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15. 커리어 그로쓰 해킹 vs 믿음의 서핑

이 글은 지난 1년여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고 스트러글(struggle) 하면서 겪은 나의 솔직한 간증문 – 일로부터의 자유, 그 열다섯번째 이야기, 대망의 마지막 글이다. 이 글 전 이야기는 아래 열네개의 글들을 참고 바란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이 글은 나에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커리어와 성경에서 말하는 소명에 대해서 조망해보고자 한 글이다. 부디 이 글이 크리스천 뿐 아니라 신앙과 믿음이 없는 분들께도 공감이 가거나 질문을 던질수 있게 만드는 글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부러 성경구절이나 그런건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의 묵상과 글이 그분께 기쁨이 되기를 기도한다. When I’m weak, then I’m strong.

세상이 말하는 커리어 – 그로스 해킹

커리어란 등산과 같은 것인가? 저 봉우리에 있는 사람이 너무나 멋져 보이는

그로스 해킹 (블로그 글 참고, Growth Hacking)을 들어봤는가? 성장과 해킹 – 말그대로 해킹과 같은 방법을 통해 성장을 이루겠다는 스타트업 정신을 담은 단어이다. 커리어란 엄청난 인생의 주제를 접근할때, 엄청나게 많은 가설을 세워 검증하고, 데이터를 보고,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성장을 이뤄내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커리어 – 그로스 해킹으로 뽀개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게 나도 늘 커리어를 접근해온 방식이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커리어가 아닌가 한다.

커리어를 정상에 오르는 등산에 비유해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난 늘 그렇게 봐왔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기에 올라서 저렇게 멋진 모습일까? 나도 어서 정상에 올라서 다른 사람 오르는 것도 도와주고, 세상을 향해 맘껏 ‘야호’를 외치고 싶다. 저 정상이 너무나 높아보이지만 조금씩 한걸음씩 가면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 이렇게 등산하듯이 커리어를 살다보면 종종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1. 정상이 너무 멋져보이기에 동기부여도 되지만 자괴감도 든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 (예: 소뱅의 손정의 회장,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의 인터뷰를 듣고 있자면 그 지혜가 정말 혀를 내두른다. 장난이 아니다. 이 사람의 삶이, 커리어가, 정상이 너무 멋져 보이면서 아 이렇게 상상을 초월한 노력이 있었구나 이런것에 겸손해지며 동기부여가 된다. 물론 항상 동기부여만 되는건 아니다. 어쩔때는 이 사람이 이룬것과 산삶이 너무 대단해 보여서 난 절대로 저렇게까진 못 올라갈걸 알기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2. 눈앞의 산은 오를수 있을것 같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내 사전에는 없겠지만 눈앞의 뒷동산은 올라갈 수 있을것 같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가장 높은 산이 아니어도 좋아. 내가 올라갈수 있는데까지 가보겠어. 내가 할수 있는걸 하면 되지. 저 앞에 바로 앞 산은 올라갈수 있을것 같아.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었던 저 선배도 올라갔잖아.

3. 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안개가 걷히고 또 손다을듯한 산이 나타난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쉼도 잠시, 그 위에는 영원한 안식이나 계속 먹고살만한 음식은 없다는걸 알게된다.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부러워하는 후배들도 보이지만 내 마음은 이미 다른 산을 향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니 안개가 걷히고 또 안간힘을 쓰면 올라감직한 산이 보인다. 전에는 이런게 동기부여였지만 이제는 지친다는걸 느낀다. 딸린 처자식도 있어서 등산을 멈출수도 없다. 지친몸을 이끌고 또 터벅터벅 발을 옮긴다. 끝이 없다는걸 어느순간 본능적으로 알고 포기하게 된다. 저기 올라가도 또 끝이 아니구나. 쉼은 잠깐 뿐이구나. 평생 이래야 하는 거구나. 그래, 그래도 힘을 내자. 저기 골짜기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보단 내가 훨씬 낫잖아. 정신차리자. 골짜기로 떨어지면 끝이야.

뭔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것 같지만, 꼭 그런이야기만 하고 있는건 아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새로운 시야가 보인다. 아래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을 도와줄수도 있다. 이렇게 동기부여를 하고 열심을 내다보면 전에는 쳐다도 못볼 산에 어느순간 올라와 있기도 하다.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다. 내 삶이 딱 이랬으니까. 이게 내가 커리어를 생각한 방법이니까. 성공한 사람들, 특히 무에서 유를 일군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고 그걸 내 삶에 적용시켜 보는건 내 삶의 자세 (approach) 그 자체였다. 난 김우중, 정주영, 리콴유, 제프 베조스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며 누구보다도 열심을 내서 등산해오듯이 살아왔다. 최고의 Job을 찾아서, 그리고 커리어와 관련된 수많은 조언들 이런 글들을 쓰며 커리어와 관련된 지혜를 탐닉해왔다. 덕분에 전에는 꿈꿔왔던 여러가지를 이룰수 있게 됐다. 주위에서 나를 부러워해주는 사람도 꽤 나타났다. 계속 이대로 가면 될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이게 다인가? 이게 커리어인가? 이게 일인가?

인생이란 파도치고 폭풍오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것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서 이 망망대해 같은 삶을 살아가는가

삶을 항해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한 목표를 향해 가는건 아니고 각자의 여정을 거쳐가며 항해하는것. 때로는 너무나 적막하고 때로는 너무나 힘들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 열심히 배를 만들고 더 열심히 식량을 비축하고 이걸 주위에 나누기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것. 어찌보면 등산 비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일’은, ‘커리어’는 세상이라는 망망대해를 지나는 우리의 배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1. 맞는 길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만약 이 항해의 끝에 낭떨어지가 있다면, 나의 배는 나를 지킬수 있을까….

망망대해를 지나다 보면 누구나 한숨이 나온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가끔 멋진 섬에 들려 쉬어 가기도 하지만 그건 종착지가 아니기에 또 항해를 떠난다. 다른 배는 나침반을 가지고 잘 가고 있는것 같은데, 난 내 배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진 나침반이 고장 안난건지 확신이 없다. 혹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2. 왜 휴식이 없지? 끊임없이 불안한거지? 조금만 더…

바다는 고요하다가도 가끔씩 엄청난 폭풍우를 가져온다. 눈앞에서 배가 꼬꾸라지는걸 보는게 일상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휴식이 없고 불안하다. 쉬고 있으면 안될것 같다. 나보다 더 큰 배도 종종 부서지고 꼬꾸라지던데, 이럴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배를 고치고 더 큰 배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야 할것 같다. 언제나 불안하다.

3. 내 눈에는 배 밖에 안보이기에 – 부러움/질투와, 은근한 뿌듯함 – it’s about love.

바다가 너무나 크고 광활한걸 깨달을때마다 결국 믿을건 배 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큰 배를 가진 사람을 볼때마다 부럽고 가끔 질투가 나는건 어쩔수 없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에는 온통 배 이야기, 배 사진, 어떻게 자기 배를 만들었는지, 자기 배가 얼마나 멋진지 이런것 일변도이다. 아 나도 언젠가 저 타이타닉같은 배를 만들고 가질수 있을까. 저사람이 가진 잠수함도 엄청 멋져 보이지만 난 타이타닉이 더 좋다. 요트도 좋고.

그렇지만 늘 힘든것만은 아니다. 내 손으로 만든 배를 볼때 마다, 그리고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은근한 뿌듯함을 느낀다. 대놓고 자랑은 안하지만 나의 배는 나의 눈물과 피와 땀이 다 들어간 진짜 누구도 가져갈수 없는 내 노력의 결과이기에, 이게 자랑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나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에 올린다. 지혜를 나누는건 즐거운 일이다. 내 배에 사람들을 태우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래 계속 노력해서 더 큰 배를 만드리라. 내 배가 최고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배는 나의 사랑이고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믿음의 서핑은 무엇인가?

눈에보이지 않는 끈을 잡고 물위를 걷는것 – 믿음의 서핑

만약 항해하는 내내 우리 앞에 안보이는 줄이 있었다면? 이게 처음엔 너무 안보이지만 나중에 잡고 나면 이거야 말로 내가 붙들어야할 그것임을 알게되면서 이걸 보게되고 붙들수 있게 되는것 – 그것이 믿음이다. 안보이는 줄을 잡고, 판자조각 하나에도 평안하며 기쁠 수 있는것. 남들이 보기에는 뭐라든 나는 물에 빠지지 않고 물위를 누비며 가끔 점프도 하고 날라다니기도 할수 있는것.

그래 믿음의 서핑, 이건 어떤 식으로 이루어 지는가?

1. 믿음에서 나오는 안심과 자신감

믿음으로 안보인는 줄을 볼 수 있고 잡을 수 있으면 눈앞의 풍랑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의 망망대해가 무섭기만 한것도 아니다. 언제든 이 세상의 끝에서 난 이 줄을 잡고 날아오를수 있음을 알기에. 수없는 풍랑에도 이 줄이 끊어지기는 커녕 점점 더 확실해지고 단단해지는걸 느끼기에. 종종 물에 빠져도 이 줄만 잡으면 다시 일어설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 이 줄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걸 알았기에. 이들은 판자조각 하나에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타이타닉호나 항공모함 부러워하지 않고 안심하며 자신감을 가질수 있다.

2. 밖->안이 아닌 안->밖을 본다

1사분명 (결핍과 내것) -> 4사분면 (풍족과 왕국)으로 가는길 Rooting for Rival 발췌

세상의 풍파가 무서울때 우리는 밖에서 안을 본다. 세상에서 무엇이 멋지고 안전한가. 세상에서 어떤 배가 가장 멋진가. 그리고 나서 내가 어떤 배를 만들수 있는지 본다. 그래 이정도 배는 만들어야 나도 살수 있을것 같아.

안보이는 줄을 보고 붙잡을수 있는 사람들은 안에서 밖을 본다. 밖이 두렵기만 한 세계가 아님을 알았기에.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먼저 본다. 그리고 물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을 본다. 저 사람들에게 난 어떤 방식으로 이 줄을 전달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렇게 먼저 안에서 밖을 보고, 다른 시각으로 밖을 본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적 있는 2×2 매트릭스를 다시한번 가져온다. 이제 난 바다가 무섭기만 한게 아니라, 내게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줄이 있음을 알았기에 (결핍(Scarcity)->풍족(Abundance)) 안에서 밖을 (내것 (Clan) -> 다른사람 (Kingdom))을 보게 된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요 (^^)

3. What이 아닌 How and Why

전에는 무엇 – What 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지 정말 흔들리지 않는 큰 배를 지어서 이 세상을 멋지게 후회없이 살아갈까. 항상 그 What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탐구…잘못 선택하면 안된다는 불안감. 멋지게 선택해서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고아처럼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만들것인지,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믿음으로 안보이는 줄을 잡게 되면 무엇이 아닌 어떻게 (How)와 왜 (Why)가 더 중요함을 알게된다. 어떻게 (How)? – 이건 간단하다. ‘믿음으로 (by Faith)’ 이다. 그 줄을 잡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 줄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면서, 안심한 상태에서, 휴식한 상태에서,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나 다울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왜 (Why)? 이것또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나는 불안해서 일하는가. 나는 먹고살기위해 일하는가. 나는 나의 배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가. 난 세상에서 뭔가 남기기 위해 일하는가. 믿음의 줄을 붙잡고 가다보면 너무나 내가 거저받은 은혜에 감격하게 된다. 난 한게 없는데 내 눈앞에 너무나 아름다운 줄이 늘 있고, 그 줄을 잡을때 형언할수 없는 사랑과 기쁨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일한다. 주위에 물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이 줄을 주기 위해서 일한다. 아래는 믿음과 일 이라는 리디머 교회의 사역에서 가져온 What과 Why의 중간선상에서의 일이다. 무엇과 왜가 만날때, 우리는 시들거나 번성한다. 우리는 그 중간에서 계속 살고 싶다. 그곳에서 탐구하고 지도를 그리고 창조하고 축하하고….아래 원문소개

We might see them as estranged. But, in truth, they share a crucial aim: to see the unseen. Nothing new has been made without faith. Nothing unseen has been seen without work. When the force of what we do hits why we do it, we wither or we flourish. We don’t want to just examine that collision. We want to live in the intersection where it occurs. To celebrate what flies. And to rethink what falls. To map. To explore. To create. To risk and to fail better. Not just for a nicer 9-to-5. But to serve the city we belong to and love. It comes down to one key truth: work matters. So do it well.

https://faithandwork.com/about/1-what-why 에서 발췌

4. 전략이 아닌 전술

이건 머리를 쥐어짜내서 엄청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와 엑셀과 SWOT분석과 그로스 해킹으로 내 인생의 50년 계획을 세우는게 아니다. 그런 전략이 아니다. 난 진짜 온힘을 다해 그 전략을 짜며 살아봤다. 힘들기만 하고 잘 안되더라.

이건 전술이다. 이건 원칙이다.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이건 지금 무슨 주식을 사야할지에 대한 100장짜리 보고서가 아니다. 언제 주식을 사고 언제 팔지에 대한 원칙이고 전술인 것이다. 레이 달리오가 프린시플 (Principle) – 원칙이란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전술을 지키고 살아갈때 나의 원칙이 점점 더 내것이 된다.

그렇다. 여기서 전술은 이걸 붙잡고 가는 것이다. 그걸 붙잡고 가다보면 그게 점점더 내게 된다. 그게 내 원칙이 된다. 삶의 자세가 된다. 점점 더 확실해진다. 그 근육이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그냥 나오게 된다. 그런 것이다.

일자 시리즈를 마치며 – 에필로그

가짜 사랑을 버리고 진짜 사랑을 찾을때 우리는 안정감을 회복하고 우리 표정과 영혼이 살아난다

지난 일년여의 기간에 걸쳐 있었던 일로부터의 자유 연재를 드디어 마쳤다. 내 삶을 옭아메고 있던 가장 큰 쇄사슬이 끊겨 나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망망대해인 이 삶을 내가 고아처럼 살지 않아도 됨을 느꼈다.

얼마전에 우리 두살짜리 아들과 있었던 일이다. 장난감을 사러 몰에 들어갔는데 마땅한게 없었다. 영 이상한것만 있고 사줘봤자 금방 질릴게 뻔해서 아들한테 – 아빠가 나중에 더 좋은거 사줄게 – 그랬는데 애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난 이거 좋아 난 내가 좋은게 뭔지 안다고 이러면서 사달라고 드러누웠지만 아들을 가장 잘 아는 나는 사주지 않았다. 그리고 애가 울음을 그치자 않아주고 사랑해주고 달래주고 농담하고 간지럽히고 사랑해주자 애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시 본연의 까불까불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맘껏 놀았다.

내게 일어난 일과 얼마나 비슷한가. 내가 더 의미있는 일을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쳐도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그분은 허락하시지 않았다. 그건 가짜사랑이었기에 – 사람들의 시선을 사랑하고, 나 스스로의 업적을 사랑하는 Self love, 숨은 교만(Pride)과 같은 가짜였기에. 지금 내게 그건 약이 아닌 독임을 알기에. 먼저 나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내게는 더 좋은게 있다고, 나를 믿으라고, 그냥 안아주시며 사랑해주셨다. 나의 가짜 사랑이 사라졌을때 진짜 사랑이 찾아왔다.

이제는 그 사랑을 붙잡고 물위를 걸을 때이다. 물위를 걸으며 내 나름의 최고의 배를, 인도하심을 따라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놀이처럼 만들어서 물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그 사랑을 전해주는게.

아래 내가 얼마전에 쓴 일기로 이 긴 시리즈 글을 마무리한다. 나에게 비춘 그분의 빛과 사랑이 이글을 읽는 당신께도 비추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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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미를 찾아서 (의미있는 일이 하고 싶어요)

의미있는 일이 찾고 싶었다. 진취적이고 장래성이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너무나 뿌듯하고 의미있는일.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희생하고 바치고 싶었고 그럴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토플을 뒤로하고 교환학생에 대한 꿈을 접고 고시를 봤고 국회사무처를 그만두고 행정부로 옮겼다. 주위의 우려와 만류를 뿌리칠 수 있었던건, 결국 중요한건 ‘의미’ 이며, 그것을 내가 꿈꾸던 재경부에 가면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정부에서 일하면서 그걸 찾는데 실패했다. 묘하게 흐르는 냉소적인 분위기, 어차피 다 이런거라고, 이정도면 충분히 좋은거라는 메세지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일에 만족하면서 내면의 만족도 가지고 주위에도 밝고 선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멘토를 발견하는건 쉽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지만 다들 다양한 이유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왔고 실리콘밸리에 부딪혀봤다. 전망있는 산업과 비지니스를 찾아서 그렇게 커리어 전환을 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에서 자리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쉽지 않았다. 난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이방인이었고,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경쟁하는건 새로운 차원의 어려움이었다. 

그 와중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았다.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서 바닥부터 일해보는건 참 즐겁고 의미있었다. 그 어느곳에서 일했을때 보다 더큰 의미를 느꼈고, 더 많이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몇년을 일해보니 또다시 공허함이 찾아왔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서 ‘의미’를 찾을수 없다고 느껴졌다. 주위에선 만류했다. 회사도 잘 성장하고 있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역할을 하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하지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일을 계속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과감히 그만두고 무슨일을 해야 의미를 찾을수 있을지 고민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렇게 8년을 살다보니, 어느정도 미국의 주류사회, 스타트업의 주류사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은 다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주위에 거기로 들어가는 사람이 보였고 부러웠다. 새로 발견한 산은 매우 높고 멋지고 의미있어 보였다. 저기에 가면 의미를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Right track에 들어가면 나도 더 성장하고 내 주위에도 더 나눠줄 수 있을것 같았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난 계속 목말랐다. 

하지만 이 시기에 거짓말처럼 모든게 안되기 시작했다. 다시한번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이메일이 하나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일찍 눈을 떠서 커피숍으로 갔는데 할일이 없었다. 수없이 많은 곳에 지원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패배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대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거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 이너서클에 들어가기엔 너무 난 이미 나이들어 버렸고 잘못된 길을 걸어왔고 가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걸 가진, right track에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할 수 있을것 같은데. 

그러다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아주 깊이있게 만났다. 하나님께 ‘의미있는일’을 구했는데, 하나님은 일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다. 일하지 않아도 너의 너된것 만으로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쁘고 의미있다고. 넌 내게 아주 큰 의미라고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해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하나님 자체를.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나 자신 전체를, 나의 entire soul을, 나의 being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며, 그의 consuming fire를, the glory of God를, 그 강력한 임재를, 나의 모든걸 태워버리는 정금과 연단의 불을 기도했다. 몇주간 금식하며 모든 secular한걸 끊고. 

그리고 그게 찾아왔다. 모든걸 줘도 모자랄 듯한 가슴터질듯한 사랑이. 그 사랑 안에서, 그 뜨거운 사랑안에서 모든게 녹아내려짐이 느껴졌다. 내가 오르고 싶었던 산,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 일들, 내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 내가 사랑하고 품었던 사람들, 내게 마음의 짐처럼 고향처럼 있었던 내 조국, 내 과거, 이 모든것들이 그분의 사랑안에서 없어지는걸 체험했다. 세상은 간데없고 나와 구속하신 주만이 있었다. 예수님 안에서 난 그분의 순결한 신부였고, 난 그분의 옷자락 만으로 만족했다. 거기 모든 의미가 있었다. 거기 모든 충만함이 있었다. 난 그렇게 끝판왕을 만나버렸다. 

내가 없어지고 나자 모든 일이 의미없고, 또 의미있어 졌다. 의미없다 함은 기존의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단 것이다. 기존의 내가 죽었기에. 하지만 그분에게 의미있는게 내게 의미있어 졌다. 때로는 그게 육아로. 때론 그게 아무것도 안하는 걸로 나타났지만 뭐든 좋았다. 그분이 일하라 하시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내 머리론 이해되지 않아도, 아무 의미 없고, 아무런 나와 상관없어 보이던 일도, 이제는 다 상관이 있어졌다. 내 모든 관심은 그분께 향했다. 

그래 이젠 모든게 의미있다. 모든 사람이. 내 주위의 모든 사람에서 난 그분을 보고 사랑을 느낀다. 앞으로 하는 모든 일은 의미있는 일이 될것을 믿는다. 그분은 하나도 버리지 않으신다. 남김없이 사용하신다. 나의 약함도 나의 실수도 나의 능력없음도 그분께선 다 사용하신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과 기쁨안에서 앞으로 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린아이같은 excitement 으로 오늘도 그분께 물어본다. 그리고 그 일은 그분이 하시는 것이기에, 아무런 힘들이지 않고, 최고의 골프 스윙, 최고의 서핑, 최고의 수영 stroke 같은 그 자연스러움으로, 난 없어지고 그분만이 남아서, 난 완전히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다. 

부록: 가상 질의응답

아래는 가상 질의 응답이다. 어떤 질문이든 Challenge든, 이견이든 좋으니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커멘트라도 주시면 나중에 기회가 될때 후속편 질의응답을 준비해보겠다.

1. 그럼 그로스 해킹 하지 말라는 것이냐?

우리 딸은 만들기를 너무 좋아한다. 우리 딸에게 일이 늘 이렇게 즐거울수 있기를

아니다. 그로스해킹안에 엄청난 지혜가 있다는걸 부정하는건 전혀 아니다. 그걸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먼저 그 끈을 보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사랑받고 공급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로스 해킹을 통해 배를 만드는것이 온전한 창조와 놀이가 된다. 새로운 여유가 생기고 새로운 기쁨이 생기고 재미가 생긴다. 이제 나는 불안해서 배를 만드는 것도,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서 배 그 자체가 너무 멋져 보여서 배를 만드는게 아니다. 만드는 그 자체가 너무 즐겁고, 그 만든 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수 있는게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만들게 되는 거다.

이건 사랑을 너무 받은 사람들이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이야기이다. 그 창조가 온전한 놀이가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건 힘빼는것 같은거다. 힘을 빼고 할때, 새로운 마음으로 할때, 정념의 상태에서, 최고의 골프 스윙을, 최고의 테니스/수영 스트로크를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2. 그렇지만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을 우리는 멋지다고 인정해주고 그들을 존경하고 그 결과물을 축하해야 하는것 아닌가? 생각해봐라 – 한두명의 리더가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얼마나 큰 변화를 역사에 만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는지

Absolutely. 정말 맞는 말이다. 난 정말 이런 사람들을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고 이런사람들에게서 동기부여를 받는건 나의 삶의 일관된 자세였다. 지금도 난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들에게서 교훈과 영감을 받는걸 너무도 즐긴다. 여기에 대해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 이들의 선한 영향력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수 있다.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거의 숨도 못쉬는 사람에게 이 줄을 붙잡고 서핑하라고 하면 황당하게 쳐다볼지 모른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은 살리고 인공호흡하고 밥먹이고 기운차리고 살게 하고 무슨 판자쪼가리든 작은 서핑보드라든 하나 줘야지, 이들에게 왜 줄을 붙잡고 서핑 못하냐고 하면 상대적 박탈감만 만들 뿐이다. 가난하고 힘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건 아주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수 있는 기초소득과 사회안정망이다. 세상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하이 어치버 (High achiever)들은 이런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주고 일자리를 공급하고 삶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여기서 한차원 더 나갈수도 있다. 만약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큰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안보이는 생명줄을 전해주는 거라면? 이 항해가 끝나는 곳에서 정작 중요한건 얼마나 크고 멋진 배를 지었느냐가 아니라 생명줄을 잡고 있느냐 여부라면? 그렇다면 만약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배를 지을수 있는 사람이 이런걸 선뜻 버리고 주위에 줘버리고 이 생명줄만 붙잡고 홀가분한 삶을 산다면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들까? 그래, 이런 사람들은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도 공급해줄 수 있는 특권 (privilege)를 받은 사람들이다.

둘째, 하지만 이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자기의 배와 자기의 성취와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돈많은 사람들이 더 돈돈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돈의 위력을 알기에 더 그것을 놓지 않고 자신의 성역을 단단히 하려 한다는 것이다. 커리어라고 다를까. 커리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면 (이건 정말 상대적인 거라 뭐라고 할순 없지만, 예를 들어 서울대생 모임이나 스탠포드 MBA 모임에 가보면), 상당수의 대화가 가끔은 마치 부자들끼리 만나서 최근에 어디 투자해서 돈벌었고 어디 투자하면 좋다더라 누가 진짜 부잔데 그사람이 알려준 비법이 이거다 이런 이야기 계속하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나부터 언제나 이런식으로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항상 시간보내려 하고, 영향받으려 하고 늘 그렇게 살아왔지 않았나 반성한다.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어른들은 늘 자기의 지위를 확인하려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모든것들의 근간을 끝까지 파보면 사회의 지위와 성취에 대한 사랑이 있는것이 아닌가. 그 사랑은 위험하다. 그걸 특히 더 경계해야 할 것이다.

3. 세상에서 제대로 안사는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해서 자기 위안 하는 소리로 들린다.

무슨말인지 정말 잘 안다. 나도 전에 일부 신우회 사람들 보면서, 일부 교회에서만 에지 있고 세상에선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열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시간이 있으면 일한자 더하지. 난 절대 에지 떨어지는 이런 사람이 되지는 않겠어. 난 허투로 살지 않겠어 이렇게 다짐했다.

한가지 확실히 깨달은게 있다.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인생을 대충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열심을 내고 전에는 절대 못하는 엄청난 위험을 지고 엄청난 일을 하기도 한다. 왜냐고? 본인에게 맞는걸 하게 되니까. 새로운 힘으로 하니까. 이게 우리가 본 마틴루터킹, 링컨, 넬슨만델라 같은 삶에서, 아니 꼭 그렇게 화려한 삶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자기 맡은바 소명을 찾고 부르심에 응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서 보는 모습들이다.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일할수 있다.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내것이 아닌것을 탐하지도 않고, 내가 만들었다고 내 배를 은근히 자랑하지도 않고, 항상 그 은혜 넘치는 먹먹한 마음으로 사랑과 겸손과 뜨거움으로 일할수 있다. 진짜 미친듯이 일할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이 너무나 기쁘고 재밌을수 있다. 세상에서 이게 엣지가 있는지 아닌지 남들이 내 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기쁨으로 일이 놀이가 되고 일이 기쁨이 되고 눈물이 되는것을 경험할 수 있다.

4. 주위에 잘되고 나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다는 사람많이 봤다. 그런이야기를 하는거냐.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이런 번영신앙(prosperity gospel)은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다. 크리스천을 위선자로 만드는. 어떤 느낌인지 안다. 이런 소리 들으면 나도 오만정이 다 떨어지더라.

안보이는 끈을 붙잡고 가면 더 큰 배가 만들어질거라는건 아니다. 가장 본인에게 맞는, 어울리는 배를 만들거라는 이야기다.

분명 이 세상은 무서운 바다와 같다. 우리들이 만들던게 한순간에 다 엎어지기도 한다. 직업이 없어지고 건강이 악화되고 그러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배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세계 최대 강국을 넘보던 중국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천재지변에 뒤흔들리고 있는데 우리가 만든 배라고 이 세상앞에서 안전할까. 판자쪼가리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판자조가리도, 손바닥만한 받침대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안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기뻐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얻을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황된 소리가 아니다. 그 끈을 잡아보기 전에는 모른다.

5. 난 지금 하는일이 엄청나게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돈도 커리어패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난 세상에 기여할 자신도 있다. 일이란게 다 즐거울순 없는게 당연한데 왜 내가 굳이 다른 생각을 해야하나?

Great question. Great point. 아주 좋은 질문이다. 두가지 답변을 하고 싶다.

첫째, 나도 다른 사람도 잘못된 눈으로 보고 있기에 (그럴 가능성이 높기에): 진짜 중요한건 배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건 사람이고 내면이다. 하지만 세상의 풍파가 무섭고 물에빠져 죽는사람이 보이고, 내가 가진 배가 멋져 보이면 어느순간 배가 내 사랑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어떤 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더 큰 배를 가진사람끼리 계속 어울리게 된다. 내 배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낮춰보는 교만한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내 배가 부서질까봐 간혹 마음이 너무 불안하기도 하다. 내 배가 무너지면 남한테 알리지 않고 열심히 보수해서 멋진 배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나의 위치를 주위와 비교해가며 나의 위치 (status)를 다시 확인하며 안심한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다. 나도 다른사람도 잘못된 눈으로 보게 된다. 사람은 그 ‘배’에 의해서, 돈이나 세상의 지위에 의해서 가치가 매겨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권이란게 있다. 우리의 영혼이 안다. 인간의 존엄성을. 그걸 놓치기 쉽다.

둘째, 나도 더 즐겁게 일하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을수 있기에: 이렇게 살다보면 사실 너무 많은걸 놓치고 살게 된다. 주위를 보면 사랑하고 섬길 사람이 넘쳐나지만, 이렇게 살다보면 여유가 없다. 조금더 큰 배를 만들면, 조금더 높은 산에 올라가면 그때 나도 더 세상에 기여할거라고 합리화하고 위안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랑할 시간도, 기뻐할 시간도 없어지고, 같이 더불어 살면서 가질수 있는 풍성한 기쁨과 충만을 잃어버리기 너무 쉬워진다.

6. 세상이 장난인가. 난 40대 Finance. 이걸 좋아하진 않지만 돈 잘 벌게되고 이거 말고는 할거도 없다. 갑자기 나에게 이걸 그만두라는거냐?

아니다. 갑자기 배를 버리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배 타고도 할 수 있다. 서핑 – 안보이는 그 끈을 붙잡는 연습을 하자는것이다. 아래 네가지 단계를 소개한다.

  1. 휴식(Rest) -> 2. 회복(Restore) -> 3. 연결(Connect) -> 4. 창조(Create)

나의 경우를 보자. 내 맘대로 안되서 울부짓고 발버둥치다가 (직장을 나오고 취직이 안되어 자기연민에 울부짖음) 휴식(rest)와 회복(restore)의 시기가 나타났고 (사랑을 듬뿍받고 온전히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함), 다시 다른 눈으로 세상과 연결
(connect)하면서 한걸음씩 내 본연의 창조자(creator)로서 다시 나가고 있는것. 이런 과정을 우리 누구나 거치게 되는 것이다. 절대 갑자기 배를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의 40대 파이낸스 직군 종사자의 예를 들어보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면 이렇게 될수도 있다. 돈이 나의 모든거였다는걸 깨닫고 그걸 묵상하고 쉬는 가운데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힐링이 일어남. 이제 새로운 눈으로 사람을 보고 내가 옛날부터 좋아하는 음악과 사진, 예술적인 쪽에서 단순히 나 혼자 취미활동을 하는것이 아닌 다른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동참함. 그러다가 그 일이 점점 커져서 50대 이후 creative shop을 차려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함.

만약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면? 풍부하고 충만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인생2막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7. 꿈을 찾아라 이런 이야기냐?

꼭 그런건 아니다. 꿈을 찾으란건 마치 꿈이 저기 어딘가 있고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인도에 가서 명상하며 찾아야 될것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도전을 끈임없이 하며 꿈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속한 곳을 떠나서 밖에서 나의 꿈을 찾으려 할때 오히려 공허함만 남을지 모른다.

이건 소명(calling), 부르심, 내가 세상에 있는 이유(purpose)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니, 나 혼자 그 소명을 다 찾는다는게 아니라, 난 그 눈에 안보이는 끈을 붙잡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그 인도하심 하에서 나의 자리를 계속 찾아가는 그 여정 (journey)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땅의 것에,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명예든 그 무엇이든, 집착하고 있으면 고개를 들수가 없다. 안보이는 끈이 보일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 끈이 더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믿음이 생기고, 안보이는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 다섯단계를 소개한다.

  1. 진리(Truth) -> 2. 믿음(Faith) -> 3. 성품/습관(Character) -> 4. 비전(Vision) -> 5. 겸손(Humble)

첫번째 단계는 진리를 아는 것이다. 삶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걸.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명과 붙어 있느냐, 우리가 그 안보이는 끈을 믿음으로 붙잡을수 있느냐 라는걸. 나를 구원해주기 위해, 살려주기 위해 본인을 희생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걸. 나를 사랑하는 나의 창조주가 있는걸 아는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믿음으로 내딛기 시작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안보이는 절벽에서, 절벽이 어려우면 언덕에서라도 점프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내게는 너무 필요해보이는 나의 보호기제들을 놓고 그 안보이는 끈을 잡고 한번 풍랑을 견뎌보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습관과 성품,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단계이다. 믿음으로 점프하는게 익숙해지다보면 근육이 생긴다. 서핑을 잘할수 있게된다. 옛날에는 넘어졌던 난관에서 점프할 수 있게된다. 옛날에는 물에 빠졌던 풍랑도 거뜬히 이겨내는 여유가 생긴다.

네번째 단계는 비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고 가다가 주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뜻과 마음이 들어오는 단계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새롭게 보이고 내 환경과 내 주위가 새롭게 보이며, 어떻게 이들에게 축복이 될지, 어떻게 이들을 섬길지, 난 무엇을 만들고 창조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새로운 비전이 보이는 단계이다.

다섯번째 단계는 다시 겸손해지는 단계이다.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나 혼자힘으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아는 순간, 내가 나 혼자 만들수 있는 배는 결국 이사람들을 구할수 없다는걸 아는 순간, 한없이 겸손해지며 그 비전앞에서 내가 할수 있는것을 묵묵히 순종과 겸손으로 하게되는 단계이다.

그래 우리는 이 다섯단계를 거쳐가며 우리의 소명을 계속 찾아가게되는 것이다.

8. 다 알겠다. 하지만 적용하기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너무 뜬구름잡는 소리같다. 어디에서 부터 시작해야 하나?

엄청나게 어렵다는거 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난 까딱 잘못하면 물에 빠지고 마는 존재이다. 나에게도 절대 쉽지만은 않다. 한걸음씩 가볼수 밖에.

하나 말씀드릴수 있는것, 마치 모든게 그렇듯이 계속 하다보면 전보단 쉬워지고 전보다 몸과 마음에, 나의 영혼에 익숙해져 갈것이라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그로쓰 해킹을 덮어놓고 산을 올라가는데만 할게 아니다. 일단 좋은 대학 가면, 일단 저 시험에 붙으면, 일단 저기만 가면 되는 그런건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로스 해킹을 이 안보이는 끈을 붙잡는 연습하는데에 적용해야할것. 어떻게 할때 내가 붙잡을수 있는지. 언제 이게 보이고 언제 안보이는지. 그리고 나의 어떤 발걸음이 그걸 붙잡고 간건지 아니면 붙잡은줄 알았지만 썩은 동앗줄을 붙잡고 간건지. 이거야 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며 끝없이 해킹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About sanbaek

늦깍이 크리스천 (follower of Jesus), 우렁각시 민경이 남편, 하루하율이 아빠, 둘째 아들, 새누리교회 성도, 한국에서 30년 살고 지금은 실리콘밸리 거주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중. 좋아하는 것 - 부부싸움한것 나누기, 하루하율이민경이랑 놀기, 일벌리기 (바람잡기), 독서, 글쓰기, 운동, 여행 예배/기도/찬양, 그리고 가끔씩 춤추기. 만트라 -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Give the world the best I've got.

15 comments

  1. Dian J.

    일자 시리즈 종종 주말에 글이 올라올까 기다리면서.. 15화 전부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끝나서 아쉽지만, 또 새로운 글들을 기대하겠습다.

  2. Love

    벌써 마지막 글이라니 ..ㅠㅠ! 산님의 모든 글들은 마치 제게 그 끈으로 향하는 GPS system 이었어요! 감사하단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 그 자체였습니다. 흙흙ㅠㅠㅠㅠㅠ 그런 의미에서 첫글부터 다시 읽으러 가야겠어요!! 응원하고 기대하며 또 기다리겠습니다. 산님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감사드려요. 🙂

    • 감사해요 너무 큰 응원이 되네요…눈물 나는 답글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이, 제 글이 될 수 있다니. 그런 offering 이 될 수 있다면 손가락이 떨어질정도로 글 써보고 싶네요. 주님 이름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감사해요.

  3. Love

    제가 드리고픈 질문은 맨 마지막에 콕 짚어주셨네요.:)
    그로스해킹을 이 끈을 더 단단히 붙잡는데에 어떻게, 무엇을 적용해볼 것인가!
    저는 이 끈을 한번 붙잡았다면 내가 놓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끈이 떨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문제는 때때로 나의 에고가 내 속에서 요동을 칠땐 마치 반항하는 사춘기 어린아이처럼 눈 앞에 보여도 안 보이는척 할 때가 있어요.ㅠㅠ 그럴땐 더 고요히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그리고 가끔은 어떤 사건이나 이슈? 같은 것들을 내가 보려고 본게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근데 아직은 그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아서 .. 산님은 그런걸 어떻게 구분하고 판단하시나요?
    마지막으로 이젠 믿음이라는게 누군가에게 심지어 하나님께도 더이상 증명하거나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란 생각이 많이 들어요. 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성경을 두고 많은 해석들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유하라 하셨잖아요 .. 물론 그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고 또 많은 공부가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만요. 요즘 워낙 한국 사회가 분열의 극단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거기에 또 종교가 한몫하는듯 느껴지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게 무의미한 것을 알지만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자꾸 여러 의문이 들어요. 나중에 이런 주제에 대해서 언제고 한번 다뤄주셔도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

    • Alley

      한국 사회가 분열의 극단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거기에 또 종교가 한몫하는 듯 느껴지신다고 적은 말에 답글 남깁니다. 얼마 전에 정말 오랫만에 기도원에 갔다가 목사님들 및 교수님들께서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 안보에 대한 현 상황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으로 설명하시면서 관련 이슈들에 대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재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동성애 관련 법들, 기독교 탄압으로 가려는 정책들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정말 심각한 이슈들이 많은데 같은 기독교인들도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심 가지지 않으니 모르는 경우도 정말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경제를 공부하다가 그게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고 그러면서 그게 다시 신앙으로 연결되더군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고 분별하는 영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조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하나님 반대 편에 선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물으면, 그래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의 것들을 보게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동성애 같은 것들도 동성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경우 사회에서는, 그리고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됩니다. 하나의 예제를 적었지만, 그리고 저 역시 미국에 살면서 동성애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전에는 찬반의 의견이 없었지만, 하나님께 묻고,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진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계별로 보여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국 땅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더군요.

      • 참 어려운 영역이죠…분별하는 영을 가지는 부분. 분별하는게 맞을때도 있고, 때로는 분별보단 사랑이 중요할 때도 있을테니. 때로는 우리가 분별한다고 하면서 내 몫의 선악과를 먹고 있을때도 있을테니. 그래서 어떤 이슈에 대해 의견을 안내는 비겁자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진짜 제 마음의 중심에 사랑과 은혜로 인한 먹먹함이 없으면 또 입을 다물게 될때도 많은것 같아요. 그냥 울고 회개하는게 백마디 말보다 나을때가 많이 있는게 보여서. 그게 그분의 마음으로 느껴질때도 많아 보여서…참 그때그때 지혜를 구하게 되는 부분….하나님이 Alley 님께 주신 영적 분별력과 숙제들이 많이 기대되네요.

    • 1. Question regarding 나의 에고: ㅎㅎ 이건 모두의 문제죠. 붙잡기 싫은게, 그게 이 fallen world를 사는 우리의 fleshly desire – 죄성. 이런 죄성이 나올때 묵상하고 기다리는게 최선일까? 이건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고 그때그때 다른것 같습니다. 만약 내 안에 특별히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 그게 돈이든, 결혼문제든, 부모님 문제든, 커리어든, 외모든, 무엇이든 간에 – 그 이슈만 나오면 난 믿기 싫고 순종하기 싫고 내 의가 나오고 할때 그걸 무조건 찍어누르면 그럴수도 없고 잘 되지도 않죠. 그럴땐 그거 그 자체를 계속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씨름해야 하는듯. 하나님 이게 자유롭지 않아요 이게 잘 안되요. 다윗이 시편에서 악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주님앞에 온전히 필터 없이 털어놓듯이. 있는 그대로 – 하나님 저 인스타에서 이게 계속 보고 싶어요. – 뭐 심지어는 이런것 까지도.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분께 가져가는걸 우리 부모님은 바라신다고 봐요. 성경 자체가 온통 그 메세지인듯. take refuge. Turn. Bring it to me. 나와 변론하자. 밥먹으며 이야기좀 해보자. What is troubling you?
      2. 하나님이 보게 하신건지 내가 본건지 이걸 구분하는법 – 이것도 정답이 없는 문제. 이건 결국 relationship의 문제인듯. 저와 Love님이 관계가 생기면 제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죠. 제 문투만 봐도 알겠죠. 하나님과 친해지면, 관계가 생기면, 구분이 갈수록 쉬워지는듯.
      3. 믿음이라는게 증명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질문 – 사실 믿음은 계속 practice안하면 없어지는 muscle같은것.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한테 이삭을 내리치라고 하셨을까? 새디스트인가? 하나님은 다 아실텐데? 그거 궁금해보신적 없어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믿음은 막상 그 점프를 하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죠. 선택할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그렇기에 우리가 그 자유의지로 ‘믿음’을 선택하기 전까지, 그건 unknown의 영역인듯. 그래서 우리가 계속 믿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우리의 성숙이 되고 우리의 그분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되는.

      이렇게 이야기해보죠. 제가 제 4살짜리 딸을 볼때, 방을 다 치워줄수도 있지만, 치워보라고 하고, 그림 다 그려줄수도 있지만 그려보라고 하는건, 어떤 면에서 쉽지 않을거 알지만 계속 그 한계를 테스트하는건, 제 딸을 향한 사랑의 표현일때가 많아요. 성장했으면 하는. 그리고 그걸 해낼때, 딸도 성장하고 저도 너무 기쁘죠. 그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하나님의 마음인듯. 가장 어려운걸 믿음으로 해낼때, 아브라함도 성장하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그래서 히브리서가 이야기하죠. 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믿음은 그런 영역. 늘 믿음의 점프를 할때는 두렵지만, 자꾸 뛰다 보면, 더 높은데서, 더 안보이는 낭떨어지로, 더 모든걸 내어던지고 계속 뛸수 있는듯. 그래서 믿음은 계속 연습해야 하는것. 계속 살아내야 하는것. 인정받고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나의 성역을 쌓아가고 내 마음대로 하려하고 내가 신이 되려하는 그런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믿음은 그걸 놓아드리는 의지의 표현이자 사랑의 표현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훈련이자…I can go on and on… 우리에겐 자유가 있기에 우리는 믿을수 있는것. 그냥 믿게 하는건 그건 자유가 아님.

  4. Love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 이슈들과 관련하여 현 상황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우려와 고통들을 깊게 통감하고 충분히 이해하는 바입니다. 다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방안에 많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네요 ..
    정말 Alley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올바른 모습이 되길 바라고 구하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

  5. sin gu ha

    한국 사회 같은경우에 기업,공무원조직,종교단체,기타 이권집단 등… 넘을 수 없는 보이지않는 장벽같은게 존재해서 그 테두리 안에서 내부자-외부자 모형이 형성되다보니까… 저도 Alley님께서 말씀하신 각종 심각한 이슈들이 많은데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신 부분 너무나 극히 깨닫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아직도 지역 갈등 이권집단등이 계속 생겨나는 부분은 저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ㅠ

    • https://www.imdb.com/title/tt0463998/ – 이 영화 보신적 있나요? 미국의 아주 폭력적인 고등학교에서 수많은 상처로 싸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 선생님이 사랑으로 호소로 희생으로 이들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지. 한국사회를 보면 이 고등학교와 과연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싸울수 밖에 없는지. 다들 마치 지금은 전쟁인것이, 이 전쟁에서 서로 싸우는게 운명인것처럼 정의인것처럼 살고 있는데, 물론 정의의 문제가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과연 해결의 실마리가 어디에 있을지 기도해보게 되네요. 더 거룩한 희생에, 회개에, 사랑에 결국 있지는 않을지. 그게 무얼지. 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6. 이기군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글보다 손꼽아 기다려지는 연재였습니다. 지금 뿐 아니라 나중에 또 누군가의 영적 광야의 시기에 힘이 될 이야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산형제님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떻게 될까? 구글에 들어가게 될까? 인컴이 올라갈까? 요셉처럼 쓰임받으실까? 여러 기대감을 갖게 되기도 했었는데요 ㅎ 어느 순간부터는 이 이야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산 형제님과, 함께하시는 주님 그자체에 빠져들고 응원하게 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ㅎㅎ 어디를 들어가든, 안들어가든, 뭐가되든간에요 ㅎ 물론 당사자로서 힘든 순간들을 겪으실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순간순간 느끼시고 경험하시는 것들 나눠주시면 그 디테일과 솔직함 가득함 속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모로코에서의 생활 가운데도 은혜가 넘치고 새로운 집과 더욱 다복할 가정 가운데서도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너무 큰 응원이 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사실 우리는 쓰임받기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론 결국 우리가 하는게 아닌데. 저를 요셉처럼 쓰실수도 있지만, 저를 그냥 에녹처럼 동행해서 살게 하시고 데려가실수도 있는 건데. 쓰임받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중심에는 ‘내’가 높아지고 싶고 ‘나’가 있을때가 많음을 느낍니다. 나의 삶의 이야기에 ‘내’가 있는지, ‘그분’이 있는지 정말 돌아보게됩니다. 내가 그분의 사랑으로 늘 먹먹하게 살면서 ‘증인’된 삶을 살아갈때, 나의 영향력의 크기와는 무관히, 세상에서 얼마나 나의 영향력에 열광하는가와는 무관히, 난 더 큰 희생을 할 수 있고, 더 기쁨으로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고, 그분은 기뻐하시며 그분이 하실일을 할거를 더 믿게 되네요. 저도 그분을 보는 것이고, 주위에게 그분을 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은 그분이 하시는. 제가 하는것은 하나도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때 역설적으로 그분이 그 모든것을 쓰시는 것이고, 하나도 버릴게 없게되는.

      아 이거 참 재밌는듯. 그분의 역사는 정말 오묘하네요. 아름답고….It’s a profound mystery. Thank you for making me reflect on his maj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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