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대화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한국에 약 20일가까이 다녀왔다. 총 60명이 넘는 인원을 인솔해서 관광가이드+트립리더+양치기 소년 등의 역할을 했는데 그 여파 때문인지 근 2년만에 감기도 걸려서 골골대고 있다. 거기다가 이젠 정말이지 졸업과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머리도 상당히 복잡하다. 잠이 안오는 적은 거의 없는데 잠이 안온다니. 오락성 소설을 몇권 읽고도 잠이 안와서,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내 블로그에 계속 찾아와주는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뭔가 글을 남기고 싶다. 한국 트립 이야기는 나중에 제대로 써보겠다. 그만큼 재밌었고 많이 느끼고 배웠고 빡셌고 의미있었던 경험이다. 이번 포스팅은 우리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나 사이의 대화 내용이다.

먼저 우리아버지, 백재웅이란 사람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싶다. (아버지, 허락 안받고 이렇게 아버지 신상을 공개하는 아들을 용서하소서.) 내 생각에 우리 아버지 만큼 한국 현대사, 기성세대를 잘 represent 하는 인물도 쉽게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아버지 인생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1949년 경남 진주 생으로 6.25 전쟁을 몸소 체험하셨다. (기억엔 거의 없으시겠지만).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중학교 때 부터 영자신문을 팔며 직접 학비를 벌었고 고등학교는 학비가 덜 드는 농고로 진학하였다. 일찌기 상당히 잘생긴 (?) 외모와 로맨틱한 성격 (노래부르기 좋아하고 낭만/열정파), 그리고 친구들에게 너무 잘하는 편안한 성격 덕분에 YMCA를 비롯, 많은 클럽활동을 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70/80년대는 독재에 반하여 학생운동에 열을 올렸고 서울 상경하여 안정적인 직장도 그만두고 힘들게 주경야독으로 석사까지 공부한 끝에 현대/LG/SK 등등의 대기업에서 인간관계/리더십 등을 강의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상담심리 강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덕분에 나는 자라면서 현대자동차가 파업하면 아버지와 산으로 강으로 많이 놀러다니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90년대 삼김시대가 들어오면서 그다지도 바라던 한국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언제 학생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었냐는 듯 박정희와 한나라당 팬이 되었고 자칭 중도 보수가 되셨으며 (역시 자칭 중도 보수인 내가 보기엔 우리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파시다.) 아들이 나라 일 한다는걸 누구보다 응원하고 기뻐해 주셨다. 90년대말 IMF를 맞아 상당히 큰 타격을 입고 2000년대 들어 서서히 하시던 일을 정리하고 농장을 시작하셨다. 산을 개간하고 밭을 일구면서 가끔 시도 쓰고 직접 황토방도 만드는 낭만, 자연인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우국충정을 버리지 못하고 가끔씩 아들에게 편지를 써주시곤 한다. (아버지 편지 일부를 아래 첨부한다. 한번 읽어보면 얼마나 나라를 생각하시는 분인지 알 수 있을거다. )

아버지께서 올해 초에 보내주신 편지

아버지께서 올해 초에 보내주신 편지

아버지께서 농장에서 적어주신 겪언들

아버지께서 농장에서 적어주신 겪언들

이제는 말끝마다 “산아, 세상에서 가장 좋은게 뭔지 아나? 포도, 그리고 아버지 농장 포도즙이야.” 라는 귀여운 자랑을 하면서 포도전도사가 된 우리아버지. (참고로 아버지 농장 이야기는 이 링크에 있다. 포도즙 드시는 분께는 정말 자신있게 추천드리고 싶은 멋진 품질이다. 이걸로 광고 끝)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고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항상 강하고 열정적이고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정치적 노선이나 생각하시는 방식이 확실히 나나 내 세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즉 요약하자면

  • 가난한 집안 출신,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
  •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학생운동
  • 한국 경제발전과 더불어, 한국의 대기업에서 강의를 하며 30~40대를 보내고 두 아들을 낳음. 아들 교육을 위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까지…항상 모범적인 아버지, 남편이었으며 특히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여 친구같은 아빠, 아들을 믿어주고 대화가 통하는 아빠임
  • 90년대 민주정권 도래와 더불어 보수적인 정치시각을 갖기 시작.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대기업에서 직접 겪은 경험 등으로 집권 보수여당을 항상 지지.
  •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 특히 IMF때 많은 물질적/정신적 타격을 입음.
  • 은퇴하여 제 2의 인생 시작.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큼.  여전히 밥먹으면서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고, TV는 뉴스와 다큐를 즐겨봄. 본인 취미는 많지 않고 참 한평생 바르게, 열심히 사신 분.

이번에 한국에서 잠깐 가족이 다시 모여 단촐한 시간을 보내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간단한 안부가 오가고 난 후 저녁밥상의 메인 주제는 내 진로였다. 사실 난 이미 집이랑 통화할 때부터 여러번 공무원을 더 할 생각이 없으며 졸업 후에 한국에 당장 들어올 생각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공부를 더할 생각도 없다는 것도. 그러나 형이 이야기해준 것은 최근 정권 개각 이후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이 또 대거 고위 요직에 기용되면서 아버지께서 거는 기대가 크니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의 이야기대로 대화는 상당히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 그래 산아. 이제 졸업이 얼마 안남았는데 뭘 할 생각이냐?

산: 아, 그게. 지금 몇가지 옵션을 알아보고 있어. 아마 실리콘밸리나 뉴욕 쪽에 있는 Tech 관련 스타텁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 산아. 아버지는 솔직히 정말 이해가 안된다. 왜 나라를 위해 큰일 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그런 길을 가겠다는 거냐? 니가 정 공무원이 싫다면 교수는 어떠냐? 박사학위는 나중에 큰 일 할려면 꼭 필요하단다. 주위에 봐라. 다 박사, 그런 캐리어가 있어야 명분도 있고 한 자리씩 역할도 하잖아. 거기서 공부하면서 교수님이랑 잘 알아놓거나 한 경우는 없나?

산: 하이고 아빠. 아들은 공부 더할 생각 없네요. 박사는 아무나 하나. 아들은 공부 체질이 아니야. 그렇게 5년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논문쓰고 연구하고 하는거 나는 못해. 교수가 좋은 직업이라는건 인정하는데 아들이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못할거 같아. 그래도 나중에 뭔가 이루어 내고 하면 학교에서나 후학들에게 이야기할 기회야 계속 있을거니 너무 걱정은 마.

아버지: 휴…아버지는 걱정이다. 그럼 그때 이야기한 그 에너지/환경공학 석사는 어때? 그분야는 너무 유망한 분야니 꼭 그거라도 하면 좋을거 같다.

산: 아. 그건 사실 나도 고민 많이 해봤는데. 이젠 유망하고 전망이 좋다고 하는 그런거 좀 안하려고. 내가 하고싶은거 해야지 일도 더 잘하고 삶도 더 행복할 것 같아. 내가 그런쪽에 그리 관심이 없는데 남들 좋다고 공부 더하는거 시간, 돈이 너무 아까워.

아버지: 이거 아주 장난이 아닌데 허허허 (어머니와 형을 보며 웃는다. 동조를 요청하는 제스츄어.) 그래 주위 선배나 교수님 등에게 상담은 구해봤어? 니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아버지 시각에서는 참 와닿지가 않는구나. 그럼 MBA 선배들은 뭐라고 하니? 그리고 삼성/두산 이런데서 일하는 선배들도 많이 있잖아. 삼성이 이번에 실리콘밸리에도 크게 진출한다는데 그런데는 어떠냐?

산: 아바이 동무. 아들 대기업 체질 아니야. 하면 또 하겠지만 난 회식이나 술마시는 문화도 싫고 큰 기업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관료주의나 비효율도 싫어. 이미 난 버린몸이야. (다같이 웃음.) 작은 회사에서 으쌰으쌰 일하고 내가 원하는 속도, 효율성으로 재밌게 일하는게 적성에 맞는거 같아. 그냥 내가 앉은 자리에서 우직하게 내 차례 기다리면서 가만히 못있어요.

아버지: 허허. 이거 진짜 큰일이네. 인생이 그렇게 쉬운줄 아냐? 그런것도 못참고 어떻게 성공할려고 그래. 그리고 그렇게 작은 기업에서 하는 일이 국가에나 사회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고 기여를 할 수 있겠니?

산: 아빠, 나도 그 생각 많이 했고 그래서 공무원 한거잖아. 나도 나라에 보탬되는일 하고 싶고 주위에 기여하고 싶어. 그래 그렇게 살거야. 언제 어디서나 나라/민족/내가 속했던 사회, 우리 공무원 식구들, 다 생각하고 챙길거고. 그런데 그럴려면 내가 일단 나 다울 수 있어야 될 것 같아. 당장 내가 작은 회사에서 하는 일이 크게 나라에 보탬이 안될지 몰라도, 내가 착실히 일을 배우고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겨나면 나중에 어떤일 하건 분명 사회에 보탬이 될거야. 그리고 그래야 주위에도 더 좋은영향 미치고 잘할 수 있어.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고달픈데 어떻게 남을 챙기겠어.

아버지: 그래도 그렇지. 니가 미국사람도 아니고. 미국 작은 기업에서 니가 무슨 빛을 발하겠니. 니가 있을 곳이 어딘지 잘 생각해봐라.

산: 응. 그래. 분명 많이 부딪힐거야. 한계도 있을거고. 하지만 아빠. 난 일을 배우고 싶어. 그럴듯한 레쥬메를 만들고싶지는 않아. 난 일 잘할 수 있어. 자신감 있어. 내게 필요한 것은 진짜 비지니스를 해보는 경험이야. 실제로 사람을 뽑아보고 같이 일해보고 training 하고 manage 해보는 것. 실제로 딜을 맺고 일을 성사시키는것. 실제로 물건을 팔아보는것. 마케팅을 해보는것. 이런걸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해보고 싶어. 내가 이것저것 해보니까 나는 책임감 있게 일 해내고, 사람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하고, 새로운 일 시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주위에 동기부여 하고, 이런걸 잘하는거 같아 이런게 재밌고. 그런 정신과 자세로 되든 안되든 부딪혀 보고 나면, 나중에 그걸 바탕으로 더 좋은데 취직해도 되고, 아니면 내가 직접 사업을 해도 돼. 내가 인터뷰보면 번번히 낙방하는 것도 실제 비지니스 경험이 없어서야. 아들은 일단은 비지니스 맨이 되고 싶어. 그게 더 잘 맞는 거 같아. 지금 한국도 변하고 있지만 미국과 글로벌 비지니스 환경에서는 평생 직장 개념은 끝난지 오래야. 물론 이름있는 컨설팅/뱅킹/또는 삼성/Google 같은 큰 회사에 가서 credibility 를 쌓고 일도 배우고 할 수도 있지. 그런데 특히나 한국의 큰 기업들은 오히려 이런거 하다 안되면 나중에 갈 수도 있을것 같아. 이건 지금 아니면 못하는 일이야. 아직 결혼도 안했고 에너지도 있을때 한번 해보고 싶어.

아버지: 휴…이거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얘기 맘을 단단히 먹었네. 그럼 글로벌 리더로 가는 길 뭐 이런걸 걷겠다는 거냐?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정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만.

산: 하하 역시 우리아버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합리화하는데 정말 달인이시라니까. 그래서 멋있지. ㅋㅋ 그래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는 거야. 아버지가 좋아하는 존경하는 정주영 김우중 같은 사람 생각해봐. 그 사람들이 어디 전통적인 길 갔어? 무대뽀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로 해낸거지. 삶에 실패도 있고 시련도 있어야 더 강해지지 너무 편히 보이는 길은 재미없어. 우리나라 경제발전 이끈건 그런 헝그리 정신이잖아? 부모님 세대에선 해냈는데 우리 세대는 너무 편하고 눈에 보이는 길만 가려고 하면 어떻게해. 나라도 좀 다르게 살아 봐야지. 난 스탠포드에 와서, 실리콘 밸리에 와서 너무 많은 꿈과 열정을 봤어. 자신감도 얻었고. 그러니 나는 좀 다르게 살아볼 책임이 있는것 같아. 그리고 내 주위에 나 믿어주고 돌봐주는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이 많아서, 아들은 크게 망할 일은 없어. 그러니 한번 멋대로 살게 좀 믿어줘봐. ㅎㅎ 언제 아들이 실망시킨적 있어?

아버지: 그래…아들 믿지. 아들 믿는데… 그래도 한국에 안오겠다는 건 좀 가슴이 아프구나. 아버지 엄마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니들 얼굴도 못보고. 손주는 커녕 결혼소식도 없고. 삶에 낙이라는게 그렇게 크게 없는데…

산: 그래…그건 너무 죄송스럽지. 아들이 혹시 미국에 남더라도 한국 자주오고 한국도 왔다갔다 할게. 그리고 언제든지 한국에 올지 몰라. 이제는 그렇게 장기 계획을 못세우겠어. 그래도 나 한국인인거 알고 안잊어. 아들이 바로 서울로 안올려고 그래서 미안해 엄마아빠… 엄마아빠도 60,70년대에 상경했잖아. 구만리 같은 인생이 서울에 있으니까, 더 넓은 세계 보려고 그런거 아니야. 그런 차원에서 아들좀 봐줘. 일단 하는데 까지 해보고. 언제 또 들어갈지 모르니까. 조국이 그래서 조국 아니겠어.

마지막 아버지의 말씀. 그리고 동조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가장 가슴에 메였다. 원래 이런 약한소리 하시는 분들이 아닌데…정말 자식을 위해 평생 노력해서 열심히 사시고 이제 바라는 거라곤 얼굴보며 살자는 건데 그거 하나 못해드리는지. 그래도 내 인생인데… 내가 책임져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어렵사리 대화를 끝맺었다. 못내 아쉬워하시는 부모님께 실리콘밸리, 스탠포드 졸업식 비행기 티켓 끊어드리며 멋진 여행 시켜드리리라 다짐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나를 적극적으로 믿어주시고 내 의사결정을 존중해주시는 분 마저 이렇게 힘들어하시고 아쉬워 하시는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짐을 안고 사는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주위만 둘러봐도 그렇다. 10년 전이랑 변한게 거의 없는거 같다. 변한게 있다면 예전엔 SKY 에 열광하던 강남 아줌마들이 이제는 유학을 조금더 생각한다는것? 그리고 내 주위만 본다면 20대 후반 30대 초반 사람들이 기성세대 가치관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열심히 노력해본다는 것? 그리고 줏어들은 얘기지만 취업이 더 어려워 졌고 먹고살기가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서 내가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사치로 들리기 쉽다는것? (진짜로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라고 어찌 정답을 알겠는가. 그리고 정답이란게 원래 어디 있겠는가. 정답을 찾으려는 사고방식, 뭐가 제일 유망하고 잘나가고 뭐가 제일 좋냐고 묻는것 자체가 조금은 원래부터 모순이 있지 않을까. 내 주위 친한 분이나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도 “산아, 넌 아직 Private business 경력이 없고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 조금더 큰 회사에 가서 credibility 를 쌓는게 좋아.” 라고 조언도 많이 해주신다. 나도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세상살이 optimize 란 참 쉽지 않은거지.

그래도 우리세대가 삶을 풀어가는 방식은 부모님 기성세대와는 확실히 다르지 않나, 그리고 달라야 하지 않나 싶다. 부모님 세대는 바뀌지 않는다. 그분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신 것. 그분들이 이뤄낸 성과 – 한강의 기적과 한국의 근대화 민주화와 그 모든것. 우리 부모님 세대만큼 전 세계적으로 근면하고 존경스럽고 희생하고 그런 세대도 없지 않나 생각한다.  – 모두 너무 멋지고 존경스럽지만 그분들이 보는 세상과 우리가 보는 세상은 다르지 않나 싶다. (물론 정말 엄청난 일반화이지만.) 그래서 난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게된다. 그때그때 내가 가장 하고싶은거 가장 열심히 하면서 열정이 가는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그런 꿈을 꾼다. 전에 스탠포드 MBA선배님들이 동문회에서 해준 말씀이 있다. “백산아. 너 이제 곧 졸업이지? 하. 나도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땐 진짜 자신감이 넘쳤지. 세상을 내가 다 바꿀 수 있을거 같았어. 돌이켜보면 MBA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바로 그 자신감이야. 근데 그거 또 위험하다. 3개월만 지난면 세상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느끼면서 확 없어져. ㅋㅋ. 조심해라.” 그래 분명 또 근거없는 자신감일지 모르고 돌이켜보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아버지한테 한말 한마디 한마디는 정말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믿고 생각해보고 싶다.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20 comments

  1. Desac

    음… 읽어보니 아버님께서 한국의 60대 장년층을 잘 represent 하는 분 같진 않네요.
    보통의 장년층이라면 “어린 넘이 뭘 안다고 그래! 하라면 해!” 식이죠.

  2. 주장호

    글 잘 읽었어요
    글이 좀 길어지면 집중을 잃곤 하는데
    몰입해서 읽었네요^^

    형을 겪어본건 군대에 있을때고
    (개인적으로 군대에 있을때 사람의 포장되지 않는 본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해)
    싸이월드나 블로그글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형의 가정교육환경이 궁금했었어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애국심이 진짜로 있는거지 라고 궁금했거든
    (형이 고시준비한다고 들어갈때 출세가 아닌 정말 나라를 위해 일할려고 한다는 말에 진정성을 난 느꼈어.
    남들이 한국을 위해 고시준비한다고 하면 ” 포장된말 또 하는구나 출세할려고 하는거 겠지” 라고 생각을 하거든)
    역시 아버지도 대단하시네요.

    사실 난 아버지의 의견도 이해가고 형의 의견도 이해가 가
    나또한 형처럼 비슷한 경험을 겪어봤거든( 물론 스케일은 형보단 훨씬작지ㅋㅋㅋㅋ)
    결국엔 안정된직장잡아서 일하고 있지만^^

    어쨌든 항상 응원할께!!(큰힘은 안되겠지만ㅋㅋㅋㅋ)

    • 하이고 그려. 종종 들어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장호야. 이런글이 잘 읽히는구나. 글을 짧게 쓰고싶어도 그게 잘 안되 하고싶은말이 너무 많아서.

  3. 아하. 산님의 열정과 홍익인간 마인드의 출처는 유전자였군요! 아버님이 보시기 전에 읽을수있어서 다행입니다.ㅎㅎ

  4. 아버지, 어머니께서 하시는 고민과 바램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편지에서 “미국적 문화와 생활에 너무 점수를 주지 않았으면”이라는 말 이면에 있는 바램도 이해가 되구..

    하지만, 네 말대로 ‘유망하고 전망 좋다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가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지난 2년간 널 봐온 사람으로서, 네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화이팅!

  5. coolight318

    형!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형님처럼 많이 고민하시고 열씸히 사시는 분에겐 꼭 만족스러운 과정과 결과가 있을꺼라 믿쑴니다.ㅋ 항상 응원 하고 있어요~ ^^
    (농원 소개 중 ‘현 미국 유학중으로 포도즙의 미국 및 글로벌 판로 개척을 위해 꿈꾸고 있다.’에서 빵 터졌습니다.ㅋ)

  6. 참 도란도란한 가족이다 산아^^
    나도 빨리 한국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친구들이 말하길 ‘한국은 언제라도 들어갈수 있지만 이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건 지금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어. 너의 도전에 언제나 박수를 보내고 또 많이 배워 ㅎㅎ 난 너무 지금 나태해 ㅋㅋㅋ(정신상태가 ㅎㅎ 몸은 피곤해 ㅋㅋ)

    • ㅎㅎ그래. 화려해보여도 프랑스 유학생활도 만만찮지? 객지생활 같이 화이팅해보자꾸나. 나야말로 많이배우지…

  7.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까마득한 동아리 후배입니다. 사실 동아리와는 별개의 경로로 선배님 블로그를 알게 되어 들어와 보곤 했는데 이글은 공감이 많이 되어 댓글을 남기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네요^^ 저는 2년정도 뱅킹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나와 지금은 아무 이유없이 (!) 북경에 와서 진짜 하고싶은 일 관련해서 사람들 만나고 세상 배우는 중입니다. ‘나중에 뭐할래’라는 질문에 ‘1-2년 계약직 잡아서 좀 더 일하다가 유학가고 싶다’고 했더니 파랗게 질리던 부모님 얼굴을 저도 잊을 수가 없어요ㅠㅋㅋ ‘이젠 평생직장을 잡아야 하지 않겠니, 뭐하러 밖으로 돌려고 하니’라는 말씀에 제가 했던 얘기가 위에서 선배님이 적으신 얘기와 거의 똑같아요ㅋㅋㅋㅋ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조금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선호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군가 한 말처럼 life is fair in the end, you get what you aim for. 이 사실이기를 바라봅니다. 늘 응원하고 있을게요!

    • ㅎㅎ그래. 미정이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후배라니 말 편하게 할게. 언제든 편히연락줘. 나도 힘빠질때 많은데 서로 도와야지

  8. Jin Hee

    MBA 관련 정보 찾다가 어제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하여 글을 읽었는데, 여기저기 공감가는 글들이 많네요~ ㅋㅋ 정말 멋진 부모님을 두시고, 백산님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시고…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이 여러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북한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공부중이며, 지금은 한국의 컨설팅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버님이 언급하셨던 문제들에 대해 – 저도 대부분 동감하고 특히 저는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 아버님 말씀처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 주시면 좋겠네요. 방법은 여러가지니까요. 백산님과 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거 같아 한국은 미래는 희망적인거 같아요!! 정진하세요~ 응원할께요!!

    • 감사합니다. 같이 힘내봐요. 저희 아버지 참 훌륭하신 분이고 저 참 복받은 사람이죠. 업로드하고싶은 아버지와의 대화 어머니와의 대화 시리즈가 꽤 있는데 두분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네요 하하하.

  9. jaedeok

    저는 과학고-공대-군대 테크를 타…기 직전에 뛰쳐나와 인문사회계열로 진로를 변경하고자 현재 수험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동 중이나 식사 중에 백산 님의 글들을 읽어 오면서 정말 삶을 진정성있게 살아 가시는 분이구나, 하고 여러 번 느꼈었습니다. The true north나, 스탠포드 MBA 동기이신 클라라라는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글은 특히 제게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켰었습니다.
    그렇게 파렴치한 눈팅(?)만 해오다가 이제서야 컴퓨터로 보게 되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어느 포스팅에서 좀 더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자신의 소중한 체험들을(이를테면 제가 언제 어떻게 조엘 피터슨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겠나요ㅎㅎ!) 거리낌없이 매우 상세하고 솔직하게 나눠오신 것 만으로도, 적어도 저한테는, 이미 그렇게 해오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앗 이 글을 답글을 깜빡잊고 안달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해주시고. 요새 많이 못전하고 있어 죄송하기도 하고요. ^^

  10. Pingback: 아버지와의 대화2 – 남자이야기 | Story of San &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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