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방문자가 부쩍 는것 같다. 참 놀랍고 감사하고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더 조심스러워 진다. 글 하나하나가 점점 더 길어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조진서 기자님 블로그처럼 나도 단상성 글, 정제되지 않은 글도 그냥 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 쓴다.
오늘 친구의 Talk에 갔다가 많이 울었다. 참 좋아하고 친한 애다. 매킨지, 클라이너 퍼킨스 VC, 스타텁을 거쳐서 이제는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가난을 퇴치하는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 인베스팅을 하는 정말 멋진 인도출신 애다. 난 이 여자애의 가족이 아주 가난한 인도 시골마을 출신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얘가 빈곤퇴치에 기여하게 된 계기, 그것에 대한 자신의 패션, 그리고 가족의 어려웠던 과거 이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훨씬 적나라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누에고치와 나비 이야기를 했다.
너네 나비가 어떻게 나비가 되는지 알아?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로 기어다니다가 번데기에 있다가 거기서 꼬물꼬물해서 나비가 되잖아. 내 인생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학창시절 난 나비였어. 고등학교, 우리 기숙학교에서 난 스타였지. 인도에서는 수학과학 좀 잘하면 스타가 돼. 전교생이 나를 알았고 모든 선생님이 나를 알았고 난 3년 내내 학생회장을 했고 그랬지. 남자들한테 인기도 꽤 있었던거 같아. 인도에서는 워낙 연애가 금기시 되어서 그당시 내가 2년동안 좋아하던 남자애는 학교에서 내가 볼땐 최고 킹카였는데, 걔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거의 공개적 사실이었지. 그래도 2년동안 우리가 한거라곤 내가 걔한테 수학 정석 2를 가르쳐준 거 정도? 난 걔가 나랑 같이 대학가길 바랬거든 (애들웃음).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 걔 엄마가 우리엄마한테 전화해서 우리 아들이 당신 딸과 같이 영화보러 가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우리 엄마가 승낙해서 난 생애 첫 데이트와 첫키스까지 했지. 정말 행복했어.
그리고 나서 난 자연스런 수순대로 인도에서 가장 좋다는 IIT(인도 최고 공학대학) 에 갔어. 참 신비로운 곳이었어. 내가 전공했던 전자공학도 이백명중 한학년에 여자가 딱 두명이었지. 다른 한명은 또 워낙 방밖으로 안나오는 여자애여서 난 항상 혼자였고 외톨이었어. 남자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대하듯 했고 정말 유치하게 ‘여자는 역시 수학을 못하고 엔지니어가 못돼. 봐봐. 겨우 여자 하나에 남자 수백명이잖아’ 뭐 이런식이었지 항상. 남자들 진짜 유치빤스야. (애들웃음) 난 그게 너무 싫었지. 그게 틀린걸 증명하는게 거의 내 존재의 이유였지. 그래서 진짜 남자들 하는건 뭐든 다했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어. 페미닌하고 똑똑하고 섹시하고 멋진 여자가 세상에 있을수 있다는걸 보여주겠어. 내가 너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겠어 라는 오기로.
그런데 어느날 그나마 친했던 친구하나가 나를 불러서 할 얘기가 있다고 하고 컴퓨터 방으로 데려갔지. 그리고 자기 이메일을 열더니 내 이름으로 자기한테 온 이메일을 보여줬어. 정말 깜짝 놀랐지. 여자 나체사진이랑 남자나체 사진이 있고 성교하는 장면이 있었어. 그리고 이메일 제목이 “Please Fuck me like this” 였지. 거의 전체 학생에게 발송돼 있었어. 누가 일부러 나를 헤꼬지 하려고 내 이메일을 해킹해서 이런짓을 한거야.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너희는 상상도 못할거야. 그 사진은 내가 살면서 최초로 본 포르노 사진이었어. 그 전까지 내게 성 이란 그냥 잘생긴 남자 사진을 보는것 정도였고 인도의 성교육은 정말 상상 이하 수준이야… 칼에 맞은거 같은 느낌이었어. 난 고개를 들지 못했어. 그 일 이후로 난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갔어. 자신감도 사라졌고 수업시간에 말도 없어졌지.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는것 같았고 누구나 내 이야기를 수군대는거 같아서 항상 고개숙이고 학교에 갔다가 기숙사 내 방에 와서 혼자 틀어박혀 있었지. 머리도 짧게 자르고 화장도 안하고 치마도 안입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어. “그래 니들이 틀린걸 증명해 주겠어” 가 내 존재의 이유였는데 그게 사라졌지. 난 패잔병이었어. “그래 니들이 맞았던것 같아. 난 안되겠어.” 란 마음이었어. 거울속의 남자같이 변한 나를 볼 때면 저주스러웠지. 너무 마음에 안들었어. 정말 늪 같았던 기억이고 시간이야. 대학 3년 내내 내게 친구는 한명 정도 있었던것 같아.
가족에게도 절대 기댈 수 없었어. 난 대학다닐 때 딱 세번 집에 갔어. 우리 아버지는 정말 전형적인 가부장적 인도인 엔지니어야. 참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절대 따뜻하게 말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 아빠에게 여자란 남자보다 밑에 존재하는, 부양해야하는 입 하나하나에 불과해. 항상 그렇게 나와 언니, 엄마를 대했지. 우리 엄마는 항상 아빠가 소리지르는거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고 나는 아빠가 소리지르는거 듣는게 죽기보다 싫었지. 엄마가 아빠 몰래 은행에 직업을 구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 엄마는 정말 절실히 조금이라도 스스로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어했고 아주 열심히 몰래 준비해서 아주 좋은 기회를 잡은거였어. 아빠는 화내면서 소리 질렀지. “그럼 아침은 누가하고, 저녁은 누가하고, 내 수발은 누가들고 한다는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안돼.” 대학가기 전에 아빠한테 아예 난 정면으로 대들고 집을 나왔어. “난 아빠한테 땡전한푼 받을 생각없고 그러기도 싫으니 내 인생에 상관하지 마요.” 라고 못을 박고 학교로 갔지. 참 나만 알고 정말 바보같았어. 덕분에 우리 엄마는 아빠의 공격을 더 받아야 했지. 참 엄마한테 못할 짓 한거야… 난 그냥 점점 누에고치속으로 들어갔지.
대학시절 나의 로보트와 공학에 대한 열정을 알아줬던 은사 교수님이 있었어. 나에게 살아있는 이유라곤 그거 밖에 없어서 더 열심히 했고 그래서 프로페셔널하게 한걸음씩 나갈 수 있었어. 여기 오기까지 도와줬던 멘토 교수님들, 맥킨지와 클라이너 퍼킨스에서 만난 멘토들, 나를 알아봐준 사람들, 절대 잊을 수 없을거야. 그러나 난 여성 멘토를 찾을 수 없었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롤모델을 찾고 싶었어. 그래서 난 이제 막 변하기 시작해서 가족에게 잘해보려는 아빠와, 내가 없으면 항상 너무 작고 약하고 왜소해지는 엄마를 모두 등지고 새로운 세상을 보겠다고,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겠다고, 다 박차고 여기로 왔어. 더 성공하겠다 더 배우고 느끼겠다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런 생각이었지.
난 내가 여기 와서 배울거라곤 생각했지만 치유받을거라곤 생각해본적이 없었어. 내가 치유가 필요하다, 내가 상처받았다,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런 생각자체를 안해봤지. 그런데 왠걸.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도 멋진 너희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같이 부대낄수록, 뭔가가 바뀌는게 느껴졌지. 아니 세상에 이렇게 따뜻하고 똑똑하고 멋지고, 남자들이 뭐라든 하나 신경 안쓰며 자기 길 가는 여자들이 있구나. 나의 멘토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너희 여자들이 다 내 멘토였지. 내 생일파티 챙겨준거, 징징거리는 나 데리고 같이 쇼핑 가준거, 같이 화장놀이 한거, 이런거 작은거 하나하나 너무 사랑스러웠고 너무 새로웠어. 너넨 정말 너네가 나한테 해준게 뭔지 모를거야. 난 누에고치를 한꺼풀씩 벗기 시작했지. 언 몸이 녹는거 같았어.
지난 겨울에 집에 갔었어. 아버지가 우리 고모랑 통화하더라. 난 방에서 몰래 엿듣고 있었지. 전화기에서 고모 목소리가 들렸어. “아니 어떻게 된 여자애가 나이가 27인데 아직 결혼도 안하고, 뭐 미국에서 공부한다고요? 휴… 시집가긴 다 틀렸네요. 걔 어떡한대 이제?” 그런데 아빠의 대답을 듣고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뻔했어. “야, 니가 뭘 몰라서 그래. 걔는 우리랑 달라. 걔는 일반 애가 아니야. 걔는 세상에서 이제 못할게 없어. 뭐든 할 수 있어. 세상을 바꿀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거야.” 이럴수가. 저 남자밖에 모르던 말 안통하는 원수덩어리가… 살면서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줬어…우리 아빠가 나를 인정해줬어. 난 부엌으로 가서 엄마랑 얼싸안고 한참 울었어.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
난 이제 자신있어. 나 답게 살 수 있을거 같아. 내가 누에고치 안에서 죽어 있었던 그 시간을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냥 묻어뒀었지. 잊으려 절실히 노력했고,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건 잊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 이렇게 다 꺼내놓고 나니 너무 후련해. 이제 자유로워. 이제 난 다른 사람이야. 다시한번 날개를 펴고 이제 난 날 수 있어. 모두 너희들 덕분이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요새는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심리적으로 아킬레스건 같은 순간이나 부분이 있을거다. 누군가에겐 그게 부모님 이혼일수도, 가난한 집안형편일수도, 누군가에겐 학창시절 따돌림당한 기억일수도, 고시에서 실패했던 것, 중학교때 괴롭힘 당했던 것,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뺨 맞은 것, 5년간 짝사랑 했던 여자한테 차갑게 차인것, …. 이루 말할 수 없는 컴플렉스와 아픔들이 덕지덕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을거다. 감정이란건 잊혀지는게 아니니까. People would never forget how they felt at the moment. 절대 열고 싶지않은 판도라상자 같은걸 수도 있고 너무 아파서 아예 잊어버린 기억일 수도 있고,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박혀있는 지긋지긋한 악몽일 수도 있다. 그 상처가 치유된다는건, 그 무엇보다도 엄청나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이 아닐까. 심리학에서도 과거는 없다고 했다지…
스탠포드 1번 에세이는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이고 난 그거에 대한 생각 참 많이 해봤고 지금도 하고 있고 글도 많이 썼다. 동기친구들 수십명끼리 에세이를 공유해서 하나씩 읽어봤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살아있어서 소름이 돋더라. 근육이 아놀드 슈와츠 제네거 못지않고 여자 잘 꼬시기로 유명한 정말 밝고 너무 자신감 넘치고 놀기 좋아하는 내 친구가 있다. 그런데 막상 얘 에세이를 보자 어렸을 때 괴롭힘도 당했고, 욕하고 주위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인정받으려 발버둥치며 자랐던 이야기가 써있었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가 운동을 시작해서 자신감을 얻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직업적으로나 학교에서도 다시 잘하기 시작했다고…또 다른 친구는 어렸을때 운동을 너무 못해서 컴퓨터 게임만 했단다. 그러다가 공대에 가서 계속 게임하고 혼자 지냈는데 국제 자원봉사를 하면서 남들과 일하고 남들에게 영향 미치는게 얼마나 재밌는지 느끼고, 공대 – 의사 될 길을 그만두고 컨설팅 – PE로 갔다고. 지금도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건 멋진 친구들과 으쌰으쌰 재밌는 일 열심히 하는거라고… 참 잘난척과 허울로 가득했던 내 에세이가 너무 부끄러워지더라.
참 받은것 많고 사랑 많이 받았고 너무 운이 좋았던 나에게도, 분명 이런 컴플렉스와 심리적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사실 그게 그런건지도 잘 모르고 살았었지. 그리고 이곳 스탠포드에 와서 친구들을 보면서, 꿈을꾸고 당당한 리더를을 보면서 참 많이 치유된 것 같다. 상처받은 가슴이 치유되는 경험은 너무 신비로워서,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에너지가 샘솟게 만든다. 우린 누구나 한곳은 모난 돌이 아닐까. 그 돌이 서로 부딪히면서 점점 더 둥글어져가는 게 사는과정이 아닐까. 존경스러운, 너무도 멋지고 사랑스러운 수백명의 친구들과 계속 부대끼고 고민하고 서로 울고 웃어가며 계속 둥글어져 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더 많이 글쓰고 책도 쓰고 교감하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런 꿈을 다시한번 꾸게 해준 내 친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을 보낸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참 멋지네요. 그만큼 내면이 단단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런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작던 크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겠죠.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하고 또 그런 과정들을 통해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거 같아요. 결국 상처가 없이 살순 없으니 말이죠.
친구들의 사소한 행동이 치유가 됐다는 단락을 읽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치유를 해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글 감사히 봤습니다.
감사해요 항상 ^^
매번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들 통해 간접적으로 도움많이 받으면서도 댓글남기는 건 처음이라 부끄럽네요.
선배님께서 쓰신 글에는 정말 문장문장마다 진심과 열정이 담겨져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어떤 분의 글보다 와닿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좋은 글 감사히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멋진 피드백에 칭찬이시네요.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sanbaek님이 쓰신 글을 봤는데, 그걸 타고 여기로 왔고, 오늘은 많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다가도 따뜻해지네요. 누구나 가슴안에 담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밖으로 꺼내놓고 나눌수 있다는건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해요. 덧붙여 쓰신 글도 좋았고, 저도 오늘은 저의 결론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예 정말 용기가 필요한것 같아요…
감동적인 이야기이구나. 지금 내가 돌아가서 MBA 준비를 다시 한다면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라는 질문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예 형. 진짜 엠비에이 지원할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랐던거같아요….
음… 정말, San Baek님의 글들 하나하나가 많은 영감(Inspiration)과 통찰(Insight) 주는거 같아요. 차곡차곡 올라오는 글을 매번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과연 San Baek님은 어떤 삶을 살게될까?’가 궁금해진다는 사실이에요. 여러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경험하는 San Baek님을 어느순간부터 절로 응원하게 되네요 🙂
그리고 저 스스로 San Baek님께 감사드리는 점은 ‘San Baek님의 글을 읽은 독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화두를 던져주시는 점인거 같아요, 그리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려해봐야할 Insight들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듣기좋은 칭찬이네요. 예 계속 고민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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