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 (Christian version)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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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마음가짐

문득발견한 내 대학교 1학년때 결혼식장 간 사진 (맨오른쪽) 정말 이렇게 개념없는 사람입니다 부디 너그러이 봐주시길 ^^

문득발견한 내 대학교 1학년때 결혼식장 간 사진 (맨오른쪽) 정말 이렇게 개념없는 사람입니다 부디 너그러이 봐주시길 ^^

참 써놓고 보니 글도 엄청긴데 만만치 않게 서문이 엄청 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무게를 잡고 뜸을 들이시나…다 읽고 김새시는 분이 많을것 같다 하하. 그래도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니, 걱정도 많이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 내가 하나 잊지 않고 싶은 것은 나도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고 한결같지 못할 수 있다는 거다. I’m not saying I figured out everything and I will always be the same. 지금까지 나의 신앙이 많이 바뀌고 내 입장에서는 성장/성숙했다고 느껴지듯이, 분명 나의 신앙도 앞으로 또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내가 교만해지고 한결같지 못해지거나 나의 생각이 바뀌는 일이 없을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단지 지금 내 가슴에서 적어도 방향성은 맞게 가고 있다고 너무나 강하게 말하고 주장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가 너무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나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내 가슴의 울림이 너무 강해서 나누고 싶을 뿐이다.
  •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신앙 이야기이다. 내가 다른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이상 다른사람의 신앙에 대해 judging 한다는건 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이 부분이 내게 참 항상 도전이다.) 언제든지 대화하고 나누고싶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고, 또 다른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삶의 굴곡과 과정에서는 다른 기도와 간구가 있을 수 있다고, 그건 내가 판단하거나 할 영역이라기 보다는 난 내 도리를 다하고 내 신앙생활이나 잘 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것도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럽고 어떨 때는 공격적일 수 있다는걸 알고 있다. 당장 나만해도 누군가 예수님 이야기를 하거나 성경 말씀을 들고 나오면 바로 눈길을 돌렸으니까. 특히 내 주위 가족, 친한 친구들 중 어찌보면 상당수/대다수가 non-christian 인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를 너무 멀게 느껴지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 정말 가장 무서운 것은 신앙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더 생기고 커질지 모를 내 영적 교만이다. 주위의 신앙인이 공감해주고 칭찬해줄 때, 겸손과 감사로만 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우쭐대고 교만해질지. 괜히 영적인 척하는건 아닌지. 이런걸 자꾸 생각하고 쓰고 나누면서 거의 내가 전에 생각하던 사이비 신자처럼 모든걸 영으로 생각하고 무엇이든 다 음성을 듣고 한다고 하고 그런 느낌의 figure로 비춰지고 나또한 우쭐하지 않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쓰는 이유는

  • 하나님을 믿기에. 혹시 나의 의로 교만으로 쓴 글이라면 그리고 과정에서 내가 그렇게 된다면 다니 나를 깨시고 낮추실 것을 믿기에. (글을 쓸지 말지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왠지 써도 괜찮다는 마음을, 오히려 안쓸때의 부담감을 주시는듯)
  •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란 존재를 내가 지금까지 살펴보건데 깨지고 무리수가 좀 있더라도 작은 기쁨이나 마음의 와닿음도 너무나 나누고 싶어서 눈치없이 또 엄청 흥분해서 나누고 그랬다가 또 실수하고 반복하고 그러면서 배워가는 모습이었기에…
  • 그리고 기억하고 남기고 내 주위와 나누고 나를 더 책임감 있도록 만들고 (make myself more accountable) 그러고 싶어서.

이 글의 주(Primary) 독자는 신앙인, Christian 이다. (non christian 께는 아마 너무 길고 공감이 전혀 안되는 내용일 것 같아서 마저 읽으시라고 추천드리긴 참 조심스럽다. ) 그리고 또 주 독자는 나 자신, 그리고 내 주위 사람,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 머릿속과 가슴을 감싸고 있는 이 너무도 감사하고 은혜로운 순간들을 나누고 나를 저 채찍질해달라고, 나를 책임감있게 붙들어달라고, 교만하지 않도록 중보해 달라고, 그리고 더 가르쳐 주고 같이 힘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2. 3/14~4/3. 한국에서의 Impact큰 3주, 뭔가 내가 할일이 많을것 같다는 뜨거움을 느끼던 차에 “새벽형 크리스천”이란 든든한 지침서를 만남

많은걸 나눠줘서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은 영아와의 만남

많은걸 나눠줘서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은 영아와의 만남 (나, 영아, 민경이)

지난 포스팅에도 썼지만 한국에 있는동안 참 많은 절실함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절실했고 더 뜨거웠다. 조금 오버하자면 막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병동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나같이 할줄 아는거 하나 없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쓸모가 있는 느낌. 여기도 상처 저기도 부상 할일이 너무 많았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하루에 1:1로 만나는 미팅을 한 8개씩 한적도 있다. (일로 만나는거, 친분으로 만나는거,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만나는거.) 새벽에 일하고 낮에 미팅하고 저녁에 가족이랑 시간보내다가 밤에 또 일하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한국은 언제나처럼 징글징글하게 미워할수는 없지만 만만치않게 다가 왔고 내가 너무나 한국적이다 보니 나의 모습에서 다양한 한국의 모습들을 또 느꼈다. 많이 가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항상 배고픈, 열심히하고 애를 쓰고 있지만 그 과정이 편안하고 그냥 자연스럽지 못할때가 있는, 그리고 적당함을 모르는, 했다하면 확실하게 하는, 확실히 다른 민족과는 조금 다른 identity 확실한 (그래서 만약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쓰시지 않았다면 한국인을 쓰셨어도 별로 이상할게 없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만만치 않은 신앙의 용광로, 탈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지만 에너지 넘치는 이런 것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참 행복했다. 내가 뭔가 쓰임받는 다는 느낌이. 그래 고난은 축복의 시작이고 문제는 meaning 의 기회다. 한국인인게 감사하고 참 행복하다. (너무 편안한 삶 보다는.) 내 마음 주님안에서 잘 지켜가면서, 너무 힘들면 전쟁 front line 에서 한발자국씩 물러서 있다가 또 사랑하는 전우들과 빡세게 싸워보고 싶다. 한국선교사 분들도 이 CGN TV 10주년 블랙마운틴 영상에서 한국에서의 사역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다고 하셨더랬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러다가 문봉주 형제님의 새벽형 크리스천을 읽고 참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래 나도 더 말씀을 먹고 더 매일 기도하고 성령님께 나아가고 씻기기를 구하고 하면 한걸음씩 더 나갈수 있지 않을까. 성령님과의 대화가 추억이 함께함이 조금씩 더 쌓이고 가까워져 가다보면 기도도 성령님의 목소리(방언)로 할 수 있게 되고 삶에서의 이런 순간들을 더 감사해하며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 형제님 삶 참 멋지다. 이런 느낌과 이런 과정이라면 너무도 해보고 싶고 왠지 할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 매일 죽고 매일 예배드리고 매일 기도해야 겠다. (이건 나중에 더 알게된 거지만 CGNTV podcast에 성경의 맥을 잡아라 씨리즈가 다 있더라. (책 말고도). 요새 틈날때마다 듣고 있는데 전에 책으로 만나던 것과는 또다른 은혜를 받고 있다. 구약이 더 이해가 되고 읽히는 느낌이다. 감사 또 감사.)

3. 4/3 금요일 – 성금요예배에서 내몫의 십자가에 대해 묵상

성금요 예배 침묵기도의 시간

성금요 예배 침묵기도의 시간

이렇게 많은 농도짙은 충만함이 있고 문봉주 형제님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자 참 예배가 드리고 싶었다. 중국에 출장을 다녀온 목요일 저녁 고난주간 매일같이 반복된다는 9시 예배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날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금요일에 9시 예배로 쭐래쭐래 혼자 향했다. 이날도 정말 정신없이 바쁜 날이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미팅하고 저녁도 못먹고 서초 온누리 교회 예배당에 갔다. (참고로 예배 영상 링크) 그런데 앉자 마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뭔가 하나님이 뜨겁게 만나주실때 받던 그 뜨거움이 가슴에 느껴지고 찬양과 기도 모두가 은혜가 되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목사님 말씀이 시작됐다.

이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골로새서 1:24 –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이었다.  십자가에 대해서 로마서를 바탕으로 한 설교였는데 ‘내몫의 십자가’ 라는 주제로 크게 세가지 단계를 이야기하셨다. 아주 clear 하게 머리에 각인됐다.

  • Step1 Through Christ(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건져온 것 (로마서 5장 1절 2절)
  • Step2 With Christ(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 이제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속으로 가는것 (로마서 6장 1~4절)
  • Step3 In Christ(예수 그리스도 안에)                      :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같이 주님 안에서 먹고 마시면서 은혜와 행복안에 거하는것. 사실상 십자가 위에 거하는것. 죄가운데 있는 우리 육신까지도 영의 생활을 하는 경지. 은혜가 다른사람에게도 흘러가는 경지. 부활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경지. (로마서 8장 1절 2절)

그래 난 이제 겨우 Step 1이구나. 이게 너무 사무치게 감사하고 어서 Step 2와 3 로 가고 싶다는 기도가 많이 나왔다. 나도 참 주책이고 이 욕심과 샘은 어디 가지를 않더라. 이왕 갈거면 빡세게 빨리 제대로 열심히 가고 싶고 그래서 하나님한테 칭찬받고 싶었다.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through Christ) 구원받고 살았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가 가슴에 사무칩니다. 하나님 이제 제 몫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합니다. 어서 Step2와 Step3로 가기를 원합니다. 꾸준히 채워가기를 원합니다. 저도 그 십자가를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제 육체에 채우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제 몫의 십자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제 몫의 십자가를 알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도록 아버지 저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

이렇게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실제로 듣는듯한 그런 울림은 아니었다. 대화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너무 감사했고 너무 이해가 됐고 각인이 됐고 그래서 열심히 기도드렸다. 그래도 참 많은 충만함이 있었다. 마지막에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 이 찬송을 부르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청 필받고 오니 너무 에너지가 넘쳐서 주체가 안되더라. 집에와서 12시에 밥한공기 뚝딱먹고 어무이랑 이야기하고 놀다가 잠이 도저히 안와서 일도 좀더 하고 글을 와장창 몇시간동안 쏟아내고 (그래서 쓴게 바로 이 전 글이다.) 아! 내 몫의 십자가는 혹시 이런게 아닐까. 남들 잘때 조금더 열심히 이메일 하나 쓰고, 하나라도 더 읽고 하나라도 더 나누고 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 백산 답게, 한국사람 답게, 그렇게 살아가는게 아닐까. 만약 그런거라면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3~4시쯤 잠에 들었다.

4. 4/4 토요일 – 교만과 죄를 깨닺고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서 너무나 후회하고 뉘우침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순간

토요일 아침에 평소에 참 존경하고 어떻게든 시간내서 만나고 싶은 동료 크리스천이자 선배 누나를 만났다. (누나도 너무 고맙게 내게 시간을 내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는 마음지키고 사는게 참 쉽지 않다며 최근엔 그냥 나 답게 살아내는거 자체에, 꾸준하려고 노력하는거 자체에 의의를 두고 힘겹게 싸워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내 어제밤 블로그 포스팅도 봤다며. 누나랑 많은 면이 교감이 되어서 행복했고 누나의 만만치 않음이 뭔지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어서 더 짠하고 더 기도가 됐고 전우(?)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많이 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힐링이 되더라. 내가 지난 몇년간 미국에서 힘들게 나름 보냈지만 여기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다는게 그리고 그 사람이 내말에 공감해주고 하는게 뭔가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나의 포스팅에 대한 수많은 반응들, 친한 사람들의 공감과 comment, like 들이 적잖이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래 역시 나누길 잘했어. 그래 산아 달란트를 잘 활용하고 있구나. 웃샤. (교만 100% 충전)

그러다가 두둥. 내가 참 도움도 많이 받았고 아끼고 존경하고 하는 친구한테서 장문의 메세지를 받았다. 내용은 나의 글이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Doing part 에서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는 커리어에 자신을 빚대어 쓴 것으로 보여지는 이야기를 쓴 것이 (그리고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특히나 자기가 나를 참 따르고 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상황에서, 내가 자신을 안타깝다고 judging 했다는게 너무 아팠다고. 안그래도 요새 본인은 doing 부분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한데 주위에서 하도 손가락질하고 판단하고 못살게 굴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잠이 다 안온다고. 너무 힘들어서 정말 고민하다가 이야기한다고. 보는 순간 아차차. 올게 왔구나. 교만하고 오버할때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번개같은 급브레이크가. 너무 놀라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부끄러웠다. 바로 메세지 보내고 전화해서 정말 많이 빌었다. 정말 많이 반성하고 많이 울었다. 다행히 친구는 너무나 열리고 너른 마음으로 나의 사과를 받아줬지만 내가 그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어떻게 줏어담을까. 내가 뭐라고 judge 했을까. 만약 지금 나의 이 좌충우돌 커리어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다 적응못하고 또 스타텁 다니고 있는 나의 doing에 대해 내가 정말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안타깝다며 judging 한다면. 얼마나 상처가 되고 얼마나 마음을 닫게 될까. 난 왜 이다지도 작고 이다지도 성장이 없고 부족할까. 많이 반성했다.

5. 4/5 일요일 – 죄를 오열로 뉘우치고 고하고 나자,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듯한 울림을 느낌

CGN TV 10주년 축하합니다요!

CGN TV 10주년 축하합니다요! (전에 국회에서 모셨던 유재건 전 의원님을 CGN TV 소개책자에서 만난건 또하나 깨알같은 재미였다!)

하나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일어나자 마자 1부 6:50 서빙고 온누리 교회 예배에 갔다. 예배 시작 조금 전에 가서 본당의 한쪽 편에 자리잡았는데 앉자마자 눈물이 비오듯 흘렀다. 찬양하고 대표기도 하는 내내 그냥 정신없이 눈물콧물빼며 울었다. 오죽 울었으면 내 바로옆에 있는 할아버지가 연신 “젊은이, 괜찮아? 어디 아픈거 아니야? 병원에 가봐. 병원에 가봐야 될것 같아. 여보쇼 지나가는 도우미 양반, 이 사람 내 옆에앉은 사람이 좀 아픈거 같아. 어떻게좀 해줘요. 응?” 이러면서 계속 말을 건내셔서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그랬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주님 정말 전 너무 작습니다.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저를 죽이시고 제 안에 거해주십시오. 하나님 매일 더 낮아지고 더 섬기기를 원합니다. 잠시도 안심할 틈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

참 정말 오랜만에 절실하게 드린 죄의 고백이었다. 사실 죄 고백이 잘 안되서 힘들었었는데, 난 그래도 남들에 비해 어느정도 잘 하고 있는것 같은데 이러면서 왜 죄 고백이 안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날은 정신도 차리기 힘들었다. 한참 기도하고 나자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공명함이 있었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대화했다.

하나님: 산아.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아팠는지 아니. 느끼냐. 내가 사랑하는 아들, 딸을 니가 많이 아프게 했구나. 그래서 나도 많이 아프단다. 같이 아프고서 한 소리니? 넌 그들을 사랑하니? 산아. 아픔과 상처가 많아서 자기 이야기를 잘 꺼내지도 못하는 사람들, 잔뜩 움추린 사람들, 잘난 사람 이야기 듣는것 자체가 상처가 되고, 자기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사람들, 그냥 별 생각없이 살기로 작정하고 눈앞에 있는 문제 해결하기에만도 지쳐있는 사람들, 사랑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겠니. 그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니. 내가 너한테 그거 알게해주고 싶구나.

나: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전 너무나 모릅니다. 너무나 부족합니다.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말고도 얼마든지 주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마음만 먹으면 주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매일 낮아지고 매일 더 섬기기는 원합니다. 매일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제 안에 성령님이여 저를 감싸소서. 저를 이끄소서.

하나님: 그래 산아. 괜찮다. 괜찮아. 그래 이렇게 매일 기도하렴. 매일 나를 찾으렴. 내게 의지하렴. 내가 너와 함께하마.

이렇게 몇십분을 정신없이 기도하면서 예배드렸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부활하신 자신을 엠마오 길에서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누가복음 24장 25절에서 35절 말씀이었다. 32절 들의 말씀 –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처럼 내 마음이 참 뜨거워졌다. 내가 할 일은 그저 함께 길을 걸어주고 사랑해주고 하는 일이구나. 부활하신 주님처럼 나도 이제 다시 사는것 같았다. 아래 같은 생각들이 들어서 열심히 노트에 적다가 왔다.

  • 교만이었다. 얼마나 Effect 를 줬느냐로 항상 매순간을 maximize 하려 했다. 그건 내가 해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한국에 오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교만해지더라.
  • 내가 죄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비추지 않고 “얘보단 내가 더 열심히 사는데, 얘보단 내가 더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이런 생각에 어느정도 할만큼 한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하나님이 내게 정말 모든걸 주시고 이렇게 많은 달란트 주셨는데, 많이 받은건 생각하지 않고 그 영향력을 자꾸 내 의대로 쓰려고 해서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에게 주고 있었구나. 주신 분 입장에서 얼마나 슬프실까. 다 뺏어가신다 해도 할말이 없다.
  • 얼마나 공감했느냐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게 얼마나 행하냐 보다 훨씬 중요하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말씀하셨지. “중요한 것은 얼마나 행하느냐가 아니라, 행하고 타인들과 나누는 일에 얼마만한 사랑을 불어넣느냐입니다. 사람들을 심판하려 하지 마십시오. 타인을 심판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 돈이나 지위, 다양한 현실 논리가 당장 사람을 움직이지만 정말 근본에서부터, 영혼에서부터 사람을 변화시키는건 사랑이다. 사랑이 부족하면 영혼이 고갈된다. 영혼이 고갈되면 힘일 잃어서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수도 있다. 생각하는것 자체가, 도전하는것 자체가 너무 괴로운. 그럴때는 그냥 사랑부터 주어야 한다. 일단 듬뿍 사랑을 받고 나면 영혼도 다시 살아나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 요한일서 2장 16장의 세상으로 부터 온 것. 이승의 자랑/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거중에 특히 이승의 자랑을 너무나 탐했구나. 사람들이 얼마나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느냐에 너무나 기뻐하고 좌우되고 혼자 속으로 교만했던 순간들. 주님은 다 아시리라.
  • 기도가 쌓인 곳이나 사람은 다르다. 내 안의 성령님이 자라면 그런 곳이나 그런 사람과의 만남에서 영을 느끼고 영끼리는 공명하는게 있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 온누리교회 예배당에 오면 가슴속에 울림이 있더라. 많은 기도가 쌓여서 그런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나같은 사람안의 성령님도 공명하시더라. 오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뜨거워 지는게 있더라.

이러고 나자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해졌다. 어찌나 감사하든지 예배 끝나고 계속 남아서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기도 드리다가 두란노 서원에 가서 책을 한뭉치 사들고 왔다. (그중 한 책이 뒤에 소개할 예수전도단 문희곤 목사님이 쓴 – 하나님 음성을 듣는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 란 책이다.) 너무나 넘치는 사랑을 채움받고 나니 삶이 달라보이고 훨씬 여유가 있어지고 능글맞아 졌다. 그리고 눈물도 많아졌다. 이글 마지막에 소개하겠지만 크리스천이라곤 나 혼자 뿐인 가족모임에서도 훨씬 여유로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고 오후에 만난 믿음의 동역자 님과는 같이 기도하고 눈물흘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때 정말 오랜만에 만난, 참 많은 아픔을 간직한것처럼 보이는 내 사촌동생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고 열심히 사랑해줄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사랑이 주고 싶고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내 이야기보다는 많이 들었다 많이 같이 아파하고 눈물흘리고 또 웃고 그랬다. 그냥 행복하더라.

6. 4/6 월요일 – 아침 큐티가 이제는 하나님 음성으로 귀에 박힘

새벽을 깨우고 달려와서 찬양해주시는 감사한 자매님들

새벽을 깨우고 달려와서 찬양해주시는 감사한 자매님들

예배가 너무 드리고 싶고 하나님이 너무 만나고 싶었다. 어제 느낀 그 뜨거움, 그 음성이 우연이 아니기를 바랬다. 한국은 역시 한국답게 새벽예배도 2차례에 나눠서 5시, 6시20분 이렇게 두번 하더라.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기도하다가 5시 새벽예배에 가서 맨 앞줄에 앉는 순간 또 눈물이 나오더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 느낌 사무치게 행복하고 감사하다. 앉자마자 열심히 울면서 기도했다.

아버지 주님. 아버지아들 백산이 여기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만나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루가 너무 행복했고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저 어제 어땠나요? 제가 깨닫지 못한 죄가 있으면 깨닫게 해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오늘도 만나주세요 아버지 정말 대화하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아버지…..

이날 주신 말씀은 열왕기상 3잘 1~15절이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는 과정이었다. 말씀을 전하는 스캇 최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께 주신 언약처럼 끝까지 지키셨고 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참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한편으로는 세상의 지혜로 하려했습니다. 1절에 보면 나오듯이 정략결혼도 하고. 그래서인지 그의 말년이 꼭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럴수가. 말씀이 살아 숨쉰다는게 이런건가. 전에는 수없이 많은 씨를 살면서 뿌리고 나면, 즉 이것도 하나님의 뜻일거야 이것도 하나님 말씀일거야 이러다가 그중에서 맞는것 같은것만 내가 선택하고 이런 통계학적인 오류와 착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기도가 응답된다고 착각아닌 착각을 하면서 사는게 신앙생활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이건 내가 그런 씨를 뿌리기도 전에 내가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니 내 안의 성령님이 내게 들게해주셨던 질문과 물음들이, 이렇게 말씀을 통해 느껴지는구나. 그래 그랬구나. 내가 내 지혜로 하려고 해서 내가 해야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았구나. 그게 죄였구나. 내가 해야될 것 같으니까 안타까움이 자꾸 나왔고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고 교만으로 눈을 가렸구나. 솔로몬이 정략결혼 한 것처럼 내가 자꾸 무리수를 두겠구나. 내가 남들보다 뭔가 지혜가 뛰어난것 같으니까 계속 말도 많이 하고 많이 나서겠구나. 그래. 그런 삶은 본인의 삶 동안은 성전을 만들고, 큰 기업을 만들고 영향력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기억되진 않겠구나. 난 참 박정희, 정주영, 김우중, 리콴유, 이런사람들, 본인의 최선의 노력으로 많은걸 현세에서 만들어낸 사람들을 존경하고 닮고 싶었는데 어찌보면 더 큰 임팩트를 미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건 reconcillation 를 이야기하고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랑으로 헌신한 김구, 간디, 넬슨만델라, 마더테레사, 마틴루터킹, 그리고 누구보다도 Jesus Christ 같은 분들이구나. 이분들의 삶에서 영향력을 미친 절대적인 시간은 꼭 길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은 30년의 준비기간 이후 3년의 공생애 기간동안 역사를 이루셨고, 넬슨 만델라도 거의 평생을 감옥에서 많은 시간 독방에서 보냈지만 그 고령의 나이에 세상에 나와서 화해를 이뤘고, 김구 선생님의 생애도 참 짧고 굵었던듯.) 그 impact는 그 사랑을 받은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건, 그 사람들이 다시 더 큰 사랑을 주위에 나눠서건 정말 오랫동안 퍼져 나갔다. 나도 이런 삶을 꿈꿔볼 수 있을까? 나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지 않은 열심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이 주시는 평안 안에서 먹고 마시면서 사랑을 베풀다가 모든걸 주님께 의지하고 떠넘기고 충만하고 또 그 겸손안에서 성실을 다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아래와 같이 대화를 나눴다. (나눴다고 생각이 들었다.)

산: 하나님, 세상의 지혜를 내려놓습니다. 제가 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걸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다 하실것 믿습니다. 전에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정략결혼 하는것 처럼, 저도 뭔가 더 많은 의미를 만들고 더 뭔가 해야할 것 같아서 계속 나서고 무언가 계속 했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 그래 산아. 무엇을 구하냐 산아. 무엇을 주랴.

산: 하나님,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지요. 저도 전에는 지혜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혜를 갖고 분별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그저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뜻을 듣기를 원합니다. 든는 귀와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그래. 계속 열심히 꾸준히 구해라 산아. 주마. 그리고 오늘하루도 가서 많이 섬기고 사랑하고 와라.

이러고 나자 또 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해주고 싶었고, 조금만 나눔이 있어도 눈물이 났다. 내게 참 많은 영감을 준 동료 크리스천이자 선배 형을 만났을때 형께 내 뜨거움을 이야기하자 형이 “산아, 그래 은혜 부어주실 때 많이 받아라. 최대한 채워나라. 언제 또 침묵하실지 모르니 최대한 쭈욱 빨아놔라 ㅋㅋ. 난 요새 좀 힘들지만 열심히 기도하고 버텨보려고.” 이런 이야기도 해주더라. 삶의 작은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고, 내 바로 앞에 위에 곁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힘이 너무 낫다. 그러다가 마침 사람을 찾고 있던 차에 비슷한 사람이 먼저 연락이 오는 이런 즐거운 체험도 하고. 순간순간 계속 기도가 나오고 계속 은혜가 느껴졌다. 예를들면 이런식이었다. 후배를 만나니 이 귀여운 놈이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긴 이메일도 보내고 그 뜨거운 마음이 너무 귀엽고 좋아서 억지로 시간내서 찾아가니 일단 이놈을 좀 알아야 어떻게 일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각이 나오겠더라. 그래서 계속 뭐 이것저것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하나님도 딱 이러시겠구나. 나한테 묻고 내 상태를 보고 하실말씀 하시겠구나. 상태가 메롱이라 도저히 이야기가 안통할 상황이면 말씀 못하시거나 다른 경로로 주님께 불러주시고, 상태가 조금 경건 흉내나마 내고 있고 싹수가 있어보이면 조금씩 말씀하시고 조금씩 일을 주시겠구나. 그래 그래서 이렇게 내 교만을 빼시고 연단하고 계시는거구나. 내가 경건해질 때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정말 많은 일을 나를 통해 해내실수도 있겠구나….

부모님과의 식사시간도 훨씬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그전에는 계속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나한테 잔소리 하시고, 난 계속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안타까워서 잔소리로 받아쳤는데, 이날은 내가 그냥 웃으면서 잘 듣고, 부모님 안아 드리고 감사하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정말 사랑으로 대하려 노력하고 하자 훨씬 그냥 화기애애했다. 화요일새벽에, 아들보러 먼길 오셨다가 다시 산더미같은 일거리가 기다리는 상주 농장으로 내려가시는 아버지한테 “아빠 사랑해” 라고하며 안아드렸는데 왜 진작 더 그냥 사랑한다고 하고 그냥 듣고 감사하고 그러지못했을까 눈물이 많이 나더라.

이건 조금 딴 이야기지만 새벽기도에 또 깨알같은 재미가 가득했다. 몇개 이야기하자면

  • 내 옆에서 눈감고 찬양하는데 거의 천상의 목소리로 강대상의 찬양에 더해 화음넣는 목소리가 들려서 보니 정말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70은 넘어보이는 할머니셨는데….어떻게 그런 목소리로 찬양하실까. 매일 가장 앞자리에 앉는 그분.
  • 내 뒤에서 계속 방언으로 기도하시는 분의 음성이 들렸는데 전혀 못알아 듣겠지만 듣기 싫지는 또 전혀 않더라. 나도 혹시나 이렇게 은혜받다가 방언터지는것 아닌지 혼자 하나님께 웅얼웅얼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럴수가 – 뭔가 내가 알수 없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듯 하더니 – 조금 하다보니 그냥 웅얼대서 내 목소리가 클리어하지 않았던것… 까비. 다음기회에
  • 새벽부터 찬양인도에 악기에 섬겨주시는 분은 또 왜이리 많은지. 목사님 얼굴과 목소리와 presence는 또 왜이리 선하신지.

7. 4/7 화요일 – 한번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느낌

부모님의 사랑...하나님의 사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의 사랑…하나님의 사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새벽에 아버지와 빠이빠이 하고 다시 온누리교회로 향했다. 교회가는 내내 찬양들으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사랑을 주는건 알 것 같은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게 내 사랑에서 나온건지 아니면 내 의에서 나온건지 주님은 아시겠지만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헷갈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게 무어지? 내가 자식을 나으면 우리 아버지/어머니가 나 사랑해준 것 만큼 그런 무조건 적인 사랑이 나오지 않을까? 그럼 내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를 내 자식에게 직접 할지 말지, 그냥 안아줄지 때로는 한마지 할지, 그리고 내 자식 이야기를 내 주위 사랑하는 형제와 친지들에게 할지 (예를들면 내 자식이 영 헤매고 있으면 그걸 내가 주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게 될지 안하게 될지.) 이렇게 판단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열심히 기도드리며 목사님 말씀을 따라 성경책을 펼쳐드니 오늘 말씀은 열왕기상 3장 16~28절, 바로 솔로몬에게 두 엄마가 나와서 서로 아기가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아기를 반으로 가지자는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아기를 줘도 좋으니 제발 아기를 살려만 달라는 사람을 솔로몬이 진짜 어머니로 분별하는 그런 내용의 말씀이 나왔다. 이럴수가. 방금까지 계속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사랑할까 생각하고 왔는데. 하나님이 들으신걸까. 이런 성경말씀을 주시다니. 전에는 남들 다 읽는 생명의 삶 큐티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그날아침 스케쥴따라 읽는 성경말씀이 어떻게 내게만 아주 주관적으로 살아 숨쉴 수 있을까 많이 궁금했다. 이런거였나. 내 안의 성령님이 품게 해주시는 마음이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똑같은 말씀이라도 그 객관적인 말씀과 공명하면서, 이렇게 주관적인 체험이 될수도 있구나. 매일 이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매일 이럴려면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며칠 이런게 반복되다 보니 기도해도 할말이 많아졌다.

산: 하나님, 이거 제게 말씀해주신것 맞죠? 제가 어떻게 분별할지 어떻게 사랑할지 많이 여쭈고 고민했잖아요. 마치 내 아들, 내 자식이면 어떻게 할지 그런 기준으로 이야기할지 정하고 하라는것 맞죠?

하나님: 그래 산아. 여기서 진짜 엄마처럼 하거라.

산: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 요새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매일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대화하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제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제 궁금증을 해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제 곁에 매 순간 계심을 느끼고 믿습니다. 주님 저 오늘하루도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함께해주세요. 주님과 함께라면 아니 주님을 제가 믿고 따르는 한 너무나 행복하고 쉽고 재밌는 일인걸 느낍니다. 주님 하루가 기대됩니다.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정신없이 아침에 미팅하고 짐싸서 거의 비행기 놓칠뻔 하며 미국으로 가까스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이 순간 순간에도 참 잡음이 많고 문제가 많았는데 평소와 달라진게 있다면 여유가 많이 늘었다는거. 예를들면 난 이날 이민가방같은거 2개를 들고 지하철타고 은행가고 미용실가고 뭐 많이 했는데 미용실 여성분이 머리를 매우 이상하게 깍았지만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하고 넘어갔고 은행에 갔을때 어디 이민가세요? 이런 물음에 – 예 돈 다찾아서 한국 뜰려고요. – 뭐 이런 썰렁한 농담이 저절로 나왔다. 미소도 나오고. 아시아나 수속할 때 너무 늦어서 만면의 미소로 – 저 너무 늦었는데 여기 골드클래스 줄에서 빨리 수속해주실수 없나요? – 이런 능글맞음도 평소보다 더 활짝 웃으며 (평소에도 이런건 많이했었더랜만…) 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팔걸이를 많이 차지하는 남성분도 다 아무렇지도 않았고 나름 귀여워(?) 보였다. 다 하나님 은혜다.

8. 4/7 화요일 비행기안 – 하나님 음성을 듣는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라는 책에서 느낀 하나님 말씀

다 좋은데 표지 디자인은 좀 바꾸고 싶기도 ^

다 좋은데 표지 디자인은 좀 바꾸고 싶기도 ^

지난 일요일에 사고 계속 읽고 싶었던 책,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이책을 비행기에서 펴들었다. 평소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 음성을 듣는 삶” 이런 책이나 오대원 목사님의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이런 책을 읽으며 예수 전도단을 흠모하고 있던 중  (아는 목사님 한분도 YM 출신이고 YM출신 분들 하나하나, 책 한권한권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깊이를 흠모해 왔었던 듯) 마침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최근에 많은 궁금증과 갈구가 더 생기던 차에 딱 눈에 띈 책이다. 서문에서부터 작가는 나를 압도했고 읽는 내내 나를 감동시켰다. 한달음에 다 읽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이나마 글을 써보려고 하면서 계속 느끼고 있는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사람에게 이해가 되도록 글을 쓰는게 얼마나 어렵냐 하는 점인데 이 책에선 저자의 수많은 체험과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간증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결론이 아주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문병주 형제님의 책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성을 많이 제시해 주었다면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될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달까.

나누고 싶은 포인트가 너무나 많지만 (여기 보면 주요 요약이 잘 나와있다.) 가장 나를 놀라게 한건 성경인물중에 이 음성이 내 스스로 한 생각인지 하나님 음성인지 고민한 인물이나 그런 성경 말씀이 전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서구 기독교 기반 사고를 가진 서구인에 비해 이런 생각을 훨씬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미국아그들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착각이거나 말았거나 받아들인다고? 그 Threshold 가 훨씬 낮은가 보구나. 너무 그거에 고민하고 있어서 내가 한국인으로서 놓치는게 많을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나서 저자가 소개하는 하나님 음성인지 여부를 분별하는 법을 보니 책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 주관적인 내적증거: 내적 평안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고, 소망일 수도 있고, 강한 확신이나 믿음일 수도 있다. 이처럼 대개 하나님의 음성은 내면의 건강한 변화를 동반한다. -> 그래 내 안에 뜨거움은 분명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착각이면 어떠하리. 내 삶이 변화하고 있는걸.
  • 객관적인 증거 (주관적인 느낌은 타 종교와 이단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으니): 성경(성경의 내용과 정신, 가치에 부합하는가.) 하나님의 성품(사랑, 인자와 긍휼의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같이 섬기는 공동체 안에서 확인받기) 이런 것들 -> 그래. 계속 공동체 안에서 같이 연단하고 체크하고, 성경과 하나님의 성품과 비추면서 나아가 보자.

이렇게 책을 읽던 중에 Lordship, 즉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구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왔다. “주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것이 제게 복입니다. 종이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에 백지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 적어 주옵소서. 제 생각은 모두 내려놓겠습니다. 주님의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제 뜻은 주님의 뜻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를 통해 주님의 뜻을 행하소서.” 우리에게는 정말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내가 월요일에 했던 기도가 생각났고 다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전 지혜를 구한 솔로몬과는 달리 듣는 귀와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다가 책을 읽다보니 이게 왠걸. 솔로몬도 wisdom이 아니라, listening heart 를 달라고 했다고 원문 표현에는 나와 있다는걸 알게됐다. 이럴수가. 내가 하나님께 구한게 솔로몬과 같은 거였구나. 이거 참 신기하다. 하나님도 나의 간구를 흡족하게 보시지 않았을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붙들어주세요. 주님 매일 듣기를 원합니다 항상 듣기를 원합니다. 기도가 나오고 또 눈물이 계속 나왔다. 옆사람이 봐서 주책이든 뭐든 난 너무나 행복했다.

9. 4/8~ 미국와서의 하루하루 삶에서 느끼는 변화

아이코 내 와이프 넘 이쁘다

아이코 내 와이프 넘 이쁘다 난 표정이 왜이런지 -0- 햇볕받아서

미국와서 오랜만에 사랑하는 각시도 다시 만나고 (민경이는 나보다 일주일 먼저 미국에 들어왔었다.) 장모님도 만나서 한참 은혜받았다고 신나서 또 이야기하고 룰루랄라 행복을 만끽했다.

그리고 수요일 새벽, 정말 안나가던 새벽기도를 나갔다. 너무나 가고 싶었다. 오늘은 매우 안타깝게도 눈물이 나거나 그런 뜨거움이 있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기대감을 갖고 하나님 말씀을 접했는데 두둥, 열왕기상 4장 1절~19절, 솔로몬이 수많은 사람을 세운 이야기가 나왔다.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나님이 내게 오늘 하시고 싶은 말씀은 도대체 무얼지. 목사님 설교와 연결해서 어떻게든 말이 되게 해볼려고 고민하고 머리를 짜내며 아 이제는 내게 신앙생활과 삶의 체계를 이렇게 잡아가며 맞는 delegation 을 하라는 건가. 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가슴속에 뜨거움이 없는걸 안타까워 하며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려 해봤다. 하나님 보시기에 전 어떤지. 어제 어땠는지. 오늘은 어떻게 해야할지. 미처 깨닫기 못한 죄는 없는지.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 전에 내가 나서려 하고 내가 의미를 만들려고 할때는 내가 채움받아야 했다. inspiration 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항상 선배들 만나러 다니고 조금이라도 더 만나려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정말 애썼다. 매일 이메일 쓰고 매일 고민하고 매일 부탁하고. 열심이었고 그런 내 자신이 잘못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내 중심 적이었다. 그렇게 채움받아도 뭔가 부족했고 항상 배고팠다. 더 받아서 더 성장해도 계속 갈길은 멀고 시간은 없었다.
  •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하신다고 느끼고 믿고 의지하자, 받기보다는 줄 수 있을거 같고 주고 싶더라. 누구를 만나든. 더 높아지고 싶은게 아니라 낮아지고 싶더라. 내가 꼭 영감을 그 사람을 통해서 받을 필요가 없다. 난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예수님/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묵상하고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감사함과 영광으로 돌리며 내가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을 주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받는다. 순간순간 하나님과 교제하고 다음날 새벽에 또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저 잘했나요? 저 어땠나요? 저 뭐가 부족하죠? 하고 하루 먹을 분량의 사랑 채워가면 된다. 

비록 이날의 큐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삶의 순간순간에서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계속 부어주시는 사랑이 너무 크더라. 민감성이 높아졌는지 너무나 많은 감사와 기도가 나오고 행복도가 높아졌다.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된다는게 이런 이야기인가. 순간순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하신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참 많아졌다. 별개 다 감동이고 눈물이었다. 아픔이 느껴져도 눈물, 기쁨이 느껴져도 눈물.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할게 많아졌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간과 하루를 사는 느낌이었고 그러다보니 다음날 새벽에 또 예배당에 가면 하나님께 하루를 다시한번 고백하며 하나님 어제 저 어땠나요 어제 그사람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한거 저 잘했죠? 그때 그사람 더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못했네요 죄송해요. 오늘은 어떻게 할까요 어떤 말씀을 제게 오늘 주시는지요 제게 오늘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요. 듣기를 원합니다 따르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도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또 요새 은혜를 받고나서 확실히 변화를 느낀건 내가 여유가 많아졌다는 거다. (물론 절대 방심할수는 없다.) 전에는 아젠더가 정말 빡빡했고 삶이 흐트러지는게 너무 괴로웠다. 내 생각과 다른일들이 벌어지면 못견뎌 하는 면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민경이랑 장을 봐서 들어오다가 민경이 말을 듣고 갔다가 길이 틀렸다든지, 수많은 일거리를 안고 집에 왔는데 나만 다하는 느낌이라든지, 뭔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타이밍에 상대가 좀 cranky 하게 나오는 느낌이 들어다든지, 뭐든. 그리고 모든 시간을 내 입장에서 maximize 하려했다. 설교가 은혜가 안되면 열심히 내 딴에는 다른 성경구절 읽으며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그 시간에 참을성 있게 들어주며 그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은혜가 안되었지만 너무 은혜가 되었다고 많이 받았다고 사랑스런 미소로 건네는 그런 여유는 참 같기 어려웠다. 그런데 주님이 어차피 다 하실거고 내가 할 일은 사랑 폭탄을가지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때마다 터뜨리고 넘겨주는거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내 안에 성령님이 내 바로 위에 천사가, 내 곁에 하나님이 항상 계시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여유없던 나도 웃음이 자꾸 나오더라. 농담이 자꾸 나오더라. 전에는 단둘이 밥먹는 시간의 침묵이 좀 어색했는데 이젠 별의별 농담이 다나오고 놀리기도 훨씬 많이 놀리게 됐다. 장난도 많이 치고. 확실히 삶이 훨씬 행복해졌다. 내가 그렇게 능글맞게 웃으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열심을 하게되니 (사랑하려다 보니 자꾸 일을 많이하게되고 근데 그게 즐겁고 재밌더라.) 다른 사람도 더 행복해지고 더 내게 활짝 웃으며 대하고 그런 일들이 자꾸 많아졌다. What a fun!

10. 마치며 – please keep me accountable

싸랑합니다 우리 식구들

싸랑합니다 우리 식구들

서문에 썼듯이 솔직히 여전히 두려움이 많다. 이러다가. 그리고 난 매일같이 struggle 한다. 오늘은 왜 새벽기도에 갔는데 뜨거움이 없지. 오늘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도대체 성경의 이 수많은 인물 이름과 단순 나열식 이야기, 자세한 율법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 하나님이 오늘 내게 하시는 말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뜨거움이 또 얼마나 갈까. 언제 그랬냐는듯 세상과 육의 논리로 살게되고 하나님의 침묵을 답답해 하며 오히려 괜히 이런이야기 해서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는 않을까. 내게 욥과 같은 연단의 시기가 온다면 그래도 계속 감사하며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 요새 뭔가 나름 삶이 해피하니까 이런거는 아닐까…만약에 너무 영적으로 빠져서 모든걸 영으로 생각하려고 그러고 하나님 말씀 안듣고는 한발자국도 안움직이겠다고 그러다가 주위에 시험을 주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말씀을 들은척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는건 아니겠지? ~~~~

풀리지 않는 물음도 산더미 같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했던 그 수많은 질문들을 만약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난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놓치 않고 싶다. 지금의 뜨거움과 확신을 잃지 않고 싶다. 그래. 아래와 같이 기도할 뿐이다.

아버지, 분명히 제게 말씀하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항상 제 곁에 계신것을 믿습니다. 평생 아버님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기억하고 싶습니다. 침묵하신다고 느껴질때 그 시기에 한결같고 싶습니다.

전에는 씨를 뿌리고 우연을 만나면 그걸 합리화 하는게 말씀 듣는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마음의 성령님이 듣게 해준 것을 말씀으로 다시 접하는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하는것은 은사나 우연이 아닙니다.

매일 매 순간 대화하길 원합니다. 잠시라도 벗어나는 순간 제가 어떻게 될지 두렵습니다. 이제는 저를 붙드셨으니 더 강하게 붙드시고 놓치 말아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나눈 대화를 끝으로 이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우리 가족들, 우리 부모님, 형, 형수님은 모두 크리스천이 아니다. 이들 넷과 지난 일요일 식사하는 중의 대화내용이다.

  • : 샌, 요새 그래 민경이 니 와이프가 페퍼로니 피자랑 소세지를 그렇게 먹는다며? 거봐. 너같이 케쳡도 안먹는 비 인간적인 놈이랑 사니 제수씨가 그렇게 참다가 삐뚤어지는 수밖에. 좀 적당히좀 살아. 뭐가 그렇게 혼자 또 빡세. 뭐야 이 책은. 뭐? 결혼이 어쩌고 저쩌고? 좋은 남편이 어쩌고 저쩌고? 이자식 하여튼 인생에 도움이 안돼. 잠깐 줘봐. 음. 아웃. 바로 피자마자 그리스도가 어쩌고 이러는데 이런걸 내가 어떻게 읽어.
  • 엄마: 산아, 요새 아주 혼자 바빠서 난리가 났드만. 그 부부 블로그 그건 진짜 적당히좀해라. 보통사람들은 열이면 아홉 그런거 관심도 없어. 남 행복한 이야기 남 잘난 이야기 이런거 사람들한테는 상처만 되. 남 힘든 이야기나 듣고 싶어하지. 너네 그렇게 쓴거 보면 “뭐야 이거. 아주 이제는 별짓을 다하네. 허참 별꼴이야. 뭐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리고 나도 괜찮게 살고있어 짜샤.” 이렇게 생각할걸? 그리고 사람들 다 자기 나름대로 잘 살고 있어. 니가 걱정하듯이 다 그렇게 하나님 못만나 힘들어 하는거 아니야.
  • 아빠: 아들아, 원래 사람이란건 남의 이야기 듣는게 참어려운 법이야. 일단 자기 이야기를 상대가 들어주고 난 다음에야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되는거야. 아빠가 교육했을때 이야기 안해줬나?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일단 칭찬부터 해주고 무조건 인정해 줘야되. 그렇게 세워주고 인정해주고 받아주다 보면 저쪽에서 먼저 ‘그런데 백교수, 내가 고칠건 좀 없을까요? 내가 이런게 좀 부족하지 않나?’ 이런다니까. 그래도 그때 바로 기다렸다는듯이 이야기하면 또 안들어.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시다니 XX님은 정말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또 들을려고 하시고 변화하려 하시다니요. ‘. 만약 이래도 ‘아냐 자꾸 그러지 말고 얘기좀해줘’ 이러면 ‘제가 보기에 정말 부족함이 없어 보이십니다만 그래도 혹시 제가 한가지 느끼는게 있는거 같기도 한데, 들어보시렵니까? 어떻게 아주 직설적이고 가감없이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좀 걸러 할까요 하하하. ‘ 이런식으로 접근해야 이야기가 뭔가 씨알이 먹히고 변화가 있어. 아빠가 다 해봤고 다 안다니까.  뭐 좋은남편되기 이 책 보라고? 아빠가 이 책 몇권은 쓸수 있어 아빠가 더 중요한 이야기해줄까? 하하하~~
  • : 네네 맞습니다 맞고요. 제가 부족하지요. 네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많이 배울게요 엄마아빠형. 단 하나! 형, 아빠 이거 어때. 나중에 엄마랑 민경이랑 형수님이랑 이렇게 셋이 다시 만날때 누가 가장 행복한 와이프인지, 누구 남편이 가장 잘하고 있는지 이거 한번 내기해보자 응? 결과로서 이야기하자고 우리. 싸나이답게, 깔끔하게 응?
  • (이러자 기세등등 자신감 넘치던 우리 아버지는 “잠깐 스톱. 아빠는 현역 은퇴했다. 너 이렇게 나오지 말자” 고 약한 모습을 보이셨고 (물론 어머니는 그런게 어딨냐며 반대하셨지만) 형은 승부사답게 “좋아, 대충하지 말고 확실하게 하자고. 언제 어떻게 결과를 비교할지 여기 적어. ” 이러면서 나왔다. 너무나 화기애애 했고

그래…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것 안다. 내가 이렇게 말은 거창하게 써놨지만 죄성 많은 이 부족함 많은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또 경건치 못한 행동을 할지 걱정도 많이된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우리형,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했듯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 홍정길 목사님이 말씀하시듯 정말 삶을 통해 이야기해 보자고. 우리 삶을 통해서 한번 건강한 승부를 벌여보자고.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모두가 이기는 방향으로, 모두의 와이프가 서로 자기 남편이 최고라고 하는 그런 시나리오로 서로 check in 하고 서로를 위해줘가며 한번 가보자고.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부족한 내 이야기 읽어주고 관심가져줘서. 많이 지도편달 해주고 가르쳐달라고.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6 comments

  1. Sookyoung

    Wow, did you get married?! You did not invite me?!

  2. JeonginP

    안녕하세요 조성문님 블로그에서 타고 왔다가 이 글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 들어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방향성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이 글에 공감도 많이 되고 도전도 되네요! 글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3. Pingback: Thankyou 2015 and welcome 2016 | San's playground

  4. Pingback: 2017년 9월 신앙 이야기 | San's play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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