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글쓰기로 다짐하고 네달째 (or 다섯달째다. 9월초에 8월분을 쓰니 벌써 원고가 밀렸다.) 부디 계속할수 있기를. 두개의 글이 쓰고 싶은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좀 가볍고 하나는 참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다. 일단 가볍고 덜 부담되는 주제부터 써본다. 최근에 받은 은혜들 (가정 이야기는 앞에서 많이 나눠서 생략)이다. 원래 하나로 썼다가 길어서 둘로 나눈다. 이하 1편이다.
1편_다음세대 – 뜻밖에 만난 하나님의 선물보따리
2편_일과 영성 – 교회를 일으키자 우리 삶의 영역에서
1. 다음세대 – 뜻밖에 만난 하나님의 선물 보따리


어떻게 선물 보따리를 발견했는지
다음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들에 대해 내가 특별한 마음을 가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참 힘들었던 시간들이 마음에 남는 법이 아닐까. 내게는 청소년기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대학교 들어가서 진로고민 할때나, 고시공부 할때나, 공무원이 되고 나서 삶에 대해 고민하던 나의 20대가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한국의 20대를 생각하면 많이 가슴이 아려왔다. 10대에 대해선 별다르게 생각해본적도 관심을 특별히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몸담고 섬기고 있는 교회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아 애들이 참 귀엽고 파릇파릇하다 이런 생각이 스쳐왔다. 하지만 난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나의 청소년기는 실리콘밸리에서 학교 다니는 이 친구들과는 많이 다르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을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작년 여름, 이 친구들이 어떻게 멕시코 여름 선교를 통해 새로워 지는지, 자라나는지 간증을 듣고, 기도가운데 이들 청소년들과 더 삶을 부데껴보기로 결심하고 작년 9월부터 7학년 (한국 중1~중2) 남자애들과, 올해부터는 10학년 (한국 고1~고2) 남자애들도 맡아서 지도도 하고 나눔도 하고 기도도 하며 함께해왔다.
스폰지 같이 무엇이든 섭취하고 흡수하는 아이들

처음엔 나도 쭈뼛대고, 그 무서운 중2 남자애들의 마음을 사려고, 쿨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도 하고 많이 조심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가고 친해지고 하다보니 몇가지 느낀게 있어 나누고 싶다. 크게 와닿았던걸 몇가지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다 연결된 이야기 이기에 한꺼번에 나눠본다.
- 애들은 스폰지 같다. 어릴수록 시계추가 잘, 크게 흔들린다.
- 애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제대로된 사랑이 없는 빈공간은 다른게 채운다.
- 진짜를 맛보게하는게 중요하다. 아직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열려있을때는, 혀가 덜 굳고 중독되어 있을때는, 진짜를 접하면 진짜 맛을 볼 수 있다.
중2, 특히 고1 쯤 되면 덩치가 어른만큼 커지고, 표정은 왠지 건드리지 말라 라는 포스를 풍기는 애들도 종종 있었다. 이게 왠걸, 조금 알고 보니 이 남자애들도 완전 애들이었다. 게임하고, 아이스크림 먹고, 늦잠자고 하는. 놀리면 어쩔줄 몰라하거나 발끈하거나 되받아 치기도 하는. 처음에 마음을 열기까지 오래걸리고, 많은 경우 본인도 본인이 뭐를 느끼는지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모르지만 그 안은 여리디 여린.

지난 1월에 간 겨울 수련회에선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많은 친구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했다. 그렇게 영적으로 뜨거울 수가 없었다. 내 간증이 끝나고 내게 와서 용기를 내서 본인의 포르노 중독이나 담배 중독을 나눈 친구들도 있었고, 본인이 사실 친구들을 괴롭히며 즐기고 있었는데 왠지 그만해야될것 같다며 도움을 구하는 애도 있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리딩하려고 해도 냉소적으로 틱틱 반항하고, 깐죽대고, 불량하게 굴던 아이들이 온순한 양처럼 와서 이런 고백을 하고 기도가운데 눈물흘리는 모습을 본것, 그리고 이들의 간증을 들을수 있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축복이었다. 마치 보물이 가득찬 밭에서 계속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보물도 저런 보물도 계속 튀어나왔다.
같이 매주 기도하며 지도해온 아이 중에는 부모님 사이가 많이 안좋은 애가 하나 있었다. 부모님이 많이 싸우고, 특히 거기서 나온 화로 이 아이에게도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은데, 항상 기도하고 이겨내려 하고, 부모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하는 모습이 그렇게 짠할수가 없었다. 그러던 이 친구가 수련회와 예배를 통해 온전히 사랑받고 가슴벅찬 사랑에 기뻐하며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같이 경험한건 축복이었다.
부모님과 사정상 떨어져 지내는 아이도 있었다. 사랑에 목말라 있는게 보였다. 조금 사랑해줬을 뿐인데, 나를 너무나 엄청난 존경과 사랑의 눈빛으로 대해줬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으로 받는걸 느낄수 있었다. 참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받겠는가. 선생님이란 단어에 들어간 무게와 축복을 동시에 느낄수 있었다. 아주 조금 사랑을 줬을 뿐인데 너무 많이 받았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볼 수 없게 되자 힘들어 졌다. 믿음이 원래 약했던 친구들, 또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부모님이 별로 이런 모임에 적극적이지 않은 친구들, 또는 내가 다 모를 이유로 모임에 안나오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같이 zoom에 모여서 게임을 해보거나, 자신이 만든걸 자랑하는 시간도 가져봤는데, 평소에 수업태도도 너무 불량하고 한번도 제대로 참여해본적 없는 한 친구가 엄청난 능력으로 본인이 만든 발명품을 소개했다. 거의 에디슨을 만난 느낌이었다. 이 아이가 살아나는 모습, 반짝이는 모습을 발견하고 맘껏 칭찬해주니 얘도 더 신나서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왜 진작 이걸 발견하고 알아주지 못했을까.
깨알같은 추억들, 소중한 기억들이 참 끝도 없다. 얘들이 인스타는 또 왤케 귀엽게 하는지 ㅋㅋ…
내 이야기 간증 (사랑으로 자유를 찾은 한 맥시마이저 이야기)

지난 1월 수련회때는 기도 가운데 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나눌 수 있었다. 이게 준비한 슬라이드이고, 이게 준비한 간증 내용이다 (둘다 영어). 간략하게만 한글로 나누자면 아래 내용이었다. 준비하는 과정, 나누는 과정, 그리고 나눈후의 일들이 그렇게 은혜가 될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왔어. 제목은 이거야 – 모든걸 극대화 해야하는 맥시마이저가 어떻게 자유를 찾았는지. 내 인생은 크게 세가지 장과 두번의 쉼이 있었어.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첫번째 장은 한국에서 살때야. 이때 소위말해 나름 잘나갔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주위에서 인정받는 길을 최선의 노력을 통해 누구보다 빨리, 더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지. 그게 나의 아이덴티티였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이뤄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았어. 그게 뭔지 모른채 미국으로 나왔어. 미국에 오면 뭔가 찾을수 있을줄 알았거든.
첫번째 쉼은 미국에서 MBA를 할때야.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꾸려가는게 너무 어려웠지. 일을 잡고 생활터전을 다지려 하는데 맘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고 강제로 정지를 당한것 같았어. 그 과정에서 많은걸 알게됐어. 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왜 내겐 열심히 사는게 중요했는지. 왜 내가 목말랐는지. 그리고 그걸 계속 탐구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지.
두번째 장은 미국에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7년의 시간이야. 가정을 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또 정신없이 달려왔지. 사실 삶은 더 힘들어졌어. 전에는 앞만보면 달리면 됐는데 이제는 신앙생활 하느라 앞도 보고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주위도 봐야했지. 할게 더 많아졌어. 직장에서도 잘하고 싶었고 가정에서도 잘하고 싶었고 신앙생활도 잘하고 싶었어. 감사하고 충만할 때도 많았지만 정말 쉽지 않았어. 뭔가 항상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어. 아,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이루면 좋겠다. 뭔가 아쉬웠지.
두번째 쉼은 2019년 작년에 있었어. 오랜 기도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인도를 구했지만 거의 10개월 동안 도무지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았지. 하나님께 울며불며 매달려도 소용없었어. 그렇게 또 강제 휴식을 당하자 내안에 있는 수많은 것들이 나왔어. 그 와중에 사람들의 인정이, 그리고 나 스스로의 나의 삶 (특히 세상에서의 커리어와 성취)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내게 중요한건지 알게되었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걸 다 불태워 주셨어. 그렇게 난 자유로워 졌지.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나는 잘못된 사랑. Pride (교만) 이야기야.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도 내 안에는 항상 은근한 교만이 있었어. 서울대 스탠포드 가고 고시 붙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이런것들의 일정부분은 내 노력의 결과라고 의식/무의식중에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걸 은근히 칭찬하거나 인정해주면 뿌듯했어. 스스로도 열심히 일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뿌듯해하거나, 나의 성취나 노력을 판단했지. 그건 잘못된 사랑이었어. 나의 나에대한 사랑, 남들의 남에 대한 사랑에 의존하는건, 진짜 사랑이 아니었어. 진짜 사랑은 예수님, 하나님의 사랑이었어. 그분의 사랑을 만나고 나니 교만이 사라졌지. 자유로워 진거야.
다른 하나는 가짜 사랑, Lust (음욕) 이야기야. 쉽지 않은 주제지만 이야기해볼게. 다른건 다 끊을수 있었지만 이건 끊기 어려웠어. 항상 한번씩 나를 넘어지게 하고 괴롭혔지. 하지만 그분의 사랑을 가슴 터질듯 받자 이게 사라졌어. 군것질이나 한번씩 오는 폭식 (다이어트할때)을 끊는 제일 좋은 방법이 먼지 알아? 건강한 음식을 기쁘고 맛있게 먹는거야. 칼로리 계산하지 말고. 배가 부르고 행복하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안들어. 그리고 진짜 물맛을 안 사람은 콜라 잘 안땡겨 하잖아 ㅎㅎ. 그렇게 Lust를 없애주셨지.
그래서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세번째 장을 살고 있어. 자유의 몸으로. 그래서 내가 여기서 너희들과 함께할 수 있는거야. 전에는 이런 사치(?)를 누릴 시간적 심적 여유가 전혀 없었어. 항상 쫓겨 왔으니까. 이제는 자유롭게, 내 새롭게 알게된 조카들과 함께 사랑하고 웃고 까불고 놀고 사랑받고 그럴 수 있어. 너희도 그분의 사랑안에 깊이 잠기길 진심으로 기도하고 그 사랑으로 초대해. 분명 그러면 우리모두 방방 기쁨으로 뛸거야. 우리의 심장이 살아나서 쿵닥쿵닥 할거야. 진짜 사랑을 만났으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남자 (성경적 남자)
또한번, 앞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주제를 고민하다가 이 주제로 잡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남자, 성경적 남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크게 네가지로 이야기했다.
-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리드한다. 더 많은걸 가짐으로서가 아니라, 희생함으로써 – 세상은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은 돈이나 지위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리더라고 칭송하며 높인다. 하지만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희생을 통한 리더십을 안다. 우리는 세상을 고아처럼 살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양자가 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간다. 그럴때 우리는 세상을 더이상 약육강식의 전쟁터, 무한한 자원을 서로 다투는 그런곳이 아니라, 무한한 창조주 아버지에 기대어 마음껏 희생해도 끝없이 새로운 먹거리와 자원이 나오는 곳으로 바라볼수 있다 (결핍->풍족의 마음가짐으로 전환). 그때 우리는 기꺼이 기쁨으로 희생하고 그렇게 책임을 지고 리딩할 수 있다.
-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싸우고 보호한다. 서로 싸우는게 아니라, 악한 세력을 상대로 싸우고 사람들을 (친구, 가족들) 보호한다. –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항상 서로 다투게 되어있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서로 다른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하지만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진짜 적이 누군지 안다. 그리고 어떻게 싸울지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히 구별됨을로써 이 영적 전투에 임한다. 우리가 구별될 때, 우리는 혈과 육과 공중권세 잡은 영적 세력을 분간할 수 있고, 우리 형제자매가족을 보호하면서 진짜 전투를 싸우는 전사가 될 수 있다.
-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배우고 가르친다. 지식이 아닌 영혼을 살리는 그분의 사랑과 성품과 지혜를. –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문명을 진보시키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것 자체가 나쁜거나 불필요한건 절대 아니지만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더 중요한 지식과 지혜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배워가며 그것을 갈구한다. 그건 결국 영혼구원이다. 압제에서 해방되는것, 가슴이 뻥 터져나가듯이 막혀있던 내면의 갈등과 얼룩들이 해결되는것, 죄에서 자유케 되는것, 사람들의 영이, 혼이 살아나는것. 그것이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는 진짜 목적이다.
- 하나님을 닮아가는 남자는 (친구/이웃을) 사랑한다. 그들의 생각을 무조건 인정해줌으로써가 아니라, 내 자신처럼 내 몸처럼 사랑함으로써. – 세상은 서로 인정해주는 것을 이웃사랑이라 한다. 소셜 미디어 라이크버튼을.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진짜처럼 기분좋고 달콤하다가도 중독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다. 진짜 사랑은 친구를 내몸같이 사랑하는것, 친구를 위해 삶을 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진짜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웃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하는것. 이게 진짜 사랑이다.
(이건 여름을 맞아 청소년부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전하는 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나 말고 다른 선생님들이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전했다 (중독에 대한 이야기,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등). 관심있는 분들은 커멘트 남겨주시면 링크를 드리겠다)
추수할 곡식은 영글었는데, 추수할 일꾼은 없고 도둑만 가득하다
위 영상은 청소년 사역을 알아가면서 알게된 National School Project의 영상이다. 청소년을 통해 청소년을 전도한다는 방향과 미션을 가진 이 단체가 거두어 들이고 있는 수확은 –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점심시간에 가지는 모임/세미나 한번에 수십명씩 새로운 영혼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으니 – 성인사역에서 한명의 새로운 영혼이 영접하는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 생각해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게 영접한 사람들이 진짜 예수님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실제로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 중에도 이 National School Project를 통해 훈련받고, 각 학교에서 리더로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많은 영혼을 살리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이렇게 한번 낯으로 휘둘으면 수많은 알곡이 추수되는 밭이 있고 곡식들이 영글었음에도, 추수할일꾼은 너무도 적고 도둑만 가득함을 보고 느끼고 듣는다. 위 단체를 비롯, 청소년 사역은 많은 경우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항상 성인 사역 뒷전에 밀려나기 일쑤이다. 그런 반면 학생들을 유혹하는 것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포르노, 게임,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유투브 이런 것들에서 부터, 갈수록 분리되는 정치진형,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가는 미디어, 갈수록 더 구닥다리(?)로 포지셔닝되고 브랜딩 되는 교회와 기독교,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더해져서. 이들의 영혼과 가슴의 빈자리에, 진짜 사랑이 아닌 수많은 것들이 채워지고, 그렇게 알곡들을 도둑들이 훔쳐가고 있음을 본다….
전장터가 갈수록 더 어려(?)지고 있음을 느낀다. 청소년기에 닫힌 마음을 성인이 되서 여는건 훨씬 훨씬 더 힘이 든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서 진짜 사랑을 전해줄 수 있을까. 맛보게 해줄 수 있을까. 이들의 마음을 두고,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일꾼이, 전사들이 더 필요하다.
(다음세대 번외편) 아내의 여름 성경학교 – 난 청소년으로 충분 ^
사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내 아내는 작년 여름부터 우리 교회의 유치부 (만 세살-여섯살) 전도사로 섬기고 있다. 아내가 뽀뽀뽀 선생님 처럼 애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재밌는것도 만들고 하며 사랑으로 섬기는걸 보는건 은혜고 감사함 그 자체였다. 올해 여름성경 학교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
여름성경학교 (Vocational Bible Study), 특히 올해는 코비드 상황이라 다 온라인으로 했는데, 난 VBS를 한번도 안해보고 자라서 이게 뭔지도 잘 몰랐다. 7월중순의 VBS를 앞둔 몇주 전부터 아내는 이걸 생각하며 너무 스트레스 받아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따로도 기도하고 같이 기도하고 하면서 아내가 기도가운데 영적 중압감을 이겨내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와 사랑으로 VBS에 올인하는걸 보면서 감사하고 은혜충만했는데….문제는 아내가 이거에 몇주동안 올인하면서 – 거의 머릿속에 이 생각만 가득하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거의 매일 밤샘 일하고 계속 전쟁통 장군 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 이런 아내를 쳐다보고 있는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놔. 항상 아내는 선뜻 자기의 시간과 우선순위를 희생하고 나에게 맞추는데, 난 아내한테 고작 한두주 맞추는 거였는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니.
그렇게 가까스로 폭풍같은 VBS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그 마지막에 가서야, 주님은 꽁해있던 내맘도 풀어주시고, 내게도 큰 은혜를 부어넣어 주셨다. 그런마음, 그리고 다음세대에 대한 마음을 아내와 나누며, 아내가 어떤 마음을 받고 이 사역을 하고 있는지도 더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우리 과정이 많은 다음 세대들이 사랑받고 깨어나고 성장하는 그 한가운데 있는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내게 느끼게 해 주셨다. 난 아직까진 우리애들과 청소년이면 충분해요 (더 어린애들은 아내에게 ㅎㅎ)
다음세대 사역자의 따뜻한 간증 – 목사님 간증 너무 감사드립니다
2편_일과 영성 – 교회를 일으키자 우리 삶의 영역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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