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목적#6 – 복음은 별볼일 없는것을 No하고 더 나은것을 Yes로 택하는것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6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6 – 복음은 별볼일 없는것을 No하고 더 나은것을 Yes로 택하는것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6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4 – 세상의 악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할 수 없어. 그분의 절대성과 은혜에 자유와 소망이 있는거야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4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4 – 세상의 악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할 수 없어. 그분의 절대성과 은혜에 자유와 소망이 있는거야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4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2 – 모든길이 하나로 통하지 않냐고? 아니, 은혜의 복음만이 우리 가슴과 우리 사회의 빈자리를 온전히 메꿀 수 있어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2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2 – 모든길이 하나로 통하지 않냐고? 아니, 은혜의 복음만이 우리 가슴과 우리 사회의 빈자리를 온전히 메꿀 수 있어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2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5 – 교회는 교리주의,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사랑/헌신의 본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건 우리세대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5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5 – 교회는 교리주의,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사랑/헌신의 본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건 우리세대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이번글은 소망과 목적을 잃은 친구에게 – 5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고뇌와 번민을 들으며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너무 바빠. 별로 재밌는것도 없어. 남들은 다들 제자리를 찾고 잘 사는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는것 같아서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네.

소망과 목적를 잃은 친구에게#1 – 더 열심히 한다고? 아냐 잠깐 멈춰봐. 전진뿐인 삶엔 궁극적 목적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도 없어. 하지만 걱정마. 너를 위한 기쁜소식이 있어. 거기에 소망도 목적도 있어

이번글은 최근 내 가슴에 가득찬 이야기들을 또 풀어내고 싶고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강하다 – 제 2의 한강의 기적” 이란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가슴에 다른 이야기가 꾸물꾸물 차고 올라와서 또 치고나와 버렸다. 이러다 영영 못쓰게 되는건 아닌지.

소망과 목적를 잃은 친구에게#1 – 더 열심히 한다고? 아냐 잠깐 멈춰봐. 전진뿐인 삶엔 궁극적 목적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도 없어. 하지만 걱정마. 너를 위한 기쁜소식이 있어. 거기에 소망도 목적도 있어

이번글은 최근 내 가슴에 가득찬 이야기들을 또 풀어내고 싶고 전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강하다 – 제 2의 한강의 기적” 이란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가슴에 다른 이야기가 꾸물꾸물 차고 올라와서 또 치고나와 버렸다. 이러다 영영 못쓰게 되는건 아닌지.

채찍과 당근, 그리고 은혜

이번글은 비교적 짧은 글이다. 최근 둘째 아들을 보면서 느낀 당근과 채찍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내 아들과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들어가며 – 아들과의 갈등에서 느끼는 육아의 딜레마 아빠: “백하율, 너 이제 마지막 경고야. 소리지르지마.

채찍과 당근, 그리고 은혜

이번글은 비교적 짧은 글이다. 최근 둘째 아들을 보면서 느낀 당근과 채찍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내 아들과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들어가며 – 아들과의 갈등에서 느끼는 육아의 딜레마 아빠: “백하율, 너 이제 마지막 경고야. 소리지르지마.

2021년을 맞으며

2021년이 밝은지도 어느새 거의 한달이 지났다. 참 만만치 않았던 2020년,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사랑하는 나의 이웃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새해첫날 이 글을 쓴다. 써놓고 보니 또 엄청 길어서, 이 글의 진짜 독자는 ‘내’가 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ㅎㅎ. 어느

2021년을 맞으며

2021년이 밝은지도 어느새 거의 한달이 지났다. 참 만만치 않았던 2020년,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사랑하는 나의 이웃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새해첫날 이 글을 쓴다. 써놓고 보니 또 엄청 길어서, 이 글의 진짜 독자는 ‘내’가 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ㅎㅎ. 어느

영적 겨울에 대처하는 크리스천의 자세

이번글은 지난 글 –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있을까 – 에 이은 정치 관련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기필고 좀 비그리스도인도 접하기 쉬운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가슴에서 우선순위가 계속 밀린다. 다음번엔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한국의 스타트업은 강하다” 는 글을 꼭 써봐야지. 미국

영적 겨울에 대처하는 크리스천의 자세

이번글은 지난 글 –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있을까 – 에 이은 정치 관련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기필고 좀 비그리스도인도 접하기 쉬운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가슴에서 우선순위가 계속 밀린다. 다음번엔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한국의 스타트업은 강하다” 는 글을 꼭 써봐야지. 미국

세상의 불과 천국의 불

두달여 만에 글을 쓴다. 쓰고 싶은 글이, 머리와 가슴에 한가득한 생각과 마음이 많은데 부디 잘 써볼수 있기를. 이 글은 길지 않은 글이다. 두 노래를 통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불”과, 천국의 “불”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누구의 초대에 응할 것인가. 세상의 불 –

세상의 불과 천국의 불

두달여 만에 글을 쓴다. 쓰고 싶은 글이, 머리와 가슴에 한가득한 생각과 마음이 많은데 부디 잘 써볼수 있기를. 이 글은 길지 않은 글이다. 두 노래를 통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불”과, 천국의 “불”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누구의 초대에 응할 것인가. 세상의 불 –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있을까

이번글은 쓰기 무서운 글이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가족끼리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회의 스트레스와 피로도, 분열이 극에 달한 이 때에 (코로나에 미중 갈등, 인종갈등, 미국 11월 대선 등) 이런 글을 쓴다는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직접적인 정치 포스팅은 2017년에 쓴 한국현대사 70년에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있을까

이번글은 쓰기 무서운 글이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가족끼리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회의 스트레스와 피로도, 분열이 극에 달한 이 때에 (코로나에 미중 갈등, 인종갈등, 미국 11월 대선 등) 이런 글을 쓴다는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직접적인 정치 포스팅은 2017년에 쓴 한국현대사 70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