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 읽기에 앞서 제 블로그에 처음 들어오시는 분들은 부디 공지사항 에 있는 글들을 읽어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런 글들을 쓰고 있고 제게 연락주시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은지 제 생각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글은 제 인생 이야기입니다. 제 인생 이야기가 이미 상당히 여러번 소개된 적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30분 동안 수백명의 MBA친구들 앞에서 전달한 미국형, MBA형 버전입니다. Talk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9월 26일에 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많이 배웠고, 정말 보람있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영어실력과 보고 있자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비디오 자체는 차마 Share할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리고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것 써봤으니 한번 가볍게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어는 제가 준비과정에서 써본 bullet point입니다. (전체 스크립트는 써보지 않았습니다.) ^^
1. What is Talk
Talk 은 Stanford MBA(GSB)에만 있는 Unique한 프로그램이다. 2007년쯤? 학생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생겨난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학생들에 의해 운영된다. 한 명씩 나와서 동료 MBA 생들 앞에서 약 30분간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고 15분정도 Q&A를 진행한다. 보통 1주일에 1학년과 2학년을 통틀어 2~4명의 Talk가 있는데 한번 할 때마다 100명넘게 가득가득 사람이 온다. 그만큼 이야기가 다들 재미있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이 시간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몇 가지 요소가 복합작용 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MBA 전반을 거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드러내고 친구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는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또 다른 부분은 학생들 중심으로 코치 그룹이 있어서 Talk 연습을 도와주고 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가다듬어 준다. 보통 한 학년에 6명 정도가 코치가 되는데 이들의 숙달된 코칭으로 거의 Ted 수준의 재미있고 살아있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나에게도 Talk는 일주일 동안 가장 기다려 지는 시간이었고 아무리 할게 많고 바쁘더라도 참여하고자 해서 거의 모든 Talk에 참석했다. 사실 Talk를 듣기 전까지 나와 친구들의 관계는 겉도는 적이 꽤 있었다. 다가가기에는 한 명 한 명 다 너무 완벽해 보였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오고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거쳐온 미국인들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당신’이었다. 또 상당히 많은 대화 주제가 미국 스포츠, 서로의 공통된 친구와 고향 이야기 들이라 공감대 형성이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불화, 가정의 아픔, 학교에서 따돌림 받았던 이야기, 모든 것을 저버리고 싶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무엇이 자신을 그 고난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만들었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이야기 했다. 예를 들어 많은 수의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아인들은 이민세대의 자녀로서 겪었던 물질적 어려움, 부모님과의 소통 부재, 정체성 혼란 등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완벽해만 보였던 백인 친구 하나는 실제로는 정말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항상 부모님께 칭찬받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가 있었다. 게이, 레즈비언 친구들은 이걸 인정하고 부모님께 이야기했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또 용기를 주는 순간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공감과 연민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더 깊이 있고 진실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2. What was the process like
나는 내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나는 자아성찰을 정말 많이 했고, 그 결과로 낯부끄러울 수 있는 내 인생의 장들에 대한 글, 내 인생의 의미에 대한 글 들을 이미 써본 바 있었다. 한국에 있는 기간 동아 Career Life Vision이라는 워크샵을 직접 열기도 했다. (관련글 A, B) 그리고 9월 중순에 1주동안 집중 과정으로 Crafting my life story라는 수업도 들으면서 내 인생의 꿈과 비전에 대해, 그리고 과거 이야기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즉 말하자면 난 상당히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있었다. 이 글 에서 보듯 Story telling 워크샵을 열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쩌면 난 상당한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래 내가 내 인생이야기 못하겠냐… 영어가 문제면 문제지.”
1) Before first session
Talk Coach 누구와도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나의 Talk는 크게 네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 Theme 은 Love and Passion, 즉 사랑과 열정. 이다. 그리고 그걸 전달함에 있어서, 4단계로 구성했었다.
- 1단계 : Love, Passion과 관계된 fact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 즉 Passion (diligence) 쪽에선 내가 1년간 3500통 가까운 이메일 보내고 매일 이메일 다 응답하고 40개에 가까운 이력서와 커버레터가 있다는 점, 정말 노력했다는 증거를 보여줄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Love쪽에선 내가 시작한 몇가지 initiative 들, 세상을 향한 나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시선을 좀 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 My theme : Love and Passion.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 Let me starting with some facts on me. (1st message Passion. Diligence.)
- I sent 3440 email on first year.
- At one weekend at Tahoe, I was at 3 different houses. catch up with at least 40 different people, hear 10 Talks, spent 3 night at different place.
- I am a total control freak. I change my mind 100 times per day.
- I have 35 Resume version, 40 cover letter, I got rejected from 10 companies, I got rejected from Fellows, Talk coach, GCBE,
- Before I go to bed, every night, I spent more than 30 minutes memorizing every single stories of you. (This is lie. For joke)
- There are also other parts of me. which is Love
- I started GSB save the world. (club of social entrepreneur from GSB which is not running anymore)
- I have a blog that’s been read by more than 50K people in Korea. I have random email everyday.
- I started a most unsuccessful google doc GSB help moves (I just love to be helpful.)
- I started global sharing since I want to help those other less vocal international to have a chance to open up.
- 2단계 : 부모님 이야기, 내 나라 한국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의 근면함, 어머니의 자상함과 사랑, 그리고 한국의 에너지와 100M 전력질주 식 삶의 자세가 내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가 중학교때부터 신문 배달하면서 학교 다닌것, 그리고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 보이거나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열심히 산것, 내 축구경기에 와서 수박 잘라주고 같이 캠핑가서 밤새 돌을 구워서 텐트에 넣어준것(따뜻하라고). 우리 어머니가 경북여고 동문회를 일으키고 주위에 항상 에너지와 사랑, 평화를 전달하며 산것. 항상 눈물과 진심어린 감정으로 나와 소통하고 사람들과 소통한것. 한국이 얼마나 빨리 경제발전을 했고 열심히 살지만 행복도는 높지 않은것. 이런 이야기 들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모님과 조국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나 정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 Let me tell you my family, my country.
- My Dad
- Humble background. Love music, life and girl (just like me.)
- Always wanted to succeed. The most diligent person and strong person that I know.
- He did leadership fellow types of work in his life.
- Couple of stories on him
- 1) He is a friend like father. Always there for me. He invited 25 soccer team to small house and treat them with Kam Shah types of food.
- 2) He brought a big water melon to the soccer game. He was there when I needed him. Tent,
- 3) He disappeared when he go networking types of event since he wants to meet more people.
- 4) He loves to brag but he is so cute. He always start by saying (“Son, you know what’s the best thing in the world?)
- 5) He started a farm in a really intense way. He writes poem time to time for me.
- My Mom
- 6th of 8th sibling. What matters most to her is piece.
- She just sacrifice herself for others. She didn’t go to college. She sacrificed her life for my dad and two sons. She wasn’t successful in business.
- But she was successful socially. Her alumni event. She made it huge. She just know what to say. Everyone loves her.
- She cannot handle conflict. There was a day that my first fir friend. She came to me crying saying “San, I want to solve this. I just couldn’t go to bed”
- She prays everyday at Temple. She is extremely strong and warm.
- My Country – The country of Intense
- One of the fastest economic growth.
- The most wired country.
- The highest working hour. The least happiest, the highest suicide rate.
- Everyone wants to be successful. Extrinsic motivation is so important.
- Less of individualism.
- Don’t get me wrong. I love Korea. I am Korean. I just want to change something.
- 3단계 : 내 이야기 before Stanford MBA(GSB) – 여긴 몇가지 이야기 중심으로 구성했다. 꼭 각 장마다 재밌는 스토리를 하나씩 넣으려 했다.
- 둘째로 태어나서 샘 많았던 어린시절, 항상 칭찬받고 싶어하고 잘했단 얘기 듣고 싶어했던 모범생으로서의 삶 until 중학교. 형이랑 사촌누나가 내가 하도 샘많고 같이 놀자고 부담스럽게 굴자, 일부러 나를 따시켜서 상처받았던 이야기.
- 중학교때 처음 미국에 가서 자유를 느낌, 사춘기,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며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세상에 왜 있는가 무엇을 하는가를 질문함. 시애틀에서 핫텁에서 맥주마시고 몽롱한 상태에서 삶과 인생에 대해 고민했던 이야기.
- 고등학교때는 그냥 열심히 공부, 그러다가 대학교 가서 축구부 생활을 하면서 팀웍과 리더십, Friendship 등등을 정말 배우고 느낌. 주장으로서 경영대 축구부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순간의 이야기.
- JSA로 카투캬로서 시작했던 군시절. 2년동안 열심히 살며서 자신감, 자기관리, 그리고 앞으로 달려나가고 싶다는 강한 갈망을 느낌. First Sergeant 과의 PT Formation에서의 대화 스토리.
- 고시공부했던 이야기. 힘들었지만 꿈과 희망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합격하고 인생이 쫙 풀릴것 처럼 느껴졌던 순간들.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모습.
- 정부 공무원 이야기. 정신없었던 초반 1년, 그리고 나서는 과연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를 고민했던 시절. 주위에서는 다 멋진 길을 가고 있다고 칭찬해주고 부추겼 줬지만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고시공부시절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MBA를 몰래 준비해서 나오기까지의 힘들었던 이야기. 특히나 부모님과 내 가정배경,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기 보다는 자꾸 원망하게 됐다는 이야기.
- 4단계 : 스탠포드 MBA이야기 – 너무도 행복하지만 힘들었던 시절, 미국에서 취업하기 위해 거의 항상 조급했던 마음. 따라가기 벅찼던 수업. 영어도 안되고 문화도 모르겠고 적응하기 어려원던 이야기. 무엇보다도 내면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Do I fit in here? It seems that I wasn’t good enough. 그러다가 스스로를 계속 들여다 보고 자신감을 얻고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게 됐다는 것. Mirror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되고, Compass 즉 내가 어느방향을 향해 가고싶은지 더 알게되고 Arch 같이 갈 커뮤니티를 얻은 이야기. 그래서 모두에게 감사한다는 이야기. 처음 미국에 왔을때 느꼈던 그 자아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 한국에서 사회적 통념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면서 하루하루의 ups and downs에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절, 이제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가졌다. 이젠 내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그것 자체로 행복하고 더 열심히 나갈 수 있다. 더 스스로에 당당할 수 있다. 모두 여러분 덕분이다.
- Storis on Stanford. Wasn’t easy. I never lived abroad more than 1 month.
- I was really obsessed to find a job in US. (Not a girl) – Sending email forever, Asking for help.
- I appreciate the hospitality from every single one of you. It’s been more than just great!
- Gave me enormous sense of self awareness – confidence
- Arch/Compass/Mirror. Yes I will say that too. Mirror -> Compass -> Arch.
- Now I am free of everything. Now I can say I’m Korean, I’m fine with who I am and what I have
- Wrapping up.
- I wanted to be free. I dreamed of my life just like a Sidarta. – When I first came to US aroun 14.
- But I couldn’t. I was trained to think that I should climb up the ladder, chase after big name. I wanted to impress people around me and become a leader but didn’t know what’s the right way.
- Now this place gave me freedom. Confidence to be free. Now I can make things happen. Now I believe in me. Now I am free of all that extrinsic motivation
- Even with humble background, I can stretch out myself. They embrace that in US, silicon Valley the country of opportunity.
- That’s one reason I am consistently building relationship. I don’t want to use that network for something. I want to help others. If I can absorb every people around me and connecting people in the right way, I can be that bridge. That makes me alive. 2) First session
2) Feedback from the Coach
- 집중해. 잔가지가 너무너무 많아! – Focus!!! Too much details.
- 사실과 경험이 중요한게 아니야. 너의 그때의 감정이 중요해.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행복했어? 이야기해. 비유해. 묘사해. 그 감정을 전달해줘. 그대로 이야기해. Feelings, Tell/share how I felt/make others feel what I felt.
-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연결이 안돼. 그걸 연결해줘! Connect the dots
- 그림을 그리듯 이야기해줘. 아주 자세히. 묘사해. 상상해. 그리고 하나씩 이야기해. 눈감고도 이야기해. Paint the settings. Describing.
- 똑같은 단어를 너무 많이 쓰고 있어. 2번 이상 쓰지마. 너의 독자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야. 니가 자꾸 떠먹여주듯이 이야기하면 짜증나. 살짝 묘사해. 그래도 다 알아들을거야. Too much same word.
- 걷지마, 걸으면 집중이 분산돼. 서서 그냥 이야기해. Don’t walk.
- 천천히 이야기하기, 갑자기 빨리 이야기하기, 조용이 이야기하기, 멈추기, 이런 것들을 이용해. Climax의 순간에는 멈춰줘. 30분 동안 한 6번은 이런거 쓸 수 있어. 어디에 강조할 지 꼭 생각해서 확실하게 해줘. Highlighter. (Speed, tone, silence)
- 처음에 Syllabus를 그려줘. “내 인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A, B, C를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하겠다.” 이렇게 하고 시작해. 그리고 그 상황을 묘사해. 설명하려 하지마. 대신 처음에 목차를 잡아주는 건 중요해. 그러면 애들이 나중에 A, B, C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 그때 그 이야기 라고 예상할 수 있어.
-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돼. 가족들에게서 느꼈던 pressure, 기대감, 그걸 더 이야기해보자. 그때 뭘 느꼈지? 얼마나 힘들었지? 정확히 뭐라고 부모님께 이야기한거야? 그리고 스탠포드에서의 이야기. 이게 진주야. 이때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 이걸 아주 확실히 부각하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야. 이걸 아주 자세히 생생히 묘사해. 그때 뭘 느꼈지? 부모님껜 이야기했나? 왜 못했지? (난 이때 갑자기 감정이 북받혀올라서 울기도 했다. 연습하다 말고)
- 비유를 사용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고시공부했던 이야기? MBA 에서 파티하나 못가고 1년내내 수업공부만 한다는거 상상해보라고 이야기해.
- 끝에 요약하려 하지마. 그냥 끝내. 다들 이해하고 느낄거야. 똑똑한 사람들이야.
3. My actual Talk
1) Opening
모든 Talk의 시작은 가장 친한 친구가 한다. 친구한테 Opening speech 를 부탁하는데 나는 고민끝에 Adam Ain, 요 나의 룸메이트이자, 똘끼와 에너지 충만한 친구로 택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깔끔하고 너무 재밌는 오프닝을 해줬다. 짜식, 고맙더라.
“산은 내가 MBA에서 가장 먼저 만난 친구중 하나야. MBA입학 전 내가 한국에 24시간 경유하러 갈때 Facebook으로 연락하니까 이 활짝 웃는 손을 배경사진으로 한 놈이 나한테 무조건 와라. 다 책임져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써준 이메일 읽어줄게 “아담, 공항에 내려서 아무 이쁜 여자나 붙잡고 전화 한통 쓰게 해달라 그런 다음에 나한테 전화해 =) (애들 웃음) ”
“산은 정말 좋은 호스트였어. 돈한푼 못쓰게 하고 별거 다 보여주고 잠도 재워줬지. 가장 생생한 기억은 새벽 2시까지 놀다와서 자고 있었는데 얘가 새벽 6시에 깨우더니 나한테 출근해야되서 깨웠다고, 편히 있다가라고, 일찍깨워서 미안하다고 하고 출근한거였지. 난 무슨애가 잠이 이렇게 없나 해서 진짜 놀랐는데 이제 알겠어. 얘는 딴때 자더라고. 우리랑 똑같이 자. (얘들 웃음, 내가 워낙 수업시간에 잘졸기로 유명해서.)
“너네도 다 알다시피 백산의 도전정신,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던지는 그 태도와 자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어. 끝없이 시도하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계속 일어나는 산을 볼때, 난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영감을 얻어. 그리고 우리도 다 영감을 얻을거라고 생각해. ”
“같이 인도 여행할 때 백산이 우리 트립 멤버들에게 한말이 있어 “너네들은 아마 Talk를 안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난 괜찮지 않아. 난 너희모두의 인생얘기를 들어야겠어.”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인생얘기를 백산의 지속적인 푸쉬 덕분에 했지. 그래 산, 이젠 내가 말할게. 니 삶을 들려줘”
- San was the one of the first guy I met in GSB. I had 24 hour lay over in Korea. I asked San if he will be available and he, with big smily face and hand in FB, offered me a place to stay, and emailed me “You can ask any girls in airport.” I was excited to meet this guy.
- San was an unbelievable host. He didn’t let me spend a dime. By far the most vivid memory. How can this guy possibly live by so little sleep.
- San throughs himself into things that no one else does. For me personally, no worry about anything, continuously trying. I get inspired by that continuously.
- San said “You might be okay with Not giving a talk but I am not okay with that.” So San, I need to hear your Talk this time.
2) Talk
“세가지 내 인생에서 처음 무엇을 느꼈을 때의 이야기를 해줄게. 내가 가장 처음 FOMO(Feeling of missing out, 샘나고 욕심내는 것을 지칭하는 말) 을 느꼈을 때, 내가 가장 처음 진정한 자유를 느꼈을 때, 내가 가장 처음 나 자신을 Bro(GSB내에서 쿨한척 하면서 항상 파티하고 다니고 섹시한 애들을 지칭)라고 느꼈을때의 이야기야. Let me tell you guys three times that I first felt XYZ. First time I felt FOMO(Feelings of missing out), first time I felt incredibly relaxed, and first time I felt I’m a bro.
“첫째, FOMO. 너네중 상당수는 작년에 MBA오면서 부터 이 FOMO에 고생하고 있는거 같은데 밑거나 말거나, 내 FOMO는 좀더 빨랐어, 내가 세살때. (애들 웃음). 둘째 동생으로 태어나서 난 세상에 나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거 같아. 워낙 샘많고 욕심많았지. 아직도 기억나. 우리형과 사촌누나가 병원놀이를 하고 있었어. 내가 가서 껴달라 그랬지 언제나처럼. 그런데 이게 왠걸, 껴주는거야. 평소에는 날 부담스러워 하던 그들이. 난 너무 좋아서 신나게 같이 놀았는데 어느순간 눈을 돌려보니 그들이 없어져 있었어. 딴데가서 더 재밌는 걸 하고 있는걸 나중에 발견했지. 그때 상당히 상처 받았었는지 아직도 기억나. 그래 난 그런 애였어. 아주 어렵게 자라서 근면이 몸에 배어 있는, 나를 너무 사랑해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강한 남자 백재웅과 8남매의 여섯째로 스스로를 희생하며 주위에 평화와 사랑을 만들고 사는 여자 김숙희 여사 한테서 태어났지. 항상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했지. 그래서인지 공부도 꽤 열심히 했고 모범생, 상당히 nerd였어. 아주 자신감 넘치고 자기중심적이고 그런 애였지…My first fomo was a lot before you guys, being a second child, I wanted tell the world that I am here. I want to impress people around me. I loved to be complimented. I wanted to do everything right and I hated, hated to be told that I did something wrong…So I was born as a 2nd and last son from my Mom and Dad, a dad coming from a really humble background, diligent man by necessity, mom who created piece and love around her and just love to help others.”
“둘째, 내가 진정한 여유와 자유를 느낀 첫 기억.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시애틀 근처에 바숀이란 섬으로 홈스테이를 갈 기회가 있었어. 너무 꿈같았던 기억밖에 없어. 아니 얘네는 책상도 없어 어떻게. 매일 일어나면 수영할까, 바다갈까, 하이킹할까, 뭐 하고 놀까 고민밖에 안했지.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 아직도 기억나. 시애틀의 석양을 바라보며, 핫텁 자쿠지에 누워서, 맥주 한잔 딱 하면서, 응 중2한테도 맥주 주더라고 (애들 웃음) 히야. 이게 인생이구나. 미국 참 좋다. 진정한 자유와 여유를 느꼈지. (애들 웃음). 그때 만난 보헤미안 같은 멋진 아저씨가 있었어. Lymen이라고 콧수염이 멋있었던, 전세계를 배타고 여행하며 다니던 나의 친구같은 아저씨. 우린 같이 장작도 패고 포커도 치고 수영도 하고 스테이크도 구워 먹었지. 참 멋있었어. 그 아저씨가 나한테 싯다르타 라는 헤르만헤세의 책을 선물로 줬지. 그 책을 읽고 충격먹었어. 해탈이라. 마음의 평화라. 나는 세상에 왜 있는걸까. 난 누군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지. 그때가 사춘기였어 생각해보면. 근데 또 한국 오니까 다 잊어먹었어. 또다시 그냥 일단 공부해서 대학가자, 나중으로 인생을 미루는 Deferred life plan의 모드로 삶을 살았지. My first time I feel relaxed, it was the ultimate freedom. I never thought that deeply about who I am and why I BE in the world. The life goes on and I forgot, I deferred that life.”
“셋째, 처음으로 내가 Bro라고 느꼈던 순간. (애들웃음). 대학교 가니 다들 공부 잘하는 애들만 있어서 갑자기 내가 쿨가이가 됐지. 공부도 잘하지만, 운동도 조금하고 성격도 좋은 (애들웃음, 공감대 형성), 특히나 축구부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여기서 별의 별거 다 배웠어. 아직도 기억나. 내가 축구를 잘하는건 아니었지만 열심히 해서, 가장 재밌게 해서 그런지 나 주장시켜주더라. 근데 주장시절에 갑자기 팀이 잘나가서 결승전에 진출한거야. 그전에 한번도 진출한적이 없던 우리가. 상대는 자연대, 전통의 강호, 코치도 프로고 남자도 많고 거의 반칙 같은 상대였지. 지금 우리랑 저기 스탠포드 공대 전체랑 체육대회한다고 생각해봐. 딱 그꼴이야. 그래.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어. 그래서 우린 (뜸들이다가) 졌지. (애들웃음) 그러나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어. 최선을 다한걸로 족했고 난 너무 자랑스러웠어. 헹가레도 쳐줬고 술도 많이 먹고 우정, 리더십, 팀웍 그런거 다 거기서 배운거 같아. First time I was a bro, felt friendship and people around me. I learned how great a feeling it is to be complimented from others, connecting people, going after something bigger than myself, and prepare so hard to get the result with the people I care about.”
“그러다가 군대를 갔어. 한국남자라면 다 가는거야. 2년인데 난 JSA에서 미군과 같이 병사생활을 시작했어. 그게 DMZ라고 북한군 마주보는, 비무장지대있는 유일한 부대야. 끌려가서 처음엔 고생하다가 금방 또 친해졌지. 군기가 강하고 거기서 해야되는게 많으면 사람들이 친해지잖아. 지금 우리가 친하듯이. 그때 꽤 열심히 했어. 특히나 미군들중에 한국, 한국군 그냥 우습게보는 애들이 있었는데 내가 그꼴 보기가 너무 싫어서 더 열심히 했지. 나 FOMO있고 샘 많고 우리아빠도 엄청 부지런하고 등등 그래서 내가 좀 빡세잖냐. 아직도 기억나. 선임 상사랑 아침 새벽에 포메이션에서 마주하고 있었던 이 순간. 그 전날 내가 군장 구보에서 1등을 해서 얘가 나를 참 좋아해줬어. 문제는 내가 머리가 너무 길다는 거였어. 그당시 난 머리 길러서 어떻게하면 여자랑 데이트할까 그생각 밖에 안했거든. 머리 짧으면 군인 같다고 애들이 안놀아주는거야. (애들웃음) 선임상사왈 “산, 너 너무 멋진 군인이야. 내가 너 좋아하는거 알지? 근데 그 머리는 아니야. 오늘 당장 잘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상사님,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주말에 일생 일대의 데이트가 있습니다. Date of my life. 혹시 이 멋지고 긴머리로 데이트할 수 있게 봐주실 수는 없습니까” 상사왈 “크하하하 맹랑한지고.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쭈아. 월욜에 깔끔하게 자르고와.” 그리고 나서 난 그 여자애를 만났고, 잘 안됐어. 역시 머리카락 길이 문제가 아니였어.(애들웃음). 암튼 난 스스로가 꽤 자랑스러웠어. 다들 날 인정해줬지. 군 생활이 내게 준건 자신감, 자기 관리, 그리고 끝없는 목마름과 갈증, 달려나가고 싶다는 조급함이었어. First time I became even more intense, collected every single time and seconds. I feel proud of myself. Army gave me confidence, self discipline and endless hunger, starve, and thirstiness, to me.”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지. 어떤 직업을 노릴것인가. 컨설팅? 뱅킹? 박사? 근데 왠지 모르게 정부일이 계속 제일 하고 싶은거야. 힘들거란건 알았어. 고시라는 엄청난 시험도 쳐야 했지. 어쩌면 아버지와 주위의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근데 내가 워낙 좀 헝그리하잖냐. 난 돈도 별로 필요없고 일도 남들보다 열심히할 자신 있었어. 무엇이 가장 의미있는 일인가. 그리고 칭찬받기 좋아하는 FOMO의 화신으로서 무엇이 가장 뽀대나고 칭찬받는 길인가 (애들웃음) 그걸 정말 고민했던거 같아. 그래서 하기로 결정했어. 엄청 힘든 결정이었어. 제대하고의 나는 지금 MBA2학년처럼 수많은 파티, 이벤트, 친구들과의 행사, 동아리 활동, 재밌는 수업들로 1분 1초를 너무 재밌게 살던 사람이었거든. 그 모든걸 접고 하루에 15시간씩 공부 한다는건 지금 너네들한테 그냥 공부랑 리딩만 하고 모든 행사에 가지말라는 것보다 더 가혹한거야. 그래도 내가 누구야. 부지런과 욕심의 화신, 거기다가 군대시절 갈증과 자기관리까지 더해서 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고시공부했지. 힘들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어. 꿈이 있었으니까. then I had to spend more than 1 year to study for the exam. it wasn’t easy at all especially I’ve been living a great life. However, I wanted to impress people. I wanted to be complimented.”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기 시작했지. 시작은 너무 좋았어. 난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지. 주위에서도 온통 칭찬해주고, 특히나 부모님이 너무 좋아해줘서 정말 행복했어. 그리고 나 스스로도 아주 기대 만빵이었지. 첫 1년은 너무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 내가 조인한데는 전 정부를 관장하며 종합 정책을 만드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란 곳이었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바로 대책을 내놔야 했지. 자정넘어 가는게 보통이고 그냥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좀더 제대로된 동료로서 기여할까 하는 도전의 연속이었지. 1년정도 지나자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꼈어. 정부일도 좋았지만 생각해봐. 농담 따먹기하고 까불까불해야되는 내가 일단 양복입고 정책만들고 있는게 상상이 되니? (애들 웃음), 일하는 방식, 같이일하는 사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 얼마나 나 다운가, 이게 내 인생이고 이게 전분가, 모든게 혼란스러웠어. 정말 힘들었던건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모두가 일단 거기서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국비유학 갔다와서 나중에 국제기구도 다녀오고 그러다가 장차관, 국장 하다가 은퇴해서 그게 멋진 인생이야. 넌 집이 특별히 잘난게 없으니 결혼은 대신 돈이 좀 있는 집이랑 하는게 좋을거야. 이 여자 만나봐봐. 이런식의 은근한 압박이 있었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어. 숨이 막혔지.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하면 뭐해.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그래서 뛰쳐나왔어. MBA 는 나에게 다른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동앗줄 같은 거였어. 몰래 준비했고 주위에 하는 사람도 없고 정말 힘들었지만 이 동앗줄을 놓치면 내 인생에 더 기회는 없을거 같아서 정말 열심히 했지. 그리고 이렇게 온거야. My story on government. Really intense. Worked a lot. I loved the people the most. However, Every one was telling me what to do. I couldn’t really BE my self. It’s not just what I do. How I do and with whom I do with. …”
“그래서 MBA에 올 때 내 마음자세는 너네들 대부분과 많이 달랐을거야. 난 집안에서 나 혼자 외국생활 해본 케이스고 한국 밖에선 1개월 넘게 살아본적 한번 없었어. 그만큼 우리 집에서 난 상당히 기대주였고 내가 있으면 우리 부모님, 우리 친척들이 더 행복해진다는거 나도 알았지. 그걸 다 접어두고 온거야. 적어도 한국 기준에서는 멋진 잘나가는 커리어 접고, 온거야. 심지어는 난 가족과 부모님께 상처까지 줬어. 그렇게 나를 사랑해준 그 사람들을. 워낙 숨이 막혔던 차에 가까스로 동앗줄 잡고, 출사표 쓰고 나가는 나를 자꾸 이제 가면 언제 올래, 한국 정부에서 좀더 일하는게 낫지 않니 이런 눈으로 보는 부모님의 은근한 기대와 시선이 너무 싫었지. 그래서 내 인생과 미래에 간섭하지 말라고, 난 바라는거 없으니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부모님 가슴에 못박는 말도 했어. 왜 난 진작에 미국에 못나와서, 외국생활 못해서, 왜 그 작은 나라에 평생 살고, 태어나서, 별의 별 속으로 원망도 했고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지. 그만큼 절박했어.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아보고 싶었지. 인생의 의미와 여유를 다시 찾고 싶었어. 난 단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었어. 그래서 모든걸 다 할려고 하게 된거야. Man of FOMO가 된거지. MBA시작전부터 모든 여행 다 갈려고 하고. MBA – I wanted something more. I wanted to escape. I wanted to find the true meaning of the life. I wanted to be with the leader of the world. I need more adventure in my life. I left prestigious career. I broke up with my girl friend, I left my family there who don’t have that much and needs me.I also couldn’t really embrace what I have. My parents loved me so much but they aren’t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 felt this pressure from the family. They never tells me what to do or force me what to do, but since we are so close, I can just read their mind without even talking about it. They don’t seem to understand me. That’s why I wanted to be everywhere….”
“근데 참 어렵더라. 만만치않더라. 학교, 수업, 이런거 나 쉽지 않았어. MBA에세이가 아마 내 첫 영문에세이일거야. 원체 에세이같은거 안써보며 컸어. 나 그리고 윤리에서 LP(한국으로 따지면 C쯤 되는 학점) 받았어. (애들웃음) 역시 내가 윤리성이 좀 떨어져. (또 웃음). 그리고 수업시간에 팀짜는거 너무 힘들더라. 애들이 나랑 재밌다고 성격좋다고 밥먹자는 경우는 많아도 같이 팀짜야되면 다들 가장 잘하는 애들끼리 서로 짜고, 난 내가 나서서 계속 찾아나서야 했지. 팀이 되도 팀모임 할 때 내가 충분히 기여 못하는거 같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 난 칭찬을 먹고사는 동물인데 이거야 원 쪽팔려서 잠이 안오더라. 학교에서 하는 수많은 Leadership포지션, 난 거의 다 지원한거 같아. 대부분 떨어졌지… 참 떨어졌던 기억밖에 없어. Academically, I got LP from Ethics. Class participation was tough. No one wants to be team with me. I didn’t feel like I’m adding that much of a value. I applied to so many leadership position, didn’t get any of those. It almost feel like I’m not belonging here.”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쉽지 않았어. 저녁식사 자리에서 난 혼자 남겨지기 일수였지. 애들이 “야 너 어디서 왔어? 한국? 우와 짱이다. 무슨일했어? 정부? 히야 대단해” 라고 하고 바로 지들끼리 매킨지 이야기, 하버드 이야기, 공통친구, 미식축구, 팝스타 이야기하기 바빴지. 친해지기가 참 어렵더라. Socially, it was tough. I was nobody. I left alone at dinner table don’t know what to say.”
“가장 힘들었던 건 취업이었어. 난 ‘아무’ 직장이든 좋다고 생각했어.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었지. 다들 집중해야 된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어. 모든게 다 너무 새로운데 어떻게 하날 선택해. 뭘 할 수 있을지 뭐가 나랑 잘 맞을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난 이력서 버전만 40개가 넘고 카버레터도 마찬가지야. 아마 커리어 매니지먼트 센터 상담 기록 내가 갈아 치웠을걸? 네트워킹 이벤트란 이벤트는 다가고, 너네들 한명 한명이랑 커피 마시자고 해서 물어보고 인터뷰 연습하고 정말 할 수 있는건 다했어. 특히나 나는 컨설팅에 도전했었지. 그나마 가장 과거 경력을 안보고 진검승부하는 거였고 미국에서 글로벌 비지니스 맨이 되는 길이었으니까. 아마 여기 애들 대부분보다 내가 케이스 연습 더 많이하고 열심히 준비했을거야. 네트워킹도 정말 열심히 했지. 아직도 기억나. 수요일 저녁 난 Booz San Francisco의 여성 파트너와 면접을 봤지. 애가 넷이나 있는 너무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아줌마였어. 우리는 바로 통했지. 나한테 채점지까지 미리 보여줘가며 면접 분위기를 이끌어줬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진짜 능수능란하게 멋지게 대답했지. 그녀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어. 합격이다. 매킨지 베인 다 떨어졌지만 역시 Booz는 외국 학생들에게 더 친절하다는 소문 답게 나에게 기회를 열어주는구나. 그래 최종면접 잘봐서 꼭 붙자 산아. 그렇게 생각했지. 그리고 밤에 전화가 왔어. “산, 잘했어. 계속 노력해봐. 참 잘 하고 있어. 단 이번에는 어렵겠다. ”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거 같았지. 살면서 이렇게 완벽하게 무기력를 느낀 순간이 또 있을까…. 할 수 있는건 다 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안되는구나. 안되는구나. 누구한테도 털어놓을 수가 없더라. 모두가 너무 잘하고 있는데. 너무 외로웠지. 집에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어.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고 계신데, 내가 다 해결하겠다고 내 인생 찾겠다고 다 접어두고 나왔는데 어떻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 집에 가다가 그냥 멍하니 하늘보고 “도대체 내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요…왜..” 이렇게 묻고 묻고 그냥 멍하니 있었어. (애들 울음, 나도 살짝). Professionally. 40 resume, 40 coverletter, I set down with each and most of you, asking help. I still remember this moment. I couldn’t tell anyone.”
“내면적으로도 너무 혼란스러웠어.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난 칭찬을 먹고 사는데, 난 주위에서 잘한다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여긴 내가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거야. 괜히 내 과거가 더 원망스러워지고. 난 왜 진작에 기회가 없었는지. 왜 모든게 벅찬지. 맨날 이 미팅 저 미팅 다니고 수업시간마다 컴퓨터 열고 이메일쓰고 앉았고 백산쟤는 왜저렇게 애가 욕심만 많냐는 눈총도 받고. 그렇게 허덕이며 사는데… I’m just not good enough for here….Internally. I couldn’t love my background. I was confused…”
“그래도 내가 누구야. 니들도 알잖니. 나 백산이야. 성실과 끈기의 남자, FOMO, 자기관리, 한국인, 내가 그냥 안된다고 방구석에 앉아 원망만 하고 있는 타입은 아니지. 그래서 할 수 있는거 했어. 일단 너네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과거 했던 일, 좋아하는 것, 향후 진로 희망 등이 적힌 Excel sheet을 만들고 출력해 다니며 항상 외웠지. 이걸 외우니까 좀더 제대로된 대화를 할 수가 있더라. 자기전에 매일 30분씩 외우고 잤어. (잠시멈춤) 아 이건 농담이야. 잘땐 그냥 자 (애들 웃음). 그리고 그래서 내가 Talk를 진짜 더 좋아했던 거 같아. 그전엔 니들이 너무 완벽해 보였는데, 이거 인생이야기 듣고나니 너네도 다 나처럼 허술한 구석 많은 사람이구나 이런걸 알게됐지. 그래 바로 너 말이야 너. 난 니가 그렇게 어렸을때 수줍음 많았을줄 꿈에도 몰랐다. (애들웃음) 그리고 나니 진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대로된 대화를 할 수 있더라. 그리고 난 이메일을 매일 매일 비웠어. 자기전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메일 보냈지. 진심으로. 그리고 항상 하루만에 답장하는걸 원칙으로 세웠어. 네트워킹이나 기타 새로 만나게 된 사람한테는 꼭 그날 밤에 연락했지. 수많은 미팅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만들 때 진심으로 다가가려 했고 내가 도울게 있으면 아무리 작은거라도 도울려고 했어. ” How I deal with it. I printed out that google doc as diligent Korean man would normally do. Memorized. I loved TALK. I can understand you. I can understand people deeply. I cleaned email everyday. 3442 email. I emailed every people…I also didn’t go to single foam, just asked help. Went to as many meetings as possible. Tried everything. Tried until anything works out.”
“그러다 보니 하나씩 하나씩 풀리더라. 운좋게 취업도 됐고, 너네들이 나를 너무 따뜻하게 맞아줬잖아. 그래서 자신감이 붙더라. 나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더라. 항상 꿈과 열정으로 부풀어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계속 긍정의 에너지가 살아나더라. 그래서 새로운 일들을 만들기 시작했어. 기회가 없어서 이런걸 못접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즐거워서 블로그도 더 열심히 썼고, 몇가지 움직임도 시작했지. 가장 행복했던 것은 나 있는 그대로에 감사할 수 있게 된거야. 이젠 더이상 미국인이 되고 싶지도, 내 과거가 원망스럽지도 않았어. 난 스스로에 대한 자각, 확신과 향후 방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같이 갈 너네들 친구들을 얻었지… “You know what’s most powerful thing? Now I embrace myself a lot more. Before, Korea, my family background, I couldn’t love it. Now I’m graceful for everything that I have. I feel so empowered. I’ve started bunch of initiative. Now I gained that freedom of happiness. That one Tahoe weekend was just ultimate freedom. Father gave me this diligence. Mom gave me this love to others. GSB gave me.
“난 내 이야기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해. 어렸을때부터 샘많았던, 그래서 항상 칭찬받으려 노력했던 소년은 중학교시절 잠시 여유를 찾았다가 다시 한국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공허함을 느꼈지. 그리고 과거를 원망하며 떠났다가 자신이 가진게 얼마나 큰지 행복한지 알게 됐고 안정을 찾게됐고 자신감을 얻게됐어. 외국생활 한번 한적 없는 가진거 하나 없는 동양에서 온 내가 GSB show에서 유일하게 Video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전 학생들로부터 선물받은 일은 전 MBA를 떠나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던 일일거야. (관련 글, 링크).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야. 우리 커뮤니티가, 너네 한명 한명이 내 인생의 기적을 만들어준거야. 그래서 너무 고마워. ”
“난 진공청소기가 되고 싶어. 내 주위에 있는 모든걸 흡수하고 싶어. 1분 1초를 아끼며 살아서, 너네 400명 모두를 알고, 응 나 욕심많아 (애들 웃음), 너네 몇명 1학년들, 신입생 400명도 다 알아야지. 좀만 기달려 내가 갈테니 (애들 웃음). 그래서 그 사람들 사람들 연결시켜주며, 거기서 새로운 win win을 만들어내며 보람 느끼며 서로 도와가며 살고싶어. 기회가 없어서, 그냥 주위에서 사는대로 쓸려가듯 사는 사람들의 공허함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알기에, 우리의 작은 인풋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 낼수 있는지 알기에 난 쉴 틈 없어. 그래도 괜찮아. 난 이젠 정말 나대로 괜찮아. 모두 너희들 덕분이야. I want to become a vacuum cleaner. I know how it likes to be living without that meaning. Without finding the true north, Without having the internal compass, mirror, and Arch to go with. I want to meet every single one of you, so be prep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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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음엔 빨간색글씨는 ㅠㅠ 눈부셔서 흑흑;;
아 예 조금 눈 덜아픈 색으로 바꾸려 노력했는데 좀 낫나요? ^^
감동적이네요.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는게…..
잘 읽어보고 갑니다.
마지막에 이렇게 받은걸 주위에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말이 더욱
와 닿고 또 감동이 밀려오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더 짠해지네요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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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긍정적인 이야기들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보고 또 보고 싶은 글입니다.
이곳을 알고난 후 부터 매일 자기전에 이곳을 들리고 갑니다 ㅎㅎ
힘내세요~ 화이팅!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오신다니 송구스럽네요. 글 전혀 못쓰고 있는데.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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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장들’보다 여기 스토리가 더 감동적이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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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강의실은 아니지만 적지않은 수가 모여 집중하는 공간에서 100명은 눈빛을 느끼며 하는 내 이야기.
사진만봐도 가슴이 뛰네요.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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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스토리를 제한된 시간안에 너무 멋지게 풀어내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만나뵐 수 있다면 좋겠네요. ^^
백산님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형욱님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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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Talk가 몇년이 지난 지금도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