니였다. 내 주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지. 

 

4) 그러나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내려놓는건 너무도 어려운 일

그러나 그건 너무 어려웠다. 교회에 가서 노래부르며 “사랑받고 있는걸 느끼는건” 눈물날만큼 행복한 일이었지만 (특히나 훈련소에선 많이 울었다.)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과 신을 영접하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내 삶의 중심이, 주도권이 내게 없다는게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어떻게 수동적으로 그냥 모든게 다 뜻이 있다고 살 수 있지. 그건 끌려가는 삶이 아닐까. 난 도전하고 나아가고 이뤄내고, 베르세르크의 가츠 처럼 살고 싶은데. 그런 생각에 가득차 있어서 도무지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담과 이브, 모세 얘기가 전혀 와닿지 않고 교회 목사님 말씀이 뻔한소리로 들리는 거는 둘째 치고 근본적인 교리가 너무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컴패션 한국 자원봉사 대표, 벌써 세계 곳곳에 수많은 자녀를 키우고 있고, 한국의 환경문제와 녹색 성장문제에 젊음을 바치고 있는 가장 선한 눈망울의 소유자,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내 공무원 친구 명환이가 해준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다. “산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마. 삶이 너무 잘나가면, 행복하면 사실 종교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해.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그 때 스스로를 내려놓고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을거야. 분명 너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거야. ” 

 

4. 미국에 오면서, 점차 Christian이 되가는 나 

 

1) 인도에서 만난 성자. 그리고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

미국에 와서, Stanford MBA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If you want to live a successful life, go to Harvard. If you want to live a happy and meaningful life, go to Stanford. (하버드 학생분께 죄송합니다. 예 상당히 bias된 글인거 인정합니다! =)) 그래 정말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겠어. 그런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좋은 날씨와 존경스럽고 inspiring한 사람과 같이 꿈꾸고 의미를 논해가는 나날에 심취해가던 중, 인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 Trip leader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 (Narayana Hrudayalaya, 위키피디아) 에 갔는데 이 병원이 참 정말 대단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개 (병원이 아니다. 기업) 중 36위에 선정되고, 인도에서는 1위에 올랐는데 (관련기사) 특히나 아동에게 하는 심장 수술(Pediatric Heart Surgery)를 세계에서 거의 가장 싼 가격($2,000 미만, 인도 동종 병원 1/3가격, 미국이나 서구 병원비와는 비교 불가능)에 하면서도 가장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고, 더구나 세후 7.7%(미국 평균 6.9%)라는 말도안되는 높은 수익성까지 가진 미스테리한 병원이다.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했는지 여기에서 다 소개하자면 끝도 없지만, 우리 일행의 떡벌어진 입을 더 떡벌어지게 한건 그 병원을 일으킨 원장님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어려서 테레사 수녀를 모셨던 그는 인도인 모두가 돈이 없어 심장별 수술을 못받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비전으로 단 한번도 돈 없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전설같은 기록을 남기며 이만한 혁신을 이뤄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길여 총장님 이야기다.) $2,000이라는 가격을 더 낮추지 못해 매일 괴롭다는 이분의 음성에서 난 뭔가 그냥 육성이상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이분이 소개해준 평생 간직하고 있는 테레사 수녀가 써준 글에서 난 정말 복받쳐서, 뭔지 모른게 복받쳐서 그냥 울어버렸다. (그리고 난 이 글을 부탁드려 받아와서 책상머리앞에 항상 붙여놓고 보고있다.)

 

People are often unreasonable, illogical and self centered; Forgive them anyway. 

If you are kind, people may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Be kind anyway.

If you are successful, you may win some false friends and some true enemies; Succeed anyway. 

If you are honest and frank, people may cheat you; Be honest and frank anyway. 

What you spend years building, someone could destroy overnight; Build anyway. 

If you find serenity and happiness, they may be jealous; Be happy anyway. 

The good you do today, people will forget tomorrow; Do good anyway.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it may never be enough; Give the world the best you’ve got anyway. 

You see, in the final analysis, it is between you and god. It never was between you and them anyway. 

 

특히나 마지막 두 이야기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it may never be enough. Give the world the best you’ve got anyway. At the end, it is between you and god… 그래. 테레사 수녀님은 다 알고 있었구나. 얼마나 힘들고 좌절하고 배신당하고, 무너지고 그랬을텐데, 그래서 흔들림이 없었구나. 그래서 한결같을 수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사니까. 그럴 수 있었구나. 그래. 이게 아닐까. 내가 갈망했던 삶의 모습은. 그토록 뭔가가 절실한데, 도대체 언제나 허전한 이 가슴을도무지 어쩔지 모르겠는데. 삶과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실망하고 회의하고 좌절할 때 그게 참 힘들었는데,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믿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 Self Awareness –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부터 점점 더 강해지는 Calling이라는 느낌 

나의 미국 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다. 너무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또 너무 벅차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전체 학년에 한국사람은 나 혼자였고 난 미국 생활은 고사하고 한국을 1개월이상 떠나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 뭔가 이뤄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마음은 항상 조급했고 그전에 힘들게 살았던 삶들을 부정하고 싶었던 적도 많이 있다. 논란도 많이 됐던 이런글 Reflection_2 나와 한국 에 보면, 한국에서의 일과 경제적 문제와 각종 현실적인 아픔들에 힘들었던 기억들을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 직업-부모직업-부 등으로 가중평균해 듀오 레벨 메기기식으로 등급매겨지는 체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되는 얕은 생각들도 많이 보인다는거 인정한다. 그래, 난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내가 가진게 보이더라. 그 모든 과정이, 내 인생의 하나 하나 순간들이 다 의미있게 느껴지고 다 감사하게 느껴지더라. 한국이란 나라에서, 어려웠던 시절 극복해낸 우리 부모님 세대 밑에서, 깡다구와 근성 하나만큼은 살아있는 민족에서, 그 피를 느끼며,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남들보다 열심히 무언가 하려하며 여기서 살고 있구나. 항상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자신감있고 호기심 넘치게 나갈 수 있구나. 내가 정부에서의 일과 삶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고생하고 정체성에 방황하는 직장인 들, 젊은 세대들에게 더 큰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는구나. 그래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구나. 이렇게 느껴지더라. 합리화라고 해도 좋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게 따지고 싶지가 않더라. 그냥 받아들이고 싶더라.  

 

그래. 종교도 선택의 문제 라고 이제 나는 생각하고 믿기로 했다. 세상 모든게 그렇듯이 삐뚤게 보고 흠을 찾으면 흠집 투성이인게 삶이고 사람이고 인생살이지만, 좋게 봐주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또 너무 놀랄 정도의 결과 나오고 일이 생긴다. 종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아직도 난 성경 이야기, 예수님 탄생부터 그 이야기가 전혀 와닿지도 않고 신이 잘 믿기지도 않는다. 그래도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삶의 자세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됐다. 항상 난 어찌보면 불평해왔던거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것만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내가 따르고 믿고 싶은 삶과 의미들은, 그냥 믿자. 노력하자.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려 노력하는것처럼, 좋은 말씀들과 가르침과 삶의 자세를 믿고 따르자. 그게 지금 내게있어 종교관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뜻이 있으리라. 

 

5. 마치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난 나를 70% 정도는 크리스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역시 난 내멋대로다.) 난 절에도 갈거고 이슬람 사원에도 갈거고 힌두교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호기심갖고 알아볼거다. 몰몬교인 내 상사도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운 사람이고 어느순간부터 절에 매일같이 나가는 불교 신자가 된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어머니도 내게 있어선 점점더 완성되가는 아름다워 지는 종교인으로 다가올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70% 크리스천이라고 하는거는 아래에 나와있는 크리스천의 가르침과 삶의 모습들이 너무 와닿기 때문이다. 내게 남아있는 30%는 과연 내가 삶에서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이다. 과연 내 삶이 나의 것이 아닌 glory of god라는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이다. 이건 나로선 흥미진진할 따름이다. 

1. Calling에 대한 7가지 이야기

Calling is not to a distant destination, but to a next step 

(콜링은 먼 목적지가 아닙니다. 바로 다음 걸음이지요.)

Calling is about who you are becoming, not where or what you get

(콜링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입니다. 당신이 어떤 곳에 도달하거나 무엇을 가지느냐가 아닙니다.) 

Calling is more about small decisions than big decisions

(콜링은 큰 결정들이라기 보다는 작은 결정들의 이야깁니다. )

Calling will include what you do for work

(콜링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포함할 것입니다.)

Calling will transcend what you do for work

(콜링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초월할 것입니다.)

Calling is plural (You will have multiple callings, often at the same time)

The need is not necessarily the call

(콜링은 하나가 아닙니다. 당신은 동시에 수많은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필요가 꼭 그 부름은 아닙니다.)

2. God의 존재에 대한 7가지 증거

The assurance of love – It’s not a deduction. You don’t have to worry. 

(사랑의 증거, 확신. 사랑은 끝이 없다. 결코 내가 무엇을 잘못하면 조금씩 점수가 깎이는 그런게 아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오늘 잘못해도, 내가 점수를 잃은건 하나도 없다. 그분의 나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고 항상 넘친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걱정하지 마라. 잘못한거 없다. )

The guidance of Scripture

(성경에 가르침과 가이던스가 있다. 그걸 믿고 따라가면 된다. )

The shape of your strengths

(당신의 강점을 들여다 봐라. 그게 Gift다. 그냥 있는게 아니다. 다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 수제 customized 된 선물이다. 뜻있는 곳에 이롭게 쓰라고 내게 주어진 거다. 그걸 만들어가보자. 소중하게 쓰자. 나혼자 잘먹고 잘살라고 주어진 능력들이 아니다. 그걸 찾고 인정하는 것은 it takes incredible courage. But once you realize it, acknowledge it, it gives you enormous joy.)

The reality of your circumstances

(너의 주위 환경의 현실을 잘 들여다봐라.)

The wisdom of community

(안좋은 결정을 내리는 가장 빠른 길은 고립되는거다. 너는 도움이 필요하다. )

The presence of peace

(마음의 안정(consolation)을 찾아가고 그 소리에 귀기울여라. 절대로 좌절이나, 분노나, 공허함(desolation) 에 결정을 내리지 마라. )

The goal is His glory, not yours

(결국 삶의 목적은 그분, 하나님의 영광이지 너의 영광이 아니다. )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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