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목적#7 – 다른삶이 있다. 아이같은 꿈을 품고 열정, 창의성, 용기를 회복하여 낮은데로 향하자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7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이뤄논건 없고 삶이 정체된것 같아서. 뭐 인생 별거 있냐” 이런 이야기들을 너무나 자주 듣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간도 없고, 마땅히 할말도 없어서 그냥 건강이 최고다, 그래도 우리가 이런건 있지 않냐, 잘하고 있다, 이런 상투적인 인사나 큰 도움안되는 위로로 대화를 끝내기 일수다.

죽을만큼 열심히 해봤어? 인생 만만치 않아. 죽어라고 살아야 겨우 남들만큼 살까말까야.” 이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다가 지쳐버린 친구에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래 그 일곱번째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다 믿는다고 쳐. 그래도 결국 정답은 같지 않아? 열심히 하고 자기할도리 하는 삶말고 다른거 있어? 이 질문에 대답한다.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시리즈:

결국 노력하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 있어?

여기까지 정말 잘 살아왔다.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So What?

No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Yes다.  그래 그런게 있다면 나도 경험해보고 싶네. 나도 모르는건 아니야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들 – 돈, 명예, 성공 등등 – 이 궁극적인것은 아니란걸. 그걸 넘어서는 진짜가 있고 그걸로 내 마음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그런 경험, 그런게 있다면 나도 맛보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지? 그냥 열심히 살며 주위에도 좋은 영향 미치고 그런거 외에 딱히 다른 방법 있어? 그리고, 사실 늘 궁금했던게 있어. 안믿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게 늘 보여 사회에 선한 영향도 많이 주고, 어떨때는 좀 누리기도 하고. 그런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래 내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어차피 영적인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했고, 증명하고 확실히 알 수 없는 문제를 계속 파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더 열심히 살고 더 전진하고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게 너무나 노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정답은 같은거 아냐?

아이처럼 살고 아마추어처럼 일한다

17대 카이스트 총장 취임사

하지만 복음은 말한다. 다른삶이 있다고. 무조건적인 전진이 답이 아니라고.

얼마전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한 이광형 총장의 취임사가 화제다. 그는 취임사에서 “전공 공부 10%를 덜하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실패를 성공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등의 파격적인 발언을 내놨다. (관련기사) 그가 강조한 Question 교육은 크게 아래 네가지로 요약된다.

  1. 질문하는 인재양성
  2. 인성리더십
  3. 꿈이 큰 인재양성
  4. 남들이 가지 않은길, 최고보다 최초, How에서 What으로
우리가 전진만을 목표로 할 때 우리는 작은꿈을 품기 일수다. 우리는 우리 가능성을 제한한다.

특히 나의 가슴을 친 것은 이 그림이다. 작은꿈과 큰꿈의 본질적 차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질문하는 인재는 큰 꿈을 품을 수 있다는것.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고 최고보다 최초가 되며 당장의 How보단 What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음아래 거하는 자의 삶이다. 복음 – 기쁜 소식 – 을 누리고 사는 삶은 자유의 삶이다. 고아처럼 안달하는 삶이 아닌, 아이처럼 부모의 좋음을 알고 마음껏 사는 삶이다. 눈앞의 것들을 해치워 가거나 허덕이고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이룬것을 주위와 비교하며 때론 자조하거나 은근한 교만에 빠져 나태해지는 삶이 아닌, 아이처럼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게 세상을 대하고 일할때 이건 프로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아마추어적 이상을 증진한다. 우리에겐 누구나 아무도 보는이가 없고 아무 금전적인 보상을 하지 않더라도 즐거워서 하는 일이 있다. 모든것을 잃고 몰입하게 되는 일이 있다. 쫓기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상태에서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에만 알수 있는 울림이 있다. 그런 일을 하고 그런 여유(?)가 생길때, 우리는 아이처럼, 아마추어처럼 일하고 살 수 있다.

그건 더 작은 꿈이 아니다. 현실의 필요를 부정하는 허황된 기만도 아니다. 그건 말도 안되게 큰 꿈이다.

잠깐 내 고백을 해보겠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체험하기전, 나의 삶의 모토는 “열심히 산다” 였다. 열심히 사는것이 내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려 노력했고 나름 주위에서 인정하는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자유는 없었다. 계속된 목마름이 있었지. 난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다음 고지를 정복하고, 또 더 정복해서 갈수 있는데까지 가겠다. 그래서 후배들과 주위에 보탬이 되고 나름의 이정표를 그려보겠노라고 꿈꿨다.

그렇게 공무원도 했고 미국 유학도 했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업계에도 부딪혔다. 늘 최선을 다했지만 뭔가 조금씩 부족했고 늘 쫓기듯 살아왔다. 늘 미래를 보며 달려왔다. 그러다가 복음을 제대로 경험했다.

그리고 나서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내 삶의 모토는, 정체성은 더이상 “열심히 사는 삶”이 아니다. 난 휴식을 취할줄도, 열심 (striving)을 멈추는 법도 배웠다. 주위를 돌아보고 내 주위사람에게 투자하고 그들을 위해 조금씩 희생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내가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고 현재를 온전히 살며 힘빼고 아이처럼 일하기 시작했을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하게됐고, 말도안되게 더 큰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생각지도 못한 꿈과 의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난 그 신비를 지금 체험중에 있다. 그분안에서 품는 큰 꿈을.

꿈을 품고 열정과 담대함, 창의성으로 나간다

한동대 학생밴드 카우치워십

위는 얼마전에 보고 나와 아내가 모두 팬이 되어버린 한동대의 카우치 워십이란 밴드의 노래다. 아 이 창의성이란. 정말 위에서 이야기한 그 아이같은 호기심과 열정, 아마추어 정신이 만든 가장 프로같은 (?) 음악이 아닐까.

한동대의 모토 – Why not change the world – 는 어찌보면 상투적이고 어찌보면 좀 허풍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니? 하지만 한동대에서 나온 그 수많은 꿈꾸는 열정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모토가 결코 상투적인 벽에 걸어놓는 장식이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엠트리 최영환 대표의 이야기는 크리스천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몇번을 들어도 새롭고 가슴뛴다. JSA에 있었다니 반갑기도 하고. 거기서 그런 꿈을 품었다는게 너무나 도전이 된다.

그렇다. 진짜를 맛보게 되면 우리 가슴은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차고 우리는 말도안되는 꿈을 품게 된다. 말도 안되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나온다. 크리스천의 역사를 보면 그런 예는 끝이 없다. 영국에서 노예제를 폐지시키는 움직임을 리드한 윌리엄 윌버포스, 흑인 인권운동을 리드한 마틴루터킹 목사 등등.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꿈꾸고 있는가. 세상에 쫓겨 사느라 그런게 사치로 느껴지는가. 다 잊어버렸는가. 아직 늦지않았다. 복음을 입기만 하면 된다. 말도안되는 꿈과 열정이 회복될 것이다. 우리의 시야가 나 라는 작은 틀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향할때,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혼자힘으로 이 망망대해 같은 삶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아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로 변화할 때, 우리는 그 새로운 열정과 담대함과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것이다.

위대한 하강, 낮은곳으로 향할때 세상은 질문할 것이고 그분을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결과가 다가 아니다. 오히려 낮아지는데서, 희생하는 데서, 사람들은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게 복음의 신비이다.

필립얀시의 책에서 읽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인도의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곳으로 가 평생을 바친 외과의사의 고백을 필립얀시는 이렇게 옮겼다.

가진자들은 늘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려 들지. 가진자일수록 더해. 그리고 그들의 삶은 놀랄만큼 단순해. 톨스토이도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지. 귀족들의 삶에는 이것으로 다 요약된다. – 교만, 나태, 향락, 허무주의, 냉소주의 (Cynicism).

하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의 삶에는 훨씬 더 다채로운 색을 볼 수 있었어. 기쁨, 슬픔, 고통, 아픔, 소망, 환희, 열정, 분노….그들의 삶은 생명력이 있고 살아있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늘 확인하려 들지도 않고 삶을 냉소적으로 보지도 않았어. 진짜 삶이 거기에 있었지. 거기에 내가 헌신할때 난 도저히 가진자들과의 삶에서 느낄 수 없었던 기쁨과 충만에 휩쌓였어.

가진자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더 확인하려 든다. 아 이 얼마나 맞는 말인가. 과거의 나의 숨겨진 동기와 습관을 너무나 잘 꼬집은 말이다. 좋은 학교를 갈수록, 주위에서 인정해주는 성취를 이룰수록, 더더더 이너서클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거기서 경험한 네트워크, 거기서 경험한 영향력, 이건 너무나 달콤하고 멋진 것이었기에.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서로 돕고 서로 위해주며 더 올라가는것. 세상의 방법은 “위대한 상승”이다. 그건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앞으로 더 가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한지 내 주위엔 내 수준엔 누가 올라와있는지 늘 확인하도록 우리를 부축인다. 많이 올라왔지? 자 뿌듯하지? 좀만 더 가자. 아직 위가 더 보이고 넌 아직 목마르잖아.

하지만 복음은 전혀 다른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건 시선을 위에서 밑으로 돌린다. 복음은 이렇게 우리를 초대한다.

“너의 삶은 내가 이미 다 이루었단다. 확정되었단다. 안심해도 되. 쉬어도 되. 어때, 사랑과 감사와 기쁨으로 가슴이 넘치니? 시선을 아래로 돌려볼 수 있겠니? 고통하는 이웃이 보이니? 어때, 나와 함께 같이 그들을 섬기러 가보지 않을래? ”

그건 위대한 하강으로의 초대다. 그리고 그 하강은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기쁨과 진짜 충만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낮은곳을 보고 열정과 사랑으로 달려온 그 결과가 대통령, 기업총수일수도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일수도 있다.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우리는 더이상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된다. 희생하고 손해볼 용기를 얻는다.

상승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나도 올라갈 수 있어요? 라고 How를 묻는다. 하지만 하강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죠” 라며 Why를 묻는다.

계속 소개하는 팀 켈러의 “복음에 의해 인도된 삶”에서 팀 켈러는 한 일화를 소개한다. 직장에서 한 상사가 부하직원의 잘못을 대신 떠앉고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직원을 감싸줬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직원이 매니저를 추궁했다. 왜 그랬냐고. 계속 추궁당하던 매니저가 이렇게 대답한다 “난 크리스천이라서 그래. 내 삶은 늘 나를 위해 희생한 그분한테 빚진 마음으로 사는 삶이야. 주위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는건 내가 받은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세상의 사람들보다 결과를 덜 이룬다고? 그래도 좋다. 복음을 입은 사람은 내가 결과를 내야한다는 경주에서 해방된다.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기꺼이 낮은자리로 가고, 자신의 아젠더와 유익을 내려놓을 용기를 얻는다. 이게 바로, 가장 허무하고 패배적인 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우리 모두를 살리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증거하는 삶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하고 빛이신 생명이신 기쁜 소식이신 예수님을 볼 것이다.

잊지말자. 우리는 5년 10년, 또는 30년 50년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을 보는 사람이다. 복음은 그 눈을 뜨게 만든다. 한번뿐인 이 세상이 전부라면? 그렇다면 이런 희생은 때론 “낭비”로 여겨질 지 모른다. 그 좋은 재능을 왜 더 활용해서 더 높은 곳으로 가지 않고? 하지만 영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영원을 함께하실 그분이, 완벽하시고 우리를 향한 선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에게 손짓하시는 그분이 있다면? 우리 삶에 선한 계획과 목적이 있고 우리가 고아처럼 가지 않고 그분과 함께 갈때 우리의 영원도, 우리 주위 이웃들의 영원도 훨씬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건 비트코인, 테크 주식, 강남 부동산엔 비교도 할 수 없는 투자이다. 이건 나눌수록 커지는 기적의 재화이고 평생 함께하는 말도안되는 보물이다. 그리고 이건 기쁨과 감격의 동행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투자가 아닌, 이미 다 받은것을 깨닫고 체험하며 아낌없이 주고 나누고 기뻐하고 눈물흘리는 삶이다. 진정한 자유의 축제이고 진정한 기적의 체험이다. 우리가 나의 유익과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위대한 하강으로의, 낮은데로의 초대에 임할때 우리는 모든걸 다 팔고 살만한 그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알게 될 것이다.

다음편 – 소망과 목적#8 – 부족한 자들끼리의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랑으로의 초대 에 계속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무언가 울림이 있다면, 무슨 이야기라도 더 해보고 싶다면, 무슨 하소연이라도, 고백이라도 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링크나 이메일 (san.baek@gmail.com) 으로 연락 주십사 초청한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하임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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