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신앙 이야기

*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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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들놈과

요샌 팬텀싱어가 너무 재밌다. 유일하게 보는 한국 프로그램이자 TV 프로그램이다. 난 음악프로가 참 좋다. 그 무대에서의 에너지가, 그 남성미가, 그 힘과 절실함이 너무 좋다. 나에겐 무엇이 있는가. 난 내 삶과 일에 그런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가. 더 쏟아내고 싶다. 그래서 세상에 빚진 마음으로 무언가 또 글로 남겨본다. 

쓰고싶은 글이, 준비하고 있는 글이 참 많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쓸까말까 여러번 썼다 지웠던 정치관련 이야기, 최근들어 너무나 관심이 가는 북한관련 이야기도 있고, 그냥 가족들이 사는 이야기도 있고, 내 아내 이야기도 있고,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도 있고 등등등. 그런데 또 신앙이야기를 쓰게 된다. 신앙이야기를 쓸때 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부모님은 항상 이제 교회에 그만 빠지고 종교이야기좀 그만쓰라고 하신다. 주위사람중에 그런 이야기 해주거나 피드백 주는 사람도 많다. 종교 블로거가 되고 있다고 하하하. Certainly,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는것 안다. 독자님들을 고객으로 생각하여 고객지향적 글을 쓴다면 일 이야기나 실리콘 밸리 이야기나 더 실용적인 내용을 많이 쓰는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정말 이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마치 앙꼬 없는 찐빵처럼, 내 진짜 생각을, 내 진짜 감정을, 내 삶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안 쓸래야 안 쓸수가 없다. 하나 그래도 약속드리는 것은 솔직하게 쓸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내게 신앙이 없어지거나 신앙적 감동이 없어진다면 그것 또한 고백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글의 주(Primary) 독자는 신앙인, Christian 이다. (non christian 께는 아마 너무 길고 공감이 전혀 안되는 내용일 것 같아서 마저 읽으시라고 추천드리긴 참 조심스럽다. ) 그리고 또 주 독자는 나 자신, 그리고 내 주위 사람,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랑할 것은 나의 약함뿐이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도 나의 약함을 자랑하고, 그 과정에서 함께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내 삶의 모토, 만트라를 “열심히살자” 에서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으로 바꿔주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정말 부족하고 좌충우돌이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도 귀엽게 봐주며 칭찬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써본다. 신앙 이야기를 쓰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글에 조금더 자세히 나누었으니 참고 부탁드린다.

**Update: 이 글을 쓰고 나서 친한 지인으로 부터 괜찮냐, 너무 죄의식에 시달리는거 아니냐, 다 지나가는 거일거다. 어떤 부분은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고 완벽해 지려거나 컨트롤 하려고 들어서 더 스트레스가 되고 문제가 되는거 아니냐. 이런저런 걱정하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 글이 많이 드라마틱 하고, 다양한 불편한 주제와 죄 의식을 담고 있어서 그런 걱정들이 나온것 같다. 정작 글을 쓰는 나는 은혜와 평강으로 충만해 있고, 내 아내도 편안하고 이 글을 좋게 생각해주고 응원해주고 있다. 그래서 걱정하는 지인들께, 전혀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사실 아래 내가 쉐어한 죄의식들이 느껴진건 많은 부분 예배 때나 기도드릴 때였고, 하나님과 가까이 가려다 보니 죄가 더욱 죄 되게하심으로써 드러난게 아닌가 생각한다. 평소에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는 항상 밝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신앙이 생기고 나서 생긴 이 죄책감(?) 같은 감정이 힘들었던 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다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훨씬 다른 모습으로 트랜스폼 되는 과정. 이점 말씀드리고 싶다.

2. 죄와 관련된 생각들

1) 인간의 죄성

  • 가장 거부감이 들지만, 빼놓고는 도저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죄” 라는 말은 신앙이 없을때 가장 가장 거부감이 들었던 말이었다. 이것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선하고 좋긴한데 뭔가 극성이고 좀 오버하는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대학교때 왠 기독교 찌라시를 들고 4영리가 어쩌고 하며 나한테 접근하던 그 사람들의 무서움을…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난 바로 도망가버렸다. 어쩌면 내 글이 지금 사람들을 도망치게 만들고 있을수도. 그러나 이걸 빼놓고 어떻게 신앙을 이야기하리.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정신과 의사 스캇펙이 그 유명한 저서를 남기고 수없는 환자를 상대하고 40대가 지나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남긴 말은 기독교야 말로 인간의 “죄”의 문제를 가장 완벽하게 설명해 냈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게 첫단추다.
  • 죄는 관계를 갈라놓는다. 결국 모든 것은 관계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죄는 관계를 갈라놓는다. 죄는 기본적으로 남은 몰랐으면 하는 게 본성이다. 죄성의 발로는 이기심이고, 이기심은 결국 나를 세우는 것으로 남과 함께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용서는, 사랑은 사람을 연결시킨다. 화목시킨다. 그리고 결국에 죄를 이긴다
  • 가정의 일이나 직장의 일이나 국제관계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고슴도치처럼 상처주고 사는 부부를 많이 본다. 우리 부부도 분명 그런면이 없는게 아니었고. 서로 상처주려는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서로 상처주고 상처입고 억울하다고 나는 할만큼 했다고 느끼며 살아가는가. 왜 다른사람과 함께 사는게 힘든가. 우리는 왜 조금만 잘나지면 군림하여 들고, 뻐기려 들고, 자랑하려 들고, 전쟁으로 뺐으려 들고, 비굴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탐욕스러워 지거나 음란해 지는가. 국제정세도 마찬가지다. 북한이슈가 요새 나를 많이 bother 한다. 우리 동포들이 그렇게 어렵게 사는 것도, 국제 정세에서 우리가 아무 힘도 없이 당하기만 하고 중국은 자꾸 우리를 옆반에 가장 힘 약한 자기 똘마니 정도로 여기고 국제사회에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다 죄성의 발로고 연장선상이 아닐까..
  • 죄는 악한 영의 식량이고 세일즈이다. 사단은 한번이라도 더 죄 짓게 만드려 한다. 왜 그럴까? 죄는 쌓이기 때문이다. 죄는 사단의 세일즈이다. 왜 하필 애기낳기 전날 그 유혹이 그렇게 컸을까. 왜 한번쯤 더 해도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까. 죄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다. 주님은 죄를 씻어주신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업보라고 하던가? 지옥을 안에서 닫힌 문이라고 CS Lewis가 그랬다던데. 자승자박이란 말이 있듯이 내가지은 죄의 유혹때문에 내가 다치는게 아닐까.
  • 죄는 이어지는 것일까. 다윗의 죄가 후손에게 이어지고, 솔로몬의 죄도 후손에게 이어지고, 로마서 9장에는 야곱과 에서,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이 판단하시는게 나온다. 나의 죄가 내 아들에게 내  자식에게 가는게 아닐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으리라 믿는다. 강아지는 왜 주인이 언제는 밥을 주는지, 언제는 산책을 시켜주는지 모르지만 주인은 알듯이, 내가 다 모르는 세계가. 하나님은 시간 개념이 없기에 이 모든게 과거의 어떤 일이 미래의 인과응보로 대응된다기 보다, 모든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in restropect 내리신 판단이고 결과일수도 있으라. 어쨌듯 나의 죄가 불현듯 걱정이 될때가 종종 있다.

2) 내 안의 죄들, 나의 싸움들

최근들어 내 안의 죄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정말 다양한 순간들에 죄에 민감했었는데, 가장 큰거 두개는 둘째 육아가운데에서 느낀 갑작스러운 화(?)와 안목의 정욕 이다.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가니 좀 나아지고 적응이 된듯 하지만 지난 두어달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아들놈이 너무 이뻤는데 빽빽울기 시작하자 갑작스럽게 내가 초사이어인으로 변해서 소리도 지르고 냉장고도 치고 이성을 잃었던 적이 서너번이나 된다.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기도했던 아들은 하나님이 주셨는데, 아버지라고 있는 나는 애 우는 소리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아래는 내가 우리 목장의 남자 목원들에게 나눈 글의 일부분이다.

한주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밤새 서너번은 깨서 애기 기저귀갈고, 회사 챙겨서 나가기 바쁘고 회사에서도 항상 일에 쫓기고, 집에 오면 또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애 둘 씻기고 밥먹이고 우는애기 달래고 민경이랑 밥먹고 치우고 밀린 집안일 하고 등등) 잘 수 있을때 허겁지겁 잠드는 패턴이 반복되는데, 서로 지치고 짜증나는 일도 많고, 무엇보다도 육아에 기쁨이 없는걸 (특히나 우는 둘째를 안고 있을떄) 발견합니다. Baby is crying and I can’t get anything done. I feel like I’m failing at home, at work, and faith.

둘째 육아에 불평하고 힘들어하고 있던 중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도 있다. 목사님께서 우리 주위에 용서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하고 기도해보자고 하셨다. 기도하는데 “난 주위에 용서못하는 사람도 없고 모두와 잘 지내지 않나?” 이런 Self righteous 한 마음이 드는데 갑자기 주님이 마음을 만져주셨다. “너 안고 있는 니 아들이나 좀 사랑하지 않을래? 이쁘지 않니?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안드니? 많이 원했잖아. 너무너무 이쁜 아들이고 아기란다. 너의 사랑을 많이 필요로 하고.” 참 회개가 많이 나오고 감사했다.

이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나를 괴롭힌것이 성(Sex) 관련 문제였다. 이제는 언제그랬냐는듯이 정말 많이 편안해졌지만 둘째 낳는 과정에서 부부관계를 못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더욱 무언가를 보고 싶은 욕구가 주체가 안될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상상이 생각이 갑자기 불붙은것 처럼 일어난다. 전에 하나님 안 믿을때는 그냥 그러려니, 포르노도 보고, 그러면서 욕구가 일어나면 해소하고 또 정상적인 삶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걸 억지로 없애려다 보니 더 이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것 같을때가 있다. 생각을 안혀려니 더 생각나는거 같은. 자식보기 부끄럽고 아내보기 부끄럽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다. 아래는 내가 이거에 고민하면서 나눈 글의 일부분이다.

계속 무너지는 저를 보고, 그리고 죄의 달콤함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요. 과연 내가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평생 이걸 참을 수 있을까. 합리화 해볼려고 한적도 있어요. 적어도 난 어디 술집가고 그러진 않을거니까. 뭔가를 보는것 자체가 엄청나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건 아니니까. 그리고 보는 것도 아주 진짜 포르노는 절대 안보겠다. 단 노출수위가 나온 인터넷에 그냥 나오고 하는거 보는건 상대적으로 덜 나쁜게 아닐가… 뭐 티피컬한 패턴이죠. 난 술담배도 안하고, 게임이라든지 그런것도 안하고, 다른 나쁜거(?)는 전혀 안하니까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는데 어쩔수 없는게 아닌가. 그리고 신앙이 없을땐 이런게 이렇게 문제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나면 빨리 한번 보고 넘어가버리면 또 다시 집중해서 할일 할 수 있게 되고 하니까 훨신 편했는데. 제 주위 신앙없는 친구들은 다 그러죠. “산아, 다 그러고 살아. 너무 또 그렇게 혼자 오버하지마”

하지만 포기할수가 없었다. 그냥 이걸 덮어두고는 앞으로 나갈수가 없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광야에서 멤돌 뿐이다.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신앙이 없을때는 오히려 편했는데, 왜 신앙이 생기고 더 죄책감으로 괴로워해야 하는지 힘들었다. 이걸 붙잡고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기도하고 회개하고 예배가운데 은혜받고 그렇게 무너지고 씻김받고를 반복하다가 주님이 주신 깨달음이 로마서 7장 13절이었다. 그래, 주님이 내 마음속에 율법을 주셔서,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셨다. 나를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임을 느낀다.

  • 로마서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느낀다. 죄가 있는 상태가 얼마나 숨이 막히는지도. 전에 일주일간 금식을 했던 적이 있다. 금식을 하고 난 직후에는 진짜 무엇을 먹어도, 일반 국이나 음식을 먹어도 너무 짜서 머리가 아팠고, 특히 껌 같은건 자극이 너무 커서 절대 못씹겠었다. 내 몸이 이럴진데 하물며 영은 어떻겠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생각으로 마음이 씻김받음을 느꼈을 때, 영적인 교감이 있다고 느꼈을 때, 음욕이 성령의 힘(?)으로 잠재워 졌다고 느껴질 때, 얼마나 벅차고 정화된 느낌인지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그렇지 않을때 너무나 괴로워 진다.  마치 한때 체지방률 5%였던 사람이 체지방이 갑자기 20%가 되면 항상 체지방 5%였을땐 말이지 ~ 이러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그 때를 그리워하듯이. 밤마다 초코렛이 엄청 땡기다가도 초코렛 따위는 절대 안땡겼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언젠가 끊어야 겠다고 생각하듯이.

3. 은혜, 승리와 관련된 생각들

하율이 헌아식

1)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존재

인간의 죄성이 너무나 사무치다가도, 인간의 아름다움 또한 사무친다. 우리는 정말 다 사람때문에 산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유일한 생명로서, 혼과 영과 육의 조합으로서, 인간안에서 우리안에서 다른 그 어떤데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아래 두 성경구절을 요새는 어떻게든 붙들어 보려한다.

  • 빌립보서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옮으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말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만하면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2) 고개를 들자

기도할때 마다, 예배드릴 때마다 힘을 주신다. CS Lewis가 스크루테이프 편지에서 이야기했다. 사단은 결코 우리가 기도할때 만큼은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늘 반복되는 죄 짓고도 뻔뻔하지만 그래도 주님앞에 나아가면 뭐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치실 만도 한데 사랑한다고, 잘할거라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신다. 그래. 내가 할일은 나아가는 일, 그리고 나의 죄를 보지 않고 고개를 들고 주님을 보는 일이리라. 아래는 역시 목장 남자 형제들께 나눈 글의 일부이다.

회사에도 다양한 문제가 있고 집에도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요새 재정적으로 조금 걱정되는 일도 있었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결정들 내릴게 몇개 있는데 (장인어른네로 10월부터 아예 들어갈 것인가, 지금타는 차를 팔고 새차나 중고차를 살것인가, 유모차를 뭘 살것인가 등) 민경이는 빨리 제 의견을 바라고 솔직히 전 모르겠고 별 생각이 없습니다 허허. 육아는 버겁고, 별로 상황이 나아질 건 보이지 않고 운동도 못하고 부부관계 못하는 것도 짜증나고 등등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문제 투성이인 인생입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데 (많이 졸았지만), 고개를 들고 예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내 삶의 문제를 그만 쳐다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문제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느끼게 해달라고, 다 해결해 주실것이란걸 아니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훨씬 더 낫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으로 인도해 주실것이라고 믿게 해달라고,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흠뻑젖게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고민하시고 보고 계신 방향을 같이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삶은 이 패턴의 반복이 아닐까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러면 평강과 기쁨이 찾아오고 하는. 삶은 계속해서 커브볼을 던지니 우리는 계속 고개를 숙이게 되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때 고개를 들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3) 결국엔 이긴싸움이다. 예수님이 승리하셨기에

교회오면 늘 물어보는 그 부담스러운 질문, 내가 참 싫어했고 폭력적(?) 이라고 느끼기 까지 했던 질문이 “구원의 확신이 있으세요?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예수만이 구원입니다.” 였다. 지금도 어떻게든 이 질문에 대답을 들어내고 확신이 별로 없는 사람도 확신이 있다고 하게 만드는 교회의 분위기를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질문에 편안해 지기까지 정말 오래걸렸다.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구원의 확신과 딱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의 확신이 너무나 필요했다. 이 지긋지긋한 죄와의 싸움에서 결국엔 승리할 것이라고 결국 이미 승리하셨다고. 그 확신이. 아래는 그 확신을 붙들기 까지의 나의 과정들을 내가 주위에 나눈 글이다.

최근에 예배드리는데 정말 엄청난 회개가 나왔어요. 그냥 온 몸이 떨리며 눈물만 나오더라고요. 주님이 저의 죄를 슬퍼하시는게 느껴졌어요. 얼마나 슬퍼하고 계신지 느껴졌어요. 그걸 늘 느낄수만 있다면, 그 마음에 민감할 수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을거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 주셨어요. 나의 마음을 니가 느끼면, 알수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고. 그리고 지금 이 작은 유혹에도 자꾸 넘어지는 저를 보면 좌절이 되지만 예수님을 보면 결국 승리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어요. 가장 강한 유혹도 이겨내신 분이 제 안에 계시니까요.
  • 마태복음 4:9-10: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결국 이걸 승리로 이끄시는 방법은 채찍이나 질타가 아니라 은혜임을, 사랑임을 느꼈어요. 그리고 제가 힘들어하는것 만큼이나 은혜가 더 클 것이란 것도.

  • 로마서 5:20-21: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

저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저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를 부르고 계신걸 알아요. 주님이 부르시는걸 들으려면, 그리고 부르실때 손들고 나아가려면 이건 극복해야 하는 선결과제인거 확실히 느껴요. 다른 그 누가 괜찮다고 해도 계속 저한테 말씀하시는게 느껴져요. 너를 향한 나의 계획은 이정도 수준이 아니란다. 줄 선물이 너무나 많다. 받기만 하렴. 받을 준비만 하렴.

  • 이사야 6:7,8: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4) 두고보자 난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극복하고 나서 보란듯이 멋지게 싸울것이다.

얼마전에 아버지랑 통화할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러더라. “산아, 너 뭐 좀 보는거 갖고 자꾸 호들갑을 떠는거 같던데 그런거좀 그만 신경쓰고 이야기하고 다니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남들도 다 보는거고, 자연스러운거지 그걸 갖고 그렇게 오버(?)할 일이 아닌거 같다 아버지가 보기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나도 무슨말인지 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하지만 아빠, 아들은 더 큰 그림을 보고있어. 더 큰 그림을 보여주셨어. 이건 결코 작은 일도 그리고 나 혼자만을 위한 일도 아니야. 수없이 많은 가정이 부부관계가 없어서 (sexless) 무너지고 있어. 내 주위에서도. 내가 애 둘을 나아보니 그게 정말 순식간에 그렇게 될수도 있는거 같아. 내가 민경이가 아닌 다른데서 자꾸 자극이나 만족을 얻어가고 그러면 부부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는건 시간문제야. 적당히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크게 문제삼지 않고 살수도 있겠지만 결코 온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아빠 간디가 그 유명한 소금사건은 자기 자서전에 한문단만 할애하고 채식주의자로서 염소젖을 먹을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로 4장이나 할애한거 알아? 그만큼 남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본인에겐 이런 강박증적인 철저함이 필요할 수 있고 거기서 더 큰 힘이 나오는거 같아. 문재인 대통령이 이만한 지지를 받고 힘을 낼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이 가진 정말 깐깐한 자기관리와 정신을 사람들이 존경하고 높이 사서 그런 면도 꽤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이걸 극복해냈을 때 난 참 많은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과 부부에게 쓰임받을 수 있을거야. 난 아주 멋진 미래를 꿈꿔 아빠. 아빠 아들 알잖아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고 엄청 고집센거. 아들 이거 극복해낼거야. 하나님이 이만큼 죄의식도 주시고 만져주시는거 보면 정말 큰 영광의 역사가 있으려나봐” 그러자 역시 멋진 우리아빠가 “그래 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역시 내 아들답네. 멋지다 아들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된다. 응원할게 아빠가.” 이래 주시더라…그래. 두고보자. 난 반드시 극복한다. 극복하고 나서 꼭 같은 일로 힘들어하거나, 아니 힘들어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다. 아래는 역시 목장 남자들에게 보낸 글의 일부분이다.

형제님들, 몇번 나눴지만 목사님과 중독관련 상담하고 있는데 정말 좋아요. 상담은 모두에게 강추합니다. 상담을 하면서 느낀게 정말 많은데 1) 이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아주 집요하게 나를 비롯하여 많은 남자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이슈다. 2) 내가 아무리 포르노는 안보고 적당히 노출한 인스타그램 사진몇장 본다고, 애기울때 넘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좀 보는거라고 합리화 하려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건 아니다. 일단 괜찮다고 덮어두고 담배를 피우면서 암을 키우는 것이다. 3) 힘이 필요할때면 은혜를 생각하라. 분명 하나님이 힘을 주실거다. 결국 이긴 싸움이라는걸 잊지말자. 4) 이건 우상숭배다. 내가 포르노나 성적 쾌락을 주님보다 더 즐거워해서 나온 결과다. 이런것들은 느껴요. 한발자국씩 승리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걸 느낍니다. 언젠가 완전히 극복해서 (사실 평생 싸움이겠지만) 비슷한 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힘이되고 싶어요.

4. 내 신앙의 수준, 그리고 색깔

초보아빠의 다크서클

1)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내 얕은 내공

일을 하다보면 고수가 보인다. 분야의 장인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멘트를, 이런 insight를.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신앙생활도 보면 내공이 보인다. 나의 신앙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에 감히 비교하자면 (제가 강백호를 너무 좋아하여 쓴 비유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참 지난 몇년간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 속에서 많이 또 빨리 자란게 느껴진다. 하지만 교만은 금물, 기본기가 없다. 유혹이 올때, 어려운 상황이 닥칠때, 하나님과의 추억이나 상황에 대처했던 경험이 없다. 나의 기도는 종종 아니 대부분 겨우겨우 나 자신 하나 건사하기에 급급하다. 우리 교회에 보면 애기들 나이별로 가는 방이 있다. 1~2살은 유아방, 2~4살은 Joy land 뭐 이런식으로. 문득 나의 신앙은 아직 유아방에 있는게 아닐까, 아니 겨우 joy land쯤 오고 있나 이런생각이 들때가 많다. 아래는 내게 아직 어렵고 생소한 수많은 것들 중 일부이다.

  • 일상의 영성: 둘째가 태어났을때의 감동도 잠시, 밤마다 몇번씩 깨야하고, 우는 애기 안고 달래고 하는 단순한 일들이, 너무나 감사해야 마땅한 일상이 너무 버거웠다. 꽥꽥 우는 아들놈을 안고 짜증이 북북 나서 어쩔줄을 몰라할 때가 많았다. 일상의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일들을 묵묵히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해나가는 영성. 정말 필요하고 정말 부족하다.
  • 안목의 정욕: 위에도 나눴지만 참 지긋지긋한 이슈이다. 이건 아래 더 자세히 쓰고 나중에 따로 글로 써 보겠다. 참 부족하다. (참고로 나중에 준비하고 있는 두 글 제목을 이런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하 – 1) Porno: 이 끈적끈적한 놈 2) 돈: 이 무시무시한 놈)
  • 기도, 특히 중보기도: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건, 그전엔 “언제 밥한번 하자, 술한잔 하자” 의 인사가 이제는 “기도할게요, 기도부탁드려요” 로 되었다는 거다. 이 기도라는거, 특히 중보기도라는 거 참 알것 같다가도 오묘하다. 이제 목원이나 가족이나 직장동료나 목회자나 기타 내가 아는사람 중보기도는 많이 편안해졌고 하면서 은혜가될때도 참 많은데 아예 모르는 사람, 한번도 못본 사람들은 참 어렵다. 교회에서, 주위에서 친지 누가 아프다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기도를 부탁하면 덜컥 부담이다. 어차피 안할것 같은데, 아니 혹시 생각나서 한다고 해도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냥 하려할때가 많지만) 이건 진짜 가슴속에 성령님이 느껴지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무슨 체크마크 체크하는것처럼, 게임에서 체크인해서 레벨쌓는것처럼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느낌이다. 아직 어렵다 그래서. 그런말 꺼내는게 듣는게 그리고 듣고 꺼내는게 자연스러운 환경이.
  • 선교: 1년간 선교를 갔다온 아내부터, 주위에 단기선교 갔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들에서 접한것을 보더라도 선교는 진짜 언젠가 맛봐야할, 맛보고말 또다른 신앙의 맛 (?)이 아닐까 한다. 선교는 정말 선교 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선교지에 있는 사람보다, 특히 단기선교는)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언젠가 경험해보고 맛보고 싶다. 지금은 근데 생판 안가본데 가서 모르는 사람한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마음보다는 내 주위에, 한국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다.
  • 방언, 통성기도, 기타 은사 : 난 아직 방언제험 못했다. 신유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 같은건 성경에서 접하고 이야기로 들었을 뿐이다. 은사주의는 전혀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체험도 참 없다.  그리고 통성기도 이건 정말 어디까진 괜찮은데 꽤 크고 요란한건 너무 집중도 안되고 적응도 안될때가 있다. 아직까지 참 따지는거 많은 신앙인이다.

2) 내 신앙의 색깔

  • 호기심과 자기비판: 샌프란시스코 교회를 다니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크리스천 미국인 친구가 본인 교회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성경적으로 문제될게 없다고 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관련 책도 사봤고 (아직 다 못읽었다) 이런 영상도 접하게 됐다. (관심있는 분들은 이 영상과 David Gushee 란 분의 영상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대략 요약하자면 ‘기독교의 역사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우리는 수많은 집단을 공격하고 압제해 왔다. 흑인, 유태인, 여자 등등. 동성애자 성 소수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성경의 일부구절만을 읽고 판단할게 아니라 전체 메세지를 봐야하고, 적어도 이게 문화적인 것이고 어쩌고 하기전에 성 소수자 하나라도 만나보고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 들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이런 내용이다. 아직까지 내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논리지만 그러나 이런 입장을 들어보는것, 고민해보는것, 그리고 실제로 기독교와 신앙이 가지고 있는 공격성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동성애는 하나의 예지만 신앙안에서 내가 궁금한 것들, 더 공부하고 더 탐구하고 싶은 것들은 정말 많다. 난 절대로 전통적인 한국 교회와 교단에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신앙인은 못되는것 같다. 우리 아내는 순종과 믿음의 은사가 있지만 난 호기심과 탐구의 은사가 있는것 같다. 하나님이 이것도 써주시겠지.
  • 신앙의 공격성에 대한 질문과 인지: 영화 ‘노무현입니다’ 를 보고 나서 문득 든 생각 중 하나가,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원받지 못한것 아닌가? 였다. 적어도 내가 믿는 현대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참 높다고 말하고 있다. 난 이걸 정말로 믿고 있는가. 이게 나한테 와닿는 이야기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공격적인 메세지이기도 하고,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이건 참 어려운 부분이다. 이 공격성이 신앙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충분히 알고 느꼈기에. 이건 내 평생의 싸움이 될 것 같다. 난 정말 이것을 믿는가. 그럼 정말 너무 슬픈 사실이다.
  • 열정과 집요함: 우리 아버지는 참 한결같이 단순한 나라사랑, 유치할 정도로의 뻔히 들여다 보여 꼭 밉지만은 않은 자식자랑을 늘 달고사신 분이다. 그런 아버지의 열정을 닮은걸까. 최근에 내가 참 열정과 끈기와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공부하고 재밌어 하고 그걸 주위에 알리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란걸 다시 깨달았다. 아내가 나처럼 집요한 사람 처음 봤단다 (좋은 의미에서 하하). 같이일하는 직원이 나보고 세일즈맨 같다고, 뭔가 좋은게 있고 하면 그얘길 못하고 못견딘다고 얘기해줬다. 억지로 전달하는게 아니라 그게 너무 좋다는 확신에 가득차서, 다른사람을 설득하고 한번 더 이야기하는 수고로움을 전혀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어떨때는 아주 집요하게 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소통을 시도하고야 마는게 내가 아닐까. 눈치없는것까지 더해져 완전 무대포라고 하하. 역시 주님이 써주기를 소망해본다.

5. 참된 신앙인은 힘과 위로를 준다.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준다.

가끔은, 아니 거의 늘 난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의지하여 힘과 위로와 영감을 얻는다. 이들의 목소리와 삶에는 힘이 있다.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 설교도 계속 듣고, 이찬숙 목사님 설교도, 미국의 Tim Keller, David Platt, Frances Chen 목사님 같은분 설교도 종종 듣는다. 최근엔 헨리나우엔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Jean Vanier란 분의 영상을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L’Arche Day Break 공동체의 창시자이신데, 2015년 Templeton 상을 수상하실때의 수상소감). 그리고 홍정빈 박현숙 목사님 사모님 부부의 책과 영상도 정말 감동이다. 배우자기도 관련 이 영상보고 민경이가 나에게 어떤 기도 받고 싶냐고 물어보며 기도하고 있다고 해주는데 많이 기도안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기도하는 아내가 많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아래는 목장 형제들에게 나눈 글 일부이다.

난 애기들 잠깐만 봐도 미칠것 같은데 하루종일 애기보고 진이 빠질법도 한데 아내가 밥까지 해놓고 8시가 다되어 오는 나를 기다립니다.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그 와중에 나를 위해 기도하고 딸 재울때도 기도하는게 보여서 든든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이거 무슨 주술외는 것도 아니고 중이 공염불 외는것도 아니고 아무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기도하는거 같아서 안하고 있었는데 기계적으로라도 습관적으로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보면 더 자연스러워 지고 감정과 관계도 더 생기겠지. 운전중에라도 아내를 위해 기도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최근에 내가 꽂힌 사람은 김종수 선교사라는 단동에 계신 선교사님이다. 이동네에 있는 임마누엘장로교회 출신으로 책을 두권 쓰셨는데 (국경을 넘는 사람들, 빛과 어둠의 변화) 두권 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다. 아래는 그의 첫책 국경을넘는사람들에서 발췌했다. 가슴이 뛴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왜 우리 한국이 남북 두 나라로 나누어져서 60년이 지나도록 분단의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문제였습니다. 또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약 육백여만명의 한국 사람들, 그 중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살고 있는 동족들의 삶이 참 기구합니다. 그들의 삶은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덩어리이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삶입니다.
지금은 옆집 이웃이 나의 창문에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조금만 방에도 금방 소송을 제기 하고 보상을 요구 하는 시대입니다 툭하면 집단으로 데모도 합니다. 그러나 만주 땅과 연해주 땅에 떨어진 동포들의 행복은 고통과 절망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우선 그곳에 가서 글을 함께 생활 하며 문제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또는 미래의 정치나 경제나 역사가 이 문제에 대해 만족할만한 해답을 줄 수가 없다면 나는 인류 역사를인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이 문제를 가져가서 그분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단동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시도라고 남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하는 있는 나에게는 이 문제를 꼭 하나님께 가지 가서 물어 보고 그분 해답 혹은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김에 믿었습니다. 그래서 압록강 넘으로 조선 땅이 빤히 보이는 단동으로 갔습니다그리고 집안과 용정 장백 그리고 다른 만주 땅을 누비며 우리 조상들이 발자취를 되돌아 보며 우리 민족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단동에는 매년 병원을 찾아 하는 말은 단기선교 팀들과 형제들이 있습니다 설교 할 줄도 생각을 표현하는 재주도 없는 내가 그때마다 이 분들에게 단동 얘길 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부득이 선교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여기 그런글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하신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따뜻한 본심을 알려주려고 힘썼습니다. 굶주리는 형제들, 병으로 신음하는 중국 어린이들, 어렵게 사는 조선족들 방문하고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돌아올 형제들에게 말을 건네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하셨던 약속들 단기하며 그분의 신실하신 믿고 모두를 사랑하면 담대히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언제고 중국과 러시아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전혀 예사롭지 아니한 큰 일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민족을 우리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만주땅과 연해주 땅을 누볐던 고구려와 발해 역사 현장을 보면서 확실이 생겼습니다 그럼 확신으로 젊은이들에게 보이진 않지만 확실한 비전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쓰셔서 역사를 이루어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간은 세상을 향하여 품으신 아름다운 축복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믿고 사랑하며 살 때 바로 축복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될 때입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하시고 복 주기를 원하시는 분 입니다 나는 그분을 믿고 우리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사랑하며 살기를 모두에게 받았습니다.

6. 기타 생각들

우리 네 가족. 정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고 때때로 실감이 안난다.

  • 코끼리 다리만지기: 우리 신앙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가. 결국 다 코끼리 다리만지기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전에 Tim keller 목사님이 설교에서 정말 친한 단짝 세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없어지자, 남은 둘이 더 친해지고 더 깊이있게 나눈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한명이 있을때보다 나눔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의 모습 중에 꼭 그 사람만이 드러내는, 그 사람이 있어야만 나오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ABC 세명 중 C가 없어지면 A와 B는 더 많은 것을 나누는게 아니라 더 적은 것만 나누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 와닿는다. 그래서 목장모임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또 나눈다. 나의 코끼리 다리 만진 모습을. 언젠가 그분이 오실때 우리는 완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9-10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신앙을 믿을 이유와 안믿을 이유: 신앙이 없을땐 신앙을 안믿을 이유가 너무 많았다. 신앙이 생기고 보니 믿을 이유가 너무 많다. 체험들, 선과악/죄와 용서, 모든 것이 결국 사랑과 훈련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걸 다 정리해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그리고 그렇기에 예정론 과는 배치되지만 일정부분은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는것 같다.
  • 우리 삶은 언제든지 한꺼번에 뒤집어 질 수 있다: 갑자기 주위사람이 아프거나 죽을수도, 있던 돈이 다 없어질수도, 관계에서 큰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돈, 건강, 관계 이런 것들. 신앙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말 평탄하고 감사한 삶을 사는 나 조차도 지금 부부상담도 하고 있고, 정말 찌지리 가난한건 아니지만 돈도 떨어져 봤고, 주위에 암도 죽음도 경험해 봤다. 인생이 커브볼을 던질 수도 있다. 지금은 교회 열심히 다니고 거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막 하지만 나의 신앙심이란 것도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서 시험을 받고 도전받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난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 세상의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신앙생기기 전에 나와재미라는 자기자랑성이 농후한 글에서 부끄럽게 나눴지만 난 참 다양한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살아왔다. 너무 재밌었다. 여행하는것도 공부하는것도 노는것도 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신앙생활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다. 아래 몇가지 생각
    • 1) 세상의 재미는 한계효용이 체감한다. 즉 여행도 다니다 보면 실증나고, 좋은차도 처음엔 좋다가 더 좋은거 같고 싶고, 추가적으로 느껴지는 효용이나 재미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재미는 점점 늘어난다.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한계효용 체증.
    • 2) 세상의 재미는 많은 경우 ‘나’를 향하고, 나 에서 한정되지만, 신앙생활가운데의 기쁨은 내가 아닌 남으로 부터,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의 역사를 보는데서 나온다. 남을 살린다.
    • 3) 진짜를 보면 우리는 안다. 와이프가 애기날때 여러번 “오빠 너무 아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아 근데 진짠지 아닌지 모르겠어” 이러다가 진짜 진통이 오자 “이거야. 진짜야.” 하고 200% 확신해서 이야기했다. 위조수표 감별사에게는 진짜 수표만 계속 보여준다고 한다 가짜만 보는 것 보다 진짜를 계속 본 사람이 훨씬 더 가짜를 잘 구별할 수 있다고.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안에서의 기쁨은 느끼고 나면, 진짜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 최근에 느낀 깨알같은 신앙생활의 재미들에 굳이 태그를 붙이자면 아래와 같다. 위에 다양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실제론 주님주신 은혜와 기쁨으로 너무나 충만히 잘 살고있다 감사하게도.
    • 1) 끝없는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기쁨 – 회개기도
    • 2) 하루하루 삶을 의지하는데서 나오는 기쁨 – 직장기도
    • 3) 일어날 일을 미리 감사하는 기쁨 – 한국에서 엄마와 한 기도
    • 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옆에서 보는 기쁨 – 목장
    • 5)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전하는데서 나오는 기쁨 – 주위사람들에게 하는 편지
    • 6) 알아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쁨 – 아내
    • 7) 예배를 대표해서 기도해보는 기쁨 – 대표기도
    • 8) 인도하실 미래를 꿈꾸며 소망하는데서 나오는 기쁨 – 북한, 민족관련 기도
  • 성경의 어려운 내용을 그림과 함께 너무나 쉽게 설명해주는 The bible project 이런거 진짜 참 좋다. 아직 안보신 분이 있다면 강하게 추천한다. 구약성격 읽기전에 꼭 한번씩 보고 읽는다. 한국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들면 이것보다 좀더 잘 만들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이것도 정말 훌륭하다.
  • 신앙이 정치와 연결되는것은 참 조심스럽고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난 상당히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한국 기독교가 보수 정치와 자꾸 연결되는게 불안하고 불편하다. 미국에서도 신앙을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저으기 불편하고 공감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진다. 정치는 참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무엇이 옳은가 하는 가치판단을 안 내릴내야 안 내일수가 없지만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될때가 너무 많고 득보다 실이 많은 싸움이 너무 많다. 지혜가 더 필요하다.
    • 팀켈러 목사님의 마가복음 12장,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 구절을 인용한 이 설교과 정치와 신앙 관련 설교중에 가장 명쾌했다. 크리스천은 현실삶으로 나아가라고, 그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신앙이다. 결코 속세를 떠나거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일/수많은 것들을 피하라고 하지 않고 기도로 정면 돌파하라고 한다. 그런 신앙인 만큼 크리스천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그리고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줄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어떤 정치제도와도 융합되고 합을 찾아 선을 이룰 수 있다.
    • 이사야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과연 태극기와 촛불이, 홍준표 지지자와 심상정 지지자가, 노조위원장과 일배 회원들이 평화롭게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최대한 서로에게 공감하고 설득해 가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리와 양이 함께 살듯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About sanbaek

Faithful servant/soldier of god, (Wanna be) Loving husband and father, Earnest worker, and Endless dreamer. Mantra :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Inspire and empower social entrepreneur. 30년간의 영적탐구 끝에 최근에 신앙을 갖게된 하나님의 아들. 사랑과 모범으로 가정을 꾸려가진 두 부모의 둘째아들이자 wanna be 사랑아 많은 남편/아빠.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현재 약 3년가까이 미국 생활해보고 있는 한국인.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살아보고 있는 80/90세대.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고 더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사귀어본 호기심많은 세계시민. 그리고 운동과 여행, 기도와 독서, 친교와 재밌는 이벤트 만들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까불까불하고 에너지 많은 Always wanna be 소년. 인생의 모토: 열심히 살자. 감동을 만들자. Social entrepreneur 들을 Empower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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