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족함과 소망 – Professional Insecurity and Hope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글은 최근에도 나를 참 많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Professional Insecurity 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내 인생은 자신감 인생이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내가 잘한다고 나를 칭찬해줬고 나는 칭찬을 먹고 살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엄청 애늙은이 처럼 굴었고 (초등학교 때 어머니, 아버지 이러면서 존댓말 써본적도 있고) 모범생으로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고 대학교 가서는 축구부 주장 이런것도 하면서 조직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열심히 계속 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재확인 하기도 했다. 고시공부 할 때도 그런식이었고. 그래서 난 사회생활도 일도, 비슷할 줄 알았다. 공부하듯이 열심히 하면,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면, 좋은 학교 나오고 주위에 좋은 사람 많이 두면, 일은 누가해도 하는거니 열심히만 하면 잘 할 수 있을줄 알았다. 30대 중반쯤 되면, 점점더 연륜과 내공이 쌓여가며 멋진 커멘트를 날리고 방향지시를 해가며, 계속해서 쌓아가는 내공으로 어딜가나 필요한 인재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적어도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난 오늘도 안해본 일을 하고 오늘도 나의 실력과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난 어떤 value add를 하고 있고 주위에 폐는 안끼치는지,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내 주위에는 항상 나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기업을 일으키고, 사회 곳곳에서 멋지게 쓰임받고 일궈가는 모습을 볼때,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폐끼치고 할때마다 갈수록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  끊임없이 넘어져도 또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나 내가 부족했던 부분, 부끄럽고 고민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이 과정을 내가 지금 품고 있는 소망과 함께 쉐어하고 싶어서 몇자 적어본다.

이 글은 사실 많이 미완성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좀 불분명하다. 위로받고 싶어 쓴글이 전혀 아니고 절망감에 쓴 글도 전혀 아니다. 글을 쓰고 나서도 괜히 보는사람 안타깝게, 뭔가 위로해줘야할 것처럼 만드는 이런 글을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쉐어할까 말까도 많이 망설였다. 가끔씩 아 나는 정말 부족하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는 되지만 좌절감을 안고 살고 있는건 전혀 아니다 부족함 마저도 감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냥 일단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일단 써놓고 보련다.

1. 국회국제국 (2007.7~2008.2) 

내 첫 직장!

내 첫 직장!

간단한 소개: 내가 했던 일은 국회사무처 국제국 아주과의 제 1 계장으로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국회의원의 국내 방문, 외교를 지원하고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아시아/아프리카로 갈 때의 역시 방문, 외교를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7~8개월 동안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를 국내 국회의원들과 방문하였고 남아공,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출신의 국회의원들의 국내 초청 및 수행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지나고 나서: 난 정말 철부지처럼 재밌게 혼자 룰루랄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홀연히 정부로 가겠다고 국회를 떠났다. 막연히 꿈꿔왔던 경제부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떠났다. 참 감사했던 곳이다. 국회는 어떤곳인지 국회의원은 어떤사람인지 배웠고 아시아 국가들을 다니면서 견문도 넓혔고, 정 많은 국회 동기들은 평생의 친구이다. 이때 만난 국회의원 한분은 CGNTV 대표이사를 맞고 계셔서 다시 연락이 됐고, 다른 한분은 지금도 가끔 밥 먹으며 너무 잘해주시고 잘 챙겨주신다. 그렇지만 절대로 모범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아. 이 기회를 빌려서 죄송하다는 말씀, 많이 부족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1) 철 없음

국회 공무원 시절 난 만 24살 이었다. 대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한 과 (약 8~10명)의 두번째 자리인 제 1계장, 행정계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과장님 바로 밑에 자리로 많이 희생하고 챙기고 섬겨야 하는 자리였다. 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었다. 심지어 예산과 회계도 내게 속했다. 그래도 참 대학생처럼 행동 했었다. 국내외 국회의원을 수행하거나 support하는 역할은 너무 재밌어 하면서 나름 즐겁게 했지만 팀원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많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쉐어하자면, 우리과에는 나보다 나이가 15~20살은 많았던 비 고시 출신 제 2계장님이 계셨다. 까불까불하고 항상 밝으면서 눈치없는 나는, 어느날 2계장님께 또 너무나 해맑게 “계장님, 저 많이 부족하죠? 충고좀 해주세요. ” 그러면서 살랑거렸다. 몇번 웃으시다가 계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많이 기억에 남더라. “백계장님, 백계장님은 가만히 낮추고 숨죽이고 있어도 저절로 많이 튀는 사람이고 그런 자리에 있어요. 가끔 학교 가신다고 옷갈아 입고 반바지 입고 나간다든지, 식사자리에서 너무 입맛을 까다롭게 해서 밥을 잘 안먹는다든지, 직원들과 술한잔씩 하며 이야기를 들어줄려는 기미 자체가 전혀 안비친다든지, 그냥 이런 부분들이 가끔 계장님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좀 어렵게 만드는 면이 아닐까요? 굳이 이야기하자면요 ^^.”. 정말 너무 맞는 말씀이었다.

2. 기회재정부 (2008.10~2011.6) 

MOSF

리키킴 상추들과 함께한 출발 드림팀. It was fun

간단한 소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은 예전에 예산처 기획국에서 비롯된 전체 정책을 총괄 기획하는 국이다. 예산과 세금을 가진 부처의 특성상 타 부처의 정책들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기능을 많이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 내의 전략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정책국장이 안건드리는 정책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업무 범위가 광범위하고 그만큼 제대로 안하면 수박겉할기 식 적당한 보고서나 쓰고 말 수도 있는 곳이었다. 난 종합정책과 국회/인터뷰 담당, 사회정책과 의료정책 담당, 경제분석과 OECD/세계경제 담당, 물가정책과 물가장관회의/일부 물가 담당 역할을 수행했다.

지나고 나서: 우리 아버지는 너무 좋아하셨고 밖에서 보는 주위사람들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난 잘하고 싶었는데 내가 엄청나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내 일을 사랑하지도 못했다. 여기가 내가 평생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자 그만큼 퍼포먼스도 떨어졌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면도 있었다. 처음엔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괜히 경제정책국에 가서 고생을 해서, 국제금융국 갈걸. 아니면 지식졍제부나 다른 부처를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만약에라는 말이 인생에 어디있는가. 이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함만 남는다. 국과장님부터 선후배들한테 일을대하는 열정, professionally, 희생정신, 생각정리해서 표현하는 법, 정보 정리하는 법 등 정말 많이 받고 많이 배웠다. 내가 어디를 가건 나중에 무슨일을 하건, 내 친정은 기획재정부일 것이다. 지금 이렇게 블로그쓰는것도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생각 정리하는 법 덕분이리라.

1) 능력 부족 (많은 정보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잡아서 소비자 눈높이에 맞게 압축하여 표현하는 능력) 

재경부에서 일하면서 참 작아질때가 많았다. 처음에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에서 일할 때였다. 매일 잡일만 하다가 국회 질문 대응, 국장님/장차관님 기자 질문 대응 이런 업무가 내게 조금씩 왔는데, 예를들면 기자가 재경부 장차관이나 국장에게 “내년도 성장률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이런 질문을 하면 장차관님 국장님 보고 바로 답변할 때 참고할 수 있게 짧고 의미있는 답변을 써서 들이미는 역할이었다. (물론 이또한 과장님이 다 고쳐주신다.) 따름 머리를 짜내고 자료를 찾아서 답을 써도 영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선배들이 그런 답을 쓰거나 보고서를 쓰거나 하는걸 볼 때 마다 작아지고 작아졌다. 우리 국은 엄청나게 많은 자료와 정보를 빨리 모아서 의미있는 정책을 만들거나 개선방안을 만들어서 매우 압축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국장님, 장차관님께 잘 들이밀어서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는 일을 주로 했다. 밤새 보고서를 하나씩 만드는 선배 사무관 서기관 형들을 볼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저들만큼 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국장되고 장차관 될 수 있을까. 우리 국장님은 나를 저 사람들보다 더 이뻐할까 더 인재라고 생각할까. ” 단 한번도 자신있게 예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2) 로열티, 열정 (Royalty, Passion) 부족

일의 성격도 주로 자리에 앉아서 착실하게 머리짜가며 보고서 쓰고 하다 보니까 몸이 많이 근질근질했다. 나가서 사람만나고 어디가서 멋지게발언하고 주목도 받고 정책도 빨리빨리 나와서 민간인들도 만나고 그러고 싶었는데 이거야 원 맨날 컴퓨터와 공무원만 상대하고 퇴근도 못하는 일이었다. 내가 내부적으로 엄청 인정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 조직에서 그저 그런 적당한 one of many가 되지 않을까 항상 걱정되었다. 체육대회나 국 친목 도모때나 주로 주목받고 허허. 그래서인지 로열티나 열정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어떤날은 오기로 밤새서 보고서도 쓰고 자존심에,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지만 전반적으로 뺀질거릴때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주위에 너무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나중에 유학간다고 하고 유학준비하고 할때 뺀질거리는거 정말 많이 도움 받았지만 (지금도 재경부 형들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짠하다. 많이 보답하고 싶다 언젠가는.)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3. 라인 LINE (2014.2~2014.9)

라인캐릭터들과 함께 물의를 빚는 사진

라인캐릭터들과 함께 물의를 빚는 사진

간단한 소개: 라인(LINE)이 본격적으로 미국 및 서구권 진출을 노리면서 LA에 세운 LINE Euro Americas에서 다양한 한국출신 MBA, LA현지 Korean American, 현지 미국인들과 함께 미국시장을 공략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업무 범위가 처음에는 다양하고 unstructured 되어 있기도 했지만 4월부터는 Senior Marketing Manager로서 3명의 팀원을 관리하며 전체 마케팅 예산과 전략 수립, Agency관리, 마케팅 정책 실행 및 결과 분석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지나고 나서너무 잘하고 싶었는데, 한국과 미국의 사이에서,  스타텁과 큰 회사의 장점을 다 가진, 정말 최고의 work라고 생각했고 calling이라고 느꼈는데, 그리고 이제는 진득히 오래 일하고 싶었는데, 많은 민폐를 끼치며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토요일에는 정말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싫고 아무도 만나기 싫고 그냥 멍하게 있는 적이 많았다. 우여곡절끝에 라인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의 professional insecurity 는 정말 극에 달하게 됐다. 그래도 배운건 참 많다. Agency상대 많이 하면서 professional English가 꽤 는거 같고 한사람한사람의 우수한 사람들이 negotiation은 어떻게 하는지, 팀 리딩과 프로젝트 리딩은 어떻게 하는지 많이 보고 배웠다.  사기업에서 이메일 쓰는 법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이 어떻게 커뮤니케잇하고 관리되는지도 봤다. 

1) 전문성 부족 – 마케팅, subject matter expert이 아니다. 그렇다면 컨설턴트처럼 무엇이든 되게 만드는 능력도 부족

중간중간에 인턴은 여기저기서 했지만 라인은 어찌보면 나의 첫 사기업 직장이었다. 처음엔 너무나 필받아서 열심히 정말 재밌고 감사하며 했다. 그러나 몇달 안되서 다양한 부족함들이 드러나고 맘고생도 참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마케팅을 전혀 해본적이 없고, 특히나 내가 그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인은 많은 캐릭터를 갖고 있고 이런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컨텐츠 마케팅이나 라인이 전통적으로 해왔던 ATL, 즉 TV, Radio 등의 마케팅은 내게는 너무 생소했다. 난 LA의 entertainment 문황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우리가 파트너 삼았던 Ariana grande라든지 Maile Cyrus 라든지 이런 사람도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agency관리라든지 외부 communication 에 대해 미국출신 우리team 직원들보다 더 나은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전혀 리더십이 생기지 않았고 항상 팀원들에게 치이고 위에 치이면서 힘들때가 너무 많았다.

몇달 같이 일하다가 다른 팀으로 간 매킨지 출신인 direct manager 가 있을때는 그나마 훨씬 편했다. 모르는 일도 어떻게든 쪼개고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일 분배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능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떨때는 매킨지에서 일 좀 배워오라고 해서 자존심이 엄청 상하기도 했고 괜히 친정집 (재경부)에 많이 미안하기도 했는데 사실 별로 할말이 없었다. 난 컨설턴트처럼 슬라이드 만들고 스토리 라인 잡아서 프로젝트를 리드하지도, 뱅커처럼 화려한 엑셀과 모델링으로 모든걸 정리하지도, 그렇다고 마케터나 entrepreneur 처럼 insight와 경험으로 자기분야에서 확실하게 에지를 드러내지도 못했다.

2) 소통 부족 – lack of people skill. 눈치 없음

우리팀 팀원들은 상당히 strong personality 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좀 세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그들에겐 더 나았을지도. 난 항상 잘하려 했고 들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항상 늦게까지 일하고 누구보다 먼저가서 또 일하고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직원들에게 잘하고 섬기려 노력했지만, 이거야 원 능력이 없다고 느껴지니 respect 도 사지 못하고 민폐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1대1로 대화도 종종 시도했지만 어려웠다. 시니컬한, 나보다 나이도 많은 팀원이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영화보고 필받아서 “우리팀이 최고다. 당신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라는 이메일을 쓰자 바로 다음날 나한테 다시는 그런 이메일 보내지 말라고 쿠사리 준것도 기억에 남는다. 가끔 분위기가 좋을때도 있었고 잘 될 때도 있었지만 다들 힘들어하는걸 보니 내가 너무 힘들더라. 내려놓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람 좋아도 무능한 리더가 유능한 폭군 리더보다 별로라는건 나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기에 자괴감이 느껴질때가 많았다. 신앙적으로도 의문이 많이 생겼다. 기도만 해서, 마음만 품는다고 역사가 일어나거나 전도가 되는게 맞을까. 능력이 더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일단 respect를 사고 사람들이 날 좋아해야 뭐가 되도 되지 않을까.

그때 이런 말을 들었다. “산이는 일도 공부하듯이 하는거 같아. 주위 안돌아보고.”. 하하. 참 그랬나보다. 내가 눈치 없다는 것은 20대 초중반부터 확실히 느낀 사실이다. 워낙에 self ego가 강하다 보니 남들은 눈치보면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쌓아가는 그 당연한 눈치가 내게는 없었다.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다. People smart 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런 이슈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냥 신경쓰고 싶지 않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공부하듯이 일한다는게 절대 칭찬은 아니구나…

또 이런적도 있었다. 팀원 한명이 상대적으로 조금 뺀질되는 것 같고 열심히 안 하는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하나 계속 고민하고 있다가 피드백을 주기로 결정했다. MBA 수업시간에 열심히 롤 플레잉 한대로 모든걸 미리 시나리오별로 계획하고 맘먹고 날잡아서 이야기했다. 영어로 하자니 참 쉽지 않았지만 하고 나니 잘했다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날 왠걸, 이 친구가 나랑 할얘기가 있다더니 “어제 니 얘기 듣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억울하고 너무 일할맛이 떨어져서 이거 이야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담부턴 다른식으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이러더라…허허허. 현실은 역시 만만찮아.

4. 비트파인더 Bitfinder (2015.1 ~ now)

요! Bitfinder gogo!

요! Bitfinder gogo!

간단한 소개: 비트파인더는 내가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범준이형이 실리콘밸리의 산증인 Kevin Cho님과 만나서 2013년에 세운 Smart Hardware startup 으로 난 2014년 말부터 Operations and Strategy, 즉 CEO와 함께 회사의 다양한 business, operation 관련된 일을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6번째로 팀에 조인하여 지금은 약 2배로 팀원이 늘기까지, 마케팅, PR, 세일즈, 생산, HR, 오피스 매니징 등 다양한 업무를 해보고 있다.

하면서: 이렇게 작은 스타텁에, 또 한국사람이 꽤 많은 이런 곳에 오고 싶다고 생각한적도 그렇게 계획한 적도 없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찾아온 이 조직에서 감사한게 너무 많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볼 수 있게 정말 많은 기회를 준다. 사람 뽑고 매니지 해보기, 프로젝트 매니지 해보기, 제품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 에이전시나 stakeholder 관리. 그리고 people issue없이 눈치없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주며 CEO, Design head, CTO 이런 분들과 중요한 의사결정 해가며 만들어나가는게 너무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또라이같이 훌륭한 홍주영, Jennifer Lin 같은 사람들과 같은 팀에서 일해볼 수 있는게, 이런 사람들에게 매니저란 과분한 타이틀로 같이 호흡을 맞춰볼 수 있는게 너무 도전이 되고 감사하다.

1) 단타성 커뮤니케이션이나 이메일 clean up에만 너무 초점을 맞춘건 아닌지

MBA때도 그렇고 내가 확실히 자신있었던 거는 fast response, responsiveness, 그날의 커뮤니케이션을 그날 끝내는 거였다. 난 이메일을 청소하는걸 좋아했고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좋아했다. 내가 prioritize를 할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해서 체계적인 communication 을 할 수 있는게 재밌었다. 문제는 그것만 너무 좋아하는 거였다. 하루종일 이메일만 쳐다보고 있다가, 미리 잡아놓은 전화통화 몇개하고 미팅 몇개하고 나서 그날 충실히 일했다고 할 수 있는지. 그냥 day to day communication 만 clean up하다가 끝내려는 경향이 있구나. 차분히 앉아서 몇시간동안 집중해서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고 많은 시간과 집중이 소요되는 일을 해내고 이런 쪽에는 내가 약했다. 너무 새로운 일만 하고 싶어했고 재밌는 일만 하고 싶어했고 빨리빨리 처리하고 싶어했다. 이 또한 범준이형이 이야기해줘서 알게된 부분이다. “산아, 하루하루 그냥 그날그날의 커뮤니케이션만 다 했다고 해서 우리 할일을 다 한건 아니야. 회사와 본인의 성장을 위해 정말 집중해서 스퍼트 내는 몇시간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 봐야되. 이메일을 쳐다보고 처리하는 시간 자체를 정해놔봐.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밤에 한번. 훨씬 더 생산성이 높아질거야.” 아직 계속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2) 난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 스스로 불편해지기

이번달 부터 이 lawyer 출신 멋쟁이 Jenn 을 모셔와서 같이 일해보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consume해서 순식간에 meaningful 한 input을 만들어내면서도 우리랑 농담따먹기도 잘하고 멧집좋은 친구다. 한번은 외부 중요한 파트너십 미팅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리서치를 해서 슬라이드를 만드는 업무를 우리가 같이 하게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서로에게 다 생소한 분야고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상당히 자기 주장이 강하고 열심히 하는 이 친구와 내가 의견이 좀 달랐다는 것이다.

  • Jenn: “난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블라블라~~”
  • San: “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
  • Jenn: “흠…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내가 생각좀더 정리하고 와서 다시 이야기해봐도 될까? 아니면 진짜 확실하게 니 방향대로 가자고 하는거야?”
  • San: “흠……글쎄다….나도 정확히 모르는 부분이라.”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언제 내 의견을 주장하고 언제 에고를 내세우지 말고 상대의 말을 들으며 언제 절충안을 내놓고 더 나은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디스커션을 잘 유도할지 그 타이밍을 항상 고민하게 된다. 조만간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것인가. 난 이 친구의 respect를 사면서, 아니 더 중요하게 이 친구에게 도움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leader/manager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내 스스로가 불편한 자리에 있다는게 감사하면서 도전도 참 많이된다. 

3) 빨리빨리만 하는게 아니라 정돈해가며 진행하는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는가

이상하게 마케팅은 내 손에 잘 잡히지가 않는다. 라인에서도 꽤 했는데, 그리고 비트파인더에서도 외부 마케팅 에이전시와 각종 소셜 마케팅을 한 적도 있는데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내가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매우 중요한 넘버라도 (CPA, CPM, CPC 등) 정확하게 내 머릿속에 있고 앞으로 미래의 기회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기존의 캠페인의 정확한 결과치와 learning 을 잘 도출해서 공유도 하고 나도 확실히 익혔어야 했는데 뭔가 그냥 지나가 버렸다. 실수를 해도 좋으니 두번 반복해서는 안되는데 나보고 직접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이 없다. 마치 전쟁터에서 자꾸 지휘만 하다가 전쟁이 잘 안되니 나가서 최전선에서 싸워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는것처럼. 

파일정리를 너무 잘 안하고 못하는것도 문제다. 구글닥, 실제 파일, 이메일 할 것 없이 정보가 여기저기 산발해 있는데 한번씩 정리하는걸 워낙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중요한걸 바로 못찾거나 놓칠때가 종종있다. 

HR 도 해보고 있는데 실수도 너무 많이 했다. 한번은 인터뷰 보러 오는 사람의 스케쥴을 두번이나 착각해서 Interviewee 한테도, 회사에도 폐를 끼쳐서 너무나 민망했던 적이 있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가 않더라. 난 과연 어떤 standard를 내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주문하고 지킬수 있을지. 똑같은 실수의 반복은 참 하기 싫지만 덤벙대고 꼼꼼하지 못한 부분은 내가 꼭 극복하고 싶은 부분이다. 

5. 마치며…앞으로의 다짐

1) 계속 도전하는 하루를 살기 – making myself uncomfo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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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Jenn에게 커리어 골이 뭐냐고 물어봤다.

글쎄, 딱히 정해진건 없어. 직접 뭔가 할 수 있다는건 너무 재밌는거잖아. 서비스업에서 나와서 직접 뭔가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나중에 또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에 쓰임받을 수 있게,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보탬이 되게, 쓰일 수 있는 근육들을 잘 길러놓고 싶어.

참 느껴지는게 많았다. 돌아보면 참 탈도 많고 바람잘날 없는 내 커리어. 어떤 전문성을 쌓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때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는 모든것이 거짓말처럼 다 설명이 되는, 아 그래서 그때 그런걸 배웠구나 훈련시키셨구나 이런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파편들이, piece들이 있을 뿐이고 많이 왔다 갔다 하며 살아온거 같다. 과연 언젠가 모든게 설명되는 날이 올까? 이제는 계획 자체가 의미 없다는걸 느낀다. 맡은 일을 감사히 잘하고 어디가서 폐 끼치지 않고, 항상 배우고 발전하고 도전하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이길 바랄 뿐이다. 특히나 감사한건 항상 새로운 일 투성이기에 절대로 일이 쉬워지지 않고 있다는것, 계속 도전이 되고 배움이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일이 너무 편해지면 그때는 새로운 도전으로 떠나야 할 때가 아닐까.

2) 잠언 31장 같은 섬김의 경영

여기 하 회장님의 말씀과 이 책을 보면서 참 부러웠고 참 닮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섬기면서 말씀 선포하면서 일자리 만들고 하면서 잠언 31장을 경영현장에 실천할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이 For profit sector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지니스맨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참 많이 품게 됐다. 그리고 전에 라인에서 많이 고민했던 것처럼 영적인 성장과 professional 능력의 성장이 잘 균형을 이뤄서 serving 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3) 진짜 잘하고 싶고 쓰임받고 싶다.

Don’t get me wrong. 난 지금도 승부근성에 불타고 너무나 잘하고 싶어하고 칭찬받기 좋아하고 까불까불하고 눈치없는 똑같은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볼수록 교만은 자연스레 사그라들어 가지만 그렇다고 잘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 분야라는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과 global 사이, 큰 조직과 작은 조직 사이, Private과 Public 사이 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1) 영어, 구글닥, 이메일, 미팅 lead하기 이런 hard skill들과 2) 각종 파트너십, 마케팅, 팀 리딩, 위기 관리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한 soft skill 배양, 그리고 3) self reflection, spiritual growth 를 통한 내면의 성장까지 계속 경주하다 보면, 꾸준히 충실하다 보면 쓰임받을 수 있는 근육을 계속 키워갈 수 있지 않을까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많이 기도한다. 이렇게 부족함 많은 나인데, 혹여나 어떤 professional achievement 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한들 정말 이건 내가 잘나서 잘해서 된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노력과 운과 너무나 많은 복합적인 것의 결과가 아닐까. 너무나 감사한 것은 주위에 좋은 사람이 가득하다는것, 하면서 너무 많이 배우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부족함 많은 나지만 소망을 품게 된다. 이런나의 부족함과 끈임없는 실수와 넘어짐 까지도 그 선한 계획가운데 분명히 사용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3 comments

  1. Henry

    솔직한 고백에 박수를 보냅니다.

    백산님과 마찬가지로 Professional insecurity, 일과 신앙의 균형을 고민하는 저이기에 이번 글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저의 시행착오를 통해 고백해보자면,
    너무 이른 시기에 명확한 vision(혹은 calling)을 찾으려는 조급함도 문제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명확한 비전을 찾고, 거기에 나의 열정과 에너지를 더하면 금방 치고 나갈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비전이라는 일종의 신기루를 찾지 못하면,
    지금 하는일에 불만족하게 되고 자연스레 퍼포먼스가 부족하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비전이란 찾는게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보여지는 무엇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하기에 초년기에 애써 그것을 명확히 정립하려 하기보다는, Jen처럼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찾아오는 기회가 있을 때 다시 거기에 헌신함으로써, 일종의 path가 형성되어 비전이 보여지는 그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커멘트 감사드립니다. 네 정말 이제는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보다는 현재를 충실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지는거 같아요. 감사해요!

  2. Pingback: 어웨어와 함께한 2년반, 지금 나의 현주소 | San's play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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