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좋아하는 꿈많은 소녀 클라라의 이야기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요새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지난 2년간 참 가슴벅찬 행복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삶은 정말 아니었다. 항상 쫓기는 느낌이었고 항상 굶주린 망아지처럼 눈알을 굴리고 살았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자기 절제도 많이 잃었고 내맘대로 안되는 일이 많아서 마음고생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숨돌리기에는 너무 정신없었다. 이번학기는 정말 바쁘지만 그래도 내가 원했던 바쁨, 내가 원했던 즐거움으로 살고 있고 참 그전보다 훨씬 행복하다는걸 느낀다. 환경 공학도, 컴퓨터 공학도 공부하고 있지 않고 StartX에서의 일도 전보다 많이 줄였지만 그보다는 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ere and Now. 학교 파티에서 춤춘것, Coachella Rock festival 가서 정신줄 놓고 논것, 열심히 준비해서 약식 철인삼종한것, 그리고 이번주에는 생애 첫 눈덮인 산 등정, 다다음주에는 또 나흘간의 하이킹이 예정돼있다. 생각만해도 행복하다. (물론 수업도 듣고 다른 활동들도 하고 있지만 그게 우선순위는 아니다.)

이 모든 선택 중에서 내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고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건 요새 내가 쓰고 있는 책이다. 누차 밝힌바 있지만 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밸리인사이드에 쓴 글들도 대부분 그런 글들이었다. 나는 사람들 이야기가 제일 재밌고 관심이 가니까, 그리고 나의 삶이 너무도 큰 영향을 받았으니까. 정말 남는 시간 모두를 쪼개서 친구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있다. 너무도 바쁜 그들의 시간을 뺐기도, 그들의 삶 깊숙한 부분을 공유해달라고 요구하기도, 그걸 정리하기도, 모든게 쉽지만은 않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고 보람차다. 책의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다.

짧은 버전

꿈을 꾸라고, 열정을 가지라는 메세지가 주위에 가득하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입시, 취직, 결혼, 육아 등에 쫓기는 일상일 뿐이다. 꿈을 꾸는건 사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꿈과 열정으로 가득한 글로벌 리더들은 어떨까?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일까?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까? 왜 그들의 삶은 멋지고 의미있게 느껴지는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아니 그들 중 상당수는 우리보다 어렵게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긴 버전

스탠포드 MBA에 처음 왔을 때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아이비리그를 나오고 유복한 가정에서 전 세계를 돌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모두가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단체도 하나쯤 만들고, 돈도 몇억씩 벌고, 어렸을 때 부터 20가지의 클럽활동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았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교육 받아 온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명 한 명과 깊이 있는 삶의 이야기를 나눌수록 겉으로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가족 문제나 경제형편으로 힘들어한 친구들은 물론, 외모/성격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했던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은 각기 다른 문제들과 계속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고민하고, 갈구하고 있었다. 무엇이 이러한 에너지와 도전정신(drive)를 만들었을까. 이들은 어디에서 힘을 얻고, 그러한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들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했다.

사람들의 삶이 이야기, 특히나 각자의 어려움을 딛고 열정과 에너지로 전진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우리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과 용기를 얻었다. 이러한 감동을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 책은 스탠포드에서 만난 존경하는 교수님, 친구들, 기업가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를 통해 여러분도 조금이나마 호기심의 갈증을 해소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에 닮고자 정리한 내가 존경하는 친구 클라라의 이야기를 아래에 풀어볼까 한다. 어떤 피드백이든 편하게 아래 달아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나 이런 인터뷰 형식이 편한지, 아니면 그냥 내가 이야기를 직접 다 풀어내는게 편할지. 그런것도 참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GEN이라는 조직은 정말 한번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삶의 감사함을 다시 되찾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가서 일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클라라에게 한국에서 각박한 현실에 지쳐가고 있는 젊은이들 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시한번 삶을 생각해보고 싶어할만한 사람이 참 많다고 이야기했더니 얼마든지, 몇개월이라도 좋으니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래 글을 읽고 관심있으신 분은 간단한 이력서 또는 지원동기로 이메일 (sanbaek83@gmail.com) 부탁드린다. 나도 너무너무 가서 일해보고 느껴보고 싶은 그런 조직이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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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in Africa

클라라 in Africa

클라라를 알게 된 것은 학기시작하고 얼마 안되서 부터였다. 그녀는 해바라기 같이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고, GEN (Generation Enterprise)라는 책 속에서만 듣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회적 목적에 공헌하고 있는 본인의 회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크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나 그런게 너무 궁금했었어. 기회가 없었지만 더 배워보고 싶어. 좀 가르쳐 줄래? 나도 같이 일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한 후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비지니스에 대해서도 배우고 같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녀의 업무를 조금 돕기도 했다. 그리고 후에 그녀가 스탠포드에서 펀드레이징을 할 때나 그녀가 팀원과 갈등이 있을때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그녀의 일하는걸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러나 정말 나를 놀래킨 것은 그녀가 스무명에 달하는 사람을 이끌고 수억 넘는 펀드를 만들어 수십명, 수백명의 아프리카인을 돕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Ivy league,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엉뚱한 소녀였 다는것.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엉뚱함과 해맑음을 간직한 그모습 그대로 라는 거였다. 매일밤 잠자기 전에 5분씩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그녀, 가끔씩 너무 환히 웃으며 망가지는 표정을 곧잘 짓는 그녀, 그리고 항상 날 보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앉아주는 그녀, 평소에 느껴지는 그녀는 밝고 순수하고 착한 지극히 평범한 20대의 Asian American 여성이다. 무엇이 그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 강함을 만들었을까? 그녀의 삶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이제 같이 들여다보자.

산 – 어린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클라라 – 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부모님은 모두 홍콩출신으로 토론토 대학에서 만나서 결혼했고 쭉 캐나다에 살았죠. 아버지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컴퓨터 공학이라는 실용학문을 선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일을 하셨죠. 어머니는 신문사에서 데이터 분석하는 일을 하시다가 제가 자랄 때는 가정주부셨어요. 저 밑에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장애가 조금 있어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할게요. 

부모님 사이도 항상 좋지만은 않았고 장애가 있는 막내 아들은 항상 집안의 우환거리였죠. 그래도 저는 너무나 행복한 아이였어요. 특히 저는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이야기 듣고 만들어 내는걸 너무 좋아해서 나무 밑에 앉아서 하루종일 이야기를 만들곤 했죠. 나중에는 직접 글로 써서 남기기도 했어요. 이야기 소재는 끝이 없었고 저는 시간가는줄 몰랐어요. 제가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드릴게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우리 집 뒷마당에 각종 동물과 서커스가 있으며 제가 테마공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얘기가 얼마나 실감났는지 모든 친구가 그걸 믿었고 급기야 서커스를 보러오고 테마공원을 가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문제가 되기도 했죠. 하하. 난감해하는 선생님의 얼굴이란. 전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았죠. 

산 – 참 대단한 거짓말장이셨네요. 하하. 학창시절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없나요?

따돌리는 것. 괴롭히는 것. 정말 영원한 상처를 주는 것

따돌리는 것. 괴롭히는 것. 정말 영원한 상처를 주는 것

클라라 – 모범생들이 주로 가는 여름 캠프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중고등학생이 가는 캠프였는데 저는 참 어린 축이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적응을 잘 못했어요. 단체로 게임을 해도 잘 할줄 모른다고 놀림받곤 했죠. 한번은 직업 알아맞추기 게임을 했어요. 어떤 직업을 놓고 그와 관련된 힌트를 줘서 술래가 직업이 뭔지 알아맞추게 하는 게임인데 제가 힌트를 주면 바보같은 힌트라고 놀림받곤 했어요. 전 더이상 인기많은 이야기꾼이 아닌 재미없고 지루한 사람이 되버렸죠. 아직도 한 남자애가 던진 이 말을 잊을수가 없어요. “클라라한테 물어 봤자야. 걘 컬리플라워 (브로컬리 과의 하얀 야채)야.” – 정말 밋밋한 맛에 특징없는 야채. 한번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하다못해 브로컬리도 못된 그 야채같다는 그 한마디는 그날이후 몇년동안 제 뇌리에 박혀 있었어요. 

제 인생의 가장 낮은 순간은 5학년때가 아닌가 해요. 미샬이라는 여자애가 전학을 왔는데 참 사람을 어떻게 다룰지를 잘 아는 애였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말 못됐을 수 있다는걸 알게된 첫 경험이었죠. 그녀는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을 만들어서 무리지어 다니며 타겟을 정해서 왕따를 시켰죠. 엉덩이가 큰 여자애 하나가 있었는데 걔를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욕하고 놀리고 그랬어요. 다른 친구들은 그 타겟이 될까봐 무서워서 아무런 말도 못했죠. 저도 하루는 같이 게임을하다가 미샬의 비위를 거슬리는 바람에 미샬의 명령으로 모든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왕따 경험을 당해보기도 했어요. 그걸 한번 당하니 너무 무서워져서 그녀에게 잘보이려고 계속 노력하게 됐죠.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미샬이 어떤 타겟을 정할때면 그게 내가 아닌거에 너무 안도되어 은근히 동조하고 했어요. 전 더이상 이야기를 전하는 인기있는 존재가 아니였어요. 너무나 나약했고 너무나 초라했죠. 학교 가기가 싫었고 스스로가 부끄러웠어요. 참 어두웠던 시간이죠. 

갑자기 중학교 1학년때 화장실에서 얻어맞았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맞고 나자 모든게 너무 두려워졌고 스스로가 너무 작아져서 힘들었었 더랬지. 내가 너무 작았던 기억, 굴욕의 순간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더랬지. 그녀가 어떻게 이걸 극복했는지 궁금해졌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클라라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클라라

클라라 – 고등학교에 가면서 모든게 바뀌었죠. 전 토론토 공립 고등학교에 갔어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같은 학교였죠. 학생들은 장난기와 밝음으로 가득했고 학교 분위기도 저의 유치함을 다시 이끌어내기에 딱이었죠. 제 학교생활은 180도 변했죠. 1학년때는 오후 3시반에 학교 끝나면 집에 오던 제가 나중에는 9시 넘어까지 다양한 방과후 교외활동을 하기에 바빴어요. 저학년 지도, 동아리 활동, 교내 신문기자 활동까지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었죠. 세상은 다시 커보이기 시작했고 삶에 다시 에너지와 활기가 가득했어요. 전 진심으로 학교를 사랑했어요. 전 다시한번 무언가에 진심으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다시 만났고 그들과 하나가 됐죠. 

이 학교생활은 무언가에 정말 열정을 가진다는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고 가슴뛰는 일인지 느끼게 해줬어요. 그래.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건 참 멋진 일이구나. 나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건 정말 큰 행복이구나. 내가 한 일들이 평생 가는 유산과 전통으로 남는다는게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학교도 인생은 순식간이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면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어요. 

학생 회장후보로 600명의 전교생 앞에서 선거를 치룬 경험도 있는데 제 고등학교 생활의 정점과도 같았어요. 학생회장 후보로 추천된다는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이었죠. 공부만 잘하는게 아니라 학교 교외활동도 활발하게 함은 물론 학생, 선생님 모두에게 인정받아야만 후보로 추천받을 수 있었어요. 결국 회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후보가 됐다는 것 만으로도 전 충분히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웠어요. 하나 아이러니컬 한 것은 그 미샬이라는 여자애가 저를 뽑지 말라고 낙선 운동을 하고 다녔다는걸 나중에 알게되었죠. 갑자기 어두웠던 시절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어두워 졌어요. 그러나 금새 훅훅 털고 잊어버릴 있었어요. 그만큼 저는 강해지고 성장했으니까요.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나도 한영외고에 처음 진학했을 때,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갔을 때, 갑자기 주위에 주로 공부잘하는 애들이 가득해지고 내가 운동도 잘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자 너무 재밌어서 이활동 저활동 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초사이어인처럼 에너지가 넘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이런 Winning experience, 자신감을 주는 그런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좋은 사람에 둘러쌓인다는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이런 마법학교 같은 학교 한국에는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 공상에 빠지는 것도 잠시. 난 다시 그녀의 삶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대학생활을 들어보자.

UPENN졸업식의 클라라

UPENN졸업식의 클라라

클라라 – 전 펠실베니아 대학(UPENN)에 진학했어요. 항상 미국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룬거죠. 허츠만 프로그램이라고 2개 학위를 4년간 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걸 했죠. 정말 빡세게 열심히 꽉차게 한 대학생활로 기억해요. 전 경영학과 인문학을 서로 연결하여 사회에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국제 관계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프랑스에서 1년 교환학생 하는 동안은 정치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했어요. 전 대학과 사랑에 빠졌죠. 아주 찐한 연애도 했어요. 지금의 약혼자도 만났으니까요. 

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전 항상 사회 공헌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것저것 찾아나섰죠. 그러던 와중에 7살때까지 나이지리아 레고스 고아원에서 자란 씨엘 이라는 남자를 알게됐어요. 그를 돕게 되면서 나이지리아 레고스의 사정에 대해 잘 알게됐죠. 그는 소액융자 (Microcredit)사업을 레고스에서 한다는 비지니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안될 비지니스라는걸 직감했죠. 그때 선택의 순간이었어요. 

저는 “의무의 순간”이 있다는걸 믿어요. 살다보면 어떤 기회나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으며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 될 때가 있었어요. 세상에서 단 한명,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그때가 제가 정의하는 “의무의 순간” 이에요. 전 이 남자를 만났을 때 그 순간을 느꼈어요. 그래서 돕기 시작했죠. 대학교 3학년때 부터 시작해서 졸업할때 쯤에는 점점 더 이 비지니스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죠. 공교롭게도 정작 일을 벌려논 씨엘은 캐나다로 가버리고 제가 비지니스를 떠맡았죠. 그때만 해도 아직 회사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의논하는 나이지리아 파트너, 그리고 같이 관심가지는 대학교 친구들이 몇명 있는 정도였어요. 

왜 굳이 아프리카냐. 나이지리아냐. 미국에도 캐나다에도 문제가많지 않느냐. 주위에서 많이 물어요. 그럼 전 이렇게 대답하죠. “제 나라에서 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힘들거란걸 알아요. 하지만 수십배는 더 큰 영향과 결과들을 만들 수 있기도 하죠.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의무의 순간이라. 과연 나는 살면서 어떤 소명(calling), 책임감(responsibility), 의무(Duty, commitment)를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왔는가. 군대야 가야 하니 갔던 것이고, 나라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에 고시를 봤지만 그건 “의무의 순간” 이라기 보다는 “Optimized career solution”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항상 내가 중심이었던 나. 이제는 나도 그 의무의 순간을 좀더 믿고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클라라 – 전 졸업하고 맥킨지 워싱턴 DC오피스에 취직했어요. 그당시는 한창 금융계로 가는게 붐이었는데 저는 그분야는 왠지 관심이 안갔어요. 컨설팅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잖아요. 제가 항상 관심있었던 이 사람 저 사람, 이 단체 저 단체, 이 산업 저 산업을 연결시키는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해 보였죠. 더군다나 워싱턴 DC오피스는 사회공헌 활동이나 정부 관련 프로젝트가 많다고 알려져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죠. 

매킨지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빨리 많은걸 배울 수 있는 곳이 또 있었을까 싶어요. 전 업무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죠. 그전에 전 그렇게 까지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매킨지를 통해 전략과 계획, 구조적 사고와 습관들을 배웠죠.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정말 많이 빠르게 늘었어요. 20대 초반 여자가 40대, 50대 기업 CEO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죠. 전 그걸 계속 해내야 했어요. 처음엔 많이 무서웠죠. 그러나 제 주위에서 저를 믿어주는 사람, 저를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조언해주고 도와주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제 멘토로 모시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기서 만났죠. 참 고마운 곳이에요. 

역시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있는 조직, 합리적인 문화와 시스템이 갖추어진 조직은 개인의 행복과 professional development 에 많이 기여할 수 있다는걸 다시 느꼈다. 그럼 그녀는 왜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이지리아로 향했을까?

클라라 – 매킨지에서의 2년은 너무 즐겁고 도전이 됐지만 한계도 있었죠. 결국 제 사업이 아니잖아요. 전 뭔가 만들고 싶었어요. 항상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게 저 였으니까요. 그래서 GEN에 뛰어들었죠. 

매킨지에서 일하면서도 전 이 아이디어와 끈을 놓지 않고 계속 키워나가고 있었어요. 2009년, 제가 매킨지에서 일한지 2년째 됐을 때 GEN은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파트너, 펜실베니아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네명, 그리고 저와 제 매킨지동료 이 정도의 사람이 같이 만들어 가고 있는 조직이었죠. 다들 의욕에 불타 있었고 나이지리아의 빈곤과 거리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비전으로 뭉쳐 있었죠. 저의 비전을 믿고 응원해준 매킨지 파트너로 부터 약 2천만원의 자금과 나이지리아 왕복 비행기 항공권 5개의 후원도 받았어요. 이제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죠. 

그래서 그해 2009년 여름, 전 나이지리아의 수도 레고스로 향했어요. 제 생애 처음 아프리카로 가는 거였죠. 제 마음은 두려움과 묘한 흥분감으로 가득했어요. 처음 절 맞이한 아프리카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죠. 길거리에 오물이 널려 있었고 숨막히는 더위가 저를 괴롭혔어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 사람들의 따스한 환대에요. 저희 6명은 여름내내 공짜로 자신의 집을 제공해준 전혀 모르는 사람 집에서 머물렀죠. 현지 영사관도 저희를 적극 돕고 후원해 주었어요. 전 곧 적응했고 다시 의욕에 불탄 돌진 모드로 돌입했죠. 

저흰 세개의 목표가 있었는데 우여곡절끝에 그 목표를 모두 이루었어요. 첫째는 저희의 아이디어 – 길거리 청년들에게 교육과 멘토십으로 새로운 비지니스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이 실제로 말이 되는지 확실히 테스트해보는 것이었어요. 둘째는 직원과 첫 학생을 모집하는 거였고요 셋째는 현지 기부자를 찾는 거였어요. 정말 하나하나 쉽지 않았지만 기적처럼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어요. 현지 NGO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장소를 구했죠. 50~60명의 지원자들 중에 최종 12명을 선발해서 2주간 비지니스에 대해 가르치고 같이 기회를 모색해보는 첫 트레이닝 세션도 가졌어요. 그리고 현지 직원도 고용했죠. 현지 영사관도 적극 협조해줘서 저희의 이름은 곧 현지 신문에도 실리고 유명해졌어요. 나이지리아의 가장 큰 NGO 리더 중 한명의 우리의 후원자가 된 것도 아주 큰 수확이었죠. 저를 비롯한 팀 멤버들은 꿈에 부풀어 미국으로 돌아왔어요. 아직 이 비지니스가 잘 될지, 지속가능할지, 아무것도 검증된 것은 없었지만 희망만큼은 가득했죠.

정말 책속에서나 보는 그런 이야기였다. 22살의 아직 약하기만 한 여성이 아프리카의 슬럼가에 가서 현지인들과 상대하며 꿈을 꾸고 비지니스를 일으킨다. 너무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직접 부딪혔고 무언가 만들어 냈다. 순수한 열정과 용기라는 것. 참 전염성 강하고 끝없는 힘을 가진 놈이라는걸 다시 확인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클라라 – 돈을 버는 비지니스가 근본적으로 아니었기 때문에 전 그 이후에도 계속 일했어요. 뉴욕시 경제 발전국에서 1년정도 일했는데 여기에 지원한 것은 좀더 제대로 경제발전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였어요. 매킨지에서 다리를 놔줘서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죠. 결과적으로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많이 배웠지만 그렇게 좋았거나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니었어요. 너무 느리고 관료적이었죠. 전 엔트리프리너가 될 수 없었어요. 

2011년에는 Hearts라는 큰 미디어 회사에서 잠시 일했어요. 새로운 일이 해보고 싶었고 Hearts혁신 조직을 새로 만드는 미션도 매우 흥미깊어서 선택하게 되었죠. 문제는 제 상사가 정말 어려운 상대였다는 거예요. 저 이전에도 부하직원이 번번이 울면서 관두었다는 명성이 자자했는데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죠. 저는 꾹 참고 9개월을 버텼지만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에요. 

그러는 동안 계속 GEN은 성장하고 있었고 전 남는 시간마다, 아니 없는 시간을 만들어가며 GEN을 꾸려가고 있었죠. 2010년에는 정말 어려운 일을 겪었어요. 저희 현지 조직을 통째로 도둑맞아 버린, 말도안되는 일이 있었죠. 제가 신뢰했던 현지 파트너들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어요. 일을 전혀 안하는 것은 물론 항상 투자받은 돈을 왜 다 넘기지 않느냐며 저를 협박했죠. 제가 그쪽의 무책임함과 느린 대응을 지적하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미국에서 자란 양가집 공주님이 이쪽 사정에 대해 무엇을 아냐고 윽박질렀죠. 저는 항상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제가 다 하겠다고 하고 그쪽 일까지 다 끌어맡아 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성숙하지 못한 대응이었지만 그때 전 무서웠고 어떻게 대응할지 몰랐죠. 나중에는 이메일을 열기가 너무 무서워질 정도였어요. 2010년 사태를 수습하려고 나이지리아로 갔다가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협박을 받기도 했죠. 이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상대방과 무언가 같이 일을 할 때는 서로의 기대치가 어떤 것인지 아주 정확하게 미리 의사소통하고 합의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죠. 그쪽에서는 미국에서 건너온 단체와 파트너가 되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미리 확실히 했어야 했죠. 그리고 전 때로는 강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솔직한 의사소통을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죠. 이 힘든 기간을 이겨내게 해준건 실제 저희 단체를 통해서 비지니스를 만들어내고 삶을 변화시킨 길거리 청년들이었어요. 전 계속 메세지를 받았죠. 얼마나 살미 바뀌었는지, 얼마나 감사한지. 그게 제게 책임감을 줬어요. 그만둘 순 없었죠.

그래서 다시 시작했어요. 이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GEN에 뛰어든 사람이 두명이나 있었는데 참 많이 감동했어요. 다시 파트너를 찾아 나섰죠. 새로운 현지 파트너는 정말 선정했는데 그렇게 마음이 잘 맞고 일을 척척해낼 수가 없었어요.  같이 합심하여 노력하자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죠. 저희는 나이지리아 현지 라고스 주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는 후원 계약을 성사시켰어요. 저희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현지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비지니스로 큰 돈을 번 성공케이스도 나왔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이제 현지에서 큰 비지니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매킨지, 뉴욕주정부, 미디어 회사, 정말 나름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저를 가장 성장시킨 곳은 뭐니뭐니해도 GEN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해결해야 했죠. 항상 제 비전을 주위에 팔고 다녀야 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을 찾는 것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실패를 견디는 것도. 다 GEN을 통해 경험했어요. 이만한 산 경험이 또 있을까요? 

너무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절들이다. Private (Mckinsey, Hurz), Public(NY city government), NGO(Gen) 을 넘나든 그녀의 커리어 하며, 생명의 위협을 이겨내면서 비지니스를 지키기 까지. 과연 나라면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만한 책임감과 참을성을 가지고 있을까. 더 강해지고 싶고 더 단순해지고 싶고 더 열정적이 되고 싶다… 그런 삶을 꿈꾸게 해주는 그녀다.  그리고 그녀는 스탠포드 MBA로 왔다.


Clara negotiates bilateral trade agreement with young Nigerian IMG_3436

GEN과 함께 즐거워하는 클라라

GEN과 함께 즐거워하는 클라라

클라라 – 항상 비지니스 스쿨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Stanford 는 또 제게 새로운 꿈과 이야기를 만들어줄 완벽한 장소로 느껴졌죠. 그래서 오게 됐어요. 스탠포드에 있는 동안 1학년을 지도하는 리더십 펠로우 같은 리더십 포지션을 최대한 많이 맡으려 노력했는데 참 보람있었고 저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다듬어보는 계기가 됐죠. 또 무엇보다도 갚졌던 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거에요.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일을 하는지. 지금 가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오랜 고민과 성찰 끝에 지금 내가 가고있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의욕에 가득찬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것. 그게 중요한 거잖아요. 1학년 마치고 여름방학에 나이지리아에 가서 GEN을 다시 꾸리면서 확신은 깊어졌죠. 지속가능한 유산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게 참 저를 살게해요. 

졸업하고는 6개월 정도 더 나이지리아에 가서 GEN을 돌볼 생각이에요. 현지에서 직접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록 현지 리더십을 확실히 만들고 오는게 목표에요. 그리고 저는 이사회로 한발짝 물러날 생각이에요. 직접 투자도 하면서 계속 근을 유지하겠지만서도요. 그리고는 매킨지 뉴욕오피스로 돌아가서 2년 일할 계획이에요. 제 MBA학비를 대는 조건으로 2년 일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약혼자가 뉴욕에 있어서 곧 결혼도 하려다 보니 뉴욕을 선택하게 됐죠. 매킨지는 앞서도 말했듯 GEN을 제외하고는 제가 가장 사랑했던 조직이에요. GEN의 투자자와 파트너를 계속 넓혀나가기에도 매킨지 만한 네트워크는 없죠. 이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 2년후에 또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갈지 그건 모르는 일이죠. 

나에게 있어서도 스탠포드는 나를 돌아보고 성찰해볼 수 있는, 앞으로의 수십년의 기반을 다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정신없이 달려오던 돌멩이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여기서의 2년 동안, 서로 부데껴 가며 더 둥글어 지고, 더 탄탄해지고, 더 든든한 그라운드를 만들고 이제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잘 짜여진 평생 직장 계획같은건 없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고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길, 가장 끌리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자 노력할 뿐.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에게, 아직도 그녀를 힘들게 하거나 그녀가 두려워하는게 있다면 무엇인지. 그녀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왜 그런지.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봤다.

클라라 – 전 많이 강해졌지만 아직도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요. 저를 한없이 작고 약하게 느끼게 했던 어린시절의 미셸, 저를 협박하고 위협했던 나이지리아의 현지 전 파트너, 이런 기억들이 가끔 저를 몸서리치게 만들죠. 그리고 가끔은 이 모든게 허상이 아닐까,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고 가짜 이야기보따리만 풀고 있는건 아닌가 이런 두려움이 있어요. 제가 이야기했죠 어렸을때 아주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였다고. (웃음.) 지금도 가진 제 큰 약점 중 하나예요. 사람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기를 좋아해서 가끔은 허황된 꿈을 심어주고 약속을 한다는 것.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게 뭐냐고요?  보이지 조차 않았던, 한번도 제대로 기회조차 잡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에요. 이게 가장 제 가슴을 뛰게 만드니까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요? 무언가 굉장히 멋진 일, 스토리를 위해 많은걸 희생하고 노력한 후에 그걸 달성했을때요. 나이지리아 레고스에 가서 힘들게 GEN을 일으키고 잠시 숨돌릴때,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내 부탁에 클라라는 이렇게 말했다. “행운을 빌어요. 큰 꿈을 꾸고, 큰 숨을 들이키고, 좀 멋진 이야기 한번 만들어봐요. 결국 삶은 다 이야기잖아요. 과연 여러분이 쓰고 있는 이야기가 8살짜리 애가 들었을때 너무 흥미있어할 그런 이야길까요? 전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요. 클라라, 8살의 클라라가 너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면 어떨거 같아? 피 – 그게 다야? 시시해 라고 말할거 같으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 ”

그녀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뭉쳐서 자란, 가정과 행복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가서 사는 그런 여성이 아니였다. 그녀는 미국사회에서 주류로 자란 이쁘장한 금발 백인 여성도 아니였다. 그녀는 부모님의 불화와 장애를 가진 동생, 그리고 학창시절의 상처를 가진 평범하디 평범한 아시아 이민자 2세 여성이었고, 이제 곧 결혼해서 뉴욕에서 다시 컨설팅을 하면서 밀린 빚도 갚고 새로 이야기도 써보려는 우리와 지극히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감과 열정을 준 것은, 그녀가 진정 꿈꾸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사람들을 이어주고 새로 멋진 일을 만들어 간다는게 얼마나 재밌고 보람있는지 느끼게 해준”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들-선생님들-학교 환경들 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에게나 “의무의 순간” 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소명에 충실히 살아왔을 따름이다. 가끔은 자신이 만드는 스토리가 뻥튀기가 아닐지 너무 두렵다는 그녀, 엉뚱함으로 항상 주위를 놀래키는 그녀,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자세와 내면의 강함, 순수한 열정을 항상 간직하기에 지금의 그녀가 있고 주위를 밝게 만드는게 아닐까? 나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Clara angel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2 comments

  1. 한국 트립을 제외하곤 정말 오랜만에 올리시는 글 같습니다.

    공부하다가 잠깐 쉬는김에 빠르게 읽어봤는데 8살 아이가 내 이야기를 들었을때 시시하지 않을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야한다는 말이 뒤통수를 때리네요!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덧으로 Upenn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이 아닙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은 Penn State.

  2. 내 생각엔 이런 연대기 형식보다는…. 지금 현재의 직함이나 상태를 설명하고… 그녀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얘기들에 대해 풀어나가는 것이 낫다고 보는데… 물론 연대기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녀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스토리 텔링의 큰 가지 몇개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되면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인터뷰 형식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얘기를 제 3자가 바라보는 식으로 서술한 후에… 그녀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챕터 끝에 간단히 인터뷰를 올리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더 풀어내기… 뭐 이렇게 하면 괜찮을듯한데… 나보고 쓰라고? 음… 그렇게 좋은 건 산이 니가 먼저 해 봐야지… ㅋㅋㅋ ^^

  3. 이렇게 연대기 형식으로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현재의 직함이나 상황에 대한 그리고 그녀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열정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해. 이를 테면 그녀는 지금 A인데, 이거 진짜 대단한 거라고,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멋있는지 알고 있냐고? 그러면서 독자들의 궁금중을 유발하는거지. ( 왜 그녀가 그렇게 멋진 자리에서 멋지게 잘 살고 있는가?) 이렇게 독자와의 처음 만나는 부분을 강렬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 후에 그녀가 지금 현재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거지…(그녀가 가지고 있는 따스한 인간적인 면도 보이면서… 평범했던 그녀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든지…하는 이야기 몇개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거지… 이를테면 이야기 1이 이야기 3이 되었는데 그게 뜻밖으로 이야기 4와 만나서 현재에 어떤 상황을 만들었다…- 인생은 놀라운거다!!!! 모 이런 식으로 말야…)

    그리고 책을 출판할 국가가 어딜지 모르지만… 만약 한국에서 출판을 할려 한다면…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상황에 연결이 되는 얘기를 해주라는 거지.(이를테면,,, 요즘 명문대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돈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기에, 직업을 선택하는데에 있어서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지… 그래서 고시라든가 대기업이라든가 국영기업 같은 곳에 지원을 많이하고 또 많이들 합격을 하지.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자신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에 창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잘 창업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한다는 것이지…) 모 이런 면들 말이야… 우리 산이가 재경부에서 일하면서 MBA를 준비햇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이 처한 문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해… 이런 저런 힘든 상황이 많지만 그래도 거기에 기죽지 않고 그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면서 기성세대의 틀을 깨면서 성공한 스토리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잘 할텐데도… 괜한 생각에 조금은 긴 언급해봤네… 내가 항상 우리 산이 보고 있는거 알려나? 가끔씩만 이렇게 글을 남겨서 그러지… 나같은 사람이 산이 주변에 많을테니… 우리 산이 언제나 힘이 되겠다. (때론 부담도 되겠지만… 까이거,,, 큰 사람은 그만큼의 부담을 가지고 가는거야 뭐 당연한 것이고… 그 부담조차조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부담이지만… 큰사람한테는 전혀 부담이 아닐텐데 모… (딱 꼬집어 산이 너라고 얘기할 수 없지….ㅋㅋㅋㅋ)

    어쨌든… become “The Great Sani” please…

    참… 그리고 요새 조우성 변호사님의 글이나 책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더라고…
    따스한 감성을 지니신 좋으신 분이야… 그 분의 글 읽어봐..
    아래는 그 링크…
    http://www.jowoosung.com/

    수고하시고… 건승하시고…

    언제나 홧팅!!!!!!!!!!

    • 피드백 정말 감사해요. 예 다 맞는 지적인것 같아요. 한국에서 출판할 생각이고 바쁜 한국 독자들을 위해 좀더 흥미를 유발하고 좀더 Fact 를 가미해서 써볼게요. 다른 피드백들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좋은 링크도 감사드리고요. 건승하시고요.!

  4. KH

    1. 저는 위에 댓글달아주신 분이랑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연대기적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직함/직업/상황의 ‘대단함’을 이야기의 서두부터 강조하고 들어가면, 클라라님의 삶과 자세가 아니라 단순히 유펜/맥킨지/스탠포드MBA라는 외형적 타이틀만 부각시키게 되는것 같아요. 그런 타이틀은 대단하고 멋지지만 다소 부차적인것이고, 이 분의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 남들과 다를바없이 그 나름의 역경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이겨내 나가고있는 꿋꿋함?이 그것들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니까 여기에 글의 포커스가 놓일 때 더 깊은 감동을 주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멋들어진 직함/지위를 전면에 내세우는 자기계발서적들은 이미 시중에 상당히 많고, 그런 방식은 컨텐츠보다 겉포장을 중시하는 면이 있는 한국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강화하는데 일조하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살짝 드네요..ㅎㅎ) 그런면에서 백산님이 쓰신대로 삶의 흐름을 보여주는 연대기적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마음에 들었어요. 비록 흥미와 초반 몰입도가 강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야기 주인공의 삶을 더 밀도있게 보여줄 수 있는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인터뷰가 직접적으로 섞여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2. 이야기에서 클라라님이 겪었던 어린시절 아픔의 이야기가 무척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렇게 멋있고 배우고싶은 사람도 나름의 아픔과 상처가 있고 그것때문에 아직도 힘들어할 때가 있구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어서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로서의 삶, 무기력했던 경험, 그 사람이 겪었던 아픔 그리고 그걸 힘들지만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삶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외로움을 덜어주고 따뜻한 감동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물론, 쟤도 힘들어하네 속시원하다!하는 못된 심보에서가 아니라 위로와 북돋움의 차원에서 말이죠 ㅎㅎ) 다른분들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면들이 조명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3. 댓글이 감상문이 되었네요..
    백산님, 항상 느끼는거지만 스토리텔링 능력이 대단하신것 같아요.
    언제나 영감과 희망을 주는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

    •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노렸던게 1, 2번인데 그부분을 봐주셔서 참 감사해요. 더 잘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감사합니다.

  5. 잠자있던 제게 ㅎㅎ 큰 영감으로 생각을 깨어주신 백산씨!
    감사합니다. 저와 몇몇 동료들이 이 블로그를
    통해서 정말 많은 empower를 얻었어요!!! 제 가장 가까운지인은 백산씨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현재 E3empower에서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임파워를 할 수 있을까 싶어
    블로그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많은 것을 배워요. 혹시 시간 있으실때 제 블로그에 한번방문해주셔서 피드백을 해주신다면 감개무량 할것같아요!! 항상 응원하고 기대할께요!!!

  6. 아하 주소는 http://rlaeorn1.kimsq.co.kr 입니다.
    혹시 오실지도 모르기에 남겨드려요!!!

  7. Pingback: MBA생활기 21_마지막학기 2학년 Spring quarter | San's play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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